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공립도서관 사서가 들려주는 역사와 문화 이야기 7 #2
뉴욕공립도서관과 톨스토이
막내딸 알렉산드라가 중심이 되어 설립한 톨스토이 재단은 러시아를 떠나온 수많은 망명객들의 버팀목이자, 거장의 유산을 지키는 핵심 기지였다. 러시아로부터 이민 온 상당수의 러시아 귀족들도 이 재단과 깊은 인연을 맺었는데, 그중에서도 러시아 황실 출신의 베라 콘스탄티노브나 공주(Princess Vera Konstantinova, 1906~2001)의 역할은 절대적이었다.

베라 콘스탄티노브나 공주 (Princess Vera Konstantinova,1906-2001).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1868-1918)의 삼촌인
콘스탄틴 콘스탄티노비치 대공(Grand Duke Konstantin Konstantinovch, “KR” 1858-1915)의 막내딸. ©The New York Public Library
1951년 뉴욕에 도착하자마자 재단을 위해 온 힘을 쏟기 시작한 베라 공주는 러시아 정교회와의 긴밀한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재단의 기반을 더욱 공고히 다졌다. 그녀는 톨스토이의 유산을 전파하는 데 평생을 바쳤으며, 말년에는 자신이 그토록 애정을 쏟았던 재단 요양원(Nursing Home)에 묻힐 만큼 재단에 없어서는 안 될 상징적인 인물이 되었다. 2005년, 필자가 부서장과 같이 공주가 살았던 멘하탄의 아파트에 직접 방문하여 그녀가 생전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개인 소장 자료들을 접한 뒤 뉴욕공립도서관이 사들이면서, 베라 공주가 남긴 유산은 마침내 개인의 기록을 넘어 역사적 사료로 세상에 드러나게 된다.

도서관 열람실 테이블 위에 전시된 베라 공주가 남긴 유산, 2005 © 유희권
앞서 베라 공주의 일화처럼, 소련 체제의 탄압과 망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러시아 학자들과 재단 관계자들이 목숨을 걸고 품고 온 귀중한 문서들은 맨해튼의 심장부에 위치한 뉴욕공립도서관의 방대한 아카이브와 만나 비로소 찬란한 문화유산으로 완성될 수 있었다.
뉴욕 공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수많은 러시아 관련된 자료들 중에 톨스토이와 그의 작품에 관한 것은 꽤 흥미롭다. 1895년 설립 후 도서관은 지속적으로 러시아와 소비에트 정부로부터 자료들을 수집해 왔는데, 그중에는 『전쟁과 평화』의 초판과 『부활』도 있다. 그 외에도 톨스토이의 작품과 관련된 사진첩, 희귀한 그림책들, 그리고 편지 및 일기들이 톨스토이를 연구하는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1868년 초판으로 발행된 『전쟁과 평화』. 프랑스어로 쓰여진 첫 장은 19세기 러시아 사회를 보여준다. © 유희권
또한 뉴욕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러시아와 동유럽에서 이민 온 사람들의 도시라 할 수 있다. 이 시기에 대략 300만 명 정도가 이민을 왔는데, 상당수가 자연스럽게 뉴욕공립도서관을 이용했고, 그들 중에는 자신들이 가져온 톨스토이과 관련된 자료들을 도서관에 기증하기도 했다.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그들의 자손들이 여전히 톨스토이의 작품들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은 의심할 필요가 없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중 나폴레옹 황제가 불타는 모스크바를 바라보는 장면.
수채 채색 프론티스피스(권두 삽화) © The New York Public Library

1812년 9월 7일, 나폴레옹의 진격하는 군대가 모스크바 서쪽 70마일에 위치한 보로디노에서 미하일 이바노비치 쿠투조프 원수가 이끄는 러시아군과 교전했다. © 유희권
톨스토이와 미국인 조지 케넌(George Kennan, 1845–1924)
뉴욕공립도서관이 품은 슬라브 컬렉션의 진가는 톨스토이의 문학적 성취와 그의 마지막 대작 『부활』의 탄생 배경을 추적할 때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여기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조지 케넌(George Kennan, 1845~1924)이다.

조지 케넌 © The New York Public Library
조지 케넌은 오하이오주 노워크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가족을 도우며 전신기사로 일했다. 1865년, 스무 살의 나이에 그는 알래스카에서 태평양을 건너 시베리아까지 전신 케이블을 설치할 가능성을 조사하는 웨스턴 유니언 탐험대에 선발되었다. 러시아어에 대한 사전 지식이 전혀 없었던 케넌과 그의 동료들은 1년간 극한의 추위와 낯선 문화와 사람들을 직접 경험했지만 회사의 계획이 무산되어 더 이상 일할 수 없었다. 하지만 케넌은 이 기회를 이용해 러시아 대륙 전체를 가로질러 유럽으로 여행한 뒤, 1867년에 귀국했다. 이러한 여행을 바탕으로 한 그의 첫 저서 『Tent Life in Siberia』는 1870년 출판된 후 큰 찬사를 받았다.
또한 1870년에 케넌은 러시아 제국의 또 다른 변방인 코카서스를 1년 동안 여행했다. 이 시기에 그는 여러 출판물에 글을 기고하기 시작했고, 이로써 언론인으로서의 경력을 시작하며 러시아 전문가이자 탐험가로서의 명성을 굳혔다.

조지 케넌의 사진첩에는 수백명의 죄수와 간수, 감옥 등이 담겨있다. © The New York Public Library
1885년, 미국의 한 언론은 그에게 다시 시베리아로 가 그곳의 감옥과 유형 제도에 관한 연재 기사 작성을 의뢰했다. 케넌은 시베리아 전역을 돌아다니며 자료와 증언을 수집했고, 러시아 감옥을 방문하고 “혁명의 할머니”로 불린 예카테리나 브레시코프스카야 등을 포함한 많은 유형수들을 만났다. 케넌은 1887년부터 1891년까지 Century 잡지에 연재한 기사에서, 형벌 제도의 학대와 혹독한 광산 노동, 총살과 교수형 등 유형수들이 겪은 폭력을 생생하게 기록했다. 이를 바탕으로 펴낸 『Siberia and the Exile System』(1891)은 당시 미국 독자들에게 러시아의 현실을 충격적으로 알렸고, 그를 러시아 전문가이자 신뢰받는 저널리스트로 각인시켰다. 또한 기록에 따르면 그는 1889년부터 1900년 사이 500회가 넘는 러시아 관련 강연을 진행했으며, 때로는 유형수의 누더기 옷과 쇠사슬을 착용한 채 무대에 등장하기도 했다.

George Kennan의 시베리아 유형수 복장.
각 의복은 실제로 유형 생활을 했던 유형수들이 자신이 입었던 옷을 한 점씩 건네준 것이다. © Library of Congress
이 시기 케넌은 운명처럼 러시아 문학 거장 레프 톨스토이를 만나게 된다. 1886년경, 케넌은 톨스토이의 저택 야스나야 폴랴나를 방문했고, 두 사람은 긴 시간 동안 인간과 사회, 정의와 사랑에 대해 이야기했다 한다. 케넌의 시베리아 유형제도 조사와 그의 경험은 톨스토이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고, 이는 케넌의 기록이 톨스토이 소설 『부활』의 시베리아 장면 묘사에 실감나게 영향을 주었음을 짐작할수 있다.

1887년 조지 케넌이 톨스토이와의 인터뷰를 한 기사를 The Century에 실었다. © 유희권
그는 세상을 떠나기 몇 해 전인 1920년, 시베리아 정치범들과 관련된 사진과 편지, 기록물, 그리고 자신이 평생 수집한 다양한 자료들을 뉴욕공립도서관에 기증했다. 이 자료들은 오늘날에도 연구자들에게 귀중한 사료로 활용되며, 그의 업적과 깊은 통찰을 생생히 전해주고 있다. 전문 교육도 받지 못했고 러시아어조차 하지 못했던 한 평범한 젊은이가 위험을 무릅쓰고 떠난 여행은, 오늘날 우리에게 당시 러시아의 시대상을 놀라울 만큼 생생하게 들려준다.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한 사람의 열정과 진심이 어떻게 학문과 사회에 의미 있는 영향을 남길 수 있는지, 그리고 개인의 경험이 문학과 역사 속에서 얼마나 깊은 울림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시간이 흐른 뒤, 조지 케넌이 남긴 지적 유산의 궤적을 따라 또 한 명의 '케넌'이 뉴욕공립도서관을 찾게 된다. 그의 친척이자 20세기 냉전기 미국 외교 정책의 거두였던 조지 프로스트 케넌(George F. Kennan, 1904–2005)이다. 1952년 소련 주재 미국 대사를 지내고 후일 유고슬라비아 대사로도 활약한 그는, 단순한 외교관을 넘어 시대를 꿰뚫어 본 탁월한 역사학자였다.
그는 가문의 선구자가 남긴 러시아 연구의 맥을 잇고자 1974년 '케넌 연구소(Kennan Institute)'를 설립했다. 이 연구소의 명칭에는 19세기 말 시베리아의 실상을 온몸으로 기록한 탐험가 조지 케넌과, 20세기 국제 정치의 중심에서 소련을 분석했던 외교관 조지 프로스트 케넌, 두 지성의 이름이 각인되어 있다. 이후 독립적 비영리 기관으로 전환된 워싱턴 D.C.의 케넌 연구소는 러시아와 동유럽 연구를 이끄는 세계 최고 권위의 싱크탱크로 그 위상을 공고히 하고 있다.

1990년대에 뉴욕공립도서관을 방문한 대사 케넌에게 조지 케넌이 기부한 사진 앨범을 보여주고 있는 슬라빅 부서 에드워드 카시넥 (Edward Kasinec) 부서장. © 유희권
뉴욕에서 살아 숨쉬는 톨스토이의 유산
『부활』의 마지막에서 주인공 드미트리 이바노비치 네흘류도프는 신약 성경을 펼친다. 그는 특히 예수님이 말씀하신 산상수훈(마태복음 5–7장)을 읽으며 큰 감동을 받고 깊은 깨달음을 얻는다. 네흘류도프가 깨닫는 예수의 가르침은 단순하지만 강렬하다. 악에 폭력으로 맞서지 말 것, 다른 사람을 용서할 것, 심지어 원수까지 사랑할 것. 소설의 결말은 그가 모든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고, 예수의 가르침대로 살겠다는 결심을 하면서 끝난다. 이는 톨스토이가 독자에게 전하고자 한, ‘사랑을 삶의 중심으로 삼는 삶의 방향’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소설 속 네흘류도프의 위대한 결심은 서가 위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 정신을 현실에서 고스란히 이어받은 것이 바로 뉴욕의 톨스토이 재단이었다. 톨스토이 재단은 미국에서 수많은 난민들을 지속적으로 도우며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해주었다. 소련 정부가 그들의 삶과 희망을 짓밟으려 했던 시대에도, 재단은 수만 명의 난민들이 다시금 ‘봄’을 찾고 새로운 삶으로 소생할 수 있도록 손을 내밀었다.
언젠가 한 신문사 기자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마지막에 기자가 이렇게 물었다.
“톨스토이는 ‘사랑만이 인류를 구원한다’고 하고, 도스토옙스키는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한다’고 하잖아요. 사서님은 두 작가 중 누구에게 더 끌리시나요?”
나는 망설임 없이 톨스토이라고 답했다. 긴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이제 독자 여러분께서도 내 톨스토이에 대한 애정을 충분히 이해하시리라 믿는다. 톨스토이는 단순한 작가를 넘어, 사랑과 인간성을 깊이 탐구하며 우리에게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존재다.
러시아의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피어난 거장의 문장들은 뉴욕공립도서관의 슬라브 서가 위에서, 그리고 절망의 문턱에서 재단의 손을 잡았던 수많은 이들의 삶 속에서 오늘날까지 가장 뜨거운 숨결로 살아 숨 쉬고 있다.
글 | 유희권

뉴욕에서 살며 수많은 책과 희귀 자료를 연구하고, 그 자료와 연관된 도시들을 찾아다니며 먼저 간 이들의 ‘한탄’을 듣고 Dum Spiro Spero(“숨 쉬는 동안 나는 희망한다”)의 삶을 좇고자 애쓰는 소박한 연구자. 두 권의 학술서와 20여 편의 논문을 집필했으며, 특히 2008년 공동 저술한 『Visual Resources from Russia and Eastern Europe in The New York Public Library: A Checklist』는 2009년 ARLIS(미국예술도서관학회)에서 Worldwide Books Award를 수상했다.
뉴욕공립도서관 사서가 들려주는 역사와 문화 이야기 7 #2
뉴욕공립도서관과 톨스토이
막내딸 알렉산드라가 중심이 되어 설립한 톨스토이 재단은 러시아를 떠나온 수많은 망명객들의 버팀목이자, 거장의 유산을 지키는 핵심 기지였다. 러시아로부터 이민 온 상당수의 러시아 귀족들도 이 재단과 깊은 인연을 맺었는데, 그중에서도 러시아 황실 출신의 베라 콘스탄티노브나 공주(Princess Vera Konstantinova, 1906~2001)의 역할은 절대적이었다.
베라 콘스탄티노브나 공주 (Princess Vera Konstantinova,1906-2001).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1868-1918)의 삼촌인
콘스탄틴 콘스탄티노비치 대공(Grand Duke Konstantin Konstantinovch, “KR” 1858-1915)의 막내딸. ©The New York Public Library
1951년 뉴욕에 도착하자마자 재단을 위해 온 힘을 쏟기 시작한 베라 공주는 러시아 정교회와의 긴밀한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재단의 기반을 더욱 공고히 다졌다. 그녀는 톨스토이의 유산을 전파하는 데 평생을 바쳤으며, 말년에는 자신이 그토록 애정을 쏟았던 재단 요양원(Nursing Home)에 묻힐 만큼 재단에 없어서는 안 될 상징적인 인물이 되었다. 2005년, 필자가 부서장과 같이 공주가 살았던 멘하탄의 아파트에 직접 방문하여 그녀가 생전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개인 소장 자료들을 접한 뒤 뉴욕공립도서관이 사들이면서, 베라 공주가 남긴 유산은 마침내 개인의 기록을 넘어 역사적 사료로 세상에 드러나게 된다.
도서관 열람실 테이블 위에 전시된 베라 공주가 남긴 유산, 2005 © 유희권
앞서 베라 공주의 일화처럼, 소련 체제의 탄압과 망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러시아 학자들과 재단 관계자들이 목숨을 걸고 품고 온 귀중한 문서들은 맨해튼의 심장부에 위치한 뉴욕공립도서관의 방대한 아카이브와 만나 비로소 찬란한 문화유산으로 완성될 수 있었다.
뉴욕 공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수많은 러시아 관련된 자료들 중에 톨스토이와 그의 작품에 관한 것은 꽤 흥미롭다. 1895년 설립 후 도서관은 지속적으로 러시아와 소비에트 정부로부터 자료들을 수집해 왔는데, 그중에는 『전쟁과 평화』의 초판과 『부활』도 있다. 그 외에도 톨스토이의 작품과 관련된 사진첩, 희귀한 그림책들, 그리고 편지 및 일기들이 톨스토이를 연구하는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1868년 초판으로 발행된 『전쟁과 평화』. 프랑스어로 쓰여진 첫 장은 19세기 러시아 사회를 보여준다. © 유희권
또한 뉴욕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러시아와 동유럽에서 이민 온 사람들의 도시라 할 수 있다. 이 시기에 대략 300만 명 정도가 이민을 왔는데, 상당수가 자연스럽게 뉴욕공립도서관을 이용했고, 그들 중에는 자신들이 가져온 톨스토이과 관련된 자료들을 도서관에 기증하기도 했다.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그들의 자손들이 여전히 톨스토이의 작품들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은 의심할 필요가 없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중 나폴레옹 황제가 불타는 모스크바를 바라보는 장면.
수채 채색 프론티스피스(권두 삽화) © The New York Public Library
1812년 9월 7일, 나폴레옹의 진격하는 군대가 모스크바 서쪽 70마일에 위치한 보로디노에서 미하일 이바노비치 쿠투조프 원수가 이끄는 러시아군과 교전했다. © 유희권
톨스토이와 미국인 조지 케넌(George Kennan, 1845–1924)
뉴욕공립도서관이 품은 슬라브 컬렉션의 진가는 톨스토이의 문학적 성취와 그의 마지막 대작 『부활』의 탄생 배경을 추적할 때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여기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조지 케넌(George Kennan, 1845~1924)이다.
조지 케넌 © The New York Public Library
조지 케넌은 오하이오주 노워크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가족을 도우며 전신기사로 일했다. 1865년, 스무 살의 나이에 그는 알래스카에서 태평양을 건너 시베리아까지 전신 케이블을 설치할 가능성을 조사하는 웨스턴 유니언 탐험대에 선발되었다. 러시아어에 대한 사전 지식이 전혀 없었던 케넌과 그의 동료들은 1년간 극한의 추위와 낯선 문화와 사람들을 직접 경험했지만 회사의 계획이 무산되어 더 이상 일할 수 없었다. 하지만 케넌은 이 기회를 이용해 러시아 대륙 전체를 가로질러 유럽으로 여행한 뒤, 1867년에 귀국했다. 이러한 여행을 바탕으로 한 그의 첫 저서 『Tent Life in Siberia』는 1870년 출판된 후 큰 찬사를 받았다.
또한 1870년에 케넌은 러시아 제국의 또 다른 변방인 코카서스를 1년 동안 여행했다. 이 시기에 그는 여러 출판물에 글을 기고하기 시작했고, 이로써 언론인으로서의 경력을 시작하며 러시아 전문가이자 탐험가로서의 명성을 굳혔다.
조지 케넌의 사진첩에는 수백명의 죄수와 간수, 감옥 등이 담겨있다. © The New York Public Library
1885년, 미국의 한 언론은 그에게 다시 시베리아로 가 그곳의 감옥과 유형 제도에 관한 연재 기사 작성을 의뢰했다. 케넌은 시베리아 전역을 돌아다니며 자료와 증언을 수집했고, 러시아 감옥을 방문하고 “혁명의 할머니”로 불린 예카테리나 브레시코프스카야 등을 포함한 많은 유형수들을 만났다. 케넌은 1887년부터 1891년까지 Century 잡지에 연재한 기사에서, 형벌 제도의 학대와 혹독한 광산 노동, 총살과 교수형 등 유형수들이 겪은 폭력을 생생하게 기록했다. 이를 바탕으로 펴낸 『Siberia and the Exile System』(1891)은 당시 미국 독자들에게 러시아의 현실을 충격적으로 알렸고, 그를 러시아 전문가이자 신뢰받는 저널리스트로 각인시켰다. 또한 기록에 따르면 그는 1889년부터 1900년 사이 500회가 넘는 러시아 관련 강연을 진행했으며, 때로는 유형수의 누더기 옷과 쇠사슬을 착용한 채 무대에 등장하기도 했다.
George Kennan의 시베리아 유형수 복장.
각 의복은 실제로 유형 생활을 했던 유형수들이 자신이 입었던 옷을 한 점씩 건네준 것이다. © Library of Congress
이 시기 케넌은 운명처럼 러시아 문학 거장 레프 톨스토이를 만나게 된다. 1886년경, 케넌은 톨스토이의 저택 야스나야 폴랴나를 방문했고, 두 사람은 긴 시간 동안 인간과 사회, 정의와 사랑에 대해 이야기했다 한다. 케넌의 시베리아 유형제도 조사와 그의 경험은 톨스토이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고, 이는 케넌의 기록이 톨스토이 소설 『부활』의 시베리아 장면 묘사에 실감나게 영향을 주었음을 짐작할수 있다.
1887년 조지 케넌이 톨스토이와의 인터뷰를 한 기사를 The Century에 실었다. © 유희권
그는 세상을 떠나기 몇 해 전인 1920년, 시베리아 정치범들과 관련된 사진과 편지, 기록물, 그리고 자신이 평생 수집한 다양한 자료들을 뉴욕공립도서관에 기증했다. 이 자료들은 오늘날에도 연구자들에게 귀중한 사료로 활용되며, 그의 업적과 깊은 통찰을 생생히 전해주고 있다. 전문 교육도 받지 못했고 러시아어조차 하지 못했던 한 평범한 젊은이가 위험을 무릅쓰고 떠난 여행은, 오늘날 우리에게 당시 러시아의 시대상을 놀라울 만큼 생생하게 들려준다.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한 사람의 열정과 진심이 어떻게 학문과 사회에 의미 있는 영향을 남길 수 있는지, 그리고 개인의 경험이 문학과 역사 속에서 얼마나 깊은 울림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시간이 흐른 뒤, 조지 케넌이 남긴 지적 유산의 궤적을 따라 또 한 명의 '케넌'이 뉴욕공립도서관을 찾게 된다. 그의 친척이자 20세기 냉전기 미국 외교 정책의 거두였던 조지 프로스트 케넌(George F. Kennan, 1904–2005)이다. 1952년 소련 주재 미국 대사를 지내고 후일 유고슬라비아 대사로도 활약한 그는, 단순한 외교관을 넘어 시대를 꿰뚫어 본 탁월한 역사학자였다.
그는 가문의 선구자가 남긴 러시아 연구의 맥을 잇고자 1974년 '케넌 연구소(Kennan Institute)'를 설립했다. 이 연구소의 명칭에는 19세기 말 시베리아의 실상을 온몸으로 기록한 탐험가 조지 케넌과, 20세기 국제 정치의 중심에서 소련을 분석했던 외교관 조지 프로스트 케넌, 두 지성의 이름이 각인되어 있다. 이후 독립적 비영리 기관으로 전환된 워싱턴 D.C.의 케넌 연구소는 러시아와 동유럽 연구를 이끄는 세계 최고 권위의 싱크탱크로 그 위상을 공고히 하고 있다.
1990년대에 뉴욕공립도서관을 방문한 대사 케넌에게 조지 케넌이 기부한 사진 앨범을 보여주고 있는 슬라빅 부서 에드워드 카시넥 (Edward Kasinec) 부서장. © 유희권
뉴욕에서 살아 숨쉬는 톨스토이의 유산
『부활』의 마지막에서 주인공 드미트리 이바노비치 네흘류도프는 신약 성경을 펼친다. 그는 특히 예수님이 말씀하신 산상수훈(마태복음 5–7장)을 읽으며 큰 감동을 받고 깊은 깨달음을 얻는다. 네흘류도프가 깨닫는 예수의 가르침은 단순하지만 강렬하다. 악에 폭력으로 맞서지 말 것, 다른 사람을 용서할 것, 심지어 원수까지 사랑할 것. 소설의 결말은 그가 모든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고, 예수의 가르침대로 살겠다는 결심을 하면서 끝난다. 이는 톨스토이가 독자에게 전하고자 한, ‘사랑을 삶의 중심으로 삼는 삶의 방향’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소설 속 네흘류도프의 위대한 결심은 서가 위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 정신을 현실에서 고스란히 이어받은 것이 바로 뉴욕의 톨스토이 재단이었다. 톨스토이 재단은 미국에서 수많은 난민들을 지속적으로 도우며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해주었다. 소련 정부가 그들의 삶과 희망을 짓밟으려 했던 시대에도, 재단은 수만 명의 난민들이 다시금 ‘봄’을 찾고 새로운 삶으로 소생할 수 있도록 손을 내밀었다.
언젠가 한 신문사 기자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마지막에 기자가 이렇게 물었다.
“톨스토이는 ‘사랑만이 인류를 구원한다’고 하고, 도스토옙스키는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한다’고 하잖아요. 사서님은 두 작가 중 누구에게 더 끌리시나요?”
나는 망설임 없이 톨스토이라고 답했다. 긴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이제 독자 여러분께서도 내 톨스토이에 대한 애정을 충분히 이해하시리라 믿는다. 톨스토이는 단순한 작가를 넘어, 사랑과 인간성을 깊이 탐구하며 우리에게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존재다.
러시아의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피어난 거장의 문장들은 뉴욕공립도서관의 슬라브 서가 위에서, 그리고 절망의 문턱에서 재단의 손을 잡았던 수많은 이들의 삶 속에서 오늘날까지 가장 뜨거운 숨결로 살아 숨 쉬고 있다.
글 | 유희권
뉴욕에서 살며 수많은 책과 희귀 자료를 연구하고, 그 자료와 연관된 도시들을 찾아다니며 먼저 간 이들의 ‘한탄’을 듣고 Dum Spiro Spero(“숨 쉬는 동안 나는 희망한다”)의 삶을 좇고자 애쓰는 소박한 연구자. 두 권의 학술서와 20여 편의 논문을 집필했으며, 특히 2008년 공동 저술한 『Visual Resources from Russia and Eastern Europe in The New York Public Library: A Checklist』는 2009년 ARLIS(미국예술도서관학회)에서 Worldwide Books Award를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