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공립도서관의 사서][역사] 뉴욕도서관에 앉아 미국 독립 250년을 읽다 #2

2026-07-14


뉴욕공립도서관 사서가 들려주는 역사와 문화 이야기 9 #2


파리 조약, 1783

1783년 9월 3일 체결된 파리 조약으로 미국의 독립은 공식적으로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게 되었다. 이로써 13개 식민지는 ‘미국 합중국’이라는 이름 아래 주권 국가로서의 지위를 확립했으며, 미시시피 강 동쪽의 광대한 영토 또한 새로운 국가의 영역으로 편입되었다. 그러나 독립의 선언만으로 국가가 완성된 것은 아니었다. 이를 유지하고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외교적 동맹과 국제적 지원이 필수적이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벤저민 프랭클린은 이미 1776년 말부터 프랑스의 지원을 확보하기 위해 파리 근교 파시(Passy)에 거주하며 외교 활동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는 미국의 독립을 옹호하는 외교관일 뿐 아니라 과학자이자 계몽사상가로서 유럽 지성계에서도 높은 존경을 받고 있었다. 이러한 활발한 활동 속에서 흥미로운 만남도 이루어졌는데, 바로 프랭클린이 러시아의 공주 예카테리나 다슈코바를 파리에서 만난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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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클린의 자택에서 실제 인물을 앞에 두고 초상을 완성할 수 있었던 이 작품은 1908년에 도서관에 기증되었다. 
조제프-시프레드 뒤플레시 (1725–1802), <벤저민 프랭클린(1706–1790)의 초상>, 파스텔화, 1783년. ©The New York Public Library.


예카테리나 다슈코바 공주(1743-1810)

러시아의 귀족이자 계몽주의 지식인이었던 예카테리나 다슈코바 공주는 젊은 시절 예카테리나 2세, 즉 캐서린 대제의 측근으로 활동하며 1762년 쿠데타를 통해 그녀가 황위에 오르는 과정에도 깊이 관여했다. 이후 다슈코바는 유럽 각지를 여행하며 볼테르, 드니 디드로 등 계몽철학자들은 물론 외교관들과 교류했다. 1781년 파리와 런던의 지식인 사회를 오가던 그녀는 당시 미국 독립전쟁의 성공을 위해 프랑스에 머물고 있던 벤저민 프랭클린을 만나게 된다. 다슈코바와 프랭클린은 파리의 오텔 드 라 신(Hôtel de la Chine)에서 만나 과학, 정치, 철학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다슈코바는 프랭클린의 과학적 업적과 공화주의적 정치관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프랭클린 역시 그녀의 학문적 식견과 국제적 감각을 높이 평가했다. 파리 국립도서관과 그 근방을 탐문할 때 나는 이 두 계몽주의자들이 만났던 흔적을 찾고자 노력해 보았지만 그 호텔은 19세기 파리의 대대적인 도시 공사 때 허물어지고 다른 건물이 들어서 못내 아쉬움으로 남았다.


이들의 만남이 미국 독립전쟁의 결과를 직접 바꾸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상징적 의미는 결코 작지 않았다. 당시 많은 유럽 군주국은 미국 혁명을 단순한 반란으로 바라보았지만, 러시아를 대표하는 계몽주의 지식인인 다슈코바가 프랭클린과 교류했다는 사실은 미국 혁명이 자유와 시민의 권리를 추구하는 새로운 정치 실험이라는 인식을 확산시키는 데 도움을 주었다. 또한 두 사람은 이후에도 학술 교류를 이어가며 미국과 러시아 지식인 사회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했다. 1783년 프랭클린은 러시아 과학아카데미의 외국인 회원으로 선출되어 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이 영예를 얻었고, 다슈코바는 또한 1789년 프랭클린이 창설에 중요한 역할을 한 미국철학학회(American Philosophical Society)의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그녀는 이 학회의 첫 번째 러시아인 회원이자 최초의 여성 회원 가운데 한 명으로 기록된다.


지난 2006년 미국철학학회는 프랭클린 탄생 200주년을 맞아 필라델피아에서 전시회를 가졌다. 그때 큐레이터였던 수 엔 프린스(Sue Ann Prince)가 우리 도서관을 방문해 자료조사를 하였다. 우리 부서에선 다슈코바와 관련된 자료를 찾았고 두세 점을 전시회에 빌려주었다.  그 인연으로 인해 20여 년이 지난 올해 미국독립 250주년을 맞아 이렇게 다슈코바와 프랭클린을 재조명하게 된 것이 나에게는 감동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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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카테리나 다슈코바 공주. 드미트리 그리고리예비치 레비츠키(1735–1822), 1784년. ©Hillwood Museums and Gardens


새로운 공화국의 출범

독립전쟁을 승리로 끝낸 후인 1787년, 미국의 지도자들은 강력하면서도 동시에 민주적인 연방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헌법을 제정했다. 이 헌법은 분열된 13개 주를 하나의 연방으로 통합하고, 권력의 균형과 시민의 권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려는 새로운 정치 실험이었다. 이어 1789년, 독립전쟁의 영웅 조지 워싱턴이 뉴욕에서 미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워싱턴 D.C.는 1800년에 미국의 수도가 되었다) 새로운 공화국의 출범이 공식화되었다. 이는 신생 정부 출범을 넘어 미국이라는 국가가 역사 속에 본격적으로 등장했음을 알리는 중요한 순간이었으며, 이후 세계 질서 속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갖게 될 강대국의 탄생을 예고하는 장면이기도 했다.

  

미국 권리장전(Bill of Rights)

1789년 갓 태어난 미국은 국가를 하나로 묶어줄 강력한 법적 장치가 필요했다. 이때 제임스 매디슨을 비롯한 건국의 아버지들은 정부가 국민의 권리를 함부로 침해하지 못하도록 막고, 시민의 자유를 보장하는 미국 최초의 10개 수정헌법, 즉 '권리장전'을 발의했다. 과정이 순탄했던 건 아니다. 알렉산더 해밀턴처럼 “이미 헌법이 있는데 굳이 조항을 더 만들 필요가 없다“며 반대한 인물들도 있었다. 하지만 치열한 토론 끝에 국민의 신뢰를 얻는 것이 먼저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마침내 언론, 종교, 집회의 자유와 적법한 재판을 받을 권리 등이 헌법에 명시되었다.

물론 당시의 권리장전은 완벽하지 않았다. 노예제가 그대로 유지되었고 여성, 원주민, 재산이 없는 남성에게는 투표권조차 주어지지 않는 뚜렷한 시대적 한계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서는 “국가 권력도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수 없다”는 위대한 원칙을 세웠다. 비록 시작은 불완전했을지라도, 훗날 소외된 계층이 자신들의 권리를 되찾고 미국이 더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로 나아가는 든든한 발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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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권리장전(Bill of Rights, 1791)은 개인의 자유와 시민권을 보장하는 10개의 수정조항으로 구성된 문서로,
사상적 기원이 1215년 영국의 마그나 카르타(Magna Carta)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마그나 카르타는 왕권을 제한하고 법의 지배 원칙을 확립한 초기 헌정 문서로, 
이후 영국 권리장전(1689)과 함께 미국 헌법과 권리장전의 중요한 사상적 기반이 되었다. ©The New York Public Library.


조지 워싱턴의 자필 <고별 연설문>

독립을 선언한 지 20여 년이 흐른 1796년, 미국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은 그의 두 번째 대통령 임기의 종료를 알리는 <고별 연설문>을 작성했다. 워싱턴은 제임스 매디슨과 알렉산더 해밀턴과 협력하여 미국의 미래에 대한 자신의 희망과 우려를 이 연설문에 담아냈다. 이 연설문은 1796년 필라델피아의 한 신문에 처음 실렸으며, 이후 여러 차례 재인쇄되었다.


워싱턴은 이 연설문을 통해 퇴임 이후 미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자 했다. 그는 정당 간 갈등보다 국가적 통합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대외 관계에서는 중립을 유지하여 “자유에 불길한 영향을 미치는… 과도하게 비대해진 군사 조직”이 필요해지는 상황을 경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뉴욕 공립도서관이 소장한 이 원고는 총 32쪽 분량의 워싱턴 자필 원고로, 그의 수정과 교정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최종본이라는 점에서 특히 중요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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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워싱턴(1732–1799). 조지 워싱턴이 직접 작성한 고별 연설문 원고. 
1796년. 도서관의 설립 기증자 중 한 명인 제임스 레녹스는 1848년 경매에서 이 원고를 구입했다. ©The New York Public Library.


토머스 제퍼슨의 자필 <독립선언서> 원본

미국 독립기념일을 맞아 뉴욕공립도서관 슈워츠먼 빌딩에서는 특별한 전시가 열린다. 수많은 방문객이 이 문서를 보기 위해 기나긴 줄을 선다. 바로 토머스 제퍼슨이 직접 작성한 독립선언서 자필 원본이다. 이 문서는 1776년 7월 4일 독립선언서가 공식 채택되기 직전, 제2차 대륙회의(1775~1781)의 치열한 심의 과정에서 원안이 어떻게 수정되고 편집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대단히 중요한 일차 사료다. 특히 제퍼슨의 초안에 포함되어 있던 신랄한 ‘노예무역 비판 조항’이 조지아와 사우스캐롤라이나 등 남부 식민지 대표들의 강력한 반발로 인해 삭제된 역사적 현장을 생생히 증언한다. 이는 미국 독립선언이 전원 일치라는 정치적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어떤 현실적 타협을 거쳤는지 보여주는 단면이다.


7월 4일 최종안이 통과된 이후, 제퍼슨은 대륙회의에 의해 자신의 원안이 훼손되었다고 판단했다. 이에 그는 자신이 지향했던 본래의 문제의식을 보존하고 지인들에게 이를 알리고자, 삭제된 문구에 일일이 밑줄을 그어 차이점을 명시한 필사본을 직접 제작해 배포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평생 수많은 노예를 거느렸던 제퍼슨이 노예제 비판 조항의 삭제를 아쉬워하며 밑줄을 남긴 이 행위는, 미국 건국 아버지들이 지녔던 인권에 대한 복합적이고도 모순적인 태도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제퍼슨의 자필 원본은 5-6부에 불과하며, 뉴욕공립도서관이 소장한 이 문서는 두 번 째로 역시 독보적인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 본 문서는 1896년 뉴욕공립도서관에 기증되었다. 당시 도서관 이사였던 자선가 존 S. 케네디(John S. Kennedy)가 저명한 외과의사이자 미국사 자료 수집가였던 토머스 애디스 에밋(Thomas Addis Emmet)의 컬렉션을 일괄 구입해 기증한 결과물이다. 현재 이 유산은 뉴욕공립도서관 필사본 및 기록보관부의 관리 하에 보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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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선언서의 토머스 제퍼슨 자필 원본. 1776년 7월 4일부터 7월 10일 사이에 작성. ©The New York Public Libr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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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워츠먼 빌딩의 전시 공간에 공개되는 제퍼슨의 자필 독립선언서 사본. ©The New York Public Library


미국 독립선언 250주년 기념 의미

2026년은 미국 독립선언서 서명 250주년을 맞는 뜻 깊은 해이다. 사서로서 나는 이 기념이 단순히 과거의 역사적 사건을 축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유와 평등, 인권, 그리고 민주적 참여라는 가치와 질서, 보편적 정신이 무너져 가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미국의 건국 이념이 인간의 권리와 보편적 자유를 강조한 계몽주의 사상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점은 오늘날에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뉴욕공립도서관은 이러한 역사적 성찰을 돕기 위해 특별전시와 강연, 교육 프로그램, 시민 참여 프로젝트를 꾸준히 운영하고 있다. 사서들은 단순히 자료를 보존하는 역할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용자들이 역사적 기록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고, 스스로 질문하며 탐구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러한 노력은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가진 한국인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방문객들에게도 동일하게 제공된다.


특히 뉴욕공립도서관은 대학도서관과 달리 누구에게나 자료 접근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중요한 사명으로 삼고 있다. 시민과 연구자, 학생은 물론 해외 방문객에 이르기까지 모든 이용자가 동등한 조건에서 학습하고 연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이러한 교육과 문화 프로그램은 250년 전 미국의 건국 아버지들이 세우고자 했던 민주공화국의 이상, 즉 자유와 평등,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오늘날 시민사회 속에서 실천하고 이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독립선언 250주년은 과거를 기념하는 행사를 넘어, 그 정신이 오늘날에도 어떻게 살아 숨 쉬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하는 계기이다. 그리고 도서관은 그 과정에서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며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할 수 있도록 시민들을 돕는 중요한 장소로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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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독립선언 250주년을 기념하여 뉴욕 공립도서관이 새롭게 발행한 기념 도서관 카드. ©The New York Public Library.





글 | 유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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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살며 수많은 책과 희귀 자료를 연구하고, 그 자료와 연관된 도시들을 찾아다니며 먼저 간 이들의 ‘한탄’을 듣고 Dum Spiro Spero(“숨 쉬는 동안 나는 희망한다”)의 삶을 좇고자 애쓰는 소박한 연구자. 두 권의 학술서와 20여 편의 논문을 집필했으며, 특히 2008년 공동 저술한 『Visual Resources from Russia and Eastern Europe in The New York Public Library: A Checklist』는 2009년 ARLIS(미국예술도서관학회)에서 Worldwide Books Award를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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