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정의 미국 이야기 #14
My Room No.10

바닷가 마을의 호텔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를 온전히 누려본 것이 마지막으로 언제였나 기억도 나지 않는다. 늘 몇 가지 일을 동시에 진행하며 살고 있고, 집이든 어디서든 항상 해치워야 할 일은 넘쳐났으니까.
모처럼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은 채 그저 떠나고만 싶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설렘’을 가장 좋아하고 늘 그걸 즐기던 나였지만, 이번만큼은 준비할 시간도, 아니, 정확히 말하면 준비할 마음의 여유조차 없었다. 그래도 떠났다. 집에서 1시간 거리, 바닷가 마을 작은 호텔로.
동남아 여행에서나 봤던 라탄 조명이 나를 먼저 맞아주었다. 몹시 따뜻한 느낌이 들어 기분이 이내 좋아졌다. 직접 만든 웰컴 쿠키와 그걸 담아가라고 놔둔 종이봉투, 그리고 커피 머신을 보자 급 허기가 졌다. 체크인 시간 이전에 도착했던 터라 여유가 있었고, 여느 때처럼 어디를 구경하러 나가고 싶은 마음보다는 룸에 들어가 짐을 풀고 싶었다.
웰컴 쿠키와 조식
체크인 시간을 기다리면서 호텔 시트를 들고 왔다갔다 하며 룸을 정리하던 프론트 직원을 마주했다. 밝은 모습이 매력적이던 어린 흑인 아가씨가 나를 친절하게 맞이해 주었다.
찬찬히 호텔을 둘러보니, 지은 지 오래된 건물을 리노베이션 해 호텔로 꾸민 공간이란 게 느껴졌다. 주인장의 세심한 설계 덕분에 오래된 시설의 불편함 정도는 감수할 수 있을 만큼 호텔이 내 마음에 쏙 들었다.
호텔 로비
좁고 경사진 3층 계단을 올라가 배정받은 내 룸은 10호. 바닷가 바로 앞이 아니라 기대하지 않았는데, 막상 룸에 들어가 침대에 누우니 옆 건물과 옆 건물 사이로 바다가 보였다.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아니, 이게 웬 횡재야? 나 이제 체크아웃 할 때까지 안 나갈래!”
그렇게 멍 때리고, 밀린 인스타그램 업데이트를 하고, 휴대폰 용량이 가득 찼다며 계속 경고를 날리는 휴대폰 속 밀린 사진들을 정리하며 시간을 보냈다. 지금 사는 집에 TV가 없기 떄문에 이렇게 여행 중 머무는 호텔에서는 미국 TV를 실컷 볼 수도 있었다.
나의 룸 No.10
시간은 그 어느 때보다 쏜살같이 흘렀다. 이른 저녁을 먹고 초저녁부터 잤더니 새벽녘에 눈이 떠졌다. 추운 날씨에 호텔 룸 침대에서 보이던 바다의 붉은 일출이 황홀했다. 정말 큰 선물을 받았구나. 호텔에서 제공해주는 조식을 야무지게 즐기느라 잠시 1층에 내려갔던 시간을 제외하고는 정말 말 그대로 룸에서만 머물며 쉬었다.
창밖으로 바다가 슬며시
은행을 개조한, 내 취향의 카페
체크아웃을 하고 나서 그제서야 동네 골목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그때 눈에 들어온 카페. 예전에 은행이었던 공간을 카페로 개조해서인지 도서관 분위기가 났고, 높은 층고와 다양한 식물, 지역 주민들이 직접 제작한 굿즈 판매 공간 등이 눈에 띄었다. 완전히 내 취향의 카페였다.

은행을 개조해서 만든 카페
아침식사 때 이미 호텔에서 제공해 준 커피를 마셨지만, 직접 로스팅한다는 이 카페의 커피 맛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커피를 주문하려고 서 있는데 바구니에 바나나가 가득 담겨 있었다. 고객에게 나눠주는 무료 선물이었다. 미국에선 그 무엇보다 저렴한 바나나지만, 나누는 그 마음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햇살과 식물의 조화가 아름다운 카페
코르타도 한잔과 바나나를 함께 즐기며 호사스러운 ‘카페 타임’까지 야무지게 채우며 마무리한 여행. 동남아시아의 크고 화려한 리조트는 아니었지만, 1박2일의 호캉스가 이보다 더 완벽할 수는 없었다. 조만간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고 떠나는 이런 여행을 다시 떠나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나만 알고 싶었던, 이번 에세이의 여행 정보는?
Beachliner Hotel Ocean Grove - Hotel In New Jersey
미국 뉴저지 오션 그로브의 빅토리아 양식 건축물에 현대적인 감각을 더해 리모델링된 부티크 호텔. 바다가 보이는 뷰, 정성 가득한 조식, 웰컴 쿠키와 드링크 덕분에 인기.
7 Main Ave, Ocean Grove, NJ 07756
Odyssey Coffee
고전 문학 교수 출신의 주인이 운영하는 곳으로, 과거 은행이었던 공간을 개조해 카페로 만들었는데 클래식한 가구와 지역 주민들이 직접 만든 수제 생활용품, 다양한 식물, 높은 층고, 책 등이 가득해 독특한 분위기 제공. 스텀프타운(Stumptown) 원두와 자체 블렌딩 원두를 섞어 제공하는, 맛 좋은 스페셜티 전문 카페.
63 Main Ave, Ocean Grove, NJ 07756
글·사진 | 조은정

최소 2개월에 한 번은 비행기를 타줘야 제대로 된 행복한 인생이라고 믿는 여행교 교주. <미국 서부 셀프트래블>, <뉴욕 셀프트래블> 외 여러 권의 저서가 있는 베스트셀러 직딩 여행작가. 현재 뉴욕에서 지내고 있다.
https://eiffel.blog.me/
조은정의 미국 이야기 #14
My Room No.10
바닷가 마을의 호텔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를 온전히 누려본 것이 마지막으로 언제였나 기억도 나지 않는다. 늘 몇 가지 일을 동시에 진행하며 살고 있고, 집이든 어디서든 항상 해치워야 할 일은 넘쳐났으니까.
모처럼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은 채 그저 떠나고만 싶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설렘’을 가장 좋아하고 늘 그걸 즐기던 나였지만, 이번만큼은 준비할 시간도, 아니, 정확히 말하면 준비할 마음의 여유조차 없었다. 그래도 떠났다. 집에서 1시간 거리, 바닷가 마을 작은 호텔로.
동남아 여행에서나 봤던 라탄 조명이 나를 먼저 맞아주었다. 몹시 따뜻한 느낌이 들어 기분이 이내 좋아졌다. 직접 만든 웰컴 쿠키와 그걸 담아가라고 놔둔 종이봉투, 그리고 커피 머신을 보자 급 허기가 졌다. 체크인 시간 이전에 도착했던 터라 여유가 있었고, 여느 때처럼 어디를 구경하러 나가고 싶은 마음보다는 룸에 들어가 짐을 풀고 싶었다.
웰컴 쿠키와 조식
체크인 시간을 기다리면서 호텔 시트를 들고 왔다갔다 하며 룸을 정리하던 프론트 직원을 마주했다. 밝은 모습이 매력적이던 어린 흑인 아가씨가 나를 친절하게 맞이해 주었다.
찬찬히 호텔을 둘러보니, 지은 지 오래된 건물을 리노베이션 해 호텔로 꾸민 공간이란 게 느껴졌다. 주인장의 세심한 설계 덕분에 오래된 시설의 불편함 정도는 감수할 수 있을 만큼 호텔이 내 마음에 쏙 들었다.
호텔 로비
좁고 경사진 3층 계단을 올라가 배정받은 내 룸은 10호. 바닷가 바로 앞이 아니라 기대하지 않았는데, 막상 룸에 들어가 침대에 누우니 옆 건물과 옆 건물 사이로 바다가 보였다.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아니, 이게 웬 횡재야? 나 이제 체크아웃 할 때까지 안 나갈래!”
그렇게 멍 때리고, 밀린 인스타그램 업데이트를 하고, 휴대폰 용량이 가득 찼다며 계속 경고를 날리는 휴대폰 속 밀린 사진들을 정리하며 시간을 보냈다. 지금 사는 집에 TV가 없기 떄문에 이렇게 여행 중 머무는 호텔에서는 미국 TV를 실컷 볼 수도 있었다.
시간은 그 어느 때보다 쏜살같이 흘렀다. 이른 저녁을 먹고 초저녁부터 잤더니 새벽녘에 눈이 떠졌다. 추운 날씨에 호텔 룸 침대에서 보이던 바다의 붉은 일출이 황홀했다. 정말 큰 선물을 받았구나. 호텔에서 제공해주는 조식을 야무지게 즐기느라 잠시 1층에 내려갔던 시간을 제외하고는 정말 말 그대로 룸에서만 머물며 쉬었다.
은행을 개조한, 내 취향의 카페
체크아웃을 하고 나서 그제서야 동네 골목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그때 눈에 들어온 카페. 예전에 은행이었던 공간을 카페로 개조해서인지 도서관 분위기가 났고, 높은 층고와 다양한 식물, 지역 주민들이 직접 제작한 굿즈 판매 공간 등이 눈에 띄었다. 완전히 내 취향의 카페였다.
은행을 개조해서 만든 카페
아침식사 때 이미 호텔에서 제공해 준 커피를 마셨지만, 직접 로스팅한다는 이 카페의 커피 맛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커피를 주문하려고 서 있는데 바구니에 바나나가 가득 담겨 있었다. 고객에게 나눠주는 무료 선물이었다. 미국에선 그 무엇보다 저렴한 바나나지만, 나누는 그 마음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햇살과 식물의 조화가 아름다운 카페
코르타도 한잔과 바나나를 함께 즐기며 호사스러운 ‘카페 타임’까지 야무지게 채우며 마무리한 여행. 동남아시아의 크고 화려한 리조트는 아니었지만, 1박2일의 호캉스가 이보다 더 완벽할 수는 없었다. 조만간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고 떠나는 이런 여행을 다시 떠나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나만 알고 싶었던, 이번 에세이의 여행 정보는?
글·사진 | 조은정
최소 2개월에 한 번은 비행기를 타줘야 제대로 된 행복한 인생이라고 믿는 여행교 교주. <미국 서부 셀프트래블>, <뉴욕 셀프트래블> 외 여러 권의 저서가 있는 베스트셀러 직딩 여행작가. 현재 뉴욕에서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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