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공립도서관의 사서][문학] 뉴욕 도서관이 간직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유산 #2

2026-08-26


뉴욕 공립도서관의 사서가 들려주는 역사와 문화 이야기 #10-2


삶의 무대를 스위스의 몽트뢰 (Montreux, Switzerland)로

1961년, 나보코프는 삶의 무대를 스위스 몽트뢰로 옮겼다. 몽트뢰는 매년 여름 열리는 몽트뢰 제즈 페스티벌로 잘 알려진 도시로, 훗날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를 비롯해 수많은 예술가들이 사랑한 장소이기도 하다. 이곳은 중세와 근대를 거치며 이탈리아와 북유럽을 잇는 교통의 요충지로 번성했으며, 알프스와 레만 호수(Lake Geneva)가 만들어 내는 고요한 풍경 속에서 나보코프는 1977년 생을 마감할 때까지 소설을 집필하고 나비를 채집하며, 언어와 자연이라는 두 세계를 오가며 자신의 삶을 완성해 갔다.


스위스로 떠나기 직전, 나보코프는 잠시 뉴욕공립도서관를 방문했다. 방문 기록에는 그의 서명만 남아 있을 뿐 구체적인 목적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이 공백은 오히려 여러 해석을 불러일으킨다. 그는 어쩌면 훗날 자신의 문학적 유산이 다시 이 공간으로 되돌아오게 될 것을 예감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돌이켜 보면, 그 짧은 방문은 뉴욕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며 도서관의 문을 두드렸던 젊은 나보코프와 세계적인 작가가 된 노년의 나보코프가, 하나의 시간 속에서 조용히 마주하는 장면처럼도 읽힌다.


흥미롭게도 1991년 그의 아들 드미트리 나보코프(Dmitri Nabokov, 1934–2012)가 뉴욕공립도서관을 방문했다. 그의 방문 목적은 아버지의 유품과 원고를 도서관에 매각하는 것이었다. 이 과정은 어머니 베라가 1982년 나보코프 컬렉션의 양도 가능 여부를 뉴욕공립도서관에 문의하면서 시작된 긴 협의의 결실이었다. 당시 도서관의 버그 컬렉션(Berg Collection) 큐레이터였던 로드니 필립스(Rodney Phillips)는 나보코프가 생의 마지막을 보냈던 스위스 몽트뢰를 두 차례 직접 방문하며 원고, 서신, 일기 등 방대한 자료와 유물을 수집, 정리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나보코프의 문학적 유산은 체계적으로 보존될 기반을 갖추게 되었다.


1991년 드미트리의 방문에서 특히 상징적인 장면이 남는다. 그는 아버지의 서명이 남아 있는 기록 옆에 자신의 이름과 날짜를 직접 적었다. 우연인지 혹은 의도된 상징인지, 두 사람의 흔적이 같은 공간 안에 나란히 남게 되었다. 이후 나보코프 아카이브가 뉴욕에 정착한 지 8년이 지난 1999년, 도서관은 Nabokov Under Glass: A Centennial Exhibition(유리관 속의 나보코프: 탄생 100주년 기념 전시)을 통해 작가 탄생 100주년을 기념했다. 이 전시는 러시아어, 프랑스어, 영어로 이어지는 50여 년의 창작 여정을 조명하며, 세 대륙을 넘나든 그의 문학적 삶을 재구성했다. 현재 이 자료들은 모두 뉴욕공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오늘날 나보코프 연구의 핵심 기반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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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코프는 자신의 이름 ‘Vladimir Nabokov’와 러시아어 필명 ‘V. Sirin’을 방문 날짜  1960년 10월 26일과 함께 남겼다. 
31년 후, 그의 아들 드미트리 나보코프가 ‘Dmitri Nabokov, 1991년 3월 27일’이라는 서명을 더했다. ©The New York Public Library



사서가 스위스에서 만난 나보코프

러시아 컬렉션 스페셜리스트로 일하던 나에게 오래전부터 이어오던 질문이 하나 있다. 왜 나보코프는 생의 마지막을 스위스에서 보냈을까? 그리고 왜 알프스 자락의 작은 도시 몽트뢰를 선택했을까? 특히 레만호를 따라 펼쳐진 이 조용한 풍경 속 한 호텔을 마지막 거처로 삼았다는 사실은 오래도록 궁금증으로 남아 있었다. 한 전기 작가는 이에 대해 “그가 러시아를 떠나기 전 기억 속 고향의 풍경과 몽트뢰의 자연이 어딘가 닮아 있었기 때문일 것”이라는 흥미로운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2019년 5월, 나는 마침내 그 흔적을 따라 몽트뢰를 방문할 기회를 얻었다. 비가 내리던 어느 오후, 친구와 함께 나보코프가 오랜 기간 머물렀던 페어몬트 르 몽트뢰 팰리스(Fairmont Le Montreux Palace)를 찾았다. 관광객의 모습으로 찾아온 우리를 본 호텔 직원들은 처음에는 다소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내가 뉴욕공립도서관에서 러시아 컬렉션을 담당하며 나보코프의 과거를 알고 싶어 이곳을 방문했다고 설명하자 곧 태도를 바꾸어 따뜻하게 안내해 주었다. 


매니저의 안내를 받아 나보코프가 머물렀던 6층 스위트룸이 있는 층으로 올라갔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순간, 묘한 긴장감과 설렘이 동시에 밀려왔다. 마치 그 공간 어딘가에 아직도 그의 문장과 기억의 잔향이 남아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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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를 배경으로 르망 호수의 푸른 물결이 펼쳐진 이른 아침, 꽃과 야자수가 어우러진 호텔 앞 길 위로 고요하고 신비로운 정적이 흐른다. ©유희권


6층 벽에는 아내 베라와 마주 앉아 평화롭게 체스를 두는 나보코프의 사진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1925년 베라와 결혼한 그는 유대계 러시아 출신의 아내와 평생을 함께하며, 그녀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서 문학 활동을 이어갔다. 베라는 단순한 배우자를 넘어 비서이자 타이피스트, 편집자, 교정자, 번역가, 문헌 정리자, 에이전트, 법률 고문, 그리고 때로는 운전기사 역할까지 수행하며 그의 문학 세계를 실질적으로 떠받친 존재였다. 나보코프가 롤리타의 미완성 원고를 파기하려 했을 때 이를 만류한 인물 베라였다. 베라가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나보코프의 문학 세계는 존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문 옆에 걸린 동판에는 ‘Vladimir Nabokov Suite 65’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고, 그 표기가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마치 그가 여전히 그 공간 어딘가에 머물고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순간적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 보고 싶은 충동이 들었지만, 매니저는 해당 객실이 현재 일반 객실로 운영되고 있으며 사전 예약 없이는 출입이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비록 내부로 들어가 보지는 못했지만, 6층 복도를 채운 사진들과 안내 표식들은 나보코프와 베라가 함께한 시간의 결을 충분히 전해주고 있었다. 그 공간은 단순한 호텔의 한 층이 아니라, 한 작가의 생애와 기억이 마지막까지 머물렀던 조용한 기록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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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층 전체를 빌려 머물던 시절, 복도에 걸린 사진들 가운데 아내 베라와 체스를 두는 나보코프의 진지하면서도 우아한 모습. ©유희권


다시 로비로 내려와 매니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호텔 로비 한쪽에는 전시 진열관이 마련되어 있었고, 그 안에는 나보코프의 작품과 관련 자료, 그리고 그를 기리는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17년이라는 긴 시간을 이곳에서 보내며 글을 쓰고, 나비를 채집하고, 베라와 함께 정원을 거닐던 거장의 흔적이 공간 곳곳에 스며 있는 듯했다.


매니저는 이곳을 찾는 많은 러시아 방문객들이 나보코프의 유작과 자료는 지금 어디에 보관되어 있는지 묻는다고 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그 답을 정확히 알지 못해 곤란했던 적이 많다고 한다. 나는 그 자료들이 현재 뉴욕의 뉴욕공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말해 주었다. 그러자 놀란 표정으로, 이제부터는 투숙객들에게 정확히 안내할 수 있겠다며 함박 웃으며 기뻐했다.


왜 나보코프는 생의 마지막을 몽트뢰에서 보냈을까? 마지막 거처를 방문했다고 그 이유를 알 수 있게 된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가 이곳에서 잃어버린 고향의 감각을 발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눈 덮인 알프스 산맥이 지척에 펼쳐지고, 그 아래로 레만 호수의 푸른 물결이 반짝이며, 꽃길 ‘셰망 플뢰리(Chemin Fleuri)’를 따라 야자수가 늘어선 몽트뢰의 풍경은 그에게 어린 시절 러시아 비라(Vyra) 영지에서의 평화로운 기억을 떠올리게 했을지도 모른다. 평생 망명자로 살아야 했던 나보코프에게 몽트뢰는 단순한 거주지가 아니라, 잃어버린 고향의 감각을 대신해 준 마지막 안식처였던 셈이다.



나보코프의 유산

나보코프는 1977년 7월 2일 몽트뢰에서 기관지염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해는 화장되어 인근 클라랑스 묘지(Clarens Cemetery)에 안장되었다. 그러나 그의 삶은 그곳에서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었다. 러시아 귀족 가문의 아들로 태어나 혁명으로 조국을 잃고, 베를린과 파리, 미국을 거쳐 스위스에 정착하기까지 그의 생애는 20세기 망명자의 역사 그 자체였다. 그는 Lolita와 Pale Fire를 비롯한 걸작들을 남긴 소설가였을 뿐 아니라, 나비 연구에 평생을 바친 열정적인 자연학자이기도 했다. 그의 작품 세계에는 기억과 망명, 상실과 아름다움, 그리고 사라진 세계를 붙잡으려는 집요한 시도가 깊숙이 스며 있다.


오늘날 몽트뢰에는 그가 머물던 호텔이 남아 있고, 클라렌스 묘지에는 그의 흔적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나보코프의 삶과 문학을 가장 깊이 만날 수 있는 곳은 역설적이게도 뉴욕일지 모른다. 그의 원고와 서신, 노트, 연구 자료 등 방대한 문학 유산이 뉴욕공립도서관의 버그 컬렉션에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보코프는 예브게니 오네긴 (Eugene Onegin) 서문에서 이렇게 썼다.


“예술가는 출판 후 원고를 가차 없이 파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학문적 범재들이 삭제된 초고를 연구함으로써 천재의 신비를 풀 수 있다고 착각하게 된다. 예술에서 의도와 계획은 아무것도 아니며, 오직 결과만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의 바람과는 달리, 최종 작품과 함께 방대한 초고와 자료들은 보존되었다. 덕분에 오늘날 독자와 연구자들은 완성된 텍스트뿐 아니라 그 작품이 탄생하기까지의 사고 과정과 흔적까지도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혁명으로 조국을 떠난 뒤 베를린, 파리, 미국, 그리고 스위스를 거쳐야 했던 한 망명 작가의 기억은 이제 대서양 건너 뉴욕에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지금 나보코프를 만나고 싶다면 몽트뢰의 호숫가를 거닐거나 클라렌스 묘지를 찾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지만, 그의 문학과 사유의 가장 밀도 높은 흔적을 따라가고 싶다면 뉴욕공립도서관의 조용한 열람실을 찾는 편이 더 좋은 방법일지도 모른다.




글 | 유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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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살며 수많은 책과 희귀 자료를 연구하고, 그 자료와 연관된 도시들을 찾아다니며 먼저 간 이들의 ‘한탄’을 듣고 Dum Spiro Spero(“숨 쉬는 동안 나는 희망한다”)의 삶을 좇고자 애쓰는 소박한 연구자. 두 권의 학술서와 20여 편의 논문을 집필했으며, 특히 2008년 공동 저술한 『Visual Resources from Russia and Eastern Europe in The New York Public Library: A Checklist』는 2009년 ARLIS(미국예술도서관학회)에서 Worldwide Books Award를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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