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정의 미국 이야기 #8
하이애니스Hyannis
오랜 뉴요커 친구가 해마다 여름철이면 무조건 하던 일을 접고 몇 주간 머무는 곳, 케이프 캇Cape Cod. 모래 언덕과 소금기 밴 공기, 여기저기 흥미로운 작은 마을들, 케이프 캇과 사랑에 빠질 거라는 패티 페이지Patti Page의 노래. 내게도 오래 전부터 친숙한 지명이었기에, 주저 없이 떠나 보기로 했다. 과연 어떤 느낌일까, 모처럼 설레기까지 하며.
* * *
나의 바다야, 나의 하늘아, 나도 모르게 흥얼대며 구글 지도로 여기 저기 서치한 곳을 짜깁기하다 보니 위치 파악을 위해 자꾸 손으로 지도를 그리게 되고, 결국 이런 지도답지 않은 지도(?)가 완성되었다. 아, 나는 이렇게 아날로그 인간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일까.
손으로 그린 여행 일정
케이프 캇은 미국 매사추세츠주 남동부에 있는 지역이다. 뉴욕에서 우측으로 달리다 보면 커네디컷주를 지나 메사추세츠주에 다다른다. 그 오른쪽 끄트머리에 있는 바다 지역을 통틀어 부르는 이름인데 이곳은 등대의 도시이다. 특이하게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6개 등대와 해변으로 이루어진 지역인 것이다. 참고로 미국 마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맛있고 유명한 감자칩 브랜드 ‘Cape Cod’의 포장지에 있는 등대 또한 이 지역에 있다(감자칩 봉투에 있는 등대의 정식 명칭은 ‘Nauset Lighthouse’).
케이프 캇 감자칩
나의 여정은 이러했다.
뉴저지 – 뉴욕 – 커네디컷 – 매사추세츠
커네디컷 주를 지나면서 오랜만에 예일대학교에 들렀다. 1701년 개교한 미국 아이비리그 중 하나로 전 세계 최고 대학 중 하나로 손꼽히는 명문 중의 명문 대학이다. 이곳에 올 때마다 괜히 설렌다. 내가 나온 학교도 아니고, 유명 관광지도 아니지만, 이상하게도 이곳에선 감동과 여운이 오래 지속된다.
내 여행 인생을 통틀어 최고로 손꼽는 도서관, ‘바이네케 고문서 도서관Beinecke Rare Book and Manuscript Library’. 화재나 지진에도 끄떡없도록 바닥부터 천장까지 특수 설계된 이 공간의 늠름한 자태는 언제 봐도 매력적이다.


바이네케 고문서 도서관
이어서 ‘예일대학교 아트 갤러리Yale University Art Gallery’에 들러 이탈리아 르네상스 회화부터 현대 미술까지 관람한다. 아시아, 아프리카 작품들까지 소장품 목록이 놀랍다. 뉴욕의 거대한 미술관만 보다가 모처럼 작은 규모의 미술관을 보니 미술관과 작품에 더 가까워진 느낌이었고, 시멘트로 만든 천장의 삼각형 무늬는 또 유난히 멋스러웠다. 피카소, 고흐, 칸딘스키, 모네, 앤디 워홀, 에드워드 호퍼. 유명 화가 작품들을 두로 갖추고 있다. 이런 공간을 무료로 운영하고 있으니 갈 때마다 감사한 마음이다.


예일대학교 아트 갤러리
‘스털링 기념 도서관Sterling Memorial Library’은 듣던 대로 고풍스럽고도 웅장했는데 뒤뜰의 정원이 모네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지난 번 거닐던 예일대는 가을의 단풍이 가득했던 곳이었는데 이제는 여름의 싱그러움이 가득했다.

스털링 기념 도서관
허기진 배는 ‘프랭크 페페 피제리아 나폴레타나Frank Pepe Pizzeria Napoletana’에서 해결했다. 조개 피자가 유명한 곳으로 조개를 가득 넣고 바로 화덕에 구워낸다.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 건 기본. 한국 사람들에게는 조금 짤 수 있지만 그래도 누구나 수긍할 맛이다. 팁을 하나 드리자면, 매장에서 먹으려면 줄을 오래 서야 하니 미리 인터넷으로 주문해 픽업하는 것을 추천한다. 주변을 둘러보면 모두들 피자 박스를 들고 오가며 피자를 먹는 사람들이 천지인데 바른 이런 이유 때문이다.
프랭크 페페 피제리아 나폴레타나의 조개 피자
* * *
다음날. 메사추세츠주 케이프 캇에 드디어 입성. 처음 방문한 도시는 ‘팰머스Falmouth’였다. 이곳에 맛있는 프랑스 빵집 ‘메종 빌라트Maison Villatte’가 있다는 스레드의 글을 보곤 달려간 건데, 세상에 이럴 수가! 마을 곳곳이 너무너무 예쁜 거다. 지금껏 내가 가본 미국 작은 도시 다운타운은 거의 비슷비슷했는데, 이곳 풍경은 독보적이라 해도 좋을 만큼 아름다웠다. 날씨도 좋았고 바람도 살랑거렸고 오가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느껴지던 여유로운 미소도 실로 간만에 느껴보는 평화를 주었다.



팰머스
메종 빌라트
이어서 달려간 곳은 하이애니스Hyannis. 다운타운은 팰머스보다 못했으나, 이곳이 인상적이었던 건 ‘베테랑 기념공원Veterans Memorial Park’ 때문이었다. 예상치 못하고 간 곳이었는데 위령비의 글을 읽어 보니 한국전쟁 때 사망한 미군들을 위로하는 공간이었다. 태극기와 성조기가 바다를 향해 나란히 걸려 있었는데, 여기 잠든 분들을 가만히 위로해 주는 것 같았다.


하이애니스
요새 케이프 캇에서 가장 인기라는 ‘사우스 케이프 비치 주립공원South Cape Beach State Park’에 들러 태닝을 하고 비치볼 게임을 하며 바다를 즐기는 현지인들을 구경하고, 잠시 ‘바다멍’에 빠져들기도 했다. 저들의 일상을 바라보는 지금 이 시간이 내게도 참 소중하다고 느껴졌다.
사우스 케이프 비치 주립공원
하지만 다음날은 내 일상으로 돌아와야 하는 시간. 마지막으로 내가 선택한 여정은 ‘그레이스 팜Grace Farms’이었다. 그레이스 팜은 현대판 노예제도나 성폭력을 종식하기 위해 건립한 비영리 단체이다. 이곳이 유명한 건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 상을 수상한 일본 건축회사 SANAA에서 설계한 멋진 건물 때문이다. 드넓은 부지에 5개의 투명한 유리로 둘러싸인 우주선과도 같은 이곳은 무료로 입장이 가능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카페도 있다.

그레이스 팜
전에 왔을 때는 프라이빗 파티가 있다고 해서 입장할 수가 없었는데, 이번에 드디어 내부 구경을 해 보는가 했으나 대대적인 내부 수리 공사로 또 한 번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내가 가장 다시 보고 싶었던 통유리 창의 강연장은 아예 입구부터 막아두었다. 이것 때문에라도 반드시 또 오기로! 언젠가 이 멋스러운 공간에서 강연을 하는 날도 그려 본다.
날씨가 좋아서, 함께한 친구가 좋아서, 바다와 대학, 산책로가 좋아서 행복했던 시간. 내가 미국을 선택한 이유는 바로 이것이었음을 다시 한 번 떠올렸다. 행복했던 여행이었다, 진심.

글·사진 | 조은정

최소 2개월에 한 번은 비행기를 타줘야 제대로 된 행복한 인생이라고 믿는 여행교 교주. <미국 서부 셀프트래블>, <뉴욕 셀프트래블> 외 여러 권의 저서가 있는 베스트셀러 직딩 여행작가. 현재 뉴욕에서 지내고 있다.
https://eiffel.blog.me/
조은정의 미국 이야기 #8
오랜 뉴요커 친구가 해마다 여름철이면 무조건 하던 일을 접고 몇 주간 머무는 곳, 케이프 캇Cape Cod. 모래 언덕과 소금기 밴 공기, 여기저기 흥미로운 작은 마을들, 케이프 캇과 사랑에 빠질 거라는 패티 페이지Patti Page의 노래. 내게도 오래 전부터 친숙한 지명이었기에, 주저 없이 떠나 보기로 했다. 과연 어떤 느낌일까, 모처럼 설레기까지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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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바다야, 나의 하늘아, 나도 모르게 흥얼대며 구글 지도로 여기 저기 서치한 곳을 짜깁기하다 보니 위치 파악을 위해 자꾸 손으로 지도를 그리게 되고, 결국 이런 지도답지 않은 지도(?)가 완성되었다. 아, 나는 이렇게 아날로그 인간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일까.
케이프 캇은 미국 매사추세츠주 남동부에 있는 지역이다. 뉴욕에서 우측으로 달리다 보면 커네디컷주를 지나 메사추세츠주에 다다른다. 그 오른쪽 끄트머리에 있는 바다 지역을 통틀어 부르는 이름인데 이곳은 등대의 도시이다. 특이하게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6개 등대와 해변으로 이루어진 지역인 것이다. 참고로 미국 마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맛있고 유명한 감자칩 브랜드 ‘Cape Cod’의 포장지에 있는 등대 또한 이 지역에 있다(감자칩 봉투에 있는 등대의 정식 명칭은 ‘Nauset Lighthouse’).
나의 여정은 이러했다.
커네디컷 주를 지나면서 오랜만에 예일대학교에 들렀다. 1701년 개교한 미국 아이비리그 중 하나로 전 세계 최고 대학 중 하나로 손꼽히는 명문 중의 명문 대학이다. 이곳에 올 때마다 괜히 설렌다. 내가 나온 학교도 아니고, 유명 관광지도 아니지만, 이상하게도 이곳에선 감동과 여운이 오래 지속된다.
내 여행 인생을 통틀어 최고로 손꼽는 도서관, ‘바이네케 고문서 도서관Beinecke Rare Book and Manuscript Library’. 화재나 지진에도 끄떡없도록 바닥부터 천장까지 특수 설계된 이 공간의 늠름한 자태는 언제 봐도 매력적이다.
이어서 ‘예일대학교 아트 갤러리Yale University Art Gallery’에 들러 이탈리아 르네상스 회화부터 현대 미술까지 관람한다. 아시아, 아프리카 작품들까지 소장품 목록이 놀랍다. 뉴욕의 거대한 미술관만 보다가 모처럼 작은 규모의 미술관을 보니 미술관과 작품에 더 가까워진 느낌이었고, 시멘트로 만든 천장의 삼각형 무늬는 또 유난히 멋스러웠다. 피카소, 고흐, 칸딘스키, 모네, 앤디 워홀, 에드워드 호퍼. 유명 화가 작품들을 두로 갖추고 있다. 이런 공간을 무료로 운영하고 있으니 갈 때마다 감사한 마음이다.
‘스털링 기념 도서관Sterling Memorial Library’은 듣던 대로 고풍스럽고도 웅장했는데 뒤뜰의 정원이 모네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지난 번 거닐던 예일대는 가을의 단풍이 가득했던 곳이었는데 이제는 여름의 싱그러움이 가득했다.
허기진 배는 ‘프랭크 페페 피제리아 나폴레타나Frank Pepe Pizzeria Napoletana’에서 해결했다. 조개 피자가 유명한 곳으로 조개를 가득 넣고 바로 화덕에 구워낸다.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 건 기본. 한국 사람들에게는 조금 짤 수 있지만 그래도 누구나 수긍할 맛이다. 팁을 하나 드리자면, 매장에서 먹으려면 줄을 오래 서야 하니 미리 인터넷으로 주문해 픽업하는 것을 추천한다. 주변을 둘러보면 모두들 피자 박스를 들고 오가며 피자를 먹는 사람들이 천지인데 바른 이런 이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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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메사추세츠주 케이프 캇에 드디어 입성. 처음 방문한 도시는 ‘팰머스Falmouth’였다. 이곳에 맛있는 프랑스 빵집 ‘메종 빌라트Maison Villatte’가 있다는 스레드의 글을 보곤 달려간 건데, 세상에 이럴 수가! 마을 곳곳이 너무너무 예쁜 거다. 지금껏 내가 가본 미국 작은 도시 다운타운은 거의 비슷비슷했는데, 이곳 풍경은 독보적이라 해도 좋을 만큼 아름다웠다. 날씨도 좋았고 바람도 살랑거렸고 오가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느껴지던 여유로운 미소도 실로 간만에 느껴보는 평화를 주었다.
이어서 달려간 곳은 하이애니스Hyannis. 다운타운은 팰머스보다 못했으나, 이곳이 인상적이었던 건 ‘베테랑 기념공원Veterans Memorial Park’ 때문이었다. 예상치 못하고 간 곳이었는데 위령비의 글을 읽어 보니 한국전쟁 때 사망한 미군들을 위로하는 공간이었다. 태극기와 성조기가 바다를 향해 나란히 걸려 있었는데, 여기 잠든 분들을 가만히 위로해 주는 것 같았다.
요새 케이프 캇에서 가장 인기라는 ‘사우스 케이프 비치 주립공원South Cape Beach State Park’에 들러 태닝을 하고 비치볼 게임을 하며 바다를 즐기는 현지인들을 구경하고, 잠시 ‘바다멍’에 빠져들기도 했다. 저들의 일상을 바라보는 지금 이 시간이 내게도 참 소중하다고 느껴졌다.
하지만 다음날은 내 일상으로 돌아와야 하는 시간. 마지막으로 내가 선택한 여정은 ‘그레이스 팜Grace Farms’이었다. 그레이스 팜은 현대판 노예제도나 성폭력을 종식하기 위해 건립한 비영리 단체이다. 이곳이 유명한 건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 상을 수상한 일본 건축회사 SANAA에서 설계한 멋진 건물 때문이다. 드넓은 부지에 5개의 투명한 유리로 둘러싸인 우주선과도 같은 이곳은 무료로 입장이 가능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카페도 있다.
전에 왔을 때는 프라이빗 파티가 있다고 해서 입장할 수가 없었는데, 이번에 드디어 내부 구경을 해 보는가 했으나 대대적인 내부 수리 공사로 또 한 번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내가 가장 다시 보고 싶었던 통유리 창의 강연장은 아예 입구부터 막아두었다. 이것 때문에라도 반드시 또 오기로! 언젠가 이 멋스러운 공간에서 강연을 하는 날도 그려 본다.
날씨가 좋아서, 함께한 친구가 좋아서, 바다와 대학, 산책로가 좋아서 행복했던 시간. 내가 미국을 선택한 이유는 바로 이것이었음을 다시 한 번 떠올렸다. 행복했던 여행이었다, 진심.
글·사진 | 조은정
최소 2개월에 한 번은 비행기를 타줘야 제대로 된 행복한 인생이라고 믿는 여행교 교주. <미국 서부 셀프트래블>, <뉴욕 셀프트래블> 외 여러 권의 저서가 있는 베스트셀러 직딩 여행작가. 현재 뉴욕에서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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