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공립도서관의 사서][문화사] 서양 최초의 금속 활자 인쇄본인 구텐베르크 성경과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1

2026-07-01


뉴욕공립도서관 사서가 들려주는 역사와 문화 이야기 8 #1


뉴욕의 심장부에 자리한 뉴욕공립도서관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책은 아마도 구텐베르크 성경책(The Gutenberg Bible)일 것이다. 이 성경책은 도서관 상설 전시관에 놓여 매일 수천 명의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수백 년의 시간을 견뎌낸 오래된 책 한 권이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의 발길을 이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희귀한 고서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 안에는 서양 문명의 흐름을 바꾸어 놓은 거대한 역사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1455년 세상에 등장한 구텐베르크 성경은 서양 최초의 금속활자 대형 인쇄본으로 알려져 있다. 그 이전까지 성경과 대부분의 책들은 수도사들의 손으로 일일이 필사되었고, 자연스럽게 소수의 귀족과 성직자, 엘리트 계층만이 소유할 수 있는 귀중품이었다. 그러나 구텐베르크 성경의 등장은 책의 역사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성경은 더 이상 일부 특권층만의 전유물이 아니게 되었고, 지식과 신앙은 대중 속으로 빠르게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는 훗날 16세기 종교개혁의 토대가 되었으며, 마르틴 루터 (Martin Luther)의 사상 역시 인쇄술의 힘을 통해 유럽 전역으로 확산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루터와 구텐베르크 성경은 과연 어떤 관계 속에 놓여 있을까? 또 뉴욕공립도서관이 소장한 구텐베르크 성경은 어떤 특별한 가치를 지니고 있을까? 더 나아가 고려 시대의 《직지심경》이 1377년에 인쇄되어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으로 인정받고 있음에도, 왜 서양에서는 여전히 구텐베르크 성경을 인류 문명의 상징처럼 여기고 있을까? 이번 글에서는 역사적 사실과 함께 필자의 상상력을 더해, 그 흥미로운 관계를 따라가 보고자 한다.


구텐베르크 성경의 탄생

구텐베르크 초판 성경은 총 180부가 인쇄된 것으로 추정되며, 이 가운데 약 35부는 송아지 가죽(vellum)에, 나머지는 종이에 인쇄되었다. 송아지 가죽으로 성경책을 만드는 데에는 170마리의 송아지가 필요했다고 하니 성경책 한 권의 가격이 얼마나 비쌌을지 감히 짐작할 만하다. 이 성경은 한 페이지에 42줄로 구성되어 있어 ‘42행 성경’이라고도 불린다. 


구텐베르크 성경은 인쇄 기술로 만들어졌지만, 당시 사람들에게 익숙한 필사본의 느낌을 주기 위해 여백의 화려한 장식이나 첫 글자 등은 인쇄 후에 장식 전문가들이 일일이 손으로 그려 넣었다. 그래서 현존하는 성경은 장식이 제각각 달라 세상에 똑같은 모양의 구텐베르크 성경은 하나도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내용은 5세기 초에 번역된 라틴어 성경인 Vulgate를 바탕으로 한다. 한 권의 무게는 약 35파운드(약 16kg)에 이른다. 종이판은 2권으로 송아지판은 3권으로 제작되었다. 현재는 전 세계에 완전본과 부분본을 포함하여 약 47부가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그 중 온전히 남아있는 성경은 단 21부이다. 독자는 놀라지 말기 바란다. 현재 뉴욕공립도서관이 소장한 구텐베르크 성경의 가치는 약 3,500만 달러(5천 억원)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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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공립도서관의 구텐베르크 성경은 1455년경에 간행된 초판 성경이다. © The New York Public Library


뉴욕공립도서관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던 첫해, 나는 구텐베르크 성경과 처음 대면했다. 한마디로 압도적인 현란함이었다. 사실 한국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닌 우리에게 이 성경은 그저 세계사 시험을 위해 외워야 했던 서양의 혁명적 발명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도서관으로 출근하며 매일 그 책을 마주하다 보니, 어느 순간 낯설기만 했던 그 유물이 마치 내 뿌리의 일부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신비로운 경험을 했다.


여기서 중요한 인사이트를 얻었다. 예술이나 역사적 가치를 지닌 작품들도 구텐베르크 성경처럼 일상의 궤적 안에서 반복적으로 접하다 보면, 결국 나의 문화적 자산으로 체득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박물관이나 도서관, 혹은 고궁과 사적지를 부지런히 찾아다녀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텍스트로만 존재하던 타자의 역사를 나의 지적 스펙트럼 안으로 편입시키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그것들을 내 시야 속에 자주 노출시키는 일이다. 여러분도 이번 주말, 교과서 밖의 문화를 마주하러 떠나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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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마인츠에 세워진 구텐베르크 동상.
구텐베르크 성경은 마인츠에서 인쇄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The New York Public Library


하버드대학교 와이드너 도서관의 구텐베르크 성경과 그 일화들

구텐베르크 성경과 관련된 유명한 일화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1969년, 한 강도가 하버드 대학교의 와이드너 도서관에 소장된 구텐베르크 성경을 거의 훔칠 뻔한 사건이 있었다. 용의자 비도 아라스는 도서관 화장실에 숨어 있다가 폐관 후 지붕으로 올라가 창문을 통해 다시 내부로 침입했고, 전시 케이스에서 성경을 꺼내는 데까지 성공했다. 그러나 도서관 창문 밖으로 늘어진 밧줄을 타고 탈출하던 중 약 12미터 아래 지면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다음 날 아침 그는 도서관 밖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되었고, 그의 곁에는 구텐베르크 성경 두 권이 담긴 배낭이 놓여 있었다. 아마도 그는 귀중한 성경책의 무게까지는 미처 계산하지 못했던 듯하다. 다행히 충격으로 제본은 손상되었지만, 내부 페이지는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남아 있었다.


이 성경은 1912년 타이타닉 호 침몰로 사망한 해리 엘킨스 와이드너 (Harry Elkins Widener)의 가족이 1944년에 하버드에 기증한 것이다. 와이드너는 희귀 도서 수집가였으며, 그의 가족은 도서관 건립 비용 일부와 함께 그의 모든 컬렉션을 대학에 기부했다. 이렇게 해서 와이드너 도서관(Widener Library)은 하버드 대학교의 중앙도서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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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대학교의 와이드너 도서관 내부의 기념실. © Harvard University

 

와이드너의 부모는 도서관 건립 기금을 기부하면서 하버드 대학교 측에 한 가지 특별한 조건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그것은 모든 학생이 졸업하기 위해 반드시 100미터 수영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자유형이든 배영이든, 심지어 서툰 개헤엄이라도 상관없이 끝까지 완주하기만 하면 되는 시험이었다. 이 독특한 전통은 약 80년 넘게 이어졌으나, 몇 해 전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다는 취지의 대학측 청원을 와이드너 재단이 받아들이면서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


한편, 펜실베이니아주 포츠타운에 있는 힐 스쿨(The Hill School)에서는 지금도 와이드너 가족과 관련된 수영 시험 전통이 남아 있다. 해리 엘킨스 와이드너가 이 고등학교 출신이었고, 그의 부모가 학교에 기부금을 전달하면서 졸업 조건 중 하나로 수영 시험을 지정했기 때문이다. 필자의 아들 역시 이 학교를 졸업하기 위해 쉽지 않은 수영 테스트를 통과해야 했다.


:: 구텐베르크 성경과 루터의 종교개혁 2편 이어서 읽기




글 | 유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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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살며 수많은 책과 희귀 자료를 연구하고, 그 자료와 연관된 도시들을 찾아다니며 먼저 간 이들의 ‘한탄’을 듣고 Dum Spiro Spero(“숨 쉬는 동안 나는 희망한다”)의 삶을 좇고자 애쓰는 소박한 연구자. 두 권의 학술서와 20여 편의 논문을 집필했으며, 특히 2008년 공동 저술한 『Visual Resources from Russia and Eastern Europe in The New York Public Library: A Checklist』는 2009년 ARLIS(미국예술도서관학회)에서 Worldwide Books Award를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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