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성에 가면 #2
로스앤젤레스로 휴가를 떠나 온 건 음악 상점 때문이었다. 아가일 애비뉴(Argyle Avenue)와 할리우드 대로(Hollywood Boulevard)가 만나는 곳에 자리한 아메바 뮤직(Amoeba Music). 영화 제목으로도 유명한 선셋 대로(Sunset Boulevard)에서 지난해 봄 지금의 장소로 이전했다고 한다.
로스앤젤레스의 아메바 뮤직
아메바 뮤직은 전 세계 최대 음악 및 영화 독립 상점을 표방한다. 1990년에 설립되어 CD의 흥망성쇠를 다 견뎌내며 32년 동안 수많은 대중음악, 영화 애호가들의 발길을 품어주었다. 거의 모든 음악 장르를 망라한 바이닐과 CD, 비디오, 서적, 각종 음악 장비, 액세서리, 그리고 나의 최우선 쇼핑 순위인 음악 티셔츠까지.
아메바의 문을 들어서면 케빈 코스트너 주연 1989년 작 〈꿈의 구장(Field of Dreams)〉에서의 명대사를 떠오른다.
여기가 천국인가요?

아메바 뮤직 직원들이 계절마다 발행하는 무료 무크지 「우리가 좋아하는 음악」을 펼쳐 들면 바야흐로 탐험이 시작된다. 대표 칼럼의 제목은 ‘듣고서 당신의 음악 두뇌를 키워보시라(Hear Your Brain Bigger)’.
“나는 왜 익숙하지 않은 음악을 듣는가?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혹은 예전엔 호감 따위 느끼지 못했던 장르의 음악이었는데, 대체 왜 듣고 있는가? 내 경우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이렇다. 내가 나이를 먹고 변해가면서 그 음악에 반응했던 귀와 두뇌 또한 변해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이다. 나와 함께 내 취향도 변했고, 지금도 변하고 있다.”
취향이 변하며 새로이 발견되는 음악, 그 죽여주는 음악의 감흥을 남들에게 전해주지 않고는 못 배기는 음악 마니아들이 매장 곳곳에 추천의 메시지를 남겨 놓았다. 플레이리스트는 공유되어야 한다. 취향의 우주 속을 디깅(digging)하는 모습은 신성해 보이기까지 한다.


첫날의 쾌거는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라이브 앨범 《Bruce Springsteen & The E Street Band : Live 1975-85》이었다. 30여 년 전, 그러니까 아메바 뮤직이 세워지기도 전에 서울 황학동의 단골 중고 레코드숍에서 불법 해적판으로 접했던 다섯 장짜리 추억의 앨범이 LP 패키지 판형의 CD 세트로 매대에 올라와 있었다. 그것도 단돈 9달러에.
《Bruce Springsteen & The E Street Band : Live 1975-85》
닷새 동안 모든 저녁 시간을 아메바 속을 부유하며 보냈다. 호텔로 돌아가도 탐험은 끝나지 않았다. 창문을 열고 바로 건너편 아메바 뮤직의 불 켜진 간판을 보며 내일의 ‘득템’을 기원했다.

새로운 티셔츠는 사지 않겠다는 다짐도 아주 쉽게 무너졌다. 떠나는 날 트렁크에 열 장의 음악 티셔츠를 포개어 넣었다. 그리고 국내에서 쉽게 구할 수 없던 마일즈 데이비스와 그랜트 그린, 카운트 배시 등의 중고 앨범들. ‘킹달러’의 위협에도 대개 7천 원을 넘지 않는 다정함에 마음이 끌리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할리우드 매장이나, 버클리, 샌프란시스코 지점을 직접 방문하는 것이 아메바를 느끼는 최고의 경험이겠지만, 온라인에서도 근사한 대리 경험을 누릴 수 있다. 장르를 망라한 스타 뮤지션들이 쇼핑한 앨범을 하나씩 꺼내 들고 설명해 주는 ‘What's In My Bag?’ 유튜브 채널은 음악광들을 더 광적인 상태로 몰아가고, 폴 매카트니, 메탈리카, 레드 핫 칠리페퍼스, 라나 델 레이의 공연 영상은 아메바 뮤직에 가야 한다는 간절한 마음을 부추긴다.

공교롭게도 닷새의 여정을 마치고 떠나는 날 저녁 줄리앙 레논의 공연과 사인회가 잡혀 있었다. 아쉬운 마음을 딛고 마지막 장바구니에 플릿 폭시스의 공연실황 앨범 《A Very Lonely Solstice》를 담는 것으로 아메바식 휴가를 마쳤다. 이 앨범 수록곡 〈Sunblind〉은 이렇게 노래한다.
“한 주 동안 내 친한 벗들과 따뜻한 미국의 물속을 헤엄칠 거야. 에덴동산 초원 높은 곳에서 헤엄을 칠 거야. 너희가 남겨놓은 그 유산을 찾아다니며.”
미국의 물속, 그 에덴동산을 유영하는 아메바.

글/사진 백영훈

1990년대의 팝과 록에 어지러이 매혹당하며, 장래 희망으로 FM 라디오 DJ를 제법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대학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했고, 어렸을 적 바람과는 달리 글로벌 IT기업에서 25년 이상 일을 해오고 있다. 전업의 시간 이편에서는 팝을 비롯한 대중문화 딜레탕트로서의 삶을 즐기며, 여전히 팝 키드로 살기 위해 애쓰고 있다. 지은 책으로 『음악을 입다』가 있다.
나성에 가면 #2
로스앤젤레스로 휴가를 떠나 온 건 음악 상점 때문이었다. 아가일 애비뉴(Argyle Avenue)와 할리우드 대로(Hollywood Boulevard)가 만나는 곳에 자리한 아메바 뮤직(Amoeba Music). 영화 제목으로도 유명한 선셋 대로(Sunset Boulevard)에서 지난해 봄 지금의 장소로 이전했다고 한다.
아메바 뮤직은 전 세계 최대 음악 및 영화 독립 상점을 표방한다. 1990년에 설립되어 CD의 흥망성쇠를 다 견뎌내며 32년 동안 수많은 대중음악, 영화 애호가들의 발길을 품어주었다. 거의 모든 음악 장르를 망라한 바이닐과 CD, 비디오, 서적, 각종 음악 장비, 액세서리, 그리고 나의 최우선 쇼핑 순위인 음악 티셔츠까지.
아메바의 문을 들어서면 케빈 코스트너 주연 1989년 작 〈꿈의 구장(Field of Dreams)〉에서의 명대사를 떠오른다.
여기가 천국인가요?
아메바 뮤직 직원들이 계절마다 발행하는 무료 무크지 「우리가 좋아하는 음악」을 펼쳐 들면 바야흐로 탐험이 시작된다. 대표 칼럼의 제목은 ‘듣고서 당신의 음악 두뇌를 키워보시라(Hear Your Brain Bigger)’.
“나는 왜 익숙하지 않은 음악을 듣는가?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혹은 예전엔 호감 따위 느끼지 못했던 장르의 음악이었는데, 대체 왜 듣고 있는가? 내 경우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이렇다. 내가 나이를 먹고 변해가면서 그 음악에 반응했던 귀와 두뇌 또한 변해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이다. 나와 함께 내 취향도 변했고, 지금도 변하고 있다.”
취향이 변하며 새로이 발견되는 음악, 그 죽여주는 음악의 감흥을 남들에게 전해주지 않고는 못 배기는 음악 마니아들이 매장 곳곳에 추천의 메시지를 남겨 놓았다. 플레이리스트는 공유되어야 한다. 취향의 우주 속을 디깅(digging)하는 모습은 신성해 보이기까지 한다.
첫날의 쾌거는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라이브 앨범 《Bruce Springsteen & The E Street Band : Live 1975-85》이었다. 30여 년 전, 그러니까 아메바 뮤직이 세워지기도 전에 서울 황학동의 단골 중고 레코드숍에서 불법 해적판으로 접했던 다섯 장짜리 추억의 앨범이 LP 패키지 판형의 CD 세트로 매대에 올라와 있었다. 그것도 단돈 9달러에.
닷새 동안 모든 저녁 시간을 아메바 속을 부유하며 보냈다. 호텔로 돌아가도 탐험은 끝나지 않았다. 창문을 열고 바로 건너편 아메바 뮤직의 불 켜진 간판을 보며 내일의 ‘득템’을 기원했다.
새로운 티셔츠는 사지 않겠다는 다짐도 아주 쉽게 무너졌다. 떠나는 날 트렁크에 열 장의 음악 티셔츠를 포개어 넣었다. 그리고 국내에서 쉽게 구할 수 없던 마일즈 데이비스와 그랜트 그린, 카운트 배시 등의 중고 앨범들. ‘킹달러’의 위협에도 대개 7천 원을 넘지 않는 다정함에 마음이 끌리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할리우드 매장이나, 버클리, 샌프란시스코 지점을 직접 방문하는 것이 아메바를 느끼는 최고의 경험이겠지만, 온라인에서도 근사한 대리 경험을 누릴 수 있다. 장르를 망라한 스타 뮤지션들이 쇼핑한 앨범을 하나씩 꺼내 들고 설명해 주는 ‘What's In My Bag?’ 유튜브 채널은 음악광들을 더 광적인 상태로 몰아가고, 폴 매카트니, 메탈리카, 레드 핫 칠리페퍼스, 라나 델 레이의 공연 영상은 아메바 뮤직에 가야 한다는 간절한 마음을 부추긴다.
공교롭게도 닷새의 여정을 마치고 떠나는 날 저녁 줄리앙 레논의 공연과 사인회가 잡혀 있었다. 아쉬운 마음을 딛고 마지막 장바구니에 플릿 폭시스의 공연실황 앨범 《A Very Lonely Solstice》를 담는 것으로 아메바식 휴가를 마쳤다. 이 앨범 수록곡 〈Sunblind〉은 이렇게 노래한다.
“한 주 동안 내 친한 벗들과 따뜻한 미국의 물속을 헤엄칠 거야. 에덴동산 초원 높은 곳에서 헤엄을 칠 거야. 너희가 남겨놓은 그 유산을 찾아다니며.”
미국의 물속, 그 에덴동산을 유영하는 아메바.
글/사진 백영훈
1990년대의 팝과 록에 어지러이 매혹당하며, 장래 희망으로 FM 라디오 DJ를 제법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대학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했고, 어렸을 적 바람과는 달리 글로벌 IT기업에서 25년 이상 일을 해오고 있다. 전업의 시간 이편에서는 팝을 비롯한 대중문화 딜레탕트로서의 삶을 즐기며, 여전히 팝 키드로 살기 위해 애쓰고 있다. 지은 책으로 『음악을 입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