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자니아에서 청춘을]나는 또 다시 길을 떠났다

탄자니아에서 청춘을 #1



실화냐? 나 탄자니아 가는 거 맞아? 아닌 것 같은데? 조금만 더 놀다 가면 안 되나? 이 소리만 몇 백 번 했는지 알 수가 없다. 그것도 매번 술에 취해. 지인들은 군대 가기 직전의 사람을 보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새 여정으로 향하는 게 이 정도로 힘든 적이 있었던가?


지금까지 그려온 내 삶의 궤적을 돌이켜보면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가 어렸을 때부터 꿈꿔 왔던 삶의 방식대로 참 만족스러운 인생을 살아온 것 같다. 지금 죽어도 후회 없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는, 어딘가에 매여 있지 않는 바람과 같은 인생. 대학에서 인류학을 전공하며 우연히 접하게 된 국제개발학은 그 뜻이 나와 너무나 잘 맞았다. 이것이 나의 운명이구나. 단번에 알아보았다. 


내 무서운 추진력은 나를 영국으로 이끌어 석사를 따내게 만들었다. 요르단에서 즐거운 인턴 생활도 할 수 있었다. 이후 본격적으로 경력을 쌓으러 가게 된 아프리카 말라위. 세계에서 손꼽히는 빈국이자, 국제개발 현장의 최전방이라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책으로만 보아왔던 것들은 현장에서 번번이 내가 그동안 헛배웠나 반성하게 했다. 

 

말라위, 생각하면 화병 도질 것 같은 애증의 말라위. 그립기도 한 것 같은 말라위.


소중했던 시간, 하지만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영겁과도 같았던 2년의 시간 동안 나는 정말 화병을 얻었다. 매일 전기가 끊기고, 사람들은 돈이 없으니 뭔가를 시작도 못하고, 물건 하나 고치려면 다섯 시간 차를 타고 수도로 가야 하는 상황. 설명하려니 애잔해지는 열악한 업무 환경. 도저히 타협점이 보이지 않는 문화적 차이. 한국 사업 규정을 적용하기 어려운 현장. 겉으로 울지도 못하고 속은 까맣게 타 들어갔던 나날. 그 속에서 버틸 수 있었던 건, 일하며 느낄 수 있으나 아주 간~간~히~ 찾아오는 소소한 보람과 그 깡시골에서 만난, 몇 안 되지만 의지할 수 있었던 동종업계 사람들, 마지막으로 내가 선택한 길에 대한 확신이었다.


애들을 좋아하지 않는데 이런 표정을 보면 강제로 보람 느껴버림. 이 맛에 버텼지.


하지만, 최근에 나는 여태 걸어온 내 길에 대해 ‘현타’를 느껴버렸다. 말하면 입만 아픈 개고생이 끝나고 오랜만에 돌아간 한국. 오랜만에 장기간을 머물며 편히 쉬어야지 생각했지만, 너무 순진했다. 가족과 여행도 가고, 친구들과 술도 먹고, 밤마실도 나가고, 맛있는 것도 먹고! 개같이 벌어 정승처럼 쓴다는 말이 이런 것이구나! 말라위에서 잊고 지낸 내 흥과 지난날의 보상심리를 폭발시키며 약 3개월을 세상에 다시없을 한량처럼 보냈다.


희열이 넘쳐나는 세상 속에서 왜 나는 힘들게 청춘을 보내야만 하는 것인가. 이 아름다운 나이에 왜 사서 고생을 하는가. 사람들을 만나 놀고, 이야기하고, 술도 마시며 돈도 펑펑 쓰고 재미있게 살 수 있는데 왜 나는 내 청춘을 갈아 중동과 아프리카에 갖다 바치고 있을까.


지난 날 스쳐갔던 인연들, 닿을 듯 말 듯 했던 최근의 인연들을 아쉬움 속에 떠올렸다. 연애야 외국에서 하면 더 좋지 않느냐 묻곤 하지만, 나는 거기서도 오래 있을 사람이 아니기에, 그렇다고 한국에서도 있을 사람이 아니기에 만나서 뭐하나 벽을 쌓고는 시작도 안 했다. 아니 그냥 나는 뭘 하든 안 하든 이쪽으로는 안 될 놈인가 보다, 없는 팔자인가 보다 하고 살았다. 내가 갑자기 불쌍해졌다. 이 좋은 나이에 나는 왜 인연의 끈을 놓고 살아야만 하는 것일까?

 

그렇다고 외로웠냐 하면 또 아니다. 심심할 수는 있지만 외롭지는 않았다. 그런데 사람들 속에서 정이라는 걸 너무 오랜만에 느껴서일까? 아니면 나도 모르게 외로움이란 걸 배운 것일까? 모든 복잡한 감정들을 태어나 처음 겪었다. 낯설었고, 어색했고, 감당하기 힘들었으며 동시에 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이번 탄자니아로 향하는 길에 탑승 전 라운지에서 술을 종류별로 다 비워 버렸다. 도저히 제정신으로는 못 갈 것 같았다. 그리곤 세상 유난과 청승은 다 떨며 엉엉 울고 취한 상태로, 앞으로 함께 일하게 될 상사를 공항에서 처음 만났다. 술도 어쩌지 못하는 자본주의 미소로, “안녕하세요~, 죄송해요, 제가 술을 좀 마셨어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도착해서 봬요.” 부하 직원이 술에 떡이 돼서 벌건 얼굴로, 게다가 울기까지 해서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어버린 채로 나타나다니. 속으로 ‘뭐지?! 뭐지 이 또라이는?’하고 생각하셨겠지. 


이륙하기 바로 직전, 인스타그램에 ‘갬성팔이’까지 제대로 마쳤다. 승무원의 뭐 먹고 싶으냐는 물음에 흐느끼며 ‘흐흑 치킨…! 흐흑, 레드 와인하고 화이트 와인 한 잔씩요, 흐흑’ 그렇게 나는 길을 떠났다.


탄자니아 잔지바르 섬


중간 중간 경유하는 시간에는 상사와 만나 사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는데, 심장이 뛰었다. 오랜만에 일에 복귀하려니 설레기도 했다. 혼란스러운 마음이 가라앉은 것은 아니었지만, 아, 나는 이 길로 계속 걸어가면 되겠구나, 비행기 창밖으로 보이는 잔지바르 섬에 놀러 갈 생각을 하니 기분까지 좋아졌다. 나는 이렇게 살면 되는 것이구나. 언젠가 아니다 싶으면 다른 길로 확 가버리지 뭐. 일단은 또 다른 개고생이 시작될 탄자니아로.


눈을 뗄 수 없었던 인도양의 석양, 그나저나 나는 이런 거 언제까지 혼자 봐야 하지?




글/사진 김정화

인류학을 공부하며 국제개발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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