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공립도서관의 사서가 들려주는 역사와 문화 이야기 #6
파베르제 박물관(Fabergé Museum), 독일 바덴바덴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또 하나의 파베르제 박물관이 독일의 바덴바덴이라는 도시에 있다. 이 도시는 온천이 있는 휴양 도시로 오래전부터 러시아인들이 즐겨 찾던 곳이다. 이곳에 알렉산드르 이바노프(Alexander Ivanov, 1962-)라는 러시아인 아트 컬렉터가 2009년 파베르제 박물관을 개관했다. 대략 1,500점이 넘는 파베르제 관련 작품이 박물관에 진열되어 있다.
그의 소장품 중에는 로스차일드 달걀(Rothschild Egg, 1902)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 달걀은 러시아 황실을 위해 제작된 것이 아니지만, 중요한 파베르제 달걀 중 몇 안 되는 작품으로, 처음 구입된 이후 줄곧 로스차일드 가문이 소장해 왔다. 그러다가 2007년 크리스티(Christie’s) 경매에서 약 890만 파운드에 이바노프에게 낙찰되었고, 이후 2015년 이바노프가 러시아 연방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에게 선물로 전달했다. 푸틴은 이를 즉시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 국립박물관(Hermitage State Museum)에 기증했으며, 마침 그 해는 예카테리나 2세가 에르미타주 박물관을 설립한 지 250주년이 되는 해였다. 현재 이 달걀은 박물관에서 가장 사랑받는 전시품 중 하나로, 수많은 방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파베르제 박물관(Fabergé Museum), 독일 바덴바덴. ©유희권

로스차일드 달걀(Rothschild Egg, 1902). © Hermitage State Museum
자작나무 달걀 (The Birch Egg, 1917)
독일 바덴바덴 박물관에는 1917년 제작된 황실 파베르제 달걀 두 점이 전시되어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달걀들이 앞서 언급한 황실 달걀 50점에는 포함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배달’ 사고로 황실 달걀 목록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인데, 그 배경이 매우 흥미롭다. 자작나무 달걀은 1917년 니콜라이 2세가 어머니인 황후 마리아 표도로브나에게 부활절 선물로 주기 위해 완성되었다. 카렐리안 자작나무와 금으로 만들어진 독특한 디자인의 작품으로 원래 기계식 미니어처 상아 코끼리(다이아몬드 장식)가 들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재는 분실된 상태이다.
이 달걀이 완성될 무렵 러시아에서 2월 혁명이 일어났고, 니콜라이 2세는 3월 15일 황제 자리에서 퇴위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 파베르제는 가택연금 중이던 니콜라이 2세에게 달걀에 대한 청구서를 보냈다. 흥미로운 것은, 청구서에 니콜라이 2세의 황제 칭호 “Государь Император И Самодержец Всероссийский(모든 러시아의 주권 황제이자 전제군주)” 대신, “로마노프 씨, 니콜라이 알렉산드로비치”라는 일반 이름으로 적혀 있었다는 점이다. 황제였다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니콜라이 2세는 12,500 루블을 지불했고, 달걀은 황제가 직접 받을 수 없는 상황이어서 동생 미하일 알렉산드로비치 대공에게 전달되어 황후에게 보내질 예정이었다. 그러나 대공은 달걀이 도착하기 전에 어디론가 도망쳐 버렸다. 결국 이 달걀은 미하일 공작의 궁전에 남아 있다가, 1917년 10월 혁명 이후 약탈당했다. 그 후 행방이 불분명해졌다가, 현재는 이바노프의 파베르제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이렇게 배달이 황후에게 되지 못한 탓에, 이 달걀은 황실 달걀 목록에 포함되지 못하는 불운한 작품이 되고 말았다.

원본 파베르제 청구서. 하루아침에 일반 시민이 되어버린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에게 . Wikipedia Commons

자작나무 달걀 (The Birch Egg, 1917). © (Fabergé Museum), Baden-Baden.
그럼 황실 파베르제 달걀은 누가 소장하고 있나?
모스크바 크레믈린 궁 안에 자리한 박물관에는 임페리얼 파베르제 달걀 10점이 소장되어 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보유량이며, 포브스가 소장했던 9점의 임페리얼 달걀을 인수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파베르제 박물관이 두 번째다. 세 번째는 미국 버지니아주 리치먼드에 위치한 버지니아 미술관(Virginia Museum of Fine Arts)으로, 이곳에 5점이 소장되어 있다. 그 다음 영국 왕실이 3점을 소장하고 있고, 이는 찰스 3세의 증조부모인 조지 5세와 메리 왕비가 당대에 직접 구입한 작품들이다. 이러한 왕실 간의 수집은 유럽 왕가의 긴밀한 혈연관계와도 무관하지 않다. 예를 들어,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의 황후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는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재임 1837-1901)의 외손녀로, 러시아와 영국 왕실은 당시 가족 관계로도 깊이 연결되어 있었다.
1917년 이후, 볼셰비키 혁명으로 인해 황실 보물이 매각되기 시작하면서 파베르제의 예술품은 미국 수집가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대표적인 수집가로는 릴리언 토마스 프랫(Lillian Thomas Pratt), 마조리 메리웨더 포스트(Marjorie Merriweather Pos), 말콤 포브스(Malcolm Forbes)등이 있다.
포브스와 더불어 중요한 수집가인 마조리 포스트는 주목할 만한 러시아 황실 미술품 컬렉션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녀의 남편 조셉 데이비스(Joseph E. Davies)가 1936년 미국 대사로 소련에 부임한 후, 모스크바에 머무르며 소련 정부가 매각하던 로마노프 가문의 보물을 수집했다. 그중 특히 주목할 만한 작품은 니콜라이 2세가 1895년 어머니 마리아 페오도로브나에게 선물한 ‘12개의 모노그램 달걀(Twelve Monogram Egg)’이다. 이 달걀은 황실 부부의 모노그램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제국 가족의 전통과 궁정 의례, 그리고 왕조의 연속성을 상징하는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이와 같은 해석은 게자 폰 합스부르크 등의 파베르제 연구자와 힐우드박물관(Hillwood Estate, Museum & Gardens)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니콜라이 2세가 1895년 어머니 마리아 페오도로브나에게 선물한 ‘12개의 모노그램 달걀(Twelve Monogram Egg)’이다. ©HillwoodEstate,Museum&Gardens
마조리 포스트는 이러한 작품들을 적극적으로 구입하여 보존했으며, 그 덕분에 여러 파베르제 걸작들이 오늘날까지 온전히 전해질 수 있었다. 그녀가 수집한 파베르제 달걀과 러시아 황실 예술품들은 현재 워싱턴 D.C.의 힐우드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러시아 제국 장식 예술을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공공 컬렉션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힐우드는 단순한 박물관이 아니라, 아름다운 정원이 어우러진 특별한 문화 공간이다. 특히 봄이 되면 벚꽃과 다양한 꽃들이 만개한다. 봄날 워싱턴을 방문하게 된다면 힐우드의 정원을 천천히 거닐며 파베르제 작품과 러시아 황실 문화를 함께 감상해 보시길 추천한다. 내가 아직 그 감동을 잊지 못하듯, 누구라도 자연의 아름다움과 역사적 예술품이 어우러지는 잊지 못할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힐우드 박물관과 정원 전경. © Hillwood Estate, Museum & Gardens
사라진 달걀과 기적 같은 재발견 : 제3 임페리얼 에그의 이야기
50개의 임페리얼 파베르제 달걀 중에서 7개는 여전히 행방이 묘연하다. 이들 중 일부는 여전히 개인 소장품으로 존재할 가능성이 있으며, 종종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견되기도 하였다. 실제로 1887년에 제작된 제3 임페리얼 달걀 (Third Imperial Egg)은 2000년 초에 미국의 벼룩시장에서 우연히 발견된 적이 있다. 이 파베르제 달걀은 원래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3세가 1887년 부활절 선물로 황후에게 준 황실 달걀로, 내부에는 스위스 시계 브랜드 바쉐론 콘스탄틴(Vacheron-Constantin) 시계가 들어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소재를 알 수 없게 된 이 달걀은 20세기 중반 이후 행방불명으로 여겨졌는데 2000년대 초 미국 중서부의 벼룩시장에서 한 고철 수집상이 금 보석 장식품처럼 보이는 물건을 약 13,000달러(당시 가격)에 구매했다고 한다. 당시에 구매자는 그저 금속으로 팔아 이익을 내려고 했지만, 여러 번 되팔기 시도에도 사려는 사람이 없어 한동안 집 부엌 캐비닛에 보관하고 있었다고 한다.
2012년경, 구매자는 달걀 속 시계에 새겨진 “Vacheron-Constantin”이라는 문구를 구글로 검색해 기사와 비교해 보면서 비로소 이게 유명한 물건임을 깨닫고 전문가에게 감정을 의뢰했다. 이 달걀은 수십 년 동안 소재가 알려지지 않았던 잃어버린 제3 임페리얼 달걀이었으며, 거래 금액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약 3,300만 달러로 평가되었고, 현재는 익명의 개인 수집가가 소장하고 있다. 벼룩시장이나 골동품 시장에서 누군가가 수천만 달러 가치의 예술품을 재발견했다는 점에서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었던 사건이다.

1887년 제작된 세 번째 황실 달걀. Wikipedia Commons.
2025년 말, 또 한 번 역사에 길이 남을 희귀한 파베르제 작품 경매가 열렸다. 1913년 제작된 러시아 황실의 상징적 보석, ‘겨울 달걀(Winter Egg)’이 런던 크리스티(Christie’s) 경매에서 2,280만 파운드(약 3,020만 달러)에 낙찰되며, 파베르제 달걀 경매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크리스티는 이 작품을 황실 달걀 가운데서도 “가장 호화로운 걸작 중 하나”로 평가했다. 달걀 속 깜짝 작품인 바람꽃 (목각 아네모네 Wood Anemone) 꽃다발이 보여주듯이 단순한 사치품을 넘어, 새로움과 부활을 상징하면서도 희망이 얼마나 쉽게 깨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애잔하면서도 아름다운 역사적 보물이었다.

파베르제 겨울 달걀. © Christie’s
나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파베르제 박물관에 소장된 대관식 달걀(Coronation Egg)을 가장 좋아한다. 이 달걀은 1897년 니콜라이 2세가 그의 아내 알렉산드라 황후에게 대관식을 기념하여 선물한 작품으로, 금·에나멜·보석으로 정교하게 장식되어 있다. 달걀을 열면 황실 대관식 마차의 미니어처가 모습을 드러내며, 1896년 니콜라이 2세 대관식의 장엄함을 그대로 재현한다. 특히 이 미니어처 마차는 1762년 예카테리나 2세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모스크바까지 이동할 때 사용한 실제 마차를 본떠 제작된 것으로, 작은 바퀴와 창문, 금박 장식까지 세밀하게 재현되어 있다.
이 작품을 볼 때마다 나는 여제가 십여 일가량 마차를 타고 수도인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대관식이 열리는 모스크바로 입성하는 장면을 상상하게 된다. 이 작품은 러시아 황실의 역사와 권위를 담은 축소판 예술품이며, 만약 경매에 나온다면 2025년에 황실 겨울 달걀이 기록한 가격을 훨씬 앞지를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장담한다.

대관식 달걀(Coronation Egg, 1897). 니콜라이 2세가 대관식을 기념해 아내 알렉산드라 황후에게 선물한 작품.
50개의 황실 달걀 중에서도 가장 가치 있는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유희권
황실 부활절 달걀은 총 50개가 제작되었으며, 그중 43개가 현재까지 남아 있다. 소실된 황실 달걀은 지금도 어느 벼룩시장에 나와 행운의 주인을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하나를 완성하는 데에는 거의 1년에 가까운 시간이 필요할 만큼 정교했으며, 제작비 또한 수만 루블에 이를 정도로 매우 높았다. 당시 러시아에서 숙련 공장 노동자의 월급이 대략 수십 루블 수준이었던 점을 생각하면, 이 작은 보석 공예품이 얼마나 큰 사치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바로 이런 사회적 격차와 긴장은 훗날 러시아 혁명으로 이어진 격변의 시대를 이해하는 데에도 중요한 배경이 된다. 마치 먼 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러시아 황실의 파베르제 달걀은 오늘날 우리에게 로마노프 왕조의 흥망성쇠를 생생히 보여주며, 화려한 보석 장식 뒤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마지막 황제의 애잔한 흔적이 남겨진 듯하다.
글 | 유희권

뉴욕에서 살며 수많은 책과 희귀 자료를 연구하고, 그 자료와 연관된 도시들을 찾아다니며 먼저 간 이들의 ‘한탄’을 듣고 Dum Spiro Spero(“숨 쉬는 동안 나는 희망한다”)의 삶을 좇고자 애쓰는 소박한 연구자. 두 권의 학술서와 20여 편의 논문을 집필했으며, 특히 2008년 공동 저술한 『Visual Resources from Russia and Eastern Europe in The New York Public Library: A Checklist』는 2009년 ARLIS(미국예술도서관학회)에서 Worldwide Books Award를 수상했다.
뉴욕 공립도서관의 사서가 들려주는 역사와 문화 이야기 #6
파베르제 박물관(Fabergé Museum), 독일 바덴바덴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또 하나의 파베르제 박물관이 독일의 바덴바덴이라는 도시에 있다. 이 도시는 온천이 있는 휴양 도시로 오래전부터 러시아인들이 즐겨 찾던 곳이다. 이곳에 알렉산드르 이바노프(Alexander Ivanov, 1962-)라는 러시아인 아트 컬렉터가 2009년 파베르제 박물관을 개관했다. 대략 1,500점이 넘는 파베르제 관련 작품이 박물관에 진열되어 있다.
그의 소장품 중에는 로스차일드 달걀(Rothschild Egg, 1902)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 달걀은 러시아 황실을 위해 제작된 것이 아니지만, 중요한 파베르제 달걀 중 몇 안 되는 작품으로, 처음 구입된 이후 줄곧 로스차일드 가문이 소장해 왔다. 그러다가 2007년 크리스티(Christie’s) 경매에서 약 890만 파운드에 이바노프에게 낙찰되었고, 이후 2015년 이바노프가 러시아 연방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에게 선물로 전달했다. 푸틴은 이를 즉시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 국립박물관(Hermitage State Museum)에 기증했으며, 마침 그 해는 예카테리나 2세가 에르미타주 박물관을 설립한 지 250주년이 되는 해였다. 현재 이 달걀은 박물관에서 가장 사랑받는 전시품 중 하나로, 수많은 방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파베르제 박물관(Fabergé Museum), 독일 바덴바덴. ©유희권
로스차일드 달걀(Rothschild Egg, 1902). © Hermitage State Museum
자작나무 달걀 (The Birch Egg, 1917)
독일 바덴바덴 박물관에는 1917년 제작된 황실 파베르제 달걀 두 점이 전시되어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달걀들이 앞서 언급한 황실 달걀 50점에는 포함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배달’ 사고로 황실 달걀 목록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인데, 그 배경이 매우 흥미롭다. 자작나무 달걀은 1917년 니콜라이 2세가 어머니인 황후 마리아 표도로브나에게 부활절 선물로 주기 위해 완성되었다. 카렐리안 자작나무와 금으로 만들어진 독특한 디자인의 작품으로 원래 기계식 미니어처 상아 코끼리(다이아몬드 장식)가 들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재는 분실된 상태이다.
이 달걀이 완성될 무렵 러시아에서 2월 혁명이 일어났고, 니콜라이 2세는 3월 15일 황제 자리에서 퇴위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 파베르제는 가택연금 중이던 니콜라이 2세에게 달걀에 대한 청구서를 보냈다. 흥미로운 것은, 청구서에 니콜라이 2세의 황제 칭호 “Государь Император И Самодержец Всероссийский(모든 러시아의 주권 황제이자 전제군주)” 대신, “로마노프 씨, 니콜라이 알렉산드로비치”라는 일반 이름으로 적혀 있었다는 점이다. 황제였다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니콜라이 2세는 12,500 루블을 지불했고, 달걀은 황제가 직접 받을 수 없는 상황이어서 동생 미하일 알렉산드로비치 대공에게 전달되어 황후에게 보내질 예정이었다. 그러나 대공은 달걀이 도착하기 전에 어디론가 도망쳐 버렸다. 결국 이 달걀은 미하일 공작의 궁전에 남아 있다가, 1917년 10월 혁명 이후 약탈당했다. 그 후 행방이 불분명해졌다가, 현재는 이바노프의 파베르제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이렇게 배달이 황후에게 되지 못한 탓에, 이 달걀은 황실 달걀 목록에 포함되지 못하는 불운한 작품이 되고 말았다.
원본 파베르제 청구서. 하루아침에 일반 시민이 되어버린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에게 . Wikipedia Commons
자작나무 달걀 (The Birch Egg, 1917). © (Fabergé Museum), Baden-Baden.
그럼 황실 파베르제 달걀은 누가 소장하고 있나?
모스크바 크레믈린 궁 안에 자리한 박물관에는 임페리얼 파베르제 달걀 10점이 소장되어 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보유량이며, 포브스가 소장했던 9점의 임페리얼 달걀을 인수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파베르제 박물관이 두 번째다. 세 번째는 미국 버지니아주 리치먼드에 위치한 버지니아 미술관(Virginia Museum of Fine Arts)으로, 이곳에 5점이 소장되어 있다. 그 다음 영국 왕실이 3점을 소장하고 있고, 이는 찰스 3세의 증조부모인 조지 5세와 메리 왕비가 당대에 직접 구입한 작품들이다. 이러한 왕실 간의 수집은 유럽 왕가의 긴밀한 혈연관계와도 무관하지 않다. 예를 들어,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의 황후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는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재임 1837-1901)의 외손녀로, 러시아와 영국 왕실은 당시 가족 관계로도 깊이 연결되어 있었다.
1917년 이후, 볼셰비키 혁명으로 인해 황실 보물이 매각되기 시작하면서 파베르제의 예술품은 미국 수집가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대표적인 수집가로는 릴리언 토마스 프랫(Lillian Thomas Pratt), 마조리 메리웨더 포스트(Marjorie Merriweather Pos), 말콤 포브스(Malcolm Forbes)등이 있다.
포브스와 더불어 중요한 수집가인 마조리 포스트는 주목할 만한 러시아 황실 미술품 컬렉션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녀의 남편 조셉 데이비스(Joseph E. Davies)가 1936년 미국 대사로 소련에 부임한 후, 모스크바에 머무르며 소련 정부가 매각하던 로마노프 가문의 보물을 수집했다. 그중 특히 주목할 만한 작품은 니콜라이 2세가 1895년 어머니 마리아 페오도로브나에게 선물한 ‘12개의 모노그램 달걀(Twelve Monogram Egg)’이다. 이 달걀은 황실 부부의 모노그램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제국 가족의 전통과 궁정 의례, 그리고 왕조의 연속성을 상징하는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이와 같은 해석은 게자 폰 합스부르크 등의 파베르제 연구자와 힐우드박물관(Hillwood Estate, Museum & Gardens)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니콜라이 2세가 1895년 어머니 마리아 페오도로브나에게 선물한 ‘12개의 모노그램 달걀(Twelve Monogram Egg)’이다. ©HillwoodEstate,Museum&Gardens
마조리 포스트는 이러한 작품들을 적극적으로 구입하여 보존했으며, 그 덕분에 여러 파베르제 걸작들이 오늘날까지 온전히 전해질 수 있었다. 그녀가 수집한 파베르제 달걀과 러시아 황실 예술품들은 현재 워싱턴 D.C.의 힐우드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러시아 제국 장식 예술을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공공 컬렉션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힐우드는 단순한 박물관이 아니라, 아름다운 정원이 어우러진 특별한 문화 공간이다. 특히 봄이 되면 벚꽃과 다양한 꽃들이 만개한다. 봄날 워싱턴을 방문하게 된다면 힐우드의 정원을 천천히 거닐며 파베르제 작품과 러시아 황실 문화를 함께 감상해 보시길 추천한다. 내가 아직 그 감동을 잊지 못하듯, 누구라도 자연의 아름다움과 역사적 예술품이 어우러지는 잊지 못할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힐우드 박물관과 정원 전경. © Hillwood Estate, Museum & Gardens
사라진 달걀과 기적 같은 재발견 : 제3 임페리얼 에그의 이야기
50개의 임페리얼 파베르제 달걀 중에서 7개는 여전히 행방이 묘연하다. 이들 중 일부는 여전히 개인 소장품으로 존재할 가능성이 있으며, 종종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견되기도 하였다. 실제로 1887년에 제작된 제3 임페리얼 달걀 (Third Imperial Egg)은 2000년 초에 미국의 벼룩시장에서 우연히 발견된 적이 있다. 이 파베르제 달걀은 원래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3세가 1887년 부활절 선물로 황후에게 준 황실 달걀로, 내부에는 스위스 시계 브랜드 바쉐론 콘스탄틴(Vacheron-Constantin) 시계가 들어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소재를 알 수 없게 된 이 달걀은 20세기 중반 이후 행방불명으로 여겨졌는데 2000년대 초 미국 중서부의 벼룩시장에서 한 고철 수집상이 금 보석 장식품처럼 보이는 물건을 약 13,000달러(당시 가격)에 구매했다고 한다. 당시에 구매자는 그저 금속으로 팔아 이익을 내려고 했지만, 여러 번 되팔기 시도에도 사려는 사람이 없어 한동안 집 부엌 캐비닛에 보관하고 있었다고 한다.
2012년경, 구매자는 달걀 속 시계에 새겨진 “Vacheron-Constantin”이라는 문구를 구글로 검색해 기사와 비교해 보면서 비로소 이게 유명한 물건임을 깨닫고 전문가에게 감정을 의뢰했다. 이 달걀은 수십 년 동안 소재가 알려지지 않았던 잃어버린 제3 임페리얼 달걀이었으며, 거래 금액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약 3,300만 달러로 평가되었고, 현재는 익명의 개인 수집가가 소장하고 있다. 벼룩시장이나 골동품 시장에서 누군가가 수천만 달러 가치의 예술품을 재발견했다는 점에서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었던 사건이다.
1887년 제작된 세 번째 황실 달걀. Wikipedia Commons.
2025년 말, 또 한 번 역사에 길이 남을 희귀한 파베르제 작품 경매가 열렸다. 1913년 제작된 러시아 황실의 상징적 보석, ‘겨울 달걀(Winter Egg)’이 런던 크리스티(Christie’s) 경매에서 2,280만 파운드(약 3,020만 달러)에 낙찰되며, 파베르제 달걀 경매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크리스티는 이 작품을 황실 달걀 가운데서도 “가장 호화로운 걸작 중 하나”로 평가했다. 달걀 속 깜짝 작품인 바람꽃 (목각 아네모네 Wood Anemone) 꽃다발이 보여주듯이 단순한 사치품을 넘어, 새로움과 부활을 상징하면서도 희망이 얼마나 쉽게 깨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애잔하면서도 아름다운 역사적 보물이었다.
파베르제 겨울 달걀. © Christie’s
나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파베르제 박물관에 소장된 대관식 달걀(Coronation Egg)을 가장 좋아한다. 이 달걀은 1897년 니콜라이 2세가 그의 아내 알렉산드라 황후에게 대관식을 기념하여 선물한 작품으로, 금·에나멜·보석으로 정교하게 장식되어 있다. 달걀을 열면 황실 대관식 마차의 미니어처가 모습을 드러내며, 1896년 니콜라이 2세 대관식의 장엄함을 그대로 재현한다. 특히 이 미니어처 마차는 1762년 예카테리나 2세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모스크바까지 이동할 때 사용한 실제 마차를 본떠 제작된 것으로, 작은 바퀴와 창문, 금박 장식까지 세밀하게 재현되어 있다.
이 작품을 볼 때마다 나는 여제가 십여 일가량 마차를 타고 수도인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대관식이 열리는 모스크바로 입성하는 장면을 상상하게 된다. 이 작품은 러시아 황실의 역사와 권위를 담은 축소판 예술품이며, 만약 경매에 나온다면 2025년에 황실 겨울 달걀이 기록한 가격을 훨씬 앞지를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장담한다.
대관식 달걀(Coronation Egg, 1897). 니콜라이 2세가 대관식을 기념해 아내 알렉산드라 황후에게 선물한 작품.
50개의 황실 달걀 중에서도 가장 가치 있는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유희권
황실 부활절 달걀은 총 50개가 제작되었으며, 그중 43개가 현재까지 남아 있다. 소실된 황실 달걀은 지금도 어느 벼룩시장에 나와 행운의 주인을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하나를 완성하는 데에는 거의 1년에 가까운 시간이 필요할 만큼 정교했으며, 제작비 또한 수만 루블에 이를 정도로 매우 높았다. 당시 러시아에서 숙련 공장 노동자의 월급이 대략 수십 루블 수준이었던 점을 생각하면, 이 작은 보석 공예품이 얼마나 큰 사치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바로 이런 사회적 격차와 긴장은 훗날 러시아 혁명으로 이어진 격변의 시대를 이해하는 데에도 중요한 배경이 된다. 마치 먼 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러시아 황실의 파베르제 달걀은 오늘날 우리에게 로마노프 왕조의 흥망성쇠를 생생히 보여주며, 화려한 보석 장식 뒤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마지막 황제의 애잔한 흔적이 남겨진 듯하다.
글 | 유희권
뉴욕에서 살며 수많은 책과 희귀 자료를 연구하고, 그 자료와 연관된 도시들을 찾아다니며 먼저 간 이들의 ‘한탄’을 듣고 Dum Spiro Spero(“숨 쉬는 동안 나는 희망한다”)의 삶을 좇고자 애쓰는 소박한 연구자. 두 권의 학술서와 20여 편의 논문을 집필했으며, 특히 2008년 공동 저술한 『Visual Resources from Russia and Eastern Europe in The New York Public Library: A Checklist』는 2009년 ARLIS(미국예술도서관학회)에서 Worldwide Books Award를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