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정의 미국 이야기 #6
케이프 메이(Cape May)는 미국 동쪽의 뉴저지주 최남단에 위치한 휴양지이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며 동부에서 인기를 누리는, 예쁜 휴양지 마을로 자리를 잡았다. 빅토리안 건축 양식의 집들이 가득해 미국 아닌 다른 나라를 여행하는 듯한 기분이 잔뜩 드는 곳이다.
오랜만에 드넓은 바다가 보고 싶었다. 대서양은 사실 물색이 예쁘지 않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데, 내가 사는 이곳에서 가장 가까이 갈 수 있는 곳이라 선택. 또 다른 한 해를 미국에서 맞이하는데 예상과는 다르게(?) 기분이 착잡했다. 마냥 설레고 좋을 줄만 알았다는 것은 나의 착각이었겠지.
케이프 메이에서
생계와 생활, 그리고 여러 인간관계 속에서 지친 상태였다. 자도 자도 피로는 풀리지 않았고, 앞뒤가 다른 사람들의 모습에 기분은 계속 다운. 이런 현실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2시간 반 거리의 바닷가로 달려가는 것이었다.
찬 바람이 거세게 부는 바다에는 사람이 없었다. 마치 죽은 도시처럼 너무 사람이 없어 당황스러울 정도. 5분을 채 못 버티곤 신발에 모래만 잔뜩 묻힌 채 바다와 안녕을 고했다. 콧물이 흐르고 손이 얼어버려 도저히 그 자리에 더 있을 수가 없었다. 모처럼 드라마 속에서나 보던 풍경처럼 바다를 바라보면서 새해의 다짐을 폼 나게 외쳐볼까 했건만, 야속한 추위로 인해 바로 끝내야 했다.

아무도 없던 바닷가
여전히 우울하고 처지던 기분. 이대로 이 여행을 끝낼 수는 없다고 생각해 방향을 바꿨다. 그러고는 바로 이 동네 최고의 번화가로 직진! 워싱턴 스트리트 몰(Washington Street Mall)은 한적하던 바닷가와는 달리 방문객과 현지인이 뒤섞인 엄청난 인파가 몰려 있었다. 술잔을 들고 산타 모자를 쓴 채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하며 웃고 떠들던 현지인들, 누군가의 선물을 사기 위해 여러 기념품 숍을 오가며 분주히 걸어 다니던 사람들, 팔짱을 끼고 찬 바람을 서로 막아주며 하하호호 웃으며 지나던 연인들…. 온도는 차가웠지만 잠시나마 마음이 따뜻해지는 풍경에 기분이 사르르 좋아졌다.

케이프 메이 워싱턴 스트리트 몰
인기 관광지답게 도시의 다운타운 중심가에는 다양한 선물 가게가 가득했다. 당장 선물을 할 사람도 떠오르진 않았지만 그 흥겹고도 따뜻한 분위기가 그리워 나도 모르게 여기저기 문을 열고 들어갔다. 수제 치즈 숍에서는 꼬릿한 냄새가 났지만 내가 좋아하는 다양한 치즈를 맛볼 수 있어 기분 좋게 이것저것 집어 먹었다. 그 옆 매장에서는 욕실용품이 한가득이었는데, 목욕가운에서부터 비누와 향수, 치약 칫솔까지 다양한 디자인으로 된 작품들이 멋스럽게 진열되어 있었다. 초콜릿 숍에서는 직접 만든 초콜릿과 캔디, 젤리 외에도 엽서와 카드가 가득해 연말연시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어느 매장에 들어가도 기쁘고 설레는 마음으로 누군가를 위한 선물들을 고르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여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관광을 하고 선물을 사려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거리
비릿한 바다 내음도,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한껏 치장한 주택가도, 다운타운의 반짝이던 여러 조명과 활기찬 분위기도 모두 느끼고 싶어서 여행을 떠나왔는데 이제서야 한껏 충족된 느낌이었다. 겨울 바다는 이래서 못 참지!

빅토리아 양식의 주택들
늘 같은 듯하지만 다르게 흘러가는 시간들. 이 속에서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건지, 그리고 어디로 가야 하는 건지 막막하던 시기. 바닷가 마을을 둘러보며 시름에도 젖었다가 감상에도 빠졌다가 결과적으로는 활기를 얻어갈 수 있었던 여행이다. 이것으로 되었다. 이것으로 충분히 충족이 되었다.


상점가
이번 여행을 통해 나는 2025년 올 한 해, 새 목표를 정했다. 바로 “나를 찾기”. 한국에서는 평화롭게(?) 회사 다니면서 여행하고 책만 쓰는 인생이었다만, 이곳 미국에서의 삶은 순탄치도 평탄치도 않다. 상상하지 못했던 일, 수준 이하의 사람들을 부딪치면서 실망도 컸다. 내 기대가 너무 컸고, 내가 부족하며, 그럼에도 내가 단단해지는 과정일 거라 생각한다. 바다를 보며 생각을 정리할 수 있어 뿌듯했던 이번 여행. 다음에 내가 이곳을 다시 찾을 때는 좀 더 단단한 사람이 되어 있기를!



케이프 메이의 다양한 상품들
글·사진 | 조은정

최소 2개월에 한 번은 비행기를 타줘야 제대로 된 행복한 인생이라고 믿는 여행교 교주. <미국 서부 셀프트래블>, <뉴욕 셀프트래블> 외 여러 권의 저서가 있는 베스트셀러 직딩 여행작가. 현재 뉴욕에서 지내고 있다.
https://eiffel.blog.me/
조은정의 미국 이야기 #6
케이프 메이(Cape May)는 미국 동쪽의 뉴저지주 최남단에 위치한 휴양지이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며 동부에서 인기를 누리는, 예쁜 휴양지 마을로 자리를 잡았다. 빅토리안 건축 양식의 집들이 가득해 미국 아닌 다른 나라를 여행하는 듯한 기분이 잔뜩 드는 곳이다.
오랜만에 드넓은 바다가 보고 싶었다. 대서양은 사실 물색이 예쁘지 않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데, 내가 사는 이곳에서 가장 가까이 갈 수 있는 곳이라 선택. 또 다른 한 해를 미국에서 맞이하는데 예상과는 다르게(?) 기분이 착잡했다. 마냥 설레고 좋을 줄만 알았다는 것은 나의 착각이었겠지.
생계와 생활, 그리고 여러 인간관계 속에서 지친 상태였다. 자도 자도 피로는 풀리지 않았고, 앞뒤가 다른 사람들의 모습에 기분은 계속 다운. 이런 현실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2시간 반 거리의 바닷가로 달려가는 것이었다.
찬 바람이 거세게 부는 바다에는 사람이 없었다. 마치 죽은 도시처럼 너무 사람이 없어 당황스러울 정도. 5분을 채 못 버티곤 신발에 모래만 잔뜩 묻힌 채 바다와 안녕을 고했다. 콧물이 흐르고 손이 얼어버려 도저히 그 자리에 더 있을 수가 없었다. 모처럼 드라마 속에서나 보던 풍경처럼 바다를 바라보면서 새해의 다짐을 폼 나게 외쳐볼까 했건만, 야속한 추위로 인해 바로 끝내야 했다.
아무도 없던 바닷가
여전히 우울하고 처지던 기분. 이대로 이 여행을 끝낼 수는 없다고 생각해 방향을 바꿨다. 그러고는 바로 이 동네 최고의 번화가로 직진! 워싱턴 스트리트 몰(Washington Street Mall)은 한적하던 바닷가와는 달리 방문객과 현지인이 뒤섞인 엄청난 인파가 몰려 있었다. 술잔을 들고 산타 모자를 쓴 채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하며 웃고 떠들던 현지인들, 누군가의 선물을 사기 위해 여러 기념품 숍을 오가며 분주히 걸어 다니던 사람들, 팔짱을 끼고 찬 바람을 서로 막아주며 하하호호 웃으며 지나던 연인들…. 온도는 차가웠지만 잠시나마 마음이 따뜻해지는 풍경에 기분이 사르르 좋아졌다.
인기 관광지답게 도시의 다운타운 중심가에는 다양한 선물 가게가 가득했다. 당장 선물을 할 사람도 떠오르진 않았지만 그 흥겹고도 따뜻한 분위기가 그리워 나도 모르게 여기저기 문을 열고 들어갔다. 수제 치즈 숍에서는 꼬릿한 냄새가 났지만 내가 좋아하는 다양한 치즈를 맛볼 수 있어 기분 좋게 이것저것 집어 먹었다. 그 옆 매장에서는 욕실용품이 한가득이었는데, 목욕가운에서부터 비누와 향수, 치약 칫솔까지 다양한 디자인으로 된 작품들이 멋스럽게 진열되어 있었다. 초콜릿 숍에서는 직접 만든 초콜릿과 캔디, 젤리 외에도 엽서와 카드가 가득해 연말연시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어느 매장에 들어가도 기쁘고 설레는 마음으로 누군가를 위한 선물들을 고르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여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관광을 하고 선물을 사려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거리
비릿한 바다 내음도,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한껏 치장한 주택가도, 다운타운의 반짝이던 여러 조명과 활기찬 분위기도 모두 느끼고 싶어서 여행을 떠나왔는데 이제서야 한껏 충족된 느낌이었다. 겨울 바다는 이래서 못 참지!
늘 같은 듯하지만 다르게 흘러가는 시간들. 이 속에서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건지, 그리고 어디로 가야 하는 건지 막막하던 시기. 바닷가 마을을 둘러보며 시름에도 젖었다가 감상에도 빠졌다가 결과적으로는 활기를 얻어갈 수 있었던 여행이다. 이것으로 되었다. 이것으로 충분히 충족이 되었다.
이번 여행을 통해 나는 2025년 올 한 해, 새 목표를 정했다. 바로 “나를 찾기”. 한국에서는 평화롭게(?) 회사 다니면서 여행하고 책만 쓰는 인생이었다만, 이곳 미국에서의 삶은 순탄치도 평탄치도 않다. 상상하지 못했던 일, 수준 이하의 사람들을 부딪치면서 실망도 컸다. 내 기대가 너무 컸고, 내가 부족하며, 그럼에도 내가 단단해지는 과정일 거라 생각한다. 바다를 보며 생각을 정리할 수 있어 뿌듯했던 이번 여행. 다음에 내가 이곳을 다시 찾을 때는 좀 더 단단한 사람이 되어 있기를!
케이프 메이의 다양한 상품들
글·사진 | 조은정
최소 2개월에 한 번은 비행기를 타줘야 제대로 된 행복한 인생이라고 믿는 여행교 교주. <미국 서부 셀프트래블>, <뉴욕 셀프트래블> 외 여러 권의 저서가 있는 베스트셀러 직딩 여행작가. 현재 뉴욕에서 지내고 있다.
https://eiffel.blog.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