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전시] 아시아 예술시장의 중심, 상하이로 떠나다

상하이 웨스트번드 지역의 야경 ©sunmin_b


‘올드 앤 뉴 Old & New’가 이보다 더 멋지게 어우러진 도시가 있을까. 몇 년 만에 찾은 상하이는 오래된 꿈을 다시 꾸는 듯, 기억 속 모습과 많이 닮아 있으면서도 어딘가 낯설었다. 상하이 아트 위크의 중심, 웨스트번드 지역의 호텔에 짐을 풀고 창밖으로 본 상하이의 야경은 황푸강을 따라 광활하게 빛나고 있었다.


중국 최대의 경제 도시이자 무역도시라는 타이틀을 가진 상하이를 두고, 현지인들은 농담처럼 하지만 내심 진지하게 ‘여기는 중국이 아니라 그냥 상하이(Shanghai is just Shanghai, you know?)’라고 말한다. 중국과 차별되는 상하이만의 아이덴티티를 강조하는 것이다. 상하이는 중국 내 다른 도시들과는 너무도 다르기에, 상하이가 좋았다고 해서 절대 중국의 다른 도시들도 이와 같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말라는 상하이니즈(Shanghainese)의 자부심 섞인 엄포이기도 했다.


상하이 도시 풍경 ©sunmin_b


도시의 중심을 가르는 황푸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두 개의 다른 얼굴을 가진 상하이. 프렌치 컨세션(French Consession)이라 불리는 프랑스 조계지를 비롯한 옛 역사를 간직한 서양식 건축물들이 보존된 황푸강 좌안과 한국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동방명주탑을 비롯한 현대식 고층 건물들이 스카이라인을 형성하는 우안의 푸둥지구가 극명한 대비를 보인다. 몇 블록만 걸어도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내는 매력적인 도시 풍경 위로 지난 11월 셋째 주, 상하이 아트 위크를 보기 위해 전 세계에서 모여든 아트 피플들의 잰걸음이 겹쳤다.


웨스트 번드 ©sunmin_b


한때 미술계에는 ‘3월에는 홍콩, 11월에는 상하이’라는 말이 통용되었다. 미국과 유럽 등 서구 중심이던 글로벌 미술시장이 세계화의 흐름에 따라 다각화되었고, 무관세 정책으로 미술품 거래가 용이한 홍콩이 옥션 하우스와 아트 페어를 필두로 아시아를 대표하는 주요 예술시장으로 떠올랐다. 중국은 아시아 미술시장의 패권을 쥐고자 하는 야심으로, 이에 질세라 베이징과 상하이에 대규모 예술 특구를 조성했다. 중국 정부의 정책적인 지원과 민간 자본의 서포트를 바탕으로 1978년 349개였던 중국 내 미술관은 6,000개까지 늘어났다. 서구 메이저 갤러리들의 중국 분점과 크고 작은 갤러리, 예술 관련 비영리기관들이 앞다투어 생겨났다.


‘중국 최초의 개항장’이라는 역사를 바탕으로 글로벌 문화 중심도시를 꿈꾸는 상하이는 대대적인 도시계획과 거대 자본 투입을 통해 공장 지대였던 황푸강변을 따라 웨스트 번드 문화 특구를 조성했다. 2014년 개관한 유즈 미술관(Yuz Museum, 현재는 교외 지역인 판동 티안디로 이전)과 롱 미술관(Long Museum)을 선두로, 상하이 아트신을 이끄는 두 개의 아트 페어 ‘아트021(ART021)’과 ‘웨스트번드 아트 앤 디자인(Westbund Art & Design)’이 같은 시기 태동했다. 또, 중국 최초로 현대미술을 선보인 샹아트(ShanghART) 갤러리를 비롯하여 탱크 상하이(Tank Shanghai), 폰드 소사이어티(Pond Society)를 위시한 비영리 예술기관, 작가들의 스튜디오가 오픈했다. 


록번드 미술관 Rockbund Art Museum ©sunmin_b


폰드 소사이어티 Pond Society ©sunmin_b


상하이 곳곳에도 예술 관련 스팟들이 계속해서 문을 열었다. 파워롱 미술관(Powerlong Art Museum)과 푸둥 미술관(Museum of Art Pudong), 록번드 미술관(Rockbund Art Museum) 그리고 프랑스의 퐁피두 센터와의 협업 프로젝트로 잘 알려진 웨스트 번드 미술관(Westbund Art Museum)이 줄지어 개관했고, 포선 파운데이션(Fosun Foundation), 씨씨 파운데이션(Cc Foundation), 롱라티 파운데이션(Longlati Foundation), 프라다 롱 자이(Prada Rong Zhai) 등의 비영리 기관과 알민 레시(Almin Rech, Shanghai), 펄램 갤러리(Pearl Lam Galleries, Shanghai), 페로탕(Perrotin), 한국의 아라리오 갤러리가 문을 열었다. 


프라다 파운데이션 Prada Rong Zhai ©sunmin_b


푸둥 미술관 Museum of Art Pudong ©sunmin_b


대형 미술관과 유수의 갤러리들, 다양한 예술 관련 기관들의 활약으로 한동안 중국, 특히 상하이는 글로벌 컨템포러리 아트신의 한 축을 이끌어가는 듯했으나 강력한 팬데믹 봉쇄정책과 글로벌 경제 불황의 영향으로 앞을 점치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유수의 갤러리들이 모여 있는 홍콩의 에이치 퀸즈 빌딩(H Queen’s)을 본떠 만든 웨스트 번드 아트 타워가 2020년 중국의 IT 기업에 매각되었고, 갤러리들이 빠져나간 자리는 테크 기업들로 채워졌다. 임대료와 운영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미술관과 갤러리들은 문을 닫거나, 웨스트 번드 지역을 떠나 새로운 곳에 자리를 잡았다.


길었던 침묵의 시간을 지나, 2023년 마침내 상하이 아트 위크가 재개되었다. 예술 애호가들의 열띤 호응과 억눌렸던 컬렉터들의 구매 열기로, 웨스트번드 아트 & 디자인과 아트021 페어장은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갤러리스트의 입에서 작품이 없어서 못 팔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상하이 아트 위크의 성공적인 복귀라는 평이 있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팬데믹 기간 새로이 유입된 아트 컬렉터들이 만들어 낸 이상 과열이라는 우려와 함께 점점 짙어지는 글로벌 경제의 다운턴 영향에 따른 긴장감도 낮게 깔려 있었다. 이번 상하이 아트 위크의 성과에 다들 주목하는 이유기도 했다.


Westbund Art & Design ⓒsunmin_b



::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




글·사진 | 변선민

마음을 움직이고, 변화를 이끌어내는 예술과 문학의 힘을 믿으며, 틈날 때마다 책을 읽고 전시를 보는 예술-생활인. 새벽에 글을 쓰고 낮에는 기획일을 합니다.
https://www.instagram.com/sunmin_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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