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가게] 인천 신포국제시장 백년가게 '신포야채치킨'

박찬일 요리사의 백년가게 산책 #2



‘백년가게’는 30년 이상 명맥을 유지하면서도 오래도록 고객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점포 가운데, 중소벤처기업부에서 그 우수성과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 받아 공식 인증받은 점포입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과 신한카드, 그리고 브릭스 매거진이 '백년가게'의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해 요리사이자 작가인 박찬일 요리사와 함께 백년가게 탐방에 나섰습니다. 여러 저서를 통해 '노포'라는 말을 처음으로 대중에 알린 박찬일 요리사와 다양한 지역으로 백년가게 탐방을 떠나보세요.


박찬일  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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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신포국제시장


치킨은 본래 프라이드치킨의 준말이다. 튀긴 닭이란 뜻이다. 얼마나 사랑받으면 그냥 줄여서 치킨이라고 한다. 우리 국민의 치킨 사랑은 오래되었다. 프랜차이즈 음식으로 한정해서 예로 들면 치킨을 제외한 모든 음식의 매출을 다 합쳐도 치킨보다 적다고 한다. 70년대가 프라이드치킨의 시대를 열었다. 그전까지는 이른바 통닭과 백숙의 기대였다.


“선친이 여기 신포시장 이 자리에서 닭집을 했어요. 저도 자전거로 닭을 배달하고 그런 기억이 있습니다.”


아버지 사장 정종권 씨(68세)의 말이다. 그는 당진 사람이다. 어려서 인천으로 이주했다. 인천은 충청도에서 온 사람들이 많다. 


박찬일 요리사와 신포야채치킨을 세운 아버지 정종권 씨


“닭이 양계장에서 오는 게 아니었어요. 멀리 충청도까지 수집상이 가서 여기저기서 닭을 모아서 배를 타고 와요. 빨간 닭, 노란 닭, 토종닭에다가 개량종 닭까지 막 섞여서. 서산, 당진, 뭐 온갖 동네에서 다 닭을 모아요. 그게 인천에 풀리곤 했어요.”


‘서울 닭 소비량이 연평균 6만 마리인데 도계장에서 정식으로 출하되는 건 10퍼센트. 산 닭을 눈앞에서 잡아주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1976.7.28. 동아일보)


1975년, 이미 당시 농수산부와 보건사회부는 생닭 도축을 금지하고자 했다. 양계장-도계장-정육점-소비자로 이어지는 위생 라인을 만들려고 했다. 


신포야채치킨의 대표 메뉴


“그게 잘 안 되었어요. 사람들이 눈앞에서 닭 잡는 걸 봐야 믿고 샀어요. 닭도 싱싱하고, 그러니 아버지가 닭을 많이 파셨지요. 처음에는 닭을 도살하고, 그냥 더운물 부어 손질해서 드렸어요. 나중에야 원형으로 된 털 뽑는 기계도 들어오고 그랬지.”


신포야채치킨이란 이름은 2000년에 붙인 상호다. 처음에는 ‘우리집양념통닭’이었다가 ‘우리집야채치킨’, 다시 ‘신포야채치킨’이 되었다. 이 가게의 역사를 추적하는 건 우리나라 현대 닭 산업 역사와 비슷하다.


신포야채치킨의 변천사


“결국엔 법이 세니까 생닭을 못 잡게 되었지요. 아버지도 일을 못하시게 되고. 고추방앗간으로 전업도 하고 했는데 결국엔 다시 닭집이 되었네요(웃음).”


요새 닭은 도축 후 내장을 제거하고 바로 요리할 수 있게 해서 오지만 과거는 달랐다. 닭을 잡아서 내장도 따로 팔고 그랬다. 신포동과 가까운 여러 곳의 내장탕집에서 사갔다. 지금도 송림동 현대시장 쪽에 닭내장탕 전문점이 여럿 있다. 과거의 유산인 셈이다.


“간과 모래집은 보통 닭 잡은 손님이 가져가지만 내장은 안 가져가거든요.”


박찬일 요리사


정대순 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로 이주, 유명한 제약회사 영업직으로 근무했다. 그러다가 광주광역시로 발령이 났다. 인생의 변화를 꾀할 시기였다. 


“신포동으로 와서 새로 시작하게 됐지요. 처음에는 선친이 하던 이 가게 터 그대로 9평짜리 한 칸에 탁자 세 개 놓고 프랜차이즈 치킨집을 했어요. 닭을 떠나지 못한 거죠. 나중에는 제 브랜드 가게를 열었어요.”


신포야채치킨의 내·외부


이 집은 인천사람들에게 유명하다. 신포시장 안에 여덟 곳의 치킨집이 있는데, 다 강정 전문이고 이 집만 프라이드치킨을 판다. 강정을 팔면 유명세에 얹혀 갈 텐데 고집을 부렸다. 


“그래도 명색이 선친 대부터 닭 전문집 아닙니까.”


아들이 가게 대를 이었으니 3대가 닭 전문이다. 특이하게도 이 가게는 인천사람들이 낮술의 전당(?)으로 기억한다. 튀긴 맛있는 닭을 안주로 맥주를 마셨다. 홀을 아내 최기순 씨가 전담하는데, 늘 인기가 좋았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신포야채치킨을 운영하는 정대순 씨


“아내가 고생을 많이 했지요. 난 닭 튀기는 데 정신이 없으니 생맥주 따르고 손님 맞는 건 아내 몫이었어요.”


치킨집이어서 젊은 손님이 주를 이루는데, 중년도 많다. 오랜 단골이다. 그런 역사가 백년가게를 이룩하게 됐다. 치킨을 판 건 1991년부터였다. 이제 30년을 넘겼다.


신포야채치킨이 있는 신포국제시장 풍경


특이한 이름 야채치킨은 무얼까. 염지할 때부터 양파 마늘 등 온갖 채소에 절여 하룻밤 숙성하고, 반죽에도 채소를 섞어 푸릇푸릇한 색이 보이는 치킨이다. 채소가 건강에도 좋겠거니와, 색도 예쁘게 나온다. 독자적인 브랜드가 되기도 할 것이고.


이 집은 닭값도 싸지만 양도 많다. 일제강점기부터 황금기를 달렸던 신포시장 닭집의 후예다운 여유다. 보통, 치킨은 10호 닭을 많이 쓴다. 어느 정도 살집도 있고 부드럽기 때문이다. 저가 치킨은 더 작은 닭이나 백세미 잡종 같은 더욱더 저렴한 닭을 쓰기도 한다. 하여튼 지명도 있는 프라이드치킨 브랜드는 그 10호 브로일러 육계를 한 마리 주는 게 표준이다.


반죽과 튀김 과정


“우리는 시장 장사이고, 오래 하는 일이라 덤이 있어야 해요. 10호 닭 한 마리를 주는 게 아니라, 200그램쯤 더 드려요. 우리가 주말에는 포장 포함해서 한 2백 마리까지도 파는데, 200인분이 아닌 이유예요.”


200마리를 들여오면 150인분이나 나오겠다.


양이 푸짐한 프라이드 치킨


흥미로운 메뉴가 있다. 오징어튀김이다. 치킨 전문점인데 오징어?


“뭐 술을 드시는 분들이 있으니까 다른 걸 찾기도 하는데, 우리가 튀기는 건 자신 있어서 오징어를 튀겼더니 좋아하세요.”


어, 어 하다가 대표 메뉴 중의 하나가 되어버려서 뺄 수도 없게 되었다고 웃는다.


안주로 딱 좋은 오징어튀김


이 가게는 아들 대로 넘어갔다. 가게를 깨끗하게 리노베이션하면서 아예 명의도 넘겼다. 아들 정대순 씨(35세)는 성실하게 닭을 튀긴다. 어머니는 여전히 홀을 보고, 부엌일을 넘겨받은 건 아들이다.


“전 이제 나이도 많고 해서 주로 오전에 나와서 일 도와줘요. 염지하고 하는 건 아직 제 일이고요.”


새로운 시대의 음식인 줄 알았던 프라이드치킨도 노포가 나왔다. 그것도 할아버지 대부터 하던 닭전에서 3대를 내려 만들어진 가게라 더 유서 깊다. 맛도 물론 훌륭하다. 전국적 인기의 강정 닭집이 있는 바로 옆에서 프라이드치킨으로 장사하는데 어지간한 실력으로 되겠는가.


정대권 씨와 아들 정대순 씨




글/인터뷰 박찬일
사진 신태진
기획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 신한카드 & 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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