박찬일 요리사의 백년가게 산책 #11
‘백년가게’는 30년 이상 명맥을 유지하면서도 오래도록 고객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점포 가운데, 중소벤처기업부에서 그 우수성과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 받아 공식 인증받은 점포입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과 신한카드, 그리고 브릭스 매거진이 '백년가게'의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해 요리사이자 작가인 박찬일 요리사와 함께 백년가게 탐방에 나섰습니다. 여러 저서를 통해 '노포'라는 말을 처음으로 대중에 알린 박찬일 요리사와 다양한 지역으로 백년가게 탐방을 떠나보세요.

박찬일 요리사
* * *
시장은 맛집 그 자체다. 시장에서 맛이 나온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장 소박하게 맛있는 음식을 만든다. 곰보냉면을 가서 그렇게 느꼈다. 사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냉면집은 시장에 있다. 수수하고 싸고 솔직하다.


의정부제일시장의 백년가게, 곰보냉면
“여기 시장 상인분들, 근처에 있었던 의정부터미널 이용객들, 아니 그냥 의정부를 비롯한 인근 지역 사람들이 우리 냉면을 드시러 오셨어요.”
곰보냉면 입구
곰보냉면은 식당이고 냉면집이지만 그 너머 어디에 다른 존재가 있다. 한 그릇의 위로 같은 조금은 낯간지러운 말을 써도 되는 집이다.
“예전에는 식당이 별로 없었잖아요. 특히 더운 여름에 냉면은 최고 인기였죠. 우리 집에 다들 오셨어요. 밖에서 서서 드시고, 그릇 받아서 골목에 쭈그리고 앉아서 드시고.”
박찬일 요리사
곰보냉면의 2대 사장, 이태진 씨(48)
이 집의 역사가 그랬다. 원래 의정부에 연고도 없었던 부모님(이영찬(작고), 박영순(76))이 의정부로 오셨고, 국숫집을 열었다. 그게 바로 곰보냉면의 시작이다.
“생계로 하셨죠. 국수가게. 참 소박한 식당 아닙니까. 곧바로 냉면집으로 바뀌었다고 해요.”


곰보냉면 실내
따로 기술자를 두지는 않았다. 어머니가 솜씨가 좋았다. 어깨너머로 봐도 척척 만들어냈다. 개업 당시 엄청나게 장사가 잘됐다. 의정부제일시장은 아주 강력한 지역 시장으로, 경기 동북부의 맹주였다. 오일장이 있던 때라 좌판을 벌이는 상인과 장꾼들이 새까맣게 몰려왔다. 그때 곰보냉면은 불과 한 칸짜리 냉면집이었다.
지금도 복도를 사이에 둔 맞은편 상가 한 칸을 빌려 주방으로 사용하고 있다.
“시장은 칸으로 나뉘거든요. 이 한 칸이 6, 7평 됩니다. 지금은 네 칸이 되었지만 옛날엔 우리가 앉아 있는 이 홀 자리 한 칸이 전부였어요.
아들이자 2대 사장인 이태진 씨의 설명이다. 그는 다른 사업을 하다가, 부모님이 연로하셔서 대를 이을 사람이 없게 되어 가게에 들어왔다.
“가게 밖에서 솥 놓고 면을 삶았어요. 가게가 너무 좁아서요. 그런 게 시장 풍경이었지요.
이태진 사장은 냉면집과 나이가 같다. 1976년. 내년이면 오십이 된다. 그는 그래서 의정부 토박이다.
곰보냉면을 운영 중인 이태진 씨
“요 맞은 편 가게 저 친구도 친구예요. 동창생이죠(웃음).”
맞은 편 가게 안에 과연 중년의 남자가 손님을 맞고 있다. 토박이 되어, 토박이 손님들에게, 토박이 냉면을 판다.
비빔냉면 8천 원, 물냉면 8천 원. 곱빼기가 1만 원이다.

곰보냉면의 비빔냉면과 물냉면
“곱빼기 드시는 분은 거의 없어요. 대개는 보통을 시키고 양을 많이 달라고들 하세요. 단골들이니까요. 제가 그분들 식성도 알아요. 원하시면 양을 충분히 드리니, 곱빼기는 정말 엄청 대식가가 먹을 양이 나갑니다(웃음).”
이 집은 김치만두, 고기만두도 명물이다. 그 좁은 가게에서 일일이 손으로 만들었다. 그가 보여주는 옛날 사진에서 젊은 시절의 어머니가 만두를 빚고 있다.
곰보냉면의 고기만두
“시장은 종일 일하는 곳이에요. 놀랍게도 새벽부터 냉면을 드시러 오셨어요. 그러니 일찍 나와서 팔아야죠. 지금도 아침 냉면을 팝니다.”
들을수록 놀라운 이야기다. 제대로 된 냉면은 아침이나 밤에는 먹을 수 없다. 이 집이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냉면을 먹을 수 있는 집일 듯하다. 이른바 브레이크 타임은 지금도 없다. 시장 상인이나 단골들은 정해진 시간이 없다. 아무 때나 오신다. 그러니, 늘 문을 열어둔다.


곰보냉면의 비빔냉면은 미리 다 비벼서 나온다.
“하루 종일 가게에 있어요. 제가 맡게 될 때 가장 두려운 게 그것이었어요. 아, 이제 사생활, 휴일이 없어지는구나. 어려서부터 부모님은 종일, 1년 363일 가게에 계셨어요. 설과 추석 당일만 쉬셨죠. 그걸 보고 자랐으니 제가 이 가게를 받을 수 있을까 고민이 있었습니다.”
이제 일주일에 하루는 쉰다. 그래서 더 버겁다. 아침 냉면부터 저녁까지 꼬박 붙어 있어야 한다. 그건 노포, 시장 식당을 하는 후대의 숙명 같다.

곰보냉면의 냉면
이 집의 냉면은 소박하다. 요란한 고명도, 비싼 소고기 토핑도 없다. 대신 값이 싸고 시원시원하다. 특히 면이 좋다. 오랜 거래처가 제면해서 보내온다. 이 시장 공간에는 제면기를 놓을 수도, 놓아야 할 큰 의미도 없으니까.

점심을 한 터라 맛만 본다고 가볍게 젓가락을 들었는데 자꾸 면이 들어간다. 이런 게 옛날 시장 냉면의 특징이다. 싸고 편하다. 나도 모르게 냉면을 흡입하고 있었다.

글·인터뷰 | 박찬일
사진 | 신태진
기획 |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 신한카드 & 브릭스
박찬일 요리사의 백년가게 산책 #11
‘백년가게’는 30년 이상 명맥을 유지하면서도 오래도록 고객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점포 가운데, 중소벤처기업부에서 그 우수성과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 받아 공식 인증받은 점포입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과 신한카드, 그리고 브릭스 매거진이 '백년가게'의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해 요리사이자 작가인 박찬일 요리사와 함께 백년가게 탐방에 나섰습니다. 여러 저서를 통해 '노포'라는 말을 처음으로 대중에 알린 박찬일 요리사와 다양한 지역으로 백년가게 탐방을 떠나보세요.
박찬일 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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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은 맛집 그 자체다. 시장에서 맛이 나온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장 소박하게 맛있는 음식을 만든다. 곰보냉면을 가서 그렇게 느꼈다. 사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냉면집은 시장에 있다. 수수하고 싸고 솔직하다.
“여기 시장 상인분들, 근처에 있었던 의정부터미널 이용객들, 아니 그냥 의정부를 비롯한 인근 지역 사람들이 우리 냉면을 드시러 오셨어요.”
곰보냉면은 식당이고 냉면집이지만 그 너머 어디에 다른 존재가 있다. 한 그릇의 위로 같은 조금은 낯간지러운 말을 써도 되는 집이다.
“예전에는 식당이 별로 없었잖아요. 특히 더운 여름에 냉면은 최고 인기였죠. 우리 집에 다들 오셨어요. 밖에서 서서 드시고, 그릇 받아서 골목에 쭈그리고 앉아서 드시고.”
이 집의 역사가 그랬다. 원래 의정부에 연고도 없었던 부모님(이영찬(작고), 박영순(76))이 의정부로 오셨고, 국숫집을 열었다. 그게 바로 곰보냉면의 시작이다.
“생계로 하셨죠. 국수가게. 참 소박한 식당 아닙니까. 곧바로 냉면집으로 바뀌었다고 해요.”
따로 기술자를 두지는 않았다. 어머니가 솜씨가 좋았다. 어깨너머로 봐도 척척 만들어냈다. 개업 당시 엄청나게 장사가 잘됐다. 의정부제일시장은 아주 강력한 지역 시장으로, 경기 동북부의 맹주였다. 오일장이 있던 때라 좌판을 벌이는 상인과 장꾼들이 새까맣게 몰려왔다. 그때 곰보냉면은 불과 한 칸짜리 냉면집이었다.
“시장은 칸으로 나뉘거든요. 이 한 칸이 6, 7평 됩니다. 지금은 네 칸이 되었지만 옛날엔 우리가 앉아 있는 이 홀 자리 한 칸이 전부였어요.
아들이자 2대 사장인 이태진 씨의 설명이다. 그는 다른 사업을 하다가, 부모님이 연로하셔서 대를 이을 사람이 없게 되어 가게에 들어왔다.
“가게 밖에서 솥 놓고 면을 삶았어요. 가게가 너무 좁아서요. 그런 게 시장 풍경이었지요.
이태진 사장은 냉면집과 나이가 같다. 1976년. 내년이면 오십이 된다. 그는 그래서 의정부 토박이다.
“요 맞은 편 가게 저 친구도 친구예요. 동창생이죠(웃음).”
맞은 편 가게 안에 과연 중년의 남자가 손님을 맞고 있다. 토박이 되어, 토박이 손님들에게, 토박이 냉면을 판다.
비빔냉면 8천 원, 물냉면 8천 원. 곱빼기가 1만 원이다.
“곱빼기 드시는 분은 거의 없어요. 대개는 보통을 시키고 양을 많이 달라고들 하세요. 단골들이니까요. 제가 그분들 식성도 알아요. 원하시면 양을 충분히 드리니, 곱빼기는 정말 엄청 대식가가 먹을 양이 나갑니다(웃음).”
이 집은 김치만두, 고기만두도 명물이다. 그 좁은 가게에서 일일이 손으로 만들었다. 그가 보여주는 옛날 사진에서 젊은 시절의 어머니가 만두를 빚고 있다.
“시장은 종일 일하는 곳이에요. 놀랍게도 새벽부터 냉면을 드시러 오셨어요. 그러니 일찍 나와서 팔아야죠. 지금도 아침 냉면을 팝니다.”
들을수록 놀라운 이야기다. 제대로 된 냉면은 아침이나 밤에는 먹을 수 없다. 이 집이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냉면을 먹을 수 있는 집일 듯하다. 이른바 브레이크 타임은 지금도 없다. 시장 상인이나 단골들은 정해진 시간이 없다. 아무 때나 오신다. 그러니, 늘 문을 열어둔다.
“하루 종일 가게에 있어요. 제가 맡게 될 때 가장 두려운 게 그것이었어요. 아, 이제 사생활, 휴일이 없어지는구나. 어려서부터 부모님은 종일, 1년 363일 가게에 계셨어요. 설과 추석 당일만 쉬셨죠. 그걸 보고 자랐으니 제가 이 가게를 받을 수 있을까 고민이 있었습니다.”
이제 일주일에 하루는 쉰다. 그래서 더 버겁다. 아침 냉면부터 저녁까지 꼬박 붙어 있어야 한다. 그건 노포, 시장 식당을 하는 후대의 숙명 같다.
이 집의 냉면은 소박하다. 요란한 고명도, 비싼 소고기 토핑도 없다. 대신 값이 싸고 시원시원하다. 특히 면이 좋다. 오랜 거래처가 제면해서 보내온다. 이 시장 공간에는 제면기를 놓을 수도, 놓아야 할 큰 의미도 없으니까.
점심을 한 터라 맛만 본다고 가볍게 젓가락을 들었는데 자꾸 면이 들어간다. 이런 게 옛날 시장 냉면의 특징이다. 싸고 편하다. 나도 모르게 냉면을 흡입하고 있었다.
글·인터뷰 | 박찬일
사진 | 신태진
기획 |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 신한카드 & 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