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트리올에서 보낸 가을 #7



영하로 떨어지려던 수은주가 섭씨 이십오 도까지 치솟았다. 하루는 맑고 하루는 흐리고 하루는 비가 오던 날이 반복되다가 그 모든 조화를 관장하는 기계가 과열을 일으킨 모양이었다. “오늘은 따뜻하다고 했어요.” B&B 주인의 말은 겸손한 표현이었다. 정오 알림과 함께 늦여름이 돌아왔다. 인디언 서머였다. 그날 나는 하필 추운 날에만 골라 입는 니트를 입고 있었다. 재킷은 자연스레 차 뒷좌석으로 옮겨져 여태 다 마시지 못한 채 우리와 함께 여행 중인 우유갑을 덮는 데 쓰였다. 그저께 산 우유는 용케 품위를 유지하고 있었고, 그건 우유를 창밖에 내어놓아도 무방한 그런 날씨가 며칠째 계속된 덕분이었다. 우유를 위해서라도 차 안의 온도를 낮게 유지해야 하는 게 아닐까, 우리는 잠시 에어컨을 틀기도 했다.



단풍이 워낙 곱게 지는 곳이라 온타리오 주와 퀘벡 주를 잇는 곳곳의 길을 메이플 로드라 부른다고 했다. 이 말을 캐나다로 단체 여행을 보내던 일본 여행사가 붙였다는 말도 있고, 누군가 미국 버지니아 주의 메이플 로드에 전혀 뒤지지 않는다 하여 – 캐나다는 국기의 심벌부터 단풍잎이 아니던가 – 붙였다는 말도 있다. 본래 캐나다 국기의 단풍잎은 고난에도 지지 않는 프랑스계 캐나다인의 기개를 상징했다. 특히 프랑스계 캐나다인이 많이 모여 있는 퀘벡 주라면 “캐나다의 정신은 이 땅의 핏줄 속에 피처럼 붉은 단풍으로 흐르고 있다”라고 주장해도 무방할 일이었다.


그러나 올해는 지난여름이 너무 길고 따뜻했던 나머지 단풍의 색이 옅었다. 보정을 가했을 게 분명하지만, 어쨌든 사진 속에서 보던 그런 장면은 없었다. 그런 단풍을 보려면 더 북쪽이나 동쪽으로 가야 했던 건지도 모른다. 게다가 흐린 날씨까지 겹쳐 숲 전체가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는 것 같았다. 새벽녘에 어둑한 조명 앞에 앉아 종이를 긁는 시인처럼 아득하게 먼 어딘가로 떠나가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다가 오늘, 해가 뜨고 구름이 걷혔다. 마침내 시 한 편을 완성했지만 시인은 잠들 생각이 없었다. 되살아난 늦여름 햇살은 노란색, 주황색, 홍시처럼 빨간색 이파리 하나하나까지 전부 들추고 다녔다. 뜨내기 여행자 입장에선 과연 우리가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게 맞는가 매 순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미처 발갛게 달아오르지 못한 모과나 오렌지 색깔의 잎이 더 많이 보이긴 했지만, 때때로 보이는 완전체들은 정말 피처럼 붉었다. 충격적인 장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심리처럼 그건 차창 너머로 사라질 때까지 눈을 뗄 수 없는 빛깔이었다.




"어른이 되면 그걸 다 알 수 있을까?"



한때 이름 모를 이국의 시골 풍경을 공책 표지로 쓰는 게 유행이던 시절이 있었다. 공책 제작자들은 초등학생은 읽지도 못할, 문법도 맞지 않는 영어 문장을 그 위에 필기체로 써놓기도 했다. 그 사진들은 공통적으로 가없이 이어진 오솔길과 가로수를 피사체로 삼았다. 원근법의 장난인지 시야가 닿는 길 끝까지 한참을 바라보고 있으면 왠지 모를 그리움이 생겨나기도 했다. 가방에 들어갔다 나오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공책 모퉁이가 둥그렇게 접히고 표면엔 하얀 주름이 질수록, 이미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그 풍경이 어쩌면 내가 날 적부터 알고 있었던 곳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이곳이 어디인지 알 수 있을까? 어른이 되면 그걸 다 알 수 있을까? 그리고 어른이 되면, 이곳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어쩌면 이 길을 한참 걸어 내 윤곽이 흐릿해질 때쯤 누군가 나를 찍어 새로운 아이들을 위한 공책의 표지로 쓸지도 몰랐다.



베생폴에서 퀘벡 시티를 거쳐 몬트리올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핸들만 꺾으면 공책 표지 속 그 길로 갈 수 있으리라는 예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고속도로를 따라 이어지는 좁은 국도에 줄줄이 늘어선 가로수와 그 사이를 천천히 빠져나가고 있는 낡은 자동차 한 대를 보면 예감은 거의 확신의 단계까지 기어 올라왔다. 거의 20년이 흘러 이제 내 차례가 왔다고, 차를 둔덕 위에 세우고 M과 손을 잡은 채 그 길로 멀어진다면, 몇 년 후 오늘의 늦여름처럼 다시 돌아온 복고풍 풍경 사진의 유행에 따라 한 아이가 지루한 수업 시간에 공책 표지 속을 들여다보다가 거의 흐릿해진 우리를 발견할 수 있을 거라고.



그러나 몬트리올로 돌아가는 길을 바쁘기만 했다. 삼 주 동안 빌리기로 한 집의 주인은 고향인 프랑스로 돌아가기 일보 직전이었고, 그녀가 공항으로 떠나기 전에 인사라도 하려면 약속 시각에 맞춰 가야 했다. 결국, 우리를 맞이했던 건 여행과 사진을 좋아하는 이십 대 여성이 아니라 그녀의 남자 친구였다. 이미 공항에서 출국 수속을 밟고 있는 그녀에게 집을 빌려줘서 고맙고 고향에 잘 다녀오라는 메시지를 남기면서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천천히, 어릴 적부터 품어왔던 소망을 이루고 돌아올 걸 그랬나 싶었다. 그러나 오늘은 여기까지였다. 새 집에 짐을 풀면서 메이플 로드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모호한 지난 네 시간의 여정을 복기하는 것까지가 오늘 할당된 행운의 전부였다.


퀘벡 주는, 우리가 지나온 길은, 공책 속 수많은 풍경 중 그 어느 곳도 아님이 분명했다. 아무래도 그럴 리는 없었다. 하지만 공책 속 무명의 풍경에 이름을 붙인다면, 나는 자동차 유리 너머 멀찌감치 보이던 국도의 좌표를 그 이름으로 쓰고 싶었다. 유년 시절에 보았던, 어쩌면 까마득한 과거이고 어쩌면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두꺼운 펜으로 마킹을 하고 싶었다. 언젠가 다시 돌아왔을 때 그곳을 찾는 일이 한결 수월해지도록. 가없이 이어진 가로수 아래를 마침내 걸어볼 수 있도록. 그것은 의아하지만 한편으로는 반가운, 인디언 서머 같은 귀환이었다.





글/사진 신태진


여행 매거진 BRICKS의 에디터. 『홍콩단편, 어쩌면 익숙한 하루』의 공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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