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정의 미국 이야기 #18
어퍼컷(Uppercut)이란?
팔을 굽혀 상대의 아래턱을 노리고 밑에서 위로 쳐올리는 펀치를 뜻하는 권투 용어
살면서 늘 행운만 있을 순 없겠지? 어찌어찌 어퍼컷을 두 대 연속으로 맞았더니 많이 얼얼했다.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집중이 되지 않으니 그 무엇도 할 수가 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잠시 모든 것을 손에서 놓았다. 늘 살면서 몇 가지씩 동시에 해내던 나였기에 이 무력한 시간이 주는 울림은 꽤나 컸다.
뉴욕의 공원이 그립고,
도피하고 싶어서 애써 잠을 청했지만 쉽게 잠들 수도 없었고 꿈에서까지 나를 괴롭히니 하루 24시간이 참 괴로웠다. 뉴욕에 사는 친구가 소식을 준 건 그때였다. 방이 며칠 비니까 쉬다가 가라고. 살인적인 물가의 뉴욕에서는 흔하지 않은 기회였다. 내가 사는 뉴저지 주에서 뉴욕 맨해튼까지는 버스 한 번 타면 오갈 수 있는 거리이지만, 낮에 잠시 다녀오는 것과 며칠 머무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당장 처리해야 할 몇 가지 일만 해결하고는 바로 짐을 싸서 뉴욕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평소 뉴욕을 반나절만 가게 되더라도 어느 스팟, 어디 동선으로 이동할지를 미리 다 계획하고 다녀오던 나지만 이번엔 달랐다. 그럴만한 마음의 여유도, 물리적인 시간도 부족했다. 무조건 지금의 현실에서 잠시라도 벗어나 생활의 반경을 바꾸고 싶었기에 무작정 뉴욕으로 바로 떠나버렸다.
뉴욕의 거리가 그리웠다.
아무런 목적 없이, 의무도 없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뉴욕을 즐겨본 게 얼마만인지 가물가물했다. 24시간 정신이 번쩍 들도록 시끄럽게 울리는 사이렌 소리, 사방에서 들려오는 다양한 언어들, 걷던 길을 1초만 멈춰도 뒷사람에게 욕을 먹는 거리의 속도, 사람과 차가 서로 먼저 가겠다고 벌이는 전쟁. 그래, 이곳이 바로 맨해튼이었지. 자연스레 오래전 뉴욕에 살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렇게 아침이면 산책 겸 구경을 나갔다가 점심 나절에는 다시 집으로 복귀. 점심을 해결하고 낮잠을 잔 후, 해가 지는 저녁이 되면 다시 뉴욕을 즐기러 나가는 패턴으로 5일을 꽉 채웠다.
뉴욕에서의 낮과 밤
얼마전 별세한 영국의 유명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의 전시가 마침 첼시의 페이스 갤러리(Pace Gallery)에서 열리고 있어 그 작품을 구경했다.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유명 작품이 아닌, 코로나 시기에 프랑스 노르망디의 농가에 머물면서 아이패드로 그렸던 ‘Moonlight’ 시리즈 15점이 전시되어 있었다. 어두운 시골 밤 환하게 빛나는 달빛이 나에게 ‘희망’을 전해주는 것 같아 잠시나마 위안을 받았다.

데이비드 호크니의 <Moonlight> 연작
그리고 나는 밤이면 밤마다 그간 즐기지 못했던 루프톱 바와 라이브 재즈 바, 매주 금요일 야간 개장을 하는 뉴욕현대미술관 등을 옮겨 다녔다. 뉴욕에 살 때는 당연하던 것들이 삶의 무대가 살짝 옮겨졌을 뿐인데 당연하지 않은 것들이 되었다. 그걸 알기에 나는 더 악착같이 뉴욕을 누렸다.

뉴욕다운 장면들
마침 월드컵 시즌이라 타임 스퀘어는 밤마다 전쟁이었다. 첫날 인파로 가득한 광장에 살짝 공포심까지 들었을 정도라 경찰에게 무슨 일이 났느냐고 물어봤을 정도. 에콰도르, 멕시코, 도미니카에서 온 국민들이 똘똘 뭉쳐 응원하는 것을 보면서 나 역시 절로 애국심이 솟았다. 아쉽게도 한국의 성적은 좋지 않았지만.

뉴욕도 월드컵 열기로 뜨거웠다.
하루 평균 2만보를 걸으며 열심히 탐험했던 오랜만의 뉴욕. 덕분에 현실의 ‘어커펏’ 따위는 잠시 접어두었다. 어차피 이 또한 지나갈 테고, 10년 뒤쯤 뒤돌아보면 아무 일도 아닐 테니까.

추천 뉴욕 스팟들
🎨Pace Gallery
540 W 25th St, New York, NY 10001

첼시의 대표 갤러리 중 하나로 손꼽히는 곳. 6층의 테라스, 1층의 화장실(뉴욕에서 화장실을 제공하는 곳은 흔치 않다), 계단 이용 시 층마다 다르게 꾸며진 일러스트 벽화 등이 포인트다. 지금 화제인 데이비드 호크니 전시(3층)는 8월 14일까지 진행된다. 같은 이름으로 2곳의 갤러리가 더 있으니 꼭 주소를 확인하고 방문하자.
🎻Jazzcultural
349 W 46th St, New York, NY 10036

낮엔 카페, 밤엔 재즈 바로 운영 중인 곳. 특히 밤에는 합리적인 가격으로 재즈 공연을 즐길 수 있어 뉴요커들에게도 인기다.
🎨Jim Kempner Fine Art & Isabel Sullivan Gallery
501 W 23rd St, New York, NY 10011

유리와 철제 구조 건물이 특이한 첼시의 갤러리로 1층과 2층에 서로 다른 갤러리가 들어가 있다. 전시 제품(그림, 조각 등), 내부 공간, 건축물 등이 종합적으로 매력적인 곳이라 개인적으로 첼시에서 가장 아끼는 갤러리다.
☕Intelligentsia Coffee (High Line Hotel)
High Line Hotel 180 10th Ave at, W 20th St, New York, NY 10011

야외 정원의 운치 속에서 커피를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미국에서 유명한 인텔리젠시아 커피를뉴욕에서 맛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공간 중 하나다. 빨간 캠핑카와 미니 분수가 상징.
🍷RT60 Rooftop Bar & Lounge
159 W 48th St, New York, NY 10036

하드락 호텔 34층에 위치한 루프톱 바로 모던하면서도 시크한 분위기 속에서 디제잉에 라이브 음악까지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무엇보다 타임 스퀘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게 이곳의 매력이다.
글·사진 | 조은정

최소 2개월에 한 번은 비행기를 타줘야 제대로 된 행복한 인생이라고 믿는 여행교 교주. <미국 서부 셀프트래블>, <뉴욕 셀프트래블> 외 여러 권의 저서가 있는 베스트셀러 직딩 여행작가. 현재 뉴욕에서 지내고 있다.
https://eiffel.blog.me/
조은정의 미국 이야기 #18
살면서 늘 행운만 있을 순 없겠지? 어찌어찌 어퍼컷을 두 대 연속으로 맞았더니 많이 얼얼했다.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집중이 되지 않으니 그 무엇도 할 수가 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잠시 모든 것을 손에서 놓았다. 늘 살면서 몇 가지씩 동시에 해내던 나였기에 이 무력한 시간이 주는 울림은 꽤나 컸다.
도피하고 싶어서 애써 잠을 청했지만 쉽게 잠들 수도 없었고 꿈에서까지 나를 괴롭히니 하루 24시간이 참 괴로웠다. 뉴욕에 사는 친구가 소식을 준 건 그때였다. 방이 며칠 비니까 쉬다가 가라고. 살인적인 물가의 뉴욕에서는 흔하지 않은 기회였다. 내가 사는 뉴저지 주에서 뉴욕 맨해튼까지는 버스 한 번 타면 오갈 수 있는 거리이지만, 낮에 잠시 다녀오는 것과 며칠 머무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당장 처리해야 할 몇 가지 일만 해결하고는 바로 짐을 싸서 뉴욕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평소 뉴욕을 반나절만 가게 되더라도 어느 스팟, 어디 동선으로 이동할지를 미리 다 계획하고 다녀오던 나지만 이번엔 달랐다. 그럴만한 마음의 여유도, 물리적인 시간도 부족했다. 무조건 지금의 현실에서 잠시라도 벗어나 생활의 반경을 바꾸고 싶었기에 무작정 뉴욕으로 바로 떠나버렸다.
아무런 목적 없이, 의무도 없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뉴욕을 즐겨본 게 얼마만인지 가물가물했다. 24시간 정신이 번쩍 들도록 시끄럽게 울리는 사이렌 소리, 사방에서 들려오는 다양한 언어들, 걷던 길을 1초만 멈춰도 뒷사람에게 욕을 먹는 거리의 속도, 사람과 차가 서로 먼저 가겠다고 벌이는 전쟁. 그래, 이곳이 바로 맨해튼이었지. 자연스레 오래전 뉴욕에 살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렇게 아침이면 산책 겸 구경을 나갔다가 점심 나절에는 다시 집으로 복귀. 점심을 해결하고 낮잠을 잔 후, 해가 지는 저녁이 되면 다시 뉴욕을 즐기러 나가는 패턴으로 5일을 꽉 채웠다.
얼마전 별세한 영국의 유명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의 전시가 마침 첼시의 페이스 갤러리(Pace Gallery)에서 열리고 있어 그 작품을 구경했다.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유명 작품이 아닌, 코로나 시기에 프랑스 노르망디의 농가에 머물면서 아이패드로 그렸던 ‘Moonlight’ 시리즈 15점이 전시되어 있었다. 어두운 시골 밤 환하게 빛나는 달빛이 나에게 ‘희망’을 전해주는 것 같아 잠시나마 위안을 받았다.
그리고 나는 밤이면 밤마다 그간 즐기지 못했던 루프톱 바와 라이브 재즈 바, 매주 금요일 야간 개장을 하는 뉴욕현대미술관 등을 옮겨 다녔다. 뉴욕에 살 때는 당연하던 것들이 삶의 무대가 살짝 옮겨졌을 뿐인데 당연하지 않은 것들이 되었다. 그걸 알기에 나는 더 악착같이 뉴욕을 누렸다.
마침 월드컵 시즌이라 타임 스퀘어는 밤마다 전쟁이었다. 첫날 인파로 가득한 광장에 살짝 공포심까지 들었을 정도라 경찰에게 무슨 일이 났느냐고 물어봤을 정도. 에콰도르, 멕시코, 도미니카에서 온 국민들이 똘똘 뭉쳐 응원하는 것을 보면서 나 역시 절로 애국심이 솟았다. 아쉽게도 한국의 성적은 좋지 않았지만.
하루 평균 2만보를 걸으며 열심히 탐험했던 오랜만의 뉴욕. 덕분에 현실의 ‘어커펏’ 따위는 잠시 접어두었다. 어차피 이 또한 지나갈 테고, 10년 뒤쯤 뒤돌아보면 아무 일도 아닐 테니까.
추천 뉴욕 스팟들
첼시의 대표 갤러리 중 하나로 손꼽히는 곳. 6층의 테라스, 1층의 화장실(뉴욕에서 화장실을 제공하는 곳은 흔치 않다), 계단 이용 시 층마다 다르게 꾸며진 일러스트 벽화 등이 포인트다. 지금 화제인 데이비드 호크니 전시(3층)는 8월 14일까지 진행된다. 같은 이름으로 2곳의 갤러리가 더 있으니 꼭 주소를 확인하고 방문하자.
낮엔 카페, 밤엔 재즈 바로 운영 중인 곳. 특히 밤에는 합리적인 가격으로 재즈 공연을 즐길 수 있어 뉴요커들에게도 인기다.
유리와 철제 구조 건물이 특이한 첼시의 갤러리로 1층과 2층에 서로 다른 갤러리가 들어가 있다. 전시 제품(그림, 조각 등), 내부 공간, 건축물 등이 종합적으로 매력적인 곳이라 개인적으로 첼시에서 가장 아끼는 갤러리다.
야외 정원의 운치 속에서 커피를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미국에서 유명한 인텔리젠시아 커피를뉴욕에서 맛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공간 중 하나다. 빨간 캠핑카와 미니 분수가 상징.
하드락 호텔 34층에 위치한 루프톱 바로 모던하면서도 시크한 분위기 속에서 디제잉에 라이브 음악까지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무엇보다 타임 스퀘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게 이곳의 매력이다.
글·사진 | 조은정
최소 2개월에 한 번은 비행기를 타줘야 제대로 된 행복한 인생이라고 믿는 여행교 교주. <미국 서부 셀프트래블>, <뉴욕 셀프트래블> 외 여러 권의 저서가 있는 베스트셀러 직딩 여행작가. 현재 뉴욕에서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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