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트리올에서 보낸 가을]나무, 숲, 안개, 그리고 베생폴

몬트리올에서 보낸 가을 #6



샤흘르부아 지역의 작은 마을인 베생폴Baie-saint-paul로 가는 길에 우리가 기대했던 것은 흔히 메이플 로드라고 불리는 새빨간 단풍길이었다. 지대가 낮을 때까지만 해도 푸른 잎과 울긋불긋한 잎이 한데 어울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지만 산 위로 올라가면서 풍경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자작나무, 스트로브잣나무, 발삼전나무가 늘어나고 숲은 뾰족해졌다. 표지판은 순록이 언제든 차도로 뛰어들 수 있음을 경고했다. 펜스 너머엔 인간이 어림짐작을 넘어서는 무한한 땅이 도사리고 있었다. 열심히 지워나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도로는 외로워 보였다. 도시에선 공원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을 전시해 둔다. 하지만 이곳에선 대자연 안에 포장도로라는 실낱같은 증거로 문명을 전시해 두었다. 갈 수 있는 곳보다 갈 수 없는 곳이 훨씬 더 많은 대륙의 드넓음을 커튼 사이로 엿본 기분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풍경에 압도되는 일이 드물어 져. 여행은 역시 감수성이 충만한 이십 대 초에 다녀야 하는 건가 봐.”


차를 몰던 M이 그렇게 말했다. 과연 그녀의 말은 사실이라 나 또한 가슴 벅차오르는 기쁨까지는 맛보지 못했다. 몇 번의 감탄, 탄식 비슷한 감탄만 있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나는 숲의 껍질 안쪽을, 숲의 심장을, 그 숲 너머의 숲을 상상했고, 여행이 언젠가 닿을 그곳을 향해 계속되기를 바랐다.




"실제로 몇십 년 전엔 어느 귀부인의 방이었을 게 분명했다."



베생폴의 B&B. 커다란 캐리어는 두 개나 되고, 몬트리올에서 머무는 동안 늘어난 M의 책과 노트가 담긴 손가방이 또 하나 묵직하게 놓여있으니, 하룻밤 묵고 갈 곳에 여장을 푼다는 말은 성립하지 않았다. 반쯤 열린 지퍼를 통해 캐리어는 약삭빠른 조개처럼 입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옷이며 화장품이며 그런 것들을 토해냈다. 우리가 잡은 B&B의 방은 그리 큰 편이 아니었다. 그나마 화장실을 공동으로 써서 이 정도 공간이 나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방 크기에 불만을 가질 새는 없었다. 아담한 귀부인 같은 방에 마음을 홀랑 빼앗겼기 때문이었다. 아니, 실제로 몇십 년 전엔 어느 귀부인의 방이었을 게 분명했다.


페인트칠이 벗겨진 침대, 꽃 모양 천장식이 달린 베개, 자그마한 세면대와 둥그런 거울을 둘러싼 화려한 부조, 그리고 1930년대에 찍었을 법한 흑백 사진 몇 장. 벽은 연청색으로 칠해져 있었는데, 고흐가 아를에 머물며 그린 그의 방에서 바닥에 칠해져 있던 바로 그 색깔이었다. 이 방에 이 시대의 물건이라곤 없는 것 같았다. 하나 있다면 오목한 브라운관 텔레비전일 텐데, 그마저도 이 세기의 물건은 아니었다. 어쩌면 컬러가 아닌 흑백텔레비전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내가 예약을 한 곳이긴 한데 정말 내가 여기서 묵는 것인지, 어리둥절한 기분을 떨치지 못하고 있었다. 원래 저택이었던 곳을 숙소로 바꾸면서 B&B의 주인은 지금껏 각 방에 쌓인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남겨두기로 했다. 고마운 결정이었다. 이런 표현이 어울리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방은 정말 아름다웠다.



괴테는 철저한 지식 없이는 진정한 즐거움을 누릴 수 없다고 했다. 식물학, 지질학을 꿰고 있고, 본인은 겸손하게 부정하지만 건축, 회화, 조각에도 일가견이 있으며, 어쨌든 이탈리아를 여행하기 전에 이미 그곳의 유적 하나까지 상세하게 공부를 하고 떠났던 그에게 여행은 자신이 아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세밀한 관찰과 거기서 비롯된 감탄은 그의 후기 작품에 커다란 자양분이 되었다.


덕분에 다소 지루하기도 했던 그의 이탈리아 기행문을 읽고 나서 나는 태생적인 불리함을 느꼈다. 베생폴에서 보낸 하루 저녁을 백지에 옮겨야 하는데, 도대체 무어라 써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이 작은 마을에 관해 알고 있는 흥미로운 정보라고는 ‘태양의 서커스’가 바로 이곳에서 시작됐다는 것뿐이었다. 물론 세계적인 서커스의 기원이라는 정보만으로는 이 마을을 묘사할 수 없었다. 나는 이곳의 집이 어떤 돌로 지어졌고, 가로수로는 무슨 나무가 심겨 있으며, 베생폴 성당이 정확히 어떤 건축 양식인지 알지 못했다. 매번 여행할 때마다 일종의 상실감을 느끼는 이유는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반쪽짜리 아름다움에 눈이 멀고 있다는 데, 그래서 처방전보다 적은 약을 투여한 것처럼 금세 미혹의 효과가 사라져 버린다는 데 있었다.


훗날 글을 쓸 때는 뭉그적거릴지 몰라도, 베생폴에 도착한 당일엔 우리도 지체 없이 움직였다. 이미 해가 저물고 있었고, 차를 타고 숙소로 오며 언뜻 보았던 마을의 풍경을 얼른 더 가까이, 하나라도 더 많이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나에게 공주나 귀부인의 취향이 있는 것은 아닌데 그럼에도 소품 하나까지 자세히 관찰하고 싶었던 B&B의 방도 일단은 뒤로 해야만 했다. 그것이 꽤 사무치는 결정이었음을 숨기진 않겠다.




"아담한 집과 상점 사이를 걸을 때도 마을 전체가 동화의 배경 같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B&B의 뒷문으로 나가면 집만큼이나 아담한 정원이 나왔다. 절대로 정원 밖으로 나가지 않는 고양이 한 마리가 하룻밤 이방인인 우리에게 애교를 부렸다. 녀석에게 인간은 모두 한 종류, 자신에게 애정을 보이며 배나 턱을 쓰다듬어 주는 그런 존재인 모양이었다. 정원을 한 바퀴 돌자 나는 현실적인 삽화가 포함된 어떤 동화책을 읽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책이 뭐더라, 영화로도 봤었는데. 나중에야 그 작품이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의 『비밀의 화원』이었음을 기억해 냈다. 저택의 숨겨진 방 안에 불운한 콜린이 울고 있을 것 같기도 했고, 뒷마당 한쪽 구석엔 아무도 들어간 적 없는 정원으로 연결된 비밀의 문이 덤불로 가려져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물론 그러기에 저택이나 정원이나 턱없이 작긴 했지만.


아담한 집과 상점 사이를 걸을 때도 마을 전체가 동화의 배경 같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넝쿨조차 붉게 물들어 이곳이 가을의 여신의 영토임을 증명했고, 누더기를 걸친 호박 머리 허수아비는 여신의 충실한 심복 같았다. 주전부리를 파는 식료품점은 얼핏 테마파크의 매점 같은 형색이었다. 당신이 문간을 넘어들어온 순간, 그 한 걸음은 그 이전 한 걸음과 같지 않을 거라고 피력하는 듯했다. 환상적인 분위기에 취해 이 가게가 마을 사람들을 위한 곳일까 곰곰 생각해 보았다. 오롯이 그런 의도였다면 베생폴의 주민들만큼 축복받은 사람들도 없을 것이었다.



베생폴의 개척자들이 일부러 중세와 근대의 건축 양식으로 집을 지었을 수도 있다는 의심도 분명 있었다. 그렇게 해서 그들 자신에게도 이국적으로 느껴지는 동화 속 풍경을 만들려고 했는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그 덕분에 캐나다 국내외의 관광객들이 끊임없이 이곳으로 몰려들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곳을 단순히 테마파크라 부르기에는 찜찜한 구석이 있었다. 세월과 일상의 단서들이 곳곳에 보였기 때문이었다. 비바람에 탈색되고 덤불에 점령당한 벽, 커튼 사이로 새어 나오는 거실 스탠드와 텔레비전의 불빛, 무심코 걸음을 멈추게 하는 술잔 부딪히는 소리와 그 뒤를 잇는 사람들의 웃음소리. 그 소리를 되짚어가면 나도 그 자리에 초대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환상에 사로잡히곤 했다. 동화 속에선 한겨울에 불쑥 찾아온 이방인을 반갑게 거실로 들여 따뜻한 우유를 대접하는 일이 왕왕 벌어지곤 하니까.


거리를 배회하는 다른 여행자들도 나와 비슷한 처지로 보였다. 그들 역시 요정이나 난쟁이, 이름이 잊힌 귀족이나 이누이트의 신비스럽고 왁자지껄한 모임에 초대받기를 고대하며 방황하는 중이었다. 우리는 삽화 속에서 아주 멀찍이 그려져 거의 그림자처럼 보이는 인물들, 널찍한 행간을 배회하며 독자의 상상 속으로 넘어올 길을 찾는 조연, 행인, 엑스트라 들이었다.



중심가는 그리 넓지 않았다. 끝에서 끝까지 걷고도 시간이 남아, 갑자기 빵이 먹고 싶어진 M을 위해 베생폴 외곽에 있는 빵집으로 차를 타고 나섰다. 이 시간에 문을 연 곳이 거기밖에 없었고, 평가도 꽤 좋은 편이었다. 그러다 길을 잘못 들었다. 우린 어느새 어두컴컴한 산 중턱까지 올라와 있었다. 헤드라이트 불빛 외에 의지할 곳 없는 시커먼 산길은 동화책 너머의 현실, 그것도 아직 쓰이지 않은 현실의 페이지처럼 보였다. 내비게이션은 불법 유턴이라도 해서 얼른 돌아가라고 되풀이해 경고했다. 그녀의 말투는 딱딱했고, 왜 이런 실수를 했느냐고 질책하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자신도 이 길과 이 길 너머의 세상에 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는 뉘앙스였다. 십오 분여를 되짚어 마지막 남은 빵 한 봉지를 사고 마을로 돌아왔다. 마을 어귀에서 본 맥도날드, IGA 마트, 주류를 파는 SAQ가 베생폴과 세상을 구분하는 경계선이었다. 불과 삼십 여분 사이에 현실과 동화 속을 오가느라 피곤해진 우리는 일단 숙소로 되돌아와야만 했다.


방은 여전히 시간을 멈춘 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길을 잃었던 산길이 현실의 극에 있다면, 이 방은 동화의 극에 있는 셈이었다. 베생폴은 하룻밤 동안 누군가 말로 해주는 이야기처럼 내일이면 사라지고 말 시한부의 이야기, 그래서 사소한 대목 하나까지 전부 음미하고 싶은 그런 이야기였다. 단 한 번 주어지는 기회가 동반하는 묘한 두근거림에 취했다. 그러니 해가 뜨기 전까진 부러 달콤한 꿈에서 깰 이유가 없었다.





글/사진 신태진

여행 매거진 BRICKS의 에디터. 『홍콩단편, 어쩌면 익숙한 하루』의 공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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