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공립도서관의 사서][예술사] 파베르제(Fabergé) 보석의 숨겨진 이야기

2026-04-01


뉴욕 공립도서관의 사서가 들려주는 역사와 문화 이야기 #5


2003년 어느 겨울, 뉴욕 소더비(Sotheby's)의 두 사람이 내가 일하는 슬라빅 부서를 찾았다. 다음 해 4월에 열리는 경매를 대비하여 카탈로그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미국의 경제지 포브스(Forbes) 가문의 아들들이 아버지가 오랫동안 러시아에서 수집한 파베르제 보석을 팔기 위해 소더비사와 계약을 맺었다고 했다. 포브스 가문은 20세기 들어 오랫동안 파베르제 작품들을 모아 왔으며, 특히 ‘황실 부활절 달걀(Imperial Easter Eggs)’ 9점을 포함해 세계 최대 민간 소장 컬렉션으로 유명했다. 나는 일주일간 그 분들과 같이 일하며 파베르제 보석이 무엇인지 처음 알게 되었고 그 후로 이 보석의 숨겨진 이야기에 흠뻑 빠져 기회가 날 때마다 박물관과 도서관을 찾아 다녔다. 뉴욕에서 사서로 일하고 있는 나와는 어떤 숨은 이야기가 있는지 지금부터 흥미롭고 값진 보석 이야기를 꺼내 볼까 한다.


먼저 피터 칼 파베르제(Peter Carl Fabergé, 1846–1920)가 누구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파베르제 가문은 원래 프랑스의 개신교 집단인 위그노(Huguenot) 출신으로, 16~17세기 가톨릭의 종교 박해를 피해 유럽 각지를 떠돌았다. 이러한 생존 방식은 국제적인 이동과 다양한 문화에 적응하게 하였고, 그러다 1842년경 러시아에 정착하게 되었다. 칼 파베르제는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예술품에 관심을 가졌으며, 약 8년간 독일, 프랑스, 영국 등지에서 수련을 거치며 유럽 최고 수준의 세공 기술을 익히게 된다. 그리고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와 1872년경부터 아버지의 공방을 본격적으로 이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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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파베르제 초상과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파베르제 가족 공방. Ó The New York Public library


이때부터 파베르제 공방은 황실 관련 인사들의 주문을 받기 시작했고, 점차 황실의 눈에도 들어가게 된다. 그러다 1882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범러시아 산업·예술 전시회에서 칼 파베르제는 황실의 확실한 선택을 받게 된다. 파베르제가 선보인 고대 그리스·스키타이(Scythian) 유물의 재현 작품을 보고 알렉산드르 3세(재임 1881-1894)와 황후 마리아 표도로브나가 크게 감탄했던 것이다. 


1884년 어느 날 알렉산드르 3세는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본사를 둔 파베르제 하우스(House of Fabergé)에 찾아가 다가오는 1885년 부활절을 맞아 황후에게 선물할 달걀 모양의 보석을 주문했다. 그는 황후가 달걀을 여는 순간, 그 안에서 놀랄 만한 ‘깜짝 선물’이 나타나도록 만들어 달라고 특별히 당부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최초의 황실 파베르제 달걀, ‘암탉 달걀(Hen Egg)’이었다. 이 선물은 황후를 완전히 사로잡았고, 이후 황실 달걀 제작은 부활절마다 이어지는 전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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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트페테르부르크 파베르제 박물관(Fabergé Museum)에 전시되어 있는 최초의 황실 파베르제 암탉 달걀(Hen Egg). 
앞 오른쪽은 1880년경 제작된, 스키타이 양식에서 영감을 받은 파베르제 작품. ⓒ유희권


이를 계기로 황제는 파베르제에게 ‘황실 전속 금세공사(Goldsmith by special appointment to the Imperial Crown)’라는 칭호를 수여하였고, 1900년 파리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세계박람회)에 파베르제의 작품이 러시아를 대표하여 전시되었다. 파베르제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본사를 중심으로 모스크바, 오데사, 키이우, 런던에 이르기까지 지점을 확장하며 사업을 크게 성장시켰다. 1882년부터 1917년까지 파베르제 가문 공방에서 제작된 물품은 약 15만~20만 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황실 달걀(Imperial eggs) 이야기로 돌아가, 1885년부터 러시아 혁명 직전인 1916년까지, 알렉산드르 3세와 그의 아들 니콜라이 2세는 파베르제 하우스에 총 50개의 황실 달걀을 주문했다. 니콜라이 2세의 어머니인 황후 마리아 표도로브나를 위해 30개, 아내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를 위해 20개. (마리아 황후의 경우, 아버지 황제 시절부터 선물로 주어졌기 때문에 개수가 더 많다). 이 황실 달걀은 완성하는 데 거의 1년이 걸릴 만큼 정교하고 화려했으며, 제작 비용 또한 숨이 막힐 정도로 비쌌다.

 

빅토르 베크셀베르크(Viktor Vekselberg)에게 사전 판매되다

2004년 4월 뉴욕 소더비 경매는 열리지 않았다. 경매가 열리기 두 달 전인 2004년 2월 4일, 러시아의 석유·가스 재벌 빅토르 베크셀베르크가 포브스 가문이 소장한 파베르제 컬렉션 전체인 부활절 달걀 9점과 180여 점의 작품을 사전 거래로 매입했다는 기사가 뉴욕타임즈에 실렸다. 매매 금액은 공식적으로 공개되지 않았지만, 언론 추정으로는 약 1억 달러(약 1,500억 원대) 이상이었다고 전해진다. 베크셀베르크는 2003년, 내가 근무하던 슬라빅 부서에서 준비한 전시회 <Russia Engages the World, 1453–1825 러시아, 세계와 만나다: 1453–1825>에 상당한 기부금을 전달하였고, 우리 부서는 소련의 전 서기장 미하일 고르바초프를 비롯해 1,000여 명이 넘는 인사를 초청해 성대한 리셉션 행사를 열었다.


베크셀베르크는 파베르제의 작품들이 “아마도 러시아 밖에 있는 러시아 문화유산 중 가장 중요한 사례일 것”이라며, “조국에 가장 존경받는 보물 중 하나를 되돌려 줄 일생일대의 기회”라고 말했다. 그리고 즉시 행동으로 옮겼다. 인수 직후 작품들을 러시아에서 공개 전시할 계획을 세웠고, 2004년 러시아 귀환 이후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예카테린부르크 등 여러 도시에서 순회 전시를 열었다. 예카테린부르크는 특히 황실 달걀의 소유주였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 가족이 최후를 맞이한 역사적 장소이기 때문에 상징적인 전시회로 기록되었다.

 

이후 2013년에 베크셀베르크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 파베르제 박물관(Fabergé Museum)을 설립하고 황실 달걀들을 포함한 파베르제 보석들을 상설 전시하고 있다. 파베르제 학자인 게자 폰 합스부르크 (Géza von Habsburg)는 이 박물관의 컬렉션이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다음으로 규모가 크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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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점의 황실 파베르제 달걀(Imperial Fabergé Eggs)과 수백여 개의 보석이 전시되어 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 파베르제 박물관. ©유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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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트페테르부르크 파베르제 박물관 전경.
18세기 후반, 폰탄카 운하(Fontanka River) 옆에 세워진 이 궁전은 러시아 귀족 슈발로프(Shuvalov) 가문의 저택이었으며, 
19세기에는 나리시킨(Naryshkin) 가문이 소유해 한때 “나리시킨-슈발로프 궁전”으로 불렸다. ©유희권


하버드 대학교 종탑과 다닐로프 수도원 종

잠시 이야기를 바꿔, 베크셀베르크와 관련해 하버드 대학교 종탑과 그 종들에 얽힌 흥미로운 일화가 있다. 이 종탑의 종들은(가장 오래된 것은 약 1690년경으로 추정됨) 원래 모스크바의 다닐로프 수도원(Danilov Monastery)에 있던 역사적인 종들이었다.


1930년, 미국의 자선가 찰스 크레인(Charles Crane)이 이 종들을 구입해 하버드 대학교에 기증했고, 로웰 하우스 타워(Lowell House Tower)에 설치되었다. 이후 이 종들은 졸업식과 같은 경사스러운 연례행사에서 울려 퍼졌을 뿐 아니라, 1968년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목사의 암살 사건, 2001년 9월 11일의 테러 공격과 같은 비통한 순간들을 기리기 위해서도 울렸다. 기쁨과 슬픔의 시간을 함께 증언해 온 셈이다.


그러나 2005년에서 2007년 사이, 이 종들을 본래의 고향으로 돌려보내려는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했다. 여러 논의가 이어졌지만, 무엇보다도 자금 마련이 큰 과제였다. 그러던 중 2008년 빅토르 베크셀베르크의 기부가 이루어지면서 상황이 크게 진전되었고, 결국 종들은 모스크바의 옛 자리인 다닐로프 수도원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동시에 하버드대학교와 러시아 정교회는 협의를 통해, 러시아의 한 주조 공장에서 새롭게 제작한 17개의 종을 대신 설치하기로 합의하였다. 이 새로운 종들은 오늘날에도 하버드에서 졸업식과 같은 공식 행사 때 울려 퍼지며, 다시 오랜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베크셀베르크의 파베르제 작품 러시아 귀환과 마찬가지로, 이 이야기는 단순한 종의 이동을 넘어선다. 그것은 문화유산의 복원과 국제적 자선 활동이 만나 이룬 상징적인 사례로, 두 나라의 역사와 전통을 다시 이어준 사건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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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의 다니롤프 수도원 전경. 1886.  ⓒThe New York Public Libr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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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닐로프 수도원 종. ⓒ Harvard Crimson




글 | 유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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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살며 수많은 책과 희귀 자료를 연구하고, 그 자료와 연관된 도시들을 찾아다니며 먼저 간 이들의 ‘한탄’을 듣고 Dum Spiro Spero(“숨 쉬는 동안 나는 희망한다”)의 삶을 좇고자 애쓰는 소박한 연구자. 두 권의 학술서와 20여 편의 논문을 집필했으며, 특히 2008년 공동 저술한 『Visual Resources from Russia and Eastern Europe in The New York Public Library: A Checklist』는 2009년 ARLIS(미국예술도서관학회)에서 Worldwide Books Award를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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