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브릭스 Vol.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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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즈음에 브릭스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하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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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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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화와 디지털아트의 만남, 이돈아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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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분의 책방 리뷰: 여분의 책 리뷰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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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여분의 리뷰: 2022년 5월

월간 여분의 리뷰: 2022년 5월



1. 『교차된 운명의 성』, 이탈로 칼비노 지음 



숲 속에 숨겨진 성에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귀족과 상인, 기사와 사기꾼, 폐위된 왕과 무덤지기 들. 그들은 안락한 휴식처와 맛 좋은 음식, 술을 대접 받지만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누구도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이죠. 온갖 기회와 고난과 적과 아군이 득실거리는 숲에서 피난처를 찾은 대신 그들은 목소리를 잃어버렸습니다. 먹고 마시며 몸에 기운이 돌자 한 자리에 모인 이들은 대화를 나누고 싶어집니다. 그런데 말을 할 수가 없으니 어쩐다? 그때, 누군가 타로 카드를 펼쳐 보입니다. 신화와 전설, 영웅과 은둔자들이 그려진 타로 카드를 통해 한 사람씩 자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이탈로 칼비노의 『교차된 운명의 성』은 타로 카드의 그림을 내러티브로 사용하는 독특한 소설입니다. 우리에겐 점을 보는 도구로 친숙한 타로 카드는 아시다시피 흥미로운 이미지들로 가득합니다. 원래 타로 카드로 점을 볼 때는 각 카드의 의미를 점을 보려는 사람의 질문과 처한 상황에 맞춰 해석하며, 그 과정에서 그림 자체의 인상 요소(상황, 인물의 표정, 의상, 행동, 사물 혹은 배경 등)를 부차적으로 활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칼비노도 비슷한 방식으로 타로 카드를 나열하고 거기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데요, 그는 카드의 의미보다 그림을 중심으로 삼습니다. 예를 들어 한 남자가 거꾸로 매달려 있는 카드 ‘매달린 남자’는 산적에게 습격을 당한 기사가 되기도 하고, 성의 여주인을 공격하려다 되려 된통 혼이 난 자객이 되기도 하며, 광기에 휩싸였다가 다시 이성을 찾은 기사의 깨달음이 되기도 하지요. 그래서 같은 카드도 이야기마다 다른 등장 인물이나 소재로 변하며 78장이라는 카드 수의 한계를 뛰어넘는 다채로운 서사를 만들어 나갑니다.



카드 한 장 한 장은 이미 그려져 있는 그림이라 서사를 보조하는 삽화가 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다른 어떤 카드와 어떤 순서로 배치되느냐에 따라, 그리고 상상력과 비약과 신화의 차용이 어떻게 개입하느냐에 따라 100% 똑부러지게 일치하지 않을 수밖에 없는 이야기와 찰떡같이 들어맞습니다. 번역가의 「작품 해설」에서도 나오지만 그래서 끊임없이 책 속에 삽입된 카드 그림과 텍스트를 비교하며 읽게 됩니다. 글을 읽어도 그림을 보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생기거든요. 텍스트가 먼저인지, 그림이 먼저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실제로 칼비노는 책 말미의 「메모」에서 그가 78장의 카드를 이리저리 배치하며 이야기를 발견해 나갔고, 이야기의 전개에 따라 배치를 달리 했으며, 달라진 배치에 따라 다시 이야기를 수정하며 이 복잡한(?) 소설을 써냈다고 이야기합니다.


타로점을 보면 똑같은 스프레드로 펼쳐진 똑같은 카드라 해도 점을 치는사람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타로 카드를 읽는다는 것 자체가 제삼자가 한 사람의 인생(아직 전개되지 않은 미래를 포함해서)을 창조하거나 재해석하는 과정일 수도 있습니다. 마치 칼비노가 이 소설을 쓴 것처럼요.


신화, 역사, 회화, 『햄릿』이나 『파우스트』 같은 문학까지 다양한 소재가 각 단편의 모티브가 됩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의 배경 지식이 있거나 따로 찾아 보지 않으면 이 소설을 읽기가 상당히 난해하기도 해요. 하지만 책에 삽입된 타로 카드가 얼마간 길잡이가 되어 줍니다. 우리의 운명을 가리고 있는 커튼을 슬쩍 걷어주는 것처럼 이 신비한 카드들은 성과 선술집에 모여든 방황하는 영혼들의 비밀도 묘하고 모호한 방식으로 비춰줄 겁니다.


설사 움직일 수 있는 상태라 하더라도 차라리 멈추어 있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 어디든 자유롭게 갈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그 역시 어디를 가든 항상 똑같았기 때문이다. _75p.

결국 그 두 여인은 아직 자기 자신을 발견해야 하는 사람 앞에 펼쳐진 두 개의 길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러니까 열정의 길은 언제나 사실의 길이고 공격적이고 단호하며, 지혜의 길은 깊이 생각하고 천천히 배울 것을 요구한다. _79p.

글쓰기는 종(種)에, 또는 최소한 문명에, 또는 최소한 일정한 소득 계층에 속하는 하나의 기반을 갖고 있다. _132p.



2. 『힘겨운 사랑』, 이탈로 칼비노 지음



사랑은 인간이 벌이는 행위 중 가장 어렵기로 악명 높습니다. 전하지 못하는 사랑, 어긋난 사랑, 모든 걸 잿더미로 만들 만큼 불타오르는 사랑, 찬란했으나 어느덧 사그라진 사랑. 사랑은 감정의 몰이꾼입니다. 사랑은 관계의 지배자입니다. 얼마나 많은 문학과 영화에서 사랑의 고난을 노래했던가요.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인간이 기댈 수 있는 한 줄기 빛은 사랑뿐이라고 또 얼마나 소리치던가요. 세상이 달라져도 사랑은 영원한 이야깃거리로 남을 것입니다.


이탈로 칼비노도 사랑에 관한 책을 썼습니다. 『힘겨운 사랑』은 사랑에 관한 단편집으로 여타 ‘사랑에 관한 서사’들과는 조금 다른 결을 보여줍니다. 모두가 즐기는 게임이나 파티에 초대받지 못하는 부류의 사람들, 사회로부터 소외된 것도 부족해 서로를 소외시키기까지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작가의 전작보다 성적인 면이 두드러지지만, 에로스도 없고 리비도도 없습니다. 관능이 부재합니다. 다 타버린 것도 아니고 중간에 심지가 끊겨 시작조차 못 한 불꽃놀이랄까요. 그 와중에 유머가 깔려 있어서 흡사 코미디 소동극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소설의 1부 「힘겨운 사랑」은 열세 명의 평범한 인물들이 사랑으로의 ‘모험’을 떠납니다. 군인, 도둑, 무심한 남편을 둔 주부, 여행자, 독서광, 시인. 남녀 간의 사랑을 다루기는 하지만 오히려 육체의 무능, 이상에의 집착, 현실 부적응, 자기 의심과 선택 장애, 모두가 헤어나올 수 없는 삶이라는 수렁이 두드러집니다.


예컨대 「어느 도둑의 모험」은 젊은 도둑, 중년의 매춘부, 매춘부의 남편, 늙은 경찰 네 사람이 등장하는 단막 연극 같은 작품입니다. 서로 잘 아는 이웃들이며 모두 밑바닥 생활을 하고 있지요. 도둑을 아끼는 매춘부, 그런 그녀를 하찮게 보는 것 같으면서도 의지하는 도둑, 누군가 아내를 찾아올 때마다 침대를 내주고 소파에서 자는 남편, 막무가내로 매춘부를 욕망하는 경찰. 짧은 분량 속에서 네 사람의 관계가 모호하면서도 촘촘하게, 실로 복잡하게 드러나는데요, 상대에게 육체와 감정을 헌신하는 관습적인 사랑은 여기서는 유효하지 않습니다. 그 또한 힘겹지만, ‘힘겨운 사랑’이라고 사랑이 아닌 건 아닌 법이지요. 매춘부와 남편의 관계는 이상의 소설 「날개」를 떠올리게도 합니다.



소설의 2부 「힘겨운 삶」에서는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재난과 함께 살아가는 이들이 등장합니다. 여기서도 물론 ‘사랑의 힘겨움’이 엿보입니다. 어차피 사랑도 삶의 일부니까요. 「아르헨티나 개미」와 「스모그」라는 제목은 곧 재난의 실체이기도 합니다. 마을 전체를 뒤덮은 개미떼. 책상 위에 서류를 잠깐만 놔둬도 먼지가 뽀얗게 쌓일 만큼 오염된 도시. 인물들이 이 재난을 피할 방법은 그들의 터전을 떠나는 것뿐입니다. 물론 그건 불가능한 일이고요.


이 책에는 유난히 전원이나 자연의 풍경을 세세하게 묘사하며 엔딩을 맞는 작품이 많습니다. 작가가 일부러 구성한 듯한 이 장치는 ‘사랑’ 혹은 ‘삶’을 힘들게 하는 조건에서 벗어날 수 있는 돌파구가 현실에서 그리 멀지 않다는 팁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모든 단편을 통틀어 출구를 빠져나가는 인물은 한 명도 없습니다. 그들의 사랑도, 삶도 계속 힘겨울 예정입니다. 아마 우리도 이들과 마찬가지일 텐데요, 그건 사랑이나 욕망의 강렬함에 취할 수는 있어도 그것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우리에게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마지막 단편인 「스모그」의 엔딩, 깨끗한 빨래가 펄럭이는 어느 초원의 풍경은 책 전체의 아픔을 위로하듯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신혼 초 몇 년 동안 낭만에 젖어 있었지만 곧 실망을 맛보고 난 뒤 부인은 자신이 육체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겨우 익숙해졌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갈망하던 것을 소유할 수 있음을 알게 된 사람처럼 육체와 밀착이 되었다. _36p.

지금 삶이 그에게 베풀어 주는 무엇인가는, 태양의 가장 눈부신 지점처럼, 모두가 다 눈을 크게 뜨고 뚫어지게 본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태양의 그 지점에는 침묵이 있었다. 그 순간 거기 있는 모든 것은 다른 무엇인가로 절대 번역될 수 없었다. 아마 기억으로도 변할 수 없을 것이다. _46~47p.

아픔과 불행을 겪었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내린 형벌처럼, 평범한 잿빛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또, 본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행운을 가졌기 때문에 그렇게 사는 사람들도 있다. _248~249.




글 신태진

매거진 브릭스의 에디터. 『진실한 한 끼』『꽃 파르페 물고기 그리고 당신』을 냈고, 『홍콩단편, 어쩌면 익숙한 하루』를 함께 썼다.
https://www.instagram.com/ecrire_lire_vivre_/


 


진실한 한 끼

신태진 지음


직장인들의 점심 한 끼,
지친 마음을 채우고 위로하는
그 소중한 시간에 대한 진심 어린 감회
“오늘 당신의 점심은 진실한 한 끼였나요?”


숨 가쁘게 사는 직장인들에게 하루 세 끼란 어떤 의미일까? 매끼마다 영양가 있게 잘 챙겨 먹는 일은 도전에 가깝다. 오늘 점심 뭘 먹을지 고민하며 삶의 즐거움을 얻기도 하지만, 때로는 먹고 사는 일이 인생의 전부인 듯 구속감과 자괴감을 느끼기도 한다. 저자 역시 책과 매거진 편집자로 일하며 한 끼 대충 때우고 밀린 업무를 처리하는 사람이었다. 매일같이 편의점 도시락 코너를 기웃대며 이 정도가 내 삶의 ‘진실한 한 끼’ 아닐까 적당히 타협하기도 했다.

정말 그럴까? 똑같이 소박하고 저렴하더라도 누군가 정성 들여 차려준 밥을 먹은 적도 많지 않았나? 기억에 오래 남는, 지친다 싶을 때쯤 수저를 쥐어주며 다시 세상 밖으로 나아가게 해 주던 한 끼도 있지 않았던가? 그래서 진짜 ‘진실한 한 끼’를 돌이켜 보기로 했다. 카레라이스, 콩나물 비빔밥, 생선구이, 부대찌개, 잔치국수. 습관처럼 먹어 온 평범한 식단 속에서 작은 기쁨과 경이를 찾는다.

이 에세이는 혼자 밥 먹는 걸 편애하던 사람이 누군가와 함께 먹는 즐거움을 배워 가고, 혼자 먹더라도 대충보다는 좀 더 잘 먹게 되어 가는 과정을 그린다. 그러면서 음식을, 그걸 요리해 주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점점 무르익어 간다. 그때 먹었던 한 끼가 정말 큰 힘이 되었다고, 한 끼, 한 끼 진실했던 순간들을 떠올려 본다. 


브릭스가 통도사의 가을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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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에 가을이 찾아왔습니다.
단풍이 그토록 불거져도

하늘의 푸른기는 가려지지 않고

사람이 그토록 많아도

경내의 고요는 흐트러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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