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정의 미국 이야기 #19
7월 4일은 미국의 주요 명절 중 하나인 독립기념일이다. 올해는 250주년이라 온 나라가 예년보다 훨씬 떠들썩했다. 이미 오래 전부터 뉴욕은 ‘250’이란 숫자가 써진 각종 요란한 장식들로 화려하게 치장하고 있었다. 언제 어디서나 성조기와 함께하는 어마어마한 애국인들의 나라이기에, 올해는 더욱 그럴듯한 행사가 예정되어 있을 거라고 예상했다. 그리고 다른 주 사람들이 남긴, 독립기념일에 맞추어 뉴욕으로 여행을 올 거라는 SNS 게시글을 보았다. 바로 호텔을 예약했다. 뉴욕이 아니라 다른 곳, 다른 주로 여행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남들은 뉴욕에 초유의 불꽃놀이를 보러 오는데, 나는 도시를 떠나는 이 아이러니.


독립기념일 풍경
요즘 뉴욕은 40도를 넘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중이다. 잠깐만 걸어도 땀이 비오 듯 쏟아지는 찌는 날씨다. 그래서 뉴욕보다 위쪽에 위치한 지역으로, ‘말 그대로’ 피서를 가기로 했다. 뉴저지주에서 출발해 뉴욕주를 거쳐 나오는 코네티컷주. 지난번 로드 아일랜드 여행 때 머물었던 뉴 런던(New London)이라는 곳에 다시 호텔을 잡았다. 이번 여행의 목적지로 삼은 로드 아일랜드주까지는 1시간 30분, 코네티컷의 미스틱(Mystic)이란 도시까지는 15분이면 도착하니까 최적의 베이스캠프라고 판단했다.
아름다운 로드 아일랜드
미국의 50개 주 중 가장 작은 주이지만 고급 휴양지인 로드 아일랜드에는 볼거리, 즐길 거리가 많다. 딱히 어디를 찾아가지 않아도 어디서나 펼쳐지는 640km 바닷길과 40개가 넘는 비치, 호텔인지 개인 주택인지 구별이 되지 않을 만큼 거대하고 화려한 대저택들이 끝없이 펼쳐진다. 어디를 가도 치루할 틈이 없는 것이다.
휴양지 로드 아일랜드 풍경
이번에도 난 끊임없이 ‘저건 개인 소유 주택일까? 호텔일까?’를 궁금해하며 영화 속 부자들의 별장 같은 곳들을 실컷 구경했다. 개인 요트로 바다를 항해하고, 별장에 가족이나 친구들이 모여 바비큐 파티를 하고, 카누나 낚시를 즐기며 저마다의 휴일을 즐기던 사람들. 그들의 표정엔 바쁘고 정신없는 일상의 그림자가 없었다. 그저 모국의 250번째 생일을 축하하며 한껏 들뜬 채 행복해 하는 얼굴들이었다.
무더위에 바다를 즐기는 사람들
미국인의 나라 사랑은 익히 들어왔고, 몸소 보기도 많이 봤지만, 이번엔 선물세트처럼 몰아서 구경할 수 있었다. 옷이나 모자, 스카프, 자신이 타고 다니는 차 등에 성조기 무늬로 된 모든 것을 두르고 온몸으로 나라 사랑을 표현하는 일은 기본. 고속도로에서 포크레인 위에 거대한 성조기를 매달고 오가던 이들은 그렇게 미국에서 오래 산 나에게도 문화충격이었다. 그에 비하면 광복절의 우리나라는 참 점잖지 않나 싶을 정도.
성조기에 진심인 미국인들
대조적인 두 도시, 미스틱과 그리니치
이번에 코네티컷 주 안에서 들른 곳은 미스틱과 그리니치다. 그리니치가 현대적이고 세련된 뉴욕 교외의 부촌 느낌이라면, 미스틱은 19세기 조선업과 고래잡이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역사적이고 낭만적인 항구 도시이다. 미스틱 리버 바스큘 브릿지(Mystic River Bascule Bridge)는 마을 중심을 흐르는 미스틱 강 위의 도개교(도르래식 개폐교)이다. 배가 지나갈 때마다 다리 전체가 위로 들어 올려지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는데, 아쉽게도 직접 보지는 못했다. 다리 가까이 가 보니 거대한 큰 돌 두 개가 다리 입구에 놓여있었다. 저 돌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걸 상상하니 신기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다.

저 돌 아래를 지날 때는 절로 걸음이 빨라진다.
기대 이상으로 좋았던 곳은 올드 미스틱 빌리지(Olde Mistick Village)였다. 1700년대 뉴 잉글랜드 양식의 건축물들을 재현해 놓은 야외 쇼핑 단지인데, 매장끼리 서로 경합이라도 하듯 저마다 다른 파스텔 톤으로 꾸며져 있었다. 현지 장인들이 만든 각종 수공예품이나 먹거리 덕분에 구경하고, 쇼핑하고, 예쁜 인증샷 촬영을 하는 동안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건물 구경만 해도 시간이 잘 가는 올드 미스틱 빌리지
그리니치는 마지막으로 들렀다. 뉴욕주와 맞닿아 있어 뉴욕에서 일하는 고액 연봉자들(!)이 일터가 있는 맨해튼 도심과 퇴근 후의 전원생활을 함께 즐기고 싶을 때 선택하는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명문학교도 있고 집값도 비싼데 다운타운만 가봐도 그 수준이 가늠될 정도다. 뉴욕에서 날고 기는 모든 브랜드와 백화점이 이 거리에 밀집해 있었다. 거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이 많다는 건 그만큼 수요가 있다는 뜻도 되겠지. 그런 의미에서 이번 여행지로 택했던 아기자기한 해안의 미스틱과 부촌인 그리니치는 코네티컷 안에서도 서로 대비되는 풍경을 직접 볼 수 있는 좋은 여행지였다.
왼쪽은 1차대전, 오른쪽은 2차대전 이후 전쟁들의 참전용사 기념비
한결 차분한 분위기인 그리니치
역시 호캉스가 최고
이렇게 매일 다른 곳을 오가며 여행을 즐기고는 밤이면 호텔 룸의 TV를 통해 뉴욕에서 생생히 벌어지는 독립기념일 맞이 불꽃놀이를 시청했다. 이미 전에 경험해봤던 터라 독립기념일에 뉴욕에서 불꽃놀이를 직접 보려면 얼마나 오랜 시간 찜통 더위 속에서 긴 줄을 선 채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지 눈에 그려지는 듯했다(12월 31일 밤, 뉴욕 타임스스퀘어에서 밤을 새며 카운트다운을 즐길 때도 마찬가지다. 그때는 혹한을 견뎌야 하지만.). 그래서 에어컨 빵빵한 여행지 호텔에서 TV속 불꽃놀이를 관람하는 시간이 그 어느 때보다 달콤했다.

미국인들의 휴가는 나에게도 휴가였다.
이번 여행을 통해 확실히 뉴욕보다 그 윗동네가 훨씬 시원하고 바람도 달콤하다는 걸 알았다. 미국에서의 피서도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으니 이 또한 좋은 경험이겠지. 벌써부터 내년 7월 4일 독립기념일 연휴가 기대된다. 그땐 또 내가 어디에 가 있을지, 벌써부터 설레고 행복하다. 250주년의 미국 독립기념일은 그렇게 나에게 내가 여행을 하는 선명한 이유를 다시금 일깨워주었다.

글·사진 | 조은정

최소 2개월에 한 번은 비행기를 타줘야 제대로 된 행복한 인생이라고 믿는 여행교 교주. <미국 서부 셀프트래블>, <뉴욕 셀프트래블> 외 여러 권의 저서가 있는 베스트셀러 직딩 여행작가. 현재 뉴욕에서 지내고 있다.
https://eiffel.blog.me/
조은정의 미국 이야기 #19
7월 4일은 미국의 주요 명절 중 하나인 독립기념일이다. 올해는 250주년이라 온 나라가 예년보다 훨씬 떠들썩했다. 이미 오래 전부터 뉴욕은 ‘250’이란 숫자가 써진 각종 요란한 장식들로 화려하게 치장하고 있었다. 언제 어디서나 성조기와 함께하는 어마어마한 애국인들의 나라이기에, 올해는 더욱 그럴듯한 행사가 예정되어 있을 거라고 예상했다. 그리고 다른 주 사람들이 남긴, 독립기념일에 맞추어 뉴욕으로 여행을 올 거라는 SNS 게시글을 보았다. 바로 호텔을 예약했다. 뉴욕이 아니라 다른 곳, 다른 주로 여행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남들은 뉴욕에 초유의 불꽃놀이를 보러 오는데, 나는 도시를 떠나는 이 아이러니.
독립기념일 풍경
요즘 뉴욕은 40도를 넘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중이다. 잠깐만 걸어도 땀이 비오 듯 쏟아지는 찌는 날씨다. 그래서 뉴욕보다 위쪽에 위치한 지역으로, ‘말 그대로’ 피서를 가기로 했다. 뉴저지주에서 출발해 뉴욕주를 거쳐 나오는 코네티컷주. 지난번 로드 아일랜드 여행 때 머물었던 뉴 런던(New London)이라는 곳에 다시 호텔을 잡았다. 이번 여행의 목적지로 삼은 로드 아일랜드주까지는 1시간 30분, 코네티컷의 미스틱(Mystic)이란 도시까지는 15분이면 도착하니까 최적의 베이스캠프라고 판단했다.
아름다운 로드 아일랜드
미국의 50개 주 중 가장 작은 주이지만 고급 휴양지인 로드 아일랜드에는 볼거리, 즐길 거리가 많다. 딱히 어디를 찾아가지 않아도 어디서나 펼쳐지는 640km 바닷길과 40개가 넘는 비치, 호텔인지 개인 주택인지 구별이 되지 않을 만큼 거대하고 화려한 대저택들이 끝없이 펼쳐진다. 어디를 가도 치루할 틈이 없는 것이다.
이번에도 난 끊임없이 ‘저건 개인 소유 주택일까? 호텔일까?’를 궁금해하며 영화 속 부자들의 별장 같은 곳들을 실컷 구경했다. 개인 요트로 바다를 항해하고, 별장에 가족이나 친구들이 모여 바비큐 파티를 하고, 카누나 낚시를 즐기며 저마다의 휴일을 즐기던 사람들. 그들의 표정엔 바쁘고 정신없는 일상의 그림자가 없었다. 그저 모국의 250번째 생일을 축하하며 한껏 들뜬 채 행복해 하는 얼굴들이었다.
미국인의 나라 사랑은 익히 들어왔고, 몸소 보기도 많이 봤지만, 이번엔 선물세트처럼 몰아서 구경할 수 있었다. 옷이나 모자, 스카프, 자신이 타고 다니는 차 등에 성조기 무늬로 된 모든 것을 두르고 온몸으로 나라 사랑을 표현하는 일은 기본. 고속도로에서 포크레인 위에 거대한 성조기를 매달고 오가던 이들은 그렇게 미국에서 오래 산 나에게도 문화충격이었다. 그에 비하면 광복절의 우리나라는 참 점잖지 않나 싶을 정도.
대조적인 두 도시, 미스틱과 그리니치
이번에 코네티컷 주 안에서 들른 곳은 미스틱과 그리니치다. 그리니치가 현대적이고 세련된 뉴욕 교외의 부촌 느낌이라면, 미스틱은 19세기 조선업과 고래잡이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역사적이고 낭만적인 항구 도시이다. 미스틱 리버 바스큘 브릿지(Mystic River Bascule Bridge)는 마을 중심을 흐르는 미스틱 강 위의 도개교(도르래식 개폐교)이다. 배가 지나갈 때마다 다리 전체가 위로 들어 올려지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는데, 아쉽게도 직접 보지는 못했다. 다리 가까이 가 보니 거대한 큰 돌 두 개가 다리 입구에 놓여있었다. 저 돌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걸 상상하니 신기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다.
기대 이상으로 좋았던 곳은 올드 미스틱 빌리지(Olde Mistick Village)였다. 1700년대 뉴 잉글랜드 양식의 건축물들을 재현해 놓은 야외 쇼핑 단지인데, 매장끼리 서로 경합이라도 하듯 저마다 다른 파스텔 톤으로 꾸며져 있었다. 현지 장인들이 만든 각종 수공예품이나 먹거리 덕분에 구경하고, 쇼핑하고, 예쁜 인증샷 촬영을 하는 동안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그리니치는 마지막으로 들렀다. 뉴욕주와 맞닿아 있어 뉴욕에서 일하는 고액 연봉자들(!)이 일터가 있는 맨해튼 도심과 퇴근 후의 전원생활을 함께 즐기고 싶을 때 선택하는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명문학교도 있고 집값도 비싼데 다운타운만 가봐도 그 수준이 가늠될 정도다. 뉴욕에서 날고 기는 모든 브랜드와 백화점이 이 거리에 밀집해 있었다. 거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이 많다는 건 그만큼 수요가 있다는 뜻도 되겠지. 그런 의미에서 이번 여행지로 택했던 아기자기한 해안의 미스틱과 부촌인 그리니치는 코네티컷 안에서도 서로 대비되는 풍경을 직접 볼 수 있는 좋은 여행지였다.
역시 호캉스가 최고
이렇게 매일 다른 곳을 오가며 여행을 즐기고는 밤이면 호텔 룸의 TV를 통해 뉴욕에서 생생히 벌어지는 독립기념일 맞이 불꽃놀이를 시청했다. 이미 전에 경험해봤던 터라 독립기념일에 뉴욕에서 불꽃놀이를 직접 보려면 얼마나 오랜 시간 찜통 더위 속에서 긴 줄을 선 채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지 눈에 그려지는 듯했다(12월 31일 밤, 뉴욕 타임스스퀘어에서 밤을 새며 카운트다운을 즐길 때도 마찬가지다. 그때는 혹한을 견뎌야 하지만.). 그래서 에어컨 빵빵한 여행지 호텔에서 TV속 불꽃놀이를 관람하는 시간이 그 어느 때보다 달콤했다.
이번 여행을 통해 확실히 뉴욕보다 그 윗동네가 훨씬 시원하고 바람도 달콤하다는 걸 알았다. 미국에서의 피서도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으니 이 또한 좋은 경험이겠지. 벌써부터 내년 7월 4일 독립기념일 연휴가 기대된다. 그땐 또 내가 어디에 가 있을지, 벌써부터 설레고 행복하다. 250주년의 미국 독립기념일은 그렇게 나에게 내가 여행을 하는 선명한 이유를 다시금 일깨워주었다.
글·사진 | 조은정
최소 2개월에 한 번은 비행기를 타줘야 제대로 된 행복한 인생이라고 믿는 여행교 교주. <미국 서부 셀프트래블>, <뉴욕 셀프트래블> 외 여러 권의 저서가 있는 베스트셀러 직딩 여행작가. 현재 뉴욕에서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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