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공립도서관의 사서][영화] 뉴욕공립도서관에서 만들어진 유명 영화들

2026-08-05


뉴욕공립도서관 사서가 들려주는 역사와 문화 이야기 10



영화 감독들이 사랑한 공간, 뉴욕공립도서관

뉴욕공립도서관의 본관인 ‘스티븐 A. 슈워츠먼 빌딩’은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할리우드 흥행작들이 거쳐 간 최고의 촬영 장소이다. 감독들이 이 건축 명작에 매료되는 이유는 단순히 공간이 아름다워서만은 아니다. 이 도서관이 스크린에 등장하는 순간 ‘뉴욕’이라는 도시의 정체성은 물론, 문화와 교양, 지성과 낭만이라는 이미지를 관객에게 단번에 전달하는 완벽한 시각적 장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도서관 측에서도 공식 자료를 통해 이 건물을 “수십 년간 수많은 영화에 등장한 보자르 양식(Beaux-Arts)의 상징적 건축물”이라고 소개할 만큼, 이곳의 존재감은 독보적이다. 카메라가 웅장한 백색 대리석 계단을 훑고, 황홀한 애스터 홀(Astor Hall)을 지나, 로즈 메인 리딩룸(Rose Main Reading Room)의 높은 천장을 비추는 순간 화면에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깊이감이 더해진다. 입구를 지키는 유명한 사자상과 함께, 이 건물은 단순한 배경을 넘어 맨해튼의 영혼을 대변하는 하나의 독립된 ‘캐릭터’로 활약해 왔다.


이 특별한 공간은 1898년부터 1911년까지 당대 최고의 건축 사무소인 ‘카레르 앤 헤이스팅스(Carrère & Hastings)’가 옛 크로톤 저수지 부지 위에 세운 유산이다. 타임스 스퀘어 인근, 맨해튼의 가장 중심부에서 두 개의 블록을 통째로 차지하고 있는 900만 달러 규모의 대리석 건축물은 보이지 않는 곳에도 영화 같은 반전을 품고 있다. 바로 도서관 뒤편 브라이언트 파크 지하에 숨겨진 2층 규모의 거대한 지하 서고이다. 이곳에는 400만 권이 넘는 장서가 보관되어 있으며, 이용자가 책을 요청하면 컨베이어 벨트와 엘리베이터, 카트로 연결된 정교한 내부 운송 시스템을 통해 단 40분 만에 본관 열람실로 배달된다.


1965년 국가 사적지(National Historic Landmark)로 지정된 뉴욕공립도서관은 이처럼 압도적인 건축미와 보이지 않는 기술적 경이로움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 뉴욕이라는 도시의 가장 완벽한 에센스를 스크린에 담아내고 싶은 감독들에게 뉴욕공립도서관은 언제나 거부할 수 없는 가장 자연스럽고 매력적인 선택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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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뒤편 브라이언트 파크 지하에는 약 400만 권 이상의 장서가 보관되어 있는 2층 규모의 거대한 서고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이 지하 서고는 1989년에 처음 건설되었으며, 이후 2000년대 후반에 추가 확장이 이루어졌다. © The New York Public Library


뉴욕공립도서관 본관을 배경으로 제작된 영화 중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전 세계 남녀노소 모두에게 큰 사랑을 받은 샘 레이미 감독의 《스파이더맨》(2002, 2007) 시리즈다. 주인공 피터 파커의 인생을 바꾼 결정적인 사건과 대사가 바로 이 도서관 앞 계단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또한, 할리우드의 첨단 시각효과 기술이 총동원되었던 재난 영화 《투모로우(The Day After Tomorrow)》(2004) 속 뉴욕공립도서관은 관객에게 압도적인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했을 뿐만 아니라, 다가올 기후변화에 대한 묵직한 경각심을 심어주기도 했다.


시간을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오드리 헵번과 조지 페파드 주연의 고전 명작 《티파니에서 아침을》(1961)이 있다. 이 작품은 도서관이 가진 특유의 우아한 아름다움을 전 세계에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 영화 《섹스 앤 더 시티(Sex and the City)》(2008)는 오늘날 수많은 한국인 여행객들이 뉴욕을 방문했을 때 왜 이 도서관을 필수 코스로 찾게 되는지 그 확실한 이유를 제공한다.


이처럼 뉴욕공립도서관은 단순한 자료 보관소를 넘어, 도시의 기억과 지식, 그리고 시대의 문화적 상징성을 동시에 담아내는 공간으로 자리 잡아 왔다. 이러한 맥락에서 대중문화 속 뉴욕공립도서관이 어떻게 상징적으로 재현되고 있는지 인상적인 작품들을 통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이제 필자와 함께 영화 속 명장면들이 탄생한 실제 촬영 현장으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첫 목적지는 도서관 건물 정면이다.



《Spider-Man》(2002),《 Spider-Man 3》(2007)


45365859480e8.png《스파이더맨》(2002)


그 첫 페이지를 장식할 작품은 세대를 불문하고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은 《스파이더맨》(2002)과 《스파이더맨 3》(2007)다. 영화는 유전자 조작 거미에 물려 초능력을 얻게 된 평범하고 내성적인 고등학생 피터 파커가, 가족의 비극을 겪은 후 진정한 슈퍼히어로로 거듭나는 여정을 그린다. 이 시리즈를 관통하는 유명한 명대사,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With great power comes great responsibility)”는 바로 이곳 뉴욕공립도서관 앞에서 탄생했다.


피터를 도서관 앞에 내려주며 건넨 벤 삼촌의 이 한마디는 영화의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벤 삼촌은 왜 하필 수많은 장소 중 도서관 앞을 택했을까. 어쩌면 가장 평범한 일상이 흘러가는 도서관이라는 공간 앞에서, 피터가 앞으로 마주해야 할 삶의 깊이와 올바른 방향성을 조용히 일깨워주고 싶었기 때문일지 모른다.


도서관 앞에서 헤어진 직후, 벤 삼촌은 예기치 못한 강도 사건에 휘말려 목숨을 잃는다. 이 비극은 피터 파커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고, 삼촌이 마지막으로 남긴 유언은 그의 마음속에 무겁게 자리한다. 한낱 잔소리나 조언처럼 들렸던 그 말은, 이제 피터가 평생 짊어져야 할 숙명이자 책임으로 다가온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피터는 자신의 능력을 개인이 아닌 타인을 위해 사용하기로 결심한다. 처음에는 혼란과 두려움에 부딪히기도 하지만, 경험들이 쌓여가며 그는 점차 진정한 영웅 ‘스파이더맨’으로 성장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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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 양쪽을 지키는 두 대리석 사자는 도서관의 트레이드마크로, 수많은 관광객이 찾고 영화와 TV에 단골로 등장한다.
1930년대 라과디아 시장이 대공황을 버텨낼 뉴욕 시민의 덕목으로 "인내(Patience)"와 "굳건함(Fortitude)"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도서관의 공식 마스코트가 되었다. @Wikipedia Commons.



《Sex and the City》(2008)


a8d7143cd1c59.png《Sex and the City》(2008)


다음으로 발걸음을 옮길 곳은 도서관 2층이다. 이곳에는 약 100m에 달하는 긴 복도가 펼쳐져 있는데, 벽면 전체가 고풍스러운 백색 대리석으로 장식되어 있어 특유의 우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전 세계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영화 《섹스 앤 더 시티(Sex and the City)》(2008)에서 주인공 캐리 브래드쇼(사라 제시카 파커 분)와 그녀의 오랜 연인 미스터 빅(크리스 노스 분)이 결혼식 장소로 점찍은 곳이 바로 이 공간이다. 캐리의 대사처럼, 이곳은 “위대한 사랑 이야기들을 품어온, 가장 전형적이면서도 완벽한 뉴욕의 랜드마크”이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뉴욕공립도서관은 크게 두 번의 결정적인 순간에 등장한다. 첫 번째는 캐리가 《위대한 인물들의 러브레터(Love Letters of Great Men)》라는 책을 반납하러 왔을 때다. 도서관에서 화려한 결혼식 준비가 한창인 모습을 우연히 목격한 그녀는, 그 아름다운 풍경에 매료되어 자신의 결혼식 장소로 이곳을 낙점한다.


16828a9c213b1.jpg영화 속 2층에서 촬영된 결혼식 장면 © New Line Cinema.


그러나 이 낭만적인 공간은 곧이어 지독한 슬픔의 무대로 변한다. 미스터 빅이 결혼식 당일 도저히 차에서 내릴 수 없다며 결혼을 취소하겠다고 통보하는 비극적인 장면이 바로 도서관 메인 로비인 애스터 홀(Astor Hall)에서 촬영되었기 때문이다. 영화 속 명장면의 배경이 된 애스터 홀은 실제로도 결혼식이나 세계적인 패션쇼가 자주 열리는,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공간이기도하다.


흥미로운 점은 영화 촬영 당시 도서관이 월요일마다 휴관했기에, 제작진이 온종일 도서관을 대여해 촬영을 진행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당시 필자의 사무실이 마침 2층에 있었던 덕분에, 사라 제시카 파커를 비롯한 주연 배우들의 열연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뜻밖의 행운을 누리기도 했다. 다만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기 전이라 그 생생한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지 못한 아쉬움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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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을 취소하겠다고 통보하며 슬픔의 무대로 변한 도서관 메인 로비인 애스터 홀(Astor Hall). Wikipedia Commons.



《The Day After Tomorrow》(2004)


58bcbd633e313.png《투모로우》(2004)


이제 2층 복도 끝으로 걸음을 옮겨보자. 이곳은 할리우드의 압도적인 스케일과 기후변화에 대한 경고를 담아냈던 재난 영화 《투모로우(The Day After Tomorrow)》(2004)의 흔적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영화는 급격한 빙하기가 도래한 뉴욕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고립된 도서관을 피난처 삼아 사투를 벌이는 과정을 그린다. 특히 혹한 속에서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도서관의 수많은 책을 불태워 난방 연료로 사용하는 장면은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뉴욕공립도서관 2층에는 ‘트러스티즈 룸(Trustees Room)’이라 불리는 이사회의 방이 존재하며, 이 공간에는 실제로 고풍스러운 벽난로가 설치되어 있다. 트러스티즈 룸은 도서관 내부에서도 오랜 역사와 전통을 상징하는 매우 특별한 장소다. 수많은 도서관 직원들이 이곳에서 은퇴식을 갖는 것을 하나의 꿈이자 명예로운 순간으로 여길 만큼 상징성이 크다. 영화 속 인물들이 책을 태우며 추위를 견디던 극적인 설정은, 바로 이 실존하는 방의 이미지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방문객들도 이 방을 실제로 보고 싶어하지만, 안타깝게도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이 방은 일반인들에게 공개가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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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공립도서관 2층에는 ‘트러스티즈 룸(Trustees Room)’이라 불리는 이사들의 방. 1940s. The New York Public Library


이 벽난로 앞에서는 생존의 기로에 선 인간들의 흥미로운 논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한 생존자가 인류 최초의 금속활자 인쇄본 중 하나인 희귀본을 발견하고 “여기 구텐베르크 성경이 있어요!”라고 외치자, 옆에 있던 이는 대수롭지 않게 “그래서? 태워야죠”라고 답한다. 이때 도서관 사서가 온몸을 던져 이를 가로막는다. 구텐베르크 성경은 인류 역사상 가장 보존 가치가 높은 문화유산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들은 성경 대신 언제든 다시 구할 수 있는 일반 책들을 먼저 태우기로 합의한다. 이 장면은 사상 최악의 재난 속에서도 ‘당장의 생존’과 ‘인류 문명의 유산 보존’ 사이에서의 팽팽한 긴장감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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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텐베르크 성경은 1455년경 인쇄된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성경이다. 뉴욕공립도서관이 소장한 이 완전본은
현존하는 구텐베르크 성경 가운데서도 보존 상태가 뛰어나며, 그 가치는 약 3,500만 달러(약 500억 원)로 추정된다. © 유희권


물론 영화 속 얼어붙은 열람실을 비롯해 도서관 내부에서 벌어지는 모든 수난 과정이 실제 도서관에서 촬영된 것은 아니다. 문화재 보호와 정교한 조명 및 세트 통제를 위해, 제작진은 도서관의 웅장한 외관만 실제 촬영하고 내부는 캐나다 몬트리올의 대형 스튜디오에 그대로 재현해 냈다. 특수효과와 정밀한 세트 조립 기술이 만들어낸 마술인 셈이다. 그러니 혹시라도 도서관의 안위를 걱정했다면 안심해도 좋다. 영화 속 극적인 연출과 달리, 도서관에서 귀중한 책들이 불에 타거나 훼손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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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러스티즈 룸에서 책을 불태워 난방 연료로 사용하는 장면. @Wikipedia Commons.


 

《Ghostbusters》(1984) 고스트버스터즈, 《고스트버스터즈: 겨울왕국》(2024)


5079b05a4a4d6.png《고스트버스터즈》(1984)


이제 도서관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3층으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이곳은 뉴욕을 배경으로 한 SF 코미디의 전설 《고스트버스터즈》(1984)와 그 유산을 잇는 《고스트버스터즈: 겨울왕국》(2024)의 숨결이 있는 공간이다. 영화는 대학에서 쫓겨난 세 명의 초심리학 교수가 뉴욕 한복판에서 유령 퇴치 비즈니스를 시작하며 벌어지는 기상천외한 소동을 그린다. 시리즈의 서막을 여는 가장 기념비적인 첫 유령 출몰 장면이 바로 이곳 3층에 위치한 ‘로즈 메인 리딩룸(Rose Main Reading Room)’에서 촬영되었다. 흥미롭게도 이 장소는 현재 필자가 매일 출근해 근무하고 있는 일터이기도 하다.


본관 건물이 수많은 할리우드 제작진의 원픽(One-pick)으로 선택받는 이유는 그 어떤 세트장도 흉내 낼 수 없는 압도적인 건축미와 상징성에 있다. 특히 축구장만 한 크기를 자랑하는 로즈 메인 리딩룸은 뉴욕에서 가장 아름답고 인상적인 공간으로 손꼽힌다. 감독들에게 이곳은 단 한 프레임의 컷만으로도 ‘뉴욕의 지성’과 ‘역사적 웅장함’을 동시에 스크린에 새겨 넣을 수 있기에 사랑받는 곳이기도하다.


오늘날까지도 《고스트버스터즈》는 뉴욕을 대표하는 문화적 아이콘으로 사랑받고 있다. 이를 증명하듯 매년 원작의 개봉일인 6월 8일을 전후해 뉴욕 전역에서는 “고스트버스터즈 데이(Ghostbusters Day)”라는 거대한 축제가 열린다. 이 시기가 되면 전 세계에서 모여든 열성 팬들이 영화 속 본부 외관으로 등장했던 트라이베카의 ‘훅 앤 래더 8(Hook & Ladder 8)’ 소방서 앞으로 집결한다. 이들은 저마다 유령 퇴치 의상과 프로톤 팩을 매고 기념사진을 찍으며 축제를 즐긴다.


그리고 이 축제 기간에 팬들이 빼놓지 않고 찾는 성지가 바로 뉴욕공립도서관이다. 이야기의 시작점인 '도서관 유령' 사건을 기억하는 수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아 영화 속 명장면을 재현하고 투어를 즐긴다. 이처럼 로즈 메인 리딩룸은 한편에선 매일 지식을 탐구하는 학구적인 공간인 동시에, 수십 년이 지나도 전 세계 팬들을 설레게 만드는 대중문화의 중심으로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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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가 고스트버스터즈 데이 당일 점심 무렵 촬영한 이 사진은,
오늘날에도 얼마나 많은 미국인들이 이 영화를 사랑하고 추억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 유희권


《티파니에서 아침을(Breakfast at Tiffany's)》(1961) 


7aec82e8ce60c.png《티파니에서 아침을》(1961)


이제 다시 1층으로 내려가, 무려 60여 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 대중문화의 영원한 클래식 《티파니에서 아침을》(1961)을 만날 차례다. 영화는 화려한 뉴욕 사교계를 동경하는 자유분방한 여성 홀리 골라이틀리(오드리 헵번 분)가 자신의 아파트 아래층으로 이사 온 가난한 작가 폴 바냑(조지 페파드 분)을 만나며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깨달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영화에서 뉴욕공립도서관은 두 사람의 감정이 싹트는 아주 특별한 데이트 장소로 등장한다. 폴과 홀리는 “살면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들”을 함께 해보기로 약속하고 뉴욕 시내를 누비는데, 그 특별한 하루의 여정 중 한 곳이 바로 이 도서관이다. 화면 가득 담기는 도서관의 웅장한 외관은 고풍스러운 뉴욕의 정취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다만 내부 열람실 장면의 경우, 실제 도서관인지 혹은 할리우드의 정교한 스튜디오 세트장인지에 대해 영화학자들 사이에서 여전히 흥미로운 추측이 오가고 있다.


이 공간이 지닌 로맨틱한 공기는 영화 후반부에 이르러 정점을 찍는다. 폴이 방황하는 홀리를 향해 생애 처음으로 진심 어린 사랑을 고백하는 결정적인 무대가 바로 이 도서관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작품이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까지도 세련되게 읽히는 이유는 공간이 주는 미학뿐만 아니라, 오드리 헵번이 이 도서관 시퀀스에서 선보인 패션 덕분이기도 하다. 그녀가 입었던 클래식한 코트와 선글라스는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보아도 도서관의 대리석 배경과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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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장면에서 폴과 홀리가 사서에게 질문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러나 화면 뒤편 램프 커버가 녹색인 점을 고려하면
실제 도서관에서 촬영된 장면인지 확실하지 않다. 뉴욕공립도서관 리딩룸의 램프 커버는 모두 금색이기 때문에
해당 장면은 실제 공간이 아닌 스튜디오 세트에서 촬영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Wikipedia Commons.



《 존 윅: 챕터 3, 파라벨룸》(2019)


68a94e5c2f10f.png《존 윅: 챕터 3 - 파라벨룸》(2019)


이제 도서관 1층의 42번가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전 세계 액션 영화 팬들의 심장을 뛰게 했던 《존 윅: 챕터 3 - 파라벨룸》(2019)의 흔적과 마주하게 된다. 바로 영화 속 거친 사투의 무대가 되었던 역사및 계보학 부서(History & Genealogy Division, Room 121)다. 세계 최고 수준의 전설적인 킬러 존 윅(키아누 리브스 분)은 은퇴 후 평온한 삶을 꿈꿨으나, 소중한 반려견을 잃은 후 다시 잔혹한 암살자의 세계로 돌아오게 된다. 영화에서 현상 수배범이 되어 쫓기던 존 윅은 숨겨둔 비상금과 무기를 회수하기 위해 밤중에 도서관을 찾는다. 사서에게 그가 요청한 책은 바로 《러시아 민화, 알렉산드르 아파나시예프, 1864년판 (Russian Folk Tale, 1864)》이다. 아파나시예프는 러시아 전역을 누비며 약 600편에 달하는 동화와 민담을 집대성해 기록한 실제 역사 속의 위대한 학자다.


하지만 이 긴장감 넘치는 명장면 속에는 영화적 허구가 숨어 있다. 만약 영화 속 존 윅처럼 완벽하게 일치하는 판본을 찾기 위해 이 방을 방문할 계획이라면 아쉽게도 발걸음을 돌려야 한다. 실제로 그의 저작 중 '1864년판 러시아 민화'라는 타이틀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아파나시예프는 1864년에서 1865년 사이에 신화 관련 논문들을 발표했는데, 그중 1864년에 출간된 소논문 《스카즈카 이 미프 (Skazka i mif, 동화와 신화)》가 존 윅이 손에 쥔 책의 실제 모티브가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거친 숨소리와 피 튀기는 액션이 난무하는 영화 속 이미지와 달리, 실제 121호실은 고요함 속에서 인류의 뿌리와 역사를 연구하는 엄숙한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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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공립도서관의 역사 및 계보학 부서에서 촬영되었는데 존이 러시아 책을 보고 있는 장면.  © Summit Entertainment.



《엑스 리브리스: 뉴욕 공립도서관(Ex Libris: The New York Public Library)》 (2017) 


501bcbdf67b06.png《엑스 리브리스: 뉴욕 공립도서관》 (2017)


이제 본관 도서관을 나와 분관으로 가 보자. 그런데 어떡하나. 분관은 88군데나 있어서 하루에 다 갈 수가 없다. 다행히 한 영화가 분관의 모습을 담아냈다. 《엑스 리브리스》는 다큐멘터리 거장 프레데릭 와이즈먼(Frederick Wiseman)이 연출한 작품으로, 뉴욕공립도서관의 연구도서관들과 88개 분관을 무대로 현대 공공도서관이 사회에서 수행하는 역할을 깊이 있게 탐구한다. 이 영화는 도서관을 단순한 책의 보관소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탐구와 학습, 토론과 교류의 공간으로 조명한다.


특정한 주인공이나 해설자 없이 진행되는 와이즈먼 특유의 관찰 다큐멘터리 형식을 통해 시 낭독회, 시민 강연, 음악 공연, 로봇 제작 수업 등 도서관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활동들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담아낸다. 또한 리처드 도킨스, 패티 스미스, 엘비스 코스텔로 등 여러 문화계 인사들이 등장해 지식과 문화, 민주주의에 대한 대화를 나눈다.


이 밖에도 뉴욕공립도서관은 많은 영화와 드라마의 촬영지로 활용되며 대중문화 속 상징적인 랜드마크로 자리해 왔다. 아래에 소개하는 작품들과 간략한 설명을 통해 뉴욕 공립도서관이 스크린 속에서 어떻게 재현되었는지 살펴보기 바란다.


《You're a Big Boy Now》(1966)

순진한 청년이 뉴욕으로 이주해 차가운 미녀에게 빠졌다가 결국 진정한 사랑을 발견하는 이야기이다.


《Prizzi's Honor》(1985) 프리찌의 명예

사랑, 섹스, 복수를 다룬 블랙코미디로, 마피아 청부살인업자와 프리랜서 킬러가 사랑에 빠지면서 삶과 일이 복잡해진다.


《Regarding Henry》(1991) 헨리에 관하여

총격 사건에서 살아남은 변호사 헨리는 기억을 잃고, 말하기와 걷기 능력까지 다시 회복해야 한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예전 삶에 적응하지 못한다.


《Quiz Show》(1994) 퀴즈쇼

1950년대 후반 의회 소위원회에서 일하는 이상주의적 젊은 변호사가 TV 퀴즈쇼 조작 사건을 밝혀내는 이야기이다.


《The Thomas Crown Affair》(1999)

매우 부유하고 성공한 플레이보이가 예술품 절도로 스릴을 즐기다가 매혹적인 여성 형사를 만나게 된다는 이야기.


《Finding Forrester》(2000) 포레스터 찾기

글쓰기 재능이 뛰어난 흑인 십대 소년이 은둔 작가와 멘토 관계를 맺게 된다는 이야기.


《Maid in Manhattan》(2002) 맨해튼의 메이드

상원의원 후보가 호텔 메이드를 상류층 여성으로 오해하고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이다.


《13 Going on 30》(2004)

13살 소녀가 생일날 게임을 한 뒤 다음 날 아침 30살 여성이 되어 깨어나는 이야기이다.


왜 수많은 영화들이 뉴욕 공립도서관에서 촬영되었을까? 

결론적으로 뉴욕공립도서관이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의 촬영지로 선택된 이유는 단순히 아름다운 배경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도서관은 공식 촬영 정책을 통해 영화 제작과 상업 사진 촬영을 제도적으로 허용해 왔으며, 사전 승인과 사용료 지불, 그리고 폐관 후 촬영이라는 엄격한 조건 아래 할리우드 제작사들과 정식 계약을 맺고 공간을 제공해 왔다. 동시에 모든 장면이 실제 내부에서 촬영되는 것은 아니며, 필요에 따라 외관만 활용하거나 내부 공간을 스튜디오 세트로 재현하는 등 유연한 제작 방식도 함께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욕공립도서관이 특별한 촬영지로 남는 이유는 로즈 메인 열람실을 비롯한 공간이 지닌 압도적인 건축미와 상징성, 그리고 뉴욕이라는 도시가 지닌 문화적 다양성과 역사적 깊이를 한 화면에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도서관은 단순한 촬영 장소를 넘어, 이야기 속에서 하나의 중요한 존재처럼 작용하며, 영화가 필요로 하는 현실감과 상징성을 함께 보여주는 공간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글 | 유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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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살며 수많은 책과 희귀 자료를 연구하고, 그 자료와 연관된 도시들을 찾아다니며 먼저 간 이들의 ‘한탄’을 듣고 Dum Spiro Spero(“숨 쉬는 동안 나는 희망한다”)의 삶을 좇고자 애쓰는 소박한 연구자. 두 권의 학술서와 20여 편의 논문을 집필했으며, 특히 2008년 공동 저술한 『Visual Resources from Russia and Eastern Europe in The New York Public Library: A Checklist』는 2009년 ARLIS(미국예술도서관학회)에서 Worldwide Books Award를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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