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나라 코스타리카]화려한 에코 관광지의 그림자

행복의 나라 코스타리카 #6



파나마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푸에르토 비에호 델 탈라망카Puerto Viejo de Talamanca로 가는 길이었다. 수도인 산호세에서 자동차로 다섯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지만 친절한(?) GPS의 오류 남발로 거의 일곱 시간이 걸려서야 도착하게 되었다. 3300미터가 넘는 투리알바 화산Turrialba Volcano을 지나 안개인지 구름인지 분간이 안 되는 자욱한 길을 구불구불 한참이나 달리니, 높고 낮은 나무와 관목들이 울창한 숲이 아니라 자로 잰 듯 같은 높이의 일정한 규모로 자라고 있는 나무숲이 나타났다. 끝없이 이어진 바나나와 파인애플 플랜테이션1)이었다.


말로만 듣던 대농장 플랜테이션을 실제로 보니 기분이 묘했다. 농장의 규모는 어찌나 광활한지 거의 지평선까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지나가면서 본 간판은 주로 델몬트, 돌, 치키타 등 다국적 대기업들이었는데 플랜테이션을 홍보하기 위한 관광객 투어도 하는 것 같았다. 엄청난 규모의 대농장을 조금 지나니 이번에는 수확한 바나나와 파인애플을 지체 없이 실어 담아 수송할 컨테이너 박스들이 무지하게 쌓여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선박 분야에서 근무했던 나로서도 부산항이나 함부르크항 외에 이렇게 많은 컨테이너 박스를 한 곳에서 보기는 처음일 정도였다. 여기서 선적된 바나나와 파인애플은 트럭에 실려 가까운 캐리비안 쪽 리몬 항에서 미국과 유럽 등지로 수출되어 나간다.



엉터리 GPS 덕분에 길을 돌아가지 않았다면 이런 구경은 못했을 것이라고 신기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온통 자연주의 친환경주의를 외치면서 이런 생태파괴적인 플랜테이션을 운영하도록 내버려두는 코스타리카가 약간 모순적이게 느껴졌다. 이 플랜테이션이 들어서기 이전에는 분명 빽빽한 열대삼림이었을 것이다. 플랜테이션을 경작하기 위해 그 삼림을 다 밀어내거나 불태울 때, 사라진 것은 몇 백, 몇 천 그루의 나무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 아래 조화롭게 살아가던 새들, 곤충, 동물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말레이시아를 여행했을 때다. 쿠알라룸푸르에서 싱가포르 방향으로 운전해 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사방이 잠잠하다 못해 섬뜩할 정도로 고요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야자나무 플랜테이션 지역을 지나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저기 자유롭고 방대하게 자라나는 열대우림 대신 도로 양쪽으로는 규칙적으로 심어진 야자나무가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팜유를 생산하기 위해 열대우림을 모두 밀어내고 야자나무를 심은 다국적 기업의 땅이었다. 새 한 마리 울지 않았고 야자나무 말고 다른 생물은 없는 듯 했다. 여기에 살던 그 많던 새들과 동물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대규모 플랜테이션이 거기에 서식하고 있던 동식물만 내쫓은 것은 아니었다. 매해 같은 농작물을 수확하기 때문에 쇠해지는 지력을 보완하기 위해 쏟아 붓는 화학비료와 해충을 박멸하기 위해 뿌려대는 농약은 주변 경작지까지 황무지로 만들고 지하수와 주변 식수를 오염시킨다. 실제로 코스타리카 플랜테이션 근교 지역 주민들은 수돗물에 농약이 섞여 나오는 바람에 정부에서 주기적으로 공급하는 물탱크 트럭에 식수를 의존하고 있다고 한다.


플랜테이션은 인권 착취의 온상이 되기도 한다. 푸에르토 비에호가 있는 리몬 주는 남미 또는 캐리비안의 여러 섬에서 일자리를 찾아 불법으로 입국한 외국인들이 많은데 이들이 플랜테이션으로 흘러 들어가 일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기업주들은 이들의 불법 이민자의 지위를 악용하여 낮은 임금과 열악한 생활환경 속에 방치하며 노동력을 착취한다. 이들은 정식으로 등록된 거주민이 아니기 때문에 정부 당국의 관리 감독이 쉽지 않다. 이러한 실상을 알고 나면 코스타리카의 너무나 저렴한 바나나와 파인애플의 가격이 환경 파괴와 희생된 노동력에서 온 것이라는 걸 알게 된다.



플랜테이션과 더불어 코스타리카의 친환경적 이미지를 좀먹는 어두운 그림자는 바로 폭발적인 관광 산업의 확대이다. 코스타리카가 새로운 관광지로 각광받으면서 최근 이곳을 찾는 관광객이 크게 늘었다. 특히 아름다운 자연과 수준 높은 의료 시설 때문에 퇴직 후 아예 정착하러 오는 북미나 유럽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니카라과와 국경에 접해 있는 과나카스테 반도나 아래 오사 반도에는 호화로운 호텔이나 거주용 빌라가 많이 들어섰다.


관광객과 이주민의 증가는 자연 호텔과 가정 식수의 부족과 수질 오염을 불러 일으켰다. 몬테베르데Monteverde에 위치한 돈 후안 커피 농장에 견학을 갔을 때였다. 커피가 생산되는 과정을 매우 자세하고 재미있게 설명해주었고 마지막에는 갖가지 다른 로스팅의 커피를 시음하는 기회까지 제공해서 매우 만족스러운 투어였다. 농장의 주인인 후안 아저씨도 듬성듬성 빠진 이를 드러내며 따뜻한 미소를 지어주고 지나갔다. 큰 농장의 주인이었지만 다른 소작농들과 다름없는 매우 소박한 차림이었다.


이 농장은 여느 커피 농장처럼 커피 재배를 전문으로 하여 커피를 수확하고 번 돈이 주요 수입원이었다. 그러나 호텔이 늘어나고 관광 시설이 확대되면서 물 소비량이 늘어 수도세가 크게 올랐고 인건비도 많이 오르게 되었다. 그들이 찾아낸 해법은 생산량을 줄이고 관광객에게 커피 농장 투어를 시켜주는 것이었다. 관광객이 늘면 국가의 수입이 느는 게 당연하지만, 문제는 그 수입이 골고루 나뉘지 않는다는 것이다. 코스타리카에서 관찰한 신기한 점 하나가 바로 부유층 대부분이 옛 스페인 정복자들의 후손들이라는 점이었다. 정복자의 후손은 번창하고 평화롭게 잘 살던 땅을 침범당한 토착민의 후예들은 아직도 가난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점이 바로 코스타리카의 노후한 차량들이다. 나름 중남미에선 높은 소득 수준을 자랑하면서도 도로를 점령하고 있는 차량들은 거의 생산된 지 20년은 훌쩍 넘은 차들이다. 버스들도 다들 너무 오래돼 한 시간 정도 앉아 있으면 자체적으로 내뿜는 안팎의 매연과 미세먼지 때문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몬테베르데처럼 험한 산지를 오가는 버스들을 타면 모든 부속품이 덜덜거리다 튀어나오지는 않을지 내내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오래되어 보이지 않는 멀쩡한 차량들도 매연이 어찌나 심한지 모른다. 조깅을 좋아하는 나로서도 도로변에서 뛰는 것은 포기했다. 시커먼 매연을 뿜어대는 차들이 지나가면 조깅 때문에 건강해지기는커녕 중금속 중독이라도 걸릴까봐 두려웠다.



사실 코스타리카는 제조업이 발달하지 않아 차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공산품을 수입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4천원에 팔리는 중국제 우산이 코스타리카에서는 1만 3천 원을 훌쩍 넘을 정도다. 하지만 청정 자연을 외치는 코스타리카에서 대중교통의 대기 오염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은 조금 이해하기 어렵다.


물론 이 모든 불만과 우려를 감안하고서라도 코스타리카는 여전히 내게 가장 살고 싶은 나라이다. 사람은 자연을 떠나서는 살 수 없고 자연이 살 수 없는 곳에 사람도 살 수 없다는 것, 어제에 얽매이고 내일에 초조해하기 보다 오늘을 감사히 여기고 지금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려는 마음 넉넉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 코스타리카는 내가 어디 있는 지금도 내게 행복해지는 비결을 전해주고 있다.



편집자 주 1) 특정 농작물을 단일경작(單一耕作)을 하는 기업적인 농업경영. 제국주의 시대에는 서구 제국에 의해, 현재는 다국적기업 또는 현지민에 의해 주로 운영되고 있다.

※ 모든 사진은 본문의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글 강수진

코스타리카의 유엔평화대학에서 지속가능한 개발을 전공했다. 지구별의 모든 사람이 환경친화적이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정책 입안을 연구하고 있다. 현재는 홍콩에 거주 중이며, 『홍콩단편, 어쩌면 익숙한 하루』의 공동 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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