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브릭스 Vol.42

새해를 시작하는 방법


그냥 달력 한 장, 년도 한 자리 바뀌는 건데

새해는 그냥 맞이하면 안 될 것 같기만 합니다.

브릭스에서는 이번 달,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이 현재를, 새로운 해를 어떻게 살아가는지

알아보려 합니다.

이미 또 한 해의 산책은 시작되었죠?

그 길에 새해 복도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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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브릭스 Vol.42를 읽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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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브릭스 Vol.42

새해를 시작하는 방법


Contents

도망가고 싶은데요: 다시 따뜻해지겠지

소설가 박서련 인터뷰:

삶은 허구보다 훨씬 서사적이잖아요

일러스트레이터 박은지 인터뷰:

달력에 실린 그림들의 기원은?

무늬책방 책방지기 인터뷰:

당신의 마음에 무늬를 남기는 책방

시칠리아에서 보낸 한 달:

활화산의 기운, 1유로에 집을 판다고?

이것은 여행이 아니다: 파아란 하늘 아래의 LA

여분의 책방 리뷰: 여분의 책 리뷰 12월

매거진 브릭스 Vol.42

새해를 시작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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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가고 싶은데요: 다시 따뜻해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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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칠리아에서 보낸 한 달: 활화산의 기운, 1유로에 집을 판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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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브릭스 Vol.42활화산의 기운

시칠리아에서 보낸 한 달 #3



나의 시칠리아 여행기는 화산으로 시작해서 화산으로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에트나Etna에서부터 검은 어둠 속 붉은 용암이 흘러넘치는 장관을 보여준 스트롬볼리Stromboli, 하얀색 유황 연기가 온 섬을 뒤덮은 불카노Vulcano까지, 시칠리아의 살아 움직이는 활화산을 모두 만나고 왔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대했던 에트나 이야기를 먼저 해야겠다.



에트나는 유럽에서 가장 높은 활화산(3,350m) 이며 자그마치 60만 년 동안 식지 않고 언제든 터질 준비를 하고 있는, 그야말로 시칠리아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멀리서도 연기를 뿜어내는 모습이 보일 만큼 지금도 활발하게 활동 중이며 실제로 화산재뿐만 아니라 뜨거운 용암이 분출하여 주민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한다. 활동이 활발해지는 시기에는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카타니아를 비롯한 타오르미나 지역까지 화산재가 날아와 거리 곳곳에 검게 쌓인다.


2021년 10월 23일 대규모의 분출이 일어났던 날에는 100여 킬로미터 떨어진 메시나Messina에 머물던 우리도 검은 화산재 때문에 온몸이 간지러울 정도였다. 시칠리아 사람들은 살아 숨 쉬는 활화산과 공존하여 살아가야 한다. 에트나는 관광객들에게는 가장 접근성이 좋은 활화산이지만 안전상의 이유로 또는 날씨의 영향으로 오르지 못하는 날이 허다하다. 아무나 볼 수 있지만, 아무에게나 보여주지 않는 웅장한 자연의 신비. 2017년의 나에게는 허락되지 않았고, 2016년 방문했던 남편은 무려 세 번의 시도 끝에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정상에서 활화산의 분화구를 마주하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고 한다. 나도 여행 초반에 활화산의 웅장한 기운을 받고 싶어 시칠리아에 도착하자마자 에트나로 향했다.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과 해가 내리쬐는 하늘이 반반이라 불안한 마음으로 케이블카 탑승 장소로 향했다. 마을 중심을 빠져나와 화산을 향해 가는 내내 신비로운 행성에 뚝 하고 떨어진 느낌이 들었다. 불모의 행성에 이제 막 생명체가 움튼 듯 초록의 풀더미가 듬성듬성 나 있고, 화산재에 완전히 뒤덮여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집들도 있었다. 구불구불한 길을 끝까지 타고 주차장에 오르면 작은 분화구가 있고, 그 앞에는 거대한 에트나가 우뚝 서서 우리를 바라본다. 제우스와의 싸움에서 패배하여 에트나산에 갇혀 있다는 티폰, 옛날 사람들은 그가 분노와 모멸감을 식히지 못할 때마다 용암을 분출한다고 믿었다. 2021년의 우리에게는 안전상의 이유로 화산 중턱까지만 허락되었으나 그마저도 감사해야 했다. 그날 이후로 거대한 폭발이 여러 번 있었고, 거센 바람이 불어 케이블카 운행이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케이블카와 미니버스를 번갈아 타고 2,900m 지점까지 올랐다. 몸이 편한 대신 가격은 사악하다. 68유로. 비싼 가격도 한몫하겠지만 화산의 기운을 온몸으로 직접 느끼고 싶은 사람들은 걸어 오르기도 한다. 산 아래는 맑은 하늘이었으나 에트나에 오르자 구름과 눈높이를 마주하게 되면서 온통 검은 땅과 함께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었다. 그러고는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하얀 구름이 온 세상을 뒤덮어 버렸다. 안개가 아닌 구름에 휩싸여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마치 폼페이 최후의 날을 연상케 했다. 화산재에 휩싸여 두려움에 떨던, 영화 속에서나 보던 그 장면을 말이다. 진짜 최후의 날이 다가와 세상에서 나의 존재가 사라진다면 과연 나는 무엇을 남기고 떠날 수 있을까. 여행하는 동안 그 답을 찾아보기로 했다.



활화산의 중턱에서 가이드님의 목소리만 선명하게 들리고, 영하의 체감 온도 때문에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매표소에서 두꺼운 윈드브레이커를 대여해 주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날씨가 좋은 날 전망대에 서면 타오르미나가 한눈에 보인다고 하는데 옆에 있는 남편 얼굴조차 보이지 않았고, 쿠션감이 있는 화산재에 발이 푹푹 꺼져서 중심을 잡기도 힘들었다. 한번은 자빠지면서 땅을 짚었는데 차가운 공기와 달리 따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아, 내가 정말 살아 숨 쉬는 활화산 중턱에 와 있구나. 너는 언제든지 폭발할 준비를 하고 있구나. 용기도 없으면서 눈앞에서 활화산이 분출하는 장면을 마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토스의 대장간이 바로 에트나에 있다고 하는데 화산 폭발음이 거대한 철이 서로 부딪히는 굉음 같다고 한다. 스트롬볼리 화산에서 실제로 마주하기 전까지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울음이었다.



20여분 가량 진행된 에트나 투어를 마치고 우리가 내려갈 시간이 되어서야 구름이 사라지고 일행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변화무쌍한 자연이다. 분화구도 웅장한 화산도 전망대도 보지 못했고 인증샷 한 장 제대로 찍지도 못했지만,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에트나 위에 올라와 있다는 사실이다. 활화산의 기운이 여행 내내 우리를 지켜줄 것만 같았다.





글/사진 김혜지(이태리부부)

파리, 로마를 거쳐 현재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꾸준히 기록하고 콘텐츠를 생산해 내며 삶을 드러내는 것에 거리낌이 없는 사람입니다. 유튜브 채널 '이태리부부' 운영 중. 『이탈리아에 살고 있습니다』를 썼습니다. 

이태리부부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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