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가게] 3대째 이어지는 '찐노포' 평양냉면, 평택 고복수평양냉면

박찬일 요리사의 백년가게 산책 #10


‘백년가게’는 30년 이상 명맥을 유지하면서도 오래도록 고객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점포 가운데, 중소벤처기업부에서 그 우수성과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 받아 공식 인증받은 점포입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과 신한카드, 그리고 브릭스 매거진이 '백년가게'의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해 요리사이자 작가인 박찬일 요리사와 함께 백년가게 탐방에 나섰습니다. 여러 저서를 통해 '노포'라는 말을 처음으로 대중에 알린 박찬일 요리사와 다양한 지역으로 백년가게 탐방을 떠나보세요.


박찬일  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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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냉면이 대세다. 겨울에도 잘 되는 집이 많다. 그중에서 평양식 냉면이 크게 떴다. 지난 정부의 남북정상회담과 평양 방문 무렵부터 묘하게 맞아떨어졌다. 서울을 중심으로 우후죽순처럼 평양냉면집들이 생겼다. 동시에 노포 평양냉면집이 재조명되었다. 을지면옥 같은 경우는 재개발로 폐업을 할 때 메이저 방송과 신문 뉴스에 나왔고, SNS에 크게 화제가 되기도 했다. 평양냉면 노포는 이제 그 위상이 달라진 것이다.


평택 고복수평양냉면


평택에도 유명한 노포가 몇몇 있다. 중국집이 우선 꼽힌다. 냉면으로는 평택고복수냉면이다. 눈매와 기운이 범상치 않은 주인 고복수(67) 씨가 운영한다. 그는 3대째다. 요즘 말로 ‘찐노포’다. 원래 가게는 평택의 중심가였던 명동에 있었다. 구도심이 힘을 잃으면서 그도 여러 곳을 옮겨 현재의 자리에 이르렀다. 


“처음 가게는 할아버지(고학성 씨)께서 1910년에 평안도(평북 강계군)에서 중앙면옥을 열었어요. 그게 이 집의 뿌리입니다. 그때부터 가게 역사를 칠 수는 없지만 따지자면 우리 집이 백년이 넘었어요.”


3대째 이어지고 있는 평택 고복수평양냉면


필자는 20대 시절 이 냉면집을 알았다. 그때는 평택고박사냉면이었다. 서울 신촌에 분점이 있어서 서울 사람들에게도 인기가 있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고박사라는 상호는 쓰지 않고 있다. 고복수는 물론 현 주인의 이름이다. 고박사라는 건 아버지 고순은(1921년생. 작고) 씨의 별명이었다.


이 양반이 파란만장하다. 원래 중국 팔로군이었다. 일제와 싸웠다. 당시 많은 조선인들이 중국 팔로군에 배속되어 독립을 위해 투쟁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분명한 사실로 학계에서 인정받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고복수평양냉면 실내


그러다가 중국군으로 배속되었다. 6.25전쟁 때 참전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핏줄이 한국인이었다. 포로가 되고, 전향했다. 한국군으로 전쟁을 더 치렀다. 기구한 운명이다. 그러다 평택 출신의 아내를 만나 정착했다. 평안도 사람이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평택에 이르렀고, 그 자손이 냉면집으로 노포를 이어 간다. 이 운명을 어찌 몇 줄로 쓸 수 있으랴. 어쨌든 그런 냉면을 우리가 먹을 수 있다. 


국물 한 모금을 마셔보면 “어!” 하는 탄성이 나온다. 독특하다. 요새 서울 냉면은 거개 육수 중심이다. 고기 맛이 도드라진다. 고기가 싼 대신, 동치미나 김치 담그기는 어렵고 번거로워 그렇다. 특히나 여름이 냉면 대목인데 동치미는 만들기 어려워 점차 사라졌다. 냉면은 겨울음식이었고, 그 뿌리는 김치와 동치미다. 고복수씨는 이렇게 말한다.


고복수평양냉면의 평양냉면


“우리 집 육수는 아버지부터 그대로예요. 좀 편하게 만들려고 해도 아버지가 정한 동치미 방식을 버릴 수가 없어요. 그게 진짜 평양냉면이라고요.”


시원한 육수를 들이키고, 면발을 씹는다. 적당한 탄력과 메밀의 맛이 스며든다. 


고복수평양냉면의 평양냉면


아, 고박사라는 상호는 아버지의 별명이었는데, 그 사연은 이렇다.


“평택에 오신 후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잖아요. 인기가 많았어요. 평안도 사람답게 통이 크고 시원시원하셨거든요. 게다가 모르는 게 없다고 해서 친구들이 “어이, 고박사, 고박사!” 했어요. 그게 상호가 된 겁니다.”


고복수평양냉면에서 제공하는 육수


고박사냉면은 경부고속도로의 개통으로 유명해진다. 평택은 원래 농사를 크게 짓는 지역이었는데, 고속도로가 관통하고 톨게이트가 생겼다. 고속도로를 이용해서 전국으로 공연 가고 촬영 다니는 연예인들이 이 집을 많이 들렀다. 입소문이 나서였다. 그때는 연예인이 맛집 전도사였다. 인터넷도 스마트폰도 없던 때니까 영향력 있는 인물의 입이 곧 맛집을 보증하는 전설이 되는 것이었다. 


고복수평양냉면의 기본 반찬과 냉면과 곁들여 먹기 좋은 수제고기만두


“영화배우, 가수, 코미디언 등 많이 오셨어요. 김희갑, 이기동 씨 같은 분들이 기억나네요.”


그를 통해서 마지막으로 옛날 진짜 평양냉면의 서사를 복원해보자. 


고복수평양냉면


“통무를 겨울에 담가 두고 그걸 꺼내서 썰고 동치미 국물에다가, 메밀 갈아서 면 뽑아 먹는 걸 이북 냉면이라고 해요. 평양냉면은 꿩 얘기가 꼭 나오는데, 아버지 말씀은 이북에 산이 많으니까 꿩도 많았다고 해요. 아버지가 평택에서도 꿩을 구해서 살코기랑 뼈를 칼등으로 다져서 완자를 만들어 냉면에 넣어주시는 걸 먹어 보곤 했어요.”


평양의 맛을 우리가 언제 볼 수 있을까. 아쉬운 대로 고복수냉면 한 그릇을 다시 청한다.






글·인터뷰 | 박찬일
사진 | 신태진
기획 |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 신한카드 & 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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