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가게] 대구 육개장의 살아 있는 역사, 옛집식당

박찬일 요리사의 백년가게 산책 #9


‘백년가게’는 30년 이상 명맥을 유지하면서도 오래도록 고객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점포 가운데, 중소벤처기업부에서 그 우수성과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 받아 공식 인증받은 점포입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과 신한카드, 그리고 브릭스 매거진이 '백년가게'의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해 요리사이자 작가인 박찬일 요리사와 함께 백년가게 탐방에 나섰습니다. 여러 저서를 통해 '노포'라는 말을 처음으로 대중에 알린 박찬일 요리사와 다양한 지역으로 백년가게 탐방을 떠나보세요.


박찬일  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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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포를 가장 먼저 본격 취재하고 자료를 수집해 온 나로서는 여러 기억이 떠오른다. 옛집식당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우선 노포다운 골목에서 소박하고 아름답게 자리 잡고 있던 추억이 있다. 이른바 미싱골목이라 하여 한때 대구의 번성을 상징했던, 이제는 언제 재개발을 할까 두렵기만 하던 곳이었다. 놀랍게도 여전히 이 골목은 건재하다. 만약 서울이었다면 이 가게가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을 수 있었을까. 장담할 수 없다. 


달성공원 주변 미싱골목 풍경


이 집 어머니가 아직도 건재하시다. 십여 년 전, 이미 노인이셨는데! 그때 밝고 따스한 표정으로 우리를 맞아주시던 기억이 또렷하게 남아 있다. 타일을 붙인 부뚜막이며, 당신이 일하던 그 현장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놀랍고 고맙다. 


옛집식당 입구


진하되, 부담스럽지 않았던 국맛도 여전하다. 칼칼하되, 달다. 고기를 아끼지 않아 풍성하다. 무엇보다 대구 특유의 대구탕이 바로 육개장이라는 걸 느끼게 해준다. 파가 좋아야 맛이 좋다는 어머니의 말씀도 아직 생생하다

 

옛집식당의 육개장 한 상


예전에 서울역 앞에 가면 육개장을 팔았다. 으레 여행자에겐 육개장이었다. 훌훌 한 그릇 먹기에 이만한 음식이 드물었다. 육개장이 서울 음식인 줄 알았다. 계란 풀어 넣고 잡채용 당면과 계란, 고사리, 토란대 넣은 게 정석인 줄 알았다.


대구에서 육개장을 취재하면서 관련 고문헌을 뒤졌다. 최남선이 쓴 <조선상식문답>에서 나의 상식이 무너진다. 이 책은 문자 그대로 ‘문답’으로 상식을 밝히는데, “지방마다 유명한 음식은 어디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대구는 육개장”이라고 대구에선 단연코 단 하나만 소개하고 있다. 넘버원이라는 뜻이다.


옛집식당의 육개장


대구로 육개장 취재를 다섯 번을 넘겨 뛰었다. 왜 대구가 육개장인지,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다. 예전에 어머니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스물두 살에 시집와서 지금 일흔 너이(넷)니…….”


이제는 팔십을 훌쩍 넘기셨다. 시어머니(1995년 작고. 차천수 씨)가 그 전부터 하고 있던 장사 기간까지 합치면 이 가게의 업력은 무려 80년이 다 되어간다. 이제 아들 박무득 씨에게 손이 어느 정도 넘어갔다. 참 좋은 분들이라는 생각밖에 안 든다. 보통 노포가 되고 유명해지면 뵙기 어려운 사람이 되는 경우도 많은데. 이분들의 한결같은 마음은 그저 고마울 뿐이다. 


현재 옛집식당을 운영하는 박무득 사장님


이 집의 특징 중 하나는 옛 소박한 대구 가정집, 한옥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는 점이다. 두 집을 터서 가게가 되어서 약간 모양이 특이하다. 이 작은 집 구석구석 어머니 손길이 다 닿아 있다. 지역 언론인들이 민속문화재에 등재해야 한다고 하는 말이 허언이 아니다. 마루에 참기름을 바른 듯 니스 깔끔하게 칠하고, 문틀도 반드르르하다. 방에 앉아 육개장 상을 받으니 기분이 묘하다. 시간여행을 떠나온 듯한, 다시 우리 할매가 살아서 오신 듯한. 심장 구석이 뜨끈해진다. 육개장 국물이 뜨거워서 그런 것도 아닌. 


“원래 시어머니가 칼국수랑 육개장을 같이 팔았어. 아이고, 얼마나 힘든지 몰라. 그래, 내가 그랬지. 육개장 하나만 하자꼬.”


옛집식당 내부


어머니의 시어머니는 미망인이었다. 남편이 징용 갔다가 죽을 고생을 하고 귀국선을 탔는데, 사고로 사망했다. 최근 언론에서는 우키시마(浮島)호 사건을 거론하고 있다. 옛 부산일보에 이 귀국선 사고가 실려 있다.


“우키시마호는 1945년 광복 직후 귀국하는 한국인들을 태운 일본의 군함이다. 첫 귀국선이었던 우키시마호는 1945년 8월 22일 오후 10시께 일본 아오모리현 오미나토를 출발해 이틀 뒤인 24일 오후 5시께 교토 마이즈루(舞鶴)항에 기항할 무렵 선체 밑부분에서 폭발이 일어나 침몰했다. 강제 징용자 등 한국인 7천~8천 명 정도가 타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


끔찍한 사고였다. 미망인으로 먹고살아야 했다. 본디 이 동네가 달성공원 앞 사거리 쪽이어서 아주 번화하고 물동량이 많았다. 당연히 나무꾼도 몰렸다. 시장에는 늘 나무장인 시전(柴廛)이 있게 마련이고 억센 일꾼들이 허기에 배를 움켜쥐고 밥을 찾았다.


옛집식당 내부


대구식 육개장 맛의 비결은 어디에 있을까. 현지의 전문가들과 요리사들은 파와 무라고 말한다. 고기도 중요하지만, 대구 파가 충분히 들어가고 무가 시원해야 제맛을 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육개장 맛이 최고인 것은 이런 채소가 좋은 가을, 겨울이라고 한다. 외지인이 먹을 때는 큰 차이가 없겠지만. 


이 육개장도 옛날과 하냥 같지는 않다. 고기도 양지에서 사태로 바뀌고 사골, 곱창도 뺐다. 



“원래 곱창, 허파, 염통도 넣었는데 뭐. 깔끔한 걸 좋아하는 세상 사람들 입맛에 맞촤(춰) 가는 기지.”


오래 이 가게가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 어머니가 더 오래 건재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가게를 지켜가고 싶다.





글·인터뷰 | 박찬일
사진 | 신태진
기획 |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 신한카드 & 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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