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공립도서관의 사서][조선사] 한미 외교의 시작, 호러스 뉴턴 알렌(Horace Newton Allen)

2026-04-23


뉴욕공립도서관 사서가 들려주는 역사와 문화 이야기 6 #1


호러스 뉴턴 알렌(Horace Newton Allen, 安連, 1858-1932)

몇 년 전 방영된 <미스터 선샤인>이라는 드라마를 기억하실 것이다. 주인공 유진 초이는 조선에서 태어났지만 미군 장교가 되어 서울 주재 미국 공사관에서 활동한다. 극 중에서 미국 공사관의 공사(Minister)는 그의 직속상관은 아니지만 조선에서의 유진의 활동을 배후에서 지원하며 드라마에서는 잠깐 등장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오늘 내가 소개하고자 하는 인물이 바로 그 공사, 19세기 말 조선에 발을 디딘 미국인이자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인 호러스 뉴턴 알렌(Horace Newton Allen, 安連, 1858-1932)이다. 알렌은 선교사였지만 당시 조선이 선교사의 입국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의사 신분으로 입국했고, 이후 외교관으로 활동하며 조선 근대사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알렌은 개항 초기인 1884년 9월부터 1905년 중반까지 약 20여 년 동안 조선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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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렌공사의 자료집에 있는 사진 중 1899년의 서울주재 미국공사관. 
뒤편 2층 건물은 덕수궁 중명전, 그곳에서 1905년 치욕의 을사늑약이 체결되었다. 뒤쪽 왼편의 탑이 주한러시아공사관이다. ©New York Public Library


그는 어떻게 조선에 오게 되었을까? 그리고 왜 개신교 선교사에서 외교관으로 변모하게 되었을까? 이제 뉴욕 공립도서관에 소장된 그의 일기와 보고서를 통해, 19세기 조선으로 짧은 여행을 떠나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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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친숙하게 알려진 알렌의 사진 ©Wikipedia Commons.


알렌은 오하이오 주 델라웨어의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 웨슬리언 대학을 졸업한 뒤 의사 면허를 취득했다. 1883년 그는 북장로회 해외선교부의 파견을 받아 중국으로 향했지만, 베이징과 난징, 상하이를 오가며 뚜렷한 기회를 찾지 못했다. 그러던 중 서울에서 서양 의사를 찾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마침내 1884년 9월 20일 제물포로 들어와 이틀 후 서울에 도착한다. 공식적으로 조선에 개신교 선교사가 입국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당시 초대 조선 주재 미국 공사였던 푸트(Lucius Harwood Foot)와 그의 아내는 알렌의 도착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고, 알렌은 외국인 사회에서 신뢰를 쌓으며 서울에서의 입지를 넓혀갔다. 당시 조선에는 서양 의사가 없었기 때문에 그는 자연스럽게 조선 주재 미국 공사관의 전속 의사로 활동하게 되었다.


알렌의 명성은 갑신정변(1884년 12월)을 계기로 단숨에 조선 전역에 퍼지게 된다. 정변 과정에서 중상을 입은 민영익(명성황후의 조카)이 묄렌도르프의 집으로 옮겨졌고, 알렌이 한밤중에 달려가 그의 치료를 맡았다. 얼굴과 목, 등, 팔꿈치 등 곳곳에 깊은 자상을 입고 출혈이 멈추지 않는 위급한 상황이었지만, 알렌은 서양식 의료 기술로 상처를 소독하고 봉합했다. 당시 상황이 그의 일기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중상자의 상태는 이미 출혈이 심하고 계속 피를 흘려 빈사 상태였다 (…) 오른쪽 귀 측두골 동맥에서 오른쪽 눈두덩까지 깊은 칼자국이 있었고 (…) 등 뒤에도 척추와 어깨뼈 사이를 가르는 깊은 상처가 나 있었다.”


알렌은 거의 매일 왕진을 갔고, 민영익은 이듬해 2월 마침내 회복할 수 있었다. 이 사건은 알렌의 헌신과 의료 실력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고, 그를 조선 내 외국인 사회에서 중요한 인물로 자리매김하게 했을 뿐 아니라 왕실, 고위 관료들과 연을 맺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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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렌의 일기. 갑신정변이 일어나고 민영익을 치료한 후 돌아와 그날 상황을 자세하게 기록하였다. ©유희권


이 사건을 계기로 알렌은 고종을 알현하는데, 이후 고종과 왕후가 그에게 진료를 의뢰하고, 1885년 3월 입궐하여 두 사람을 치료하였다. 당시 왕과 왕후는 유사 천연두 증상을 앓고 있었는데, 알렌은 이를 성공적으로 치료하며 왕의 신임을 얻었다. 그리고 곧 왕실과 왕족의 건강을 담당하는 시의로 자리 잡게 된다.


이러한 신임을 바탕으로 그는 왕실의 후원을 받아 1885년 4월 조선 최초의 서양식 병원인 광혜원(후에 제중원)을 설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는 조선인들에게 서양 의학을 전파하는 한편, 의료와 선교, 나아가 미국의 영향력 확대로까지 이어지는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다.


조선 사절단과 함께

1887년 조선은 미국에 상주 공사관을 설치하기 위한 공식 사절단을 파견하였다. 이는 조선 역사상 처음으로 워싱턴에 공사관을 설립하기 위한 외교 사절단이었다. 정식 공사로 박정양이 임명되었고, 참찬관으로 서광범, 서기관으로 이완용이 참여하였다. 여기에 통역과 외교 고문 역할을 맡은 인물이 바로 알렌이었다.


당시 알렌은 이미 다른 선교사들, 예를 들어 언더우드(H. Underwood)나 헤론 박사, 그리고 서울 주재 미국 공사와의 갈등을 겪으며 의료 선교사로서의 역할을 넘어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고 있었다. 그는 이러한 갈등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헤론 박사와 아주 놀랄 만하고도 짜증나는 의견 충돌이 일어났다. 내가 그에게 병원 일을 도울 필요가 없을 때에는 집에 머물러 있을 것, 선교본부가 촉구했듯 어학 공부를 할 것 등을 아주 친절한 말씨로 충고했을 때 언쟁이 발생한 것이다. 나 역시 그의 하인이 식사 전에 우리 물병에 있는 물을 다 마셔 버리고는 물을 채워 놓지 않는다고 불평하였다. 이러한 감정적 대립이 헤론의 가장 완고한 행동을 촉발시키고 말았다. 이로 인해 나는 드디어 선교부를 떠나겠다는 사임 의사를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헤론 부인은 이 기회를 놓칠세라, 내가 선교 사업을 맡을 적임자가 아니라고 비난하면서, 이를 선교부 사임의 구실로 이용, 돈벌이에 나서려 한다고 통박하였다.”


사절단은 한성에서 출발하여 제물포와 일본 요코하마를 거쳐 태평양을 횡단한 뒤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고, 이후 대륙횡단 철도를 이용해 워싱턴 D.C.까지 이동했다. 증기선과 대륙횡단 철도는 당시 조선 관리들에게 거의 처음 접하는 근대 교통수단이었으며, 이 여정은 조선 엘리트들이 서양 문명을 직접 경험한 초기 외교 여행 가운데 하나로 기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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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D.C. 왼쪽부터 이채연, 이채연의 부인, 알렌과 그의 딸, 이완용, 그리고 이완용의 부인. ©연합뉴스


워싱턴에 도착한 사절단의 주요 임무는 세 가지였다. 첫째, 조선의 공식 외교 공관인 조선 공사관(Korean Legation)을 설치하는 것이었고, 둘째는 당시 미국 대통령 그로버 클리블랜드(Grover Cleveland)에게 국서를 전달하여 양국 간의 공식 외교 관계를 확립하는 것이었다. 셋째는 조선이 독립된 국가로서 외교 활동을 수행하고 있음을 국제 사회에 알리는 일이었다.


이 과정에서 알렌은 사절단을 지원하며 미국의 여러 인사들과도 교류하게 되었는데, 예를 들어 한국에서 금 제련소 설립을 추진하던 W. T. Pierce와 같은 사업가들도 만났다. 이러한 활동 속에서 그는 단순한 통역의 역할을 넘어 외교 절차를 조율하고 협상을 지원하는 등, 사실상 외교를 설계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특히 그는 미국 내에서 당시 조선에 대한 청나라의 영향력을 문제 삼고, 조선 사절단이 독립국의 위상을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함으로써 중요한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된다.


워싱턴에서의 외교 활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알렌은 다시 선교 활동을 이어갔지만, 이미 다른 선교사들과의 갈등을 겪은 상태였기에 관계가 원만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미국 정부는 오랜 기간 조선에 체류하며 현지 사정에 밝고, 무엇보다 조선 왕실로부터 신뢰를 받던 인물인 알렌에게 주한 미국 공사관 서기관직을 제안하였다. 이에 알렌은 선교사로서의 역할을 내려놓고 본격적으로 외교관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그는 1897년에는 총영사로, 1901년에는 특명전권공사(Envoy Extraordinary and Minister Plenipotentiary)로 승진하였고, 주한 미국 공사관에서 외교 업무를 수행하며 운산 금광 채굴권 확보, 철도 및 전기 산업 투자 유치 등 다양한 활동으로 미국의 국익을 확대하는 데 기여하였다. 


알렌의 조선에서의 활동과 기여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1893년 미국 시카고에서 열렸던 만국박람회이다. 이 박람회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유럽에 알린 지 4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열린 세계적인 행사였다. 당시 만국박람회는 단순한 전시를 넘어, 각국이 자국의 문명과 문화를 세계에 소개하는 중요한 국제 무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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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에서 전시된 한국관. © the Bancroft Co.


이 역사적인 무대에 조선이 처음으로 참여하게 된다. 알렌은 조선 정부와 긴밀히 협력하여 대표단을 조직하고, 전통 음악을 선보일 국악인들까지 이끌고 시카고로 향했다. 그는 박람회장에 기와지붕 형태의 전통 건축을 재현하고, 다양한 공예품과 특산품을 전시하며 조선의 문화를 소개했다. 특히 국악 공연은 서구 관람객들에게 낯설면서도 강한 인상을 남겼다. 


한편, 이 박람회에는 러시아 제국도 참가했는데, 현장 모습을 사진으로 기록해 사진첩을 제작했다. 이 앨범은 당시 러시아 미술아카데미 회장이었던 대공 블라디미르 알렉산드로비치에게 헌정되었고, 이후 뉴욕공립도서관이 이를 구입하여 오늘날까지 소장하고 있다. 러시아는 조선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전시 규모로 제국의 위용을 과시했고, 특히 별도로 마련한 전신, 우체국 부스에서 자국의 신기술뿐 아니라 시베리아 개발의 무한한 가능성을 함께 보여주었다. 알렌과 조선 대표단은 러시아 제국의 발전에 큰 인상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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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알렉산드로비치 (Vladimir Aleksandrovich, 1847–1909)에 헌정된 엘범의 장정(바인딩)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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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전신 및 우체국 부스. 1893. © New York Public Library


약 47여 개국이 참가한 이 박람회에서 조선은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처음으로 국제사회에 문화적 정체성을 직접 알리는 중요한 계기였다. 알렌의 일기를 처음으로 한글로 번역하여 대중에게 알린 역사학자 김원모의 연구에 따르면, 조선의 참여는 알렌의 적극적인 주선과 외교적 노력 덕분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운산금광 채굴권 (1895)

조선 주재 미국 공사관에서 외교 활동을 수행하던 알렌은 평안북도 운산 금광 채굴권 확보를 포함하여 미국의 경제적 이익을 확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사실 알렌은 선교사로 조선에 들어온 초기부터 광산의 위치와 매장 자원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왔는데, 그의 기록에 ‘금광’, ‘광산’이라는 단어가 300건 이상 등장할 정도다. 그의 일기에 나오는 제물포에서 서울로 이동하던 중 들렀던 어느 주막에서의 일화도 그런 정황을 뒷받침한다. 그는 주막에서 금광을 탐사하러 다니던 나반이라는 인물을 만나게 되고, 그에게서 조선에 금이 풍부하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알렌은 입국 초기부터 광산 자원에 주목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후 그는 광산 조사 보고서를 바탕으로 평북 운산 지역의 금광을 확인하고, 해당 광산의 채굴권을 미국 기업에 이전하도록 조정에 요청하였다. 그 결과 1895년 운산 금광 채굴권이 미국 사업가 J. R. Morse에게 넘어갔으며, 이를 통해 미국 측에 상당한 경제적 이익이 발생한다. 이 과정에서 명성황후의 역할도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였다. 알렌이 약 10년간 조선 정부에 기여한 데 대한 보답의 성격으로, 왕후가 운산 금광 채굴권을 넘기도록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명성황후가 일본 세력에 의해 시해되자(을미사변, 1895), 알렌은 그 사실을 국제 사회에 알리고 고종의 신변 보호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등 외교적 대응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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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 촬영된 파노라마 사진. 
호러스 뉴턴 알렌이 미국으로 돌아간 뒤 소장한 사진으로 보이는데 그만큼 알렌이 금광 지역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유희권


천하도 (CheonHaDo)

알렌 컬렉션에는 뜬금없이 천하도라는 지도가 있다. 천하도는 원형 안에 세계를 표현한 독특한 형태의 세계지도이다. 조선에 서양식 세계 지도가 유입되기 시작한 이후, 일부 학자들은 이러한 원형 세계지도 형식이 서양 지도의 영향을 받은 결과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1602년 마테오 리치(Matteo Ricci)가 제작한 <곤여만국전도>가 그 기원으로 자주 언급된다.


천하도의 구조를 보면, 중앙의 육지는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을 하나로 합친 형태로 이해할 수 있으며, 외곽을 둘러싼 ‘환(環)’ 형태의 대륙은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를 나타낸다. 이러한 독특한 구성은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발견되지 않고, 한국에서만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천하도는 19세기 후반까지도 조선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천하도는 왜 알렌 컬렉션에 포함되어 있을까? 알렌은 조선의 지리와 자원, 특히 금광과 같은 산업적 위치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조선 지도를 수집했을 가능성이 있다. 혹은 당시 그의 활동을 알던 누군가가 연구나 개인적인 용도로 지도를 제공했을 수도 있다. 정확한 경로는 알 수 없지만 그의 수집 자료 중 천하도가 있다는 것은 단순히 지도를 소장했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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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도. 책을 펼치면 겹쳐진 천하도가 먼저 나오고 연이어 조선 8도가 그려진 지도가 펼쳐진다. © 유희권


  • 호러스 알렌 뉴턴의 이야기는 2편으로 이어집니다.




글 | 유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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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살며 수많은 책과 희귀 자료를 연구하고, 그 자료와 연관된 도시들을 찾아다니며 먼저 간 이들의 ‘한탄’을 듣고 Dum Spiro Spero(“숨 쉬는 동안 나는 희망한다”)의 삶을 좇고자 애쓰는 소박한 연구자. 두 권의 학술서와 20여 편의 논문을 집필했으며, 특히 2008년 공동 저술한 『Visual Resources from Russia and Eastern Europe in The New York Public Library: A Checklist』는 2009년 ARLIS(미국예술도서관학회)에서 Worldwide Books Award를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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