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트리올에서 보낸 가을]나를 멀리 데려다 줄 탈것

몬트리올에서 보낸 가을 #8



어릴 적부터 탈것에 욕심이 없었다. 나와 한 달 차이로 태어난 외사촌은 지나가는 자동차의 그림자만 보고도 그것이 무슨 차인지 알아맞히고는 했다. 엑셀, 르망, 프라이드. 해치백이었던 프라이드는 워낙 생김새가 독특해서 나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지만, 세단은 전부 거기서 거기로만 보였다. 이모부가 소나타에서 그랜저로 갈아타셨을 때, 온 가족이 왜 그렇게 부러워했는지도 알지 못했다.


매년 일곱 가족이 계곡으로 놀러 갈 때면 아이들만 그득 실린 차 안에서 지나가는 자동차 이름 맞히기 게임이 시작되었다. 두 번째로 나이가 많았던 나는 두 번째로 나이가 많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게임이 조금도 즐겁지 않았다. 기름을 가득 채워달라는 의미로 ‘만땅’이라는 말을 쓴다는 것도 그 외사촌을 통해 처음으로 알았다.



운전면허는 스물을 갓 넘어 땄다. 입대하기 몇 개월 전이었는데, 장롱면허 신세를 벗어난 건 그로부터 13년이나 지나서였다. 탈것에 대한 욕심이 없어서 탈것을 살 능력이 없었던 것인지 탈것을 살 능력이 없어서 탈것에 대한 욕심도 없었던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어려서부터 자동차를 좋아하던 아이들이 커서도 때마다 자동차를 바꿀 수 있을 만큼 잘 사는 어른이 된다는 삶의 묘한 이치를 배웠을 뿐이다.


차로 퀘벡을 여행할 때도 국제장롱운전면허증을 소지한 나는 M에게 운전대를 맡길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보조석에 앉아 빠르게 흘러가는 캐나다 동부의 풍경에 마음 놓고 감탄할 수 있었다. 산 중턱에 갑자기 나타나 사람과 사물을 모조리 빨아들였던 자욱한 안개 속에서도 긴장할 필요가 없었다. 우리의 목숨은 너에게 달렸어, 나는 속으로 M에게 말하며 어떤 돌발 상황이라도 잠자코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편안했던 순간보다 부끄러웠던 순간이 훨씬 더 많았다. 그녀에게 운전을 시킬 수밖에 없는 무능력은 어릴 적 자동차 이름 하나 알아맞히지 못했던 무능력과 어떤 지점에서 맞닿아 있었다. 끝없이 양옆을 물고 늘어지는 단풍나무 사이를 달릴 때면 내가 직접 시간을 넘어설 수 있다는 듯 속력을 내고 싶기도 했다. 그 나무들은 우리를 아주 멀리 보내줄 능력이 있다는 듯 비현실적인 모습으로 서 있었다.



몬트리올에서 지내던 어느 날, 공용 자전거인 빅시BIXI를 타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도 자동차에서 비롯된 열등감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아무리 나라도 자전거는 탈 줄 알았고, 도시 곳곳에 설치된 무인 대여소에서 자전거를 빌리는 시스템이 퍽 매력적이었다. 니콜의 집 바로 앞에 있던 대여소, 빅시 스테이션 주변을 한참 맴돌았던 것도 그 시스템에 매료되었기 때문이었다. (서울시의 공용 자전거 ‘따릉이’도 몬트리올의 빅시를 모델로 했다고 한다.) 회원 등록을 하지 않으면 대여료가 비싼 편이었으나 나는 이 미래적으로 생긴 자전거를 꼭 타야만 할 것 같은 다급함을 느꼈다. 가지지 못한다면 빌리기라도 하자고.



수요일 오전은 자전거를 타기 좋은 시간이었다. 차도 많이 다니지 않았고 이 시간에 차를 끌고 시내를 다니는 사람들에게는 자전거가 저 멀리 있어도 미리 멈춰 기다려주는 여유가 있었다. 계단을 코에 단 몬트리올의 특징적인 집들에 온통 정신을 빼앗기며 다녔기 때문에 나는 지금도 그 친절한 운전자들에게 감사하다.


강을 따라 이어진 산책로와 자전거 도로도 붐비지 않았다. 벤치에 홀로 앉은 사람들은 점점 쌀쌀해지는 날씨에 어제보다 더 두꺼운 옷을 입고 있었다. 그들은 생각에 잠겨 있었고, 저 먼 곳을 보고 있었지만 실은 자신의 내면을 보고 있는 듯했다. 바닥에 누운 낙엽들은 속도를 내지 않은 사람들도 기꺼이 다른 시간으로 운반해 주었다. 위태위태하게 핸들을 잡은 나만 지금 학원에서 수업을 듣고 있을 M에게 열심히 달려가고 있을 뿐이었다.



문득 나도 탈것에 욕심을 낸 적이 있었음을 떠올렸다. 몬트리올에 오기 전, 자전거를 무척 사고 싶던 며칠을 보냈다. 퇴근하자마자 사무실 주변에 있는 자전거 가게에 가서 저렴하고 바구니가 달린 놈으로 고르고, 그대로 한강을 건너 집까지 달려가고 싶었다. 나는 탈것이 나를 멀리 데려다줄 것이라는, 지금보다 더 나은 곳으로 옮겨다 줄 것이라는 실체 없는 기대를 노트가 뚫릴 때까지 같은 글자를 겹쳐 쓰는 것처럼 내 마음에 쓰고 또 썼다. 구멍이 뚫리고 나서야 몇 번이나 타겠어, 욕심을 접을 수 있었다.



그랬다. 자전거를 가지고 싶었다. 어쩌면 그것은 자동차였을 수도 있고, 하다못해 킥보드였을 수도 있다. 나도 잘 살고 싶다 욕심을 내려면 뭐라도 사서 굴려야 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빅시에 올라 차가운 강바람을 거슬러 달리며 이젠 다 괜찮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제야 좀 웃을 수 있는 기분이었다.


자전거는 삼십 분마다 갈아타야 했다. 빅시는 짧은 거리를 이동할 때 쓰도록 설계된 공용 자전거였다. 나처럼 1일 권을 결제한 사람이 먼 거리를 가거나 느닷없이 자전거 여행을 하고 싶을 땐 삼십 분마다 다른 대여소에 들러 타고 있던 자전거를 반납하고 새 자전거를 꺼내 타야 했다. 올드 포트와 구시가지를 거쳐 M의 학원으로 가는 동안 자전거를 두 번 바꿔 탔다. 대여 시간이 조금 남아도 일부러 그렇게 했다. 대여소를 찾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아니, 걷고 있었으면 가볼 생각이 들지 않았을 골목으로 방향을 트는 일도 즐거웠다.



24시간, 30분 한정의 탈것이 생긴 나는 조금 들떴던 모양이다. M에게도 몇 번이고 자랑하며(도대체 무엇을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지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지만) 함께 자전거를 타고 몬트리올을 다니자고 권하기도 했다. 그날 이후로 기온이 더 내려가며 자전거 데이트를 하겠다는 계획은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어느새 자동차 이름을 모르던 아이가 부끄럽지 않았고, 언젠가는 장롱면허를 꺼내 쓸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희망도 생겼다.


장롱면허 신세를 벗어난 지금은 얼른 몬트리올로 돌아가 퀘벡주뿐만 아니라 캐나다를 차로 횡단하고 싶다는 바람이 있다. 탈것도 생겼고, 차 꽁무니에 붙은 알파벳을 보지 않아도 차의 이름을 알아맞힐 수 있게 되었다. M에게 운전대를 맡길 일도, 맥주를 마시지 않는 한 없을 것이다. 하지만 더 잘 살고 싶은 마음이 커졌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우리를 아주 멀리 데려다줄 탈것은 기름을 먹고 엔진이 돌아가는 탈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어디에 있을까. 회사 주변을 돌아다니다 따릉이를 타고 산책하는 직장인들을 보면, 나는 몬트리올의 빅시를 떠올린다. 30분쯤 후에 그곳에 가서 새 자전거를 바꿔 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글/사진 신태진

여행 매거진 BRICKS의 에디터. 『홍콩단편, 어쩌면 익숙한 하루』의 공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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