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정의 미국 이야기][여행] 나 홀로 뉴욕살이, 엄마가 뉴욕에 왔다!

2025-05-12

조은정의 미국 이야기 #7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길게 고민하지도, 재지도 않은 채 미국에서의 ‘나 홀로 살이’를 결심했다. 이것저것 따지면 못할 것 같았고, 다시 이런 기회가 없을 것 같다는 예감이 나를 뒤흔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무작정 정착한 미국. 가족의 테두리 안에서 늘 안정적인 회사를 다니며 짬짬이 여행하고 글을 쓰며 살던 나는, 미국에 와서 밑바닥을 경험했다. 빽도 없이 시작한 뉴욕에서의 삶. 여러 번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게 만드는 위기가 닥쳤다. 늘 마음 한구석에는 ‘그래, 해 보다 안 되면 돌아가지, 뭐’ 하는 생각도 있었다. 어쩌면 그 덕분에 지금껏 버티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브루클린 브릿지를 바라보며


미국인들은 대부분 가정적이라 일이 끝나면 무조건 집으로 돌아가고, 뭐든 가족과 함께하고, 그래서 가족 아닌 타인은 믿지 않는 이들이 많은 듯하다. 어릴 때부터 주변에 사람도 많고 친구도 가득했던 나는 그런 현지인들 사이에서 처음으로 ‘외로움’이라는 걸 느꼈던 것 같다. 새로 만난 누군가에게 마음을 내어주었다가 특유의 경계심이랄까,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혀 마음을 다시 닫았던 경험도 있다. 


시간은 그렇게 흘러 흘러 나는 차츰 미국 생활에 적응이 되어가는 듯했다. 나대로의 삶에 익숙해진 것이다. 그때, 한국에서 가족이 왔다. 내가 한국에 가지 못하니 엄마랑 동생이 나를 보러 이곳에 온 것이다. 종종 해외여행을 다니시며 미국 서부 여행까지 섭렵한 엄마였지만, 뉴욕은 처음이었다. 몇 달 전 항공권을 예매할 때만 해도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엄마와 동생이 뉴욕에 도착할 날이 가까워지자 조금씩 설레기 시작했다. 


하루는 맨해튼, 하루는 뉴저지 몽트클레어


엄마가 오기 전 내가 사는 공간을 최대한 덜(?) 초라하게 보이게 하려고 애썼다. 후지거나 불편했던(?) 집안 곳곳을 손보고 치우고 청소하면서, 이국땅에 자식을 보낸 엄마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드리기 위해 단단히 방비를 해둔 것이다. 


드디어 공항에서 만난 엄마. 동생 말대로 그사이 엄마는 주름이 많이 늘었고 체력이 많이 떨어지신 듯했다. 좁은 기내 좌석에서 14시간을 갇혀 있으셨으니 최대한 쉴 수 있게 해드리고 싶었다. 


브루클린 브릿지를 배경으로


하지만 엄마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쉬지도 않고, 잠도 안 주무시면서 집안을 모두 뒤집어 청소를 하기 시작하셨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그만 쉬고 뉴욕 구경을 가자고 해도 엄마는 관심이 없으셨다. 지구 반대편을 돌아 딸내미를 보러 왔는데 기껏 매일 한다는 게 집 안 청소와 설거지라니. 


MoMA


그날부터 나는 차가 있는 지인에게 부탁해 엄마를 태우고 뉴욕, 뉴저지, 펜실베이니아 여기저기를 모시고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엔 별 감흥이 없던 엄마도 뉴욕의 웅장하고 복잡한 도시 풍경에 놀라셨고, 펜실베이니아와 뉴저지의 시골스럽고도 평화로운 풍경에는 감명을 받으셨다. 


뉴욕 부활절 모자 퍼레이드


다행히 엄마는 평소에도 서양 음식을 좋아하셨다. 특별히 신경 써서 주변 맛집을 찾아다녔다. 랍스터, 햄버거, 피자, 베이글, 팬케이크 등을 맛본 엄마와 동생이 엄지척을 날려줄 때마다 얼마나 기분이 좋던지. 물론 그 덕분에 그간 힘겹게 모아두었던 내 생활비는 다 날아갔지만. 하하하~


뉴욕에서의 먹방


그렇게 시간이 흘러 엄마와 동생이 한국으로 돌아갈 시간이 다가왔다. 1년 전 헤어질 때처럼 동생이 우는 걸 보고 싶지 않아 나는 애써 웃으며 몇 번씩 말했다. 나 이제 여기 있으니 언제든 비행기 타고 놀러 오라고. 거리가 좀 멀어 그렇지 만나기가 어려운 건 아니라고. 그리고 다음엔 가을에 꼭 오라고. 뉴욕은 뭐니 뭐니 해도 가을이고, 미국이라는 나라의 가을 단풍은 한국의 그것과는 스케일이 다르다고. 


언제 이렇게 시간이 빨리 갔을까


그렇게 나의 가족이 내 집을 떠나갔다. 비좁던 집안이 복작복작했는데 다시 혼자가 되었다. 자유로운 시간으로 돌아갔지만, 피곤함에 절어 혓바늘까지 달고 다니며 가족을 위한 뉴욕 가이드가 되었던 날들이 그리워지기도 하는 지금. 행복한 추억을 가족과 함께 나누어 가질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다시 만날 그날을 꿈꿔 본다. 그때는 내가 좀 더 여유로운 마음으로 우리 가족을 크게 품어줄 수 있기를. 한국에선 그토록 지겨웠던 엄마의 잔소리도 뉴욕에서 들으니 감미롭고 달콤했던 것처럼 말이다.





글·사진 | 조은정

최소 2개월에 한 번은 비행기를 타줘야 제대로 된 행복한 인생이라고 믿는 여행교 교주. <미국 서부 셀프트래블>, <뉴욕 셀프트래블> 외 여러 권의 저서가 있는 베스트셀러 직딩 여행작가. 현재 뉴욕에서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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