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의 시간, 브라질][여행] 세계 3대 폭포 중 하나인 이구아수 폭포에 가다

이방인의 시간, 브라질 #2

 


브라질에 도착한 지 나흘째 되는 날, 지금 살고 있는 과를로스에서 멀리 떨어진 포즈 두 이구아수(Foz do Iguaçu)로 남자친구와 그의 부모님과 함께 여행을 떠났다. 브라질을 여행한다면 꼭 들러야 하는 세계 3대 폭포 ‘이구아수 폭포’를 보기 위해서! 브라질에 오기 전부터 가장 기대했던 곳이다.


과를로스에서 포즈 두 이구아수까지 비행기로는 약 2시간 만에 도착하지만 여행 경비를 아끼고자 다 같이 버스를 타기로 했다. 소요 시간은 17시간.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시간이다. 17시간 동안의 야간 버스라……, 낭만이라 부를 수도 고문이라 부를 수도 있는, 선뜻 도전하기엔 망설여지는 시간이다. 그래도 마음 한편에는 버스 창가에 앉아 브라질 곳곳의 풍경을 스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설레기도 했다.


브라질에 도착했을 때 풀었던 짐을 이번 여행을 위해 다시 싸고, 버스에서 먹을 간식을 이것저것 챙겨 터미널로 갔다. 저녁 8시 버스를 타는데 어디서 유창한 한국어가 들려왔다. 친구끼리 여행을 하는 것 같았다. 머나먼 땅에서 한국인을 보자 반갑고 신기했다. 우리가 타는 버스는 다른 도시에도 정차하는데 우리의 목적지는 마지막 터미널이었다. 내가 본 한국인 2명도 우리와 같은 곳에서 내린 걸 보면 이구아수 폭포를 보러 가는 것 같다. 역시 브라질까지 왔으면 이구아수 폭포는 꼭 봐야 한다.


 버스 창밖 풍경


버스는 생각보다 훨씬 쾌적했다. 베개와 담요도 기본으로 제공되고, 의자를 침대처럼 평평하게 젖힐 수 있어 편하게 누워 바깥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나는 버스나 차를 타는 시간을 좋아한다. 여유 있게 창밖을 보며 좋아하는 노래를 맘껏 들을 수 있는 자유 시간 같달까. 그래서 이번에도 버스에 타자마자 편하게 자리를 만들고 좋아하는 노래를 틀었다. 그렇게 약 1시간 정도 창밖 도시 풍경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스르르 잠들었던 것 같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음악을 끄고 본격적으로 잘 준비를 한 것, 중간중간 잠에서 깼을 때 보이는 시골 풍경에 설렜던 것, 그리고 남자친구가 건넨 치킨샌드위치를 나중에 먹겠다고 하고 다시 잠들었던 것이 드문드문 기억난다.


잠에서 깼을 때는 버스가 이미 두 번째 휴게소에 정차한 뒤였다. 창밖에는 해가 떠 있었다. 첫 번째 휴게소에선 버스가 멈춘 줄도 몰랐는데, 두 번째 휴게소에선 잠이 확 깨서 바깥 공기를 마시며 스트레칭도 할 수 있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휴식 시간은 30분. 그 시간 동안 식사를 하는 사람도, 간식을 먹는 사람도 있었다. 브라질 휴게소는 한국 휴게소와 다르게 24시간 운영되고, 뷔페가 있다. 음식을 골라 담은 후 계산서를 받고, 실제 계산은 음식을 다 먹고 나갈 때 한다.


휴게소


따로 뷔페 이용은 하지 않고 남자친구가 사다 놓은 치킨샌드위치를 먹었다. 휴게소 바깥 벤치에 자리 잡아 상쾌한 공기도 마시고, 아직 흐릿하게 보이는 달을 보며 여유롭게 샌드위치를 먹으니 평범한 치킨샌드위치도 특별한 맛이 나는 것 같았다. 굉장한 맛도 굉장한 풍경도 아니었지만 그 장면이 한 달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걸 보면 그 순간을 진하게 만끽했나 보다.



어느새 휴게시간 30분이 지나가고, 우리는 들뜬 마음으로 자리로 돌아왔다. 창 너머로 보이는 광활하게 펼쳐진 옥수수밭과 그 사이에 있는 작은 마을들을 스치며 마치 영화 속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머나먼 땅에 와서 의지하는 사람과 손잡고 앉아 어딘지도 모르는 곳을 달리는 순간. 내가 지금 어디 있는지 몰라도 된다는 사실, 그리고 내 옆엔 항상 내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는 파트너가 있다는 사실이 그 순간을 꿈꾸는 것처럼 만들어 줬다.


버스 창밖 풍경


그렇게 다시 잠들고 깨기를 반복하니 어느덧 우리는 목적지인 마지막 터미널에 도착했다. 17시간 조금 넘게 걸려 도착한 ‘포즈 두 이구아수’. 시간은 거의 점심때였고 우리는 바로 호텔로 향했다.


포즈 두 이구아수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세 국경이 겹치는 지역이다. 우리가 머무는 호텔에서 10분 정도 차를 타고 가면 파라과이와 연결된 ‘우정의 다리’가 나온다. 입국 심사대를 통과할 필요 없이 차나 도보로 다리를 건너면 파라과이의 ‘시우다드델에스테’가 나온다. 서울의 명동과 비슷하게 쇼핑몰이 몰려있는데 도시 전체가 면세로 지정되어 있어 상품 가격들이 비교적 저렴하다. 휴대폰이나 노트북 등 가격대가 있는 물건들을 면세로 구매해 브라질에서 재판매하는 사람들도 많다.


앞에서 언급했듯 세계 3대 폭포 중 하나인 이구아수 폭포도 포즈 두 이구아수에 있다. 이구아수 폭포는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브라질 세 나라 국경에 걸쳐 자리 잡을 만큼 압도적인 크기다. 관람은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서만 할 수 있고, 폭포의 전경을 한눈에 보고 싶다면 브라질, 폭포의 웅장함을 좀 더 가까이서 느끼고 싶다면 폭포 상부까지 보행자 다리가 설치되어 있는 아르헨티나가 좋다고 한다.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샤워를 했다. 어머님, 아버님이 잠시 쉬는 동안 나와 파트너는 근처를 둘러볼 겸 산책을 나왔다. 도시 자체가 관광지라서 기념품 가게들이 많았고, 브라질답게 아사이볼 가게도 많았다. 브라질에 처음 도착 한 날 마트에서 가장 먼저 샀던 게 아사이 아이스크림이었던 나에게 아사이볼 가게로 둘러싸인 이곳은 천국이었다. 20분 정도 둘러봤을까.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호텔 직원이 추천해 준 곳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역시나 뷔페식이었고, 음식 종류에 상관없이 먹고 싶은 대로 음식을 담으면 무게에 따라 가격을 측정하고 계산서를 받는다. 계산은 역시 마지막에 한다. 여행 첫날은 이렇게 점심을 먹고 근처 무슬림 체험 교회가 있어 둘러본 다음 가볍게 마무리했다. 


무슬림 교회


날이 밝고 드디어 이구아수 폭포로 가는 날! 아침은 호텔 조식 뷔페를 이용했다. 참고로 브라질은 햄과 치즈를 정말 사랑한다. 뷔페에도 역시 햄과 치즈가 있었고, 파파야, 파인애플, 사과 같은 과일, 그리고 빵과 케이크가 있었다. 태어나서 파파야를 처음 먹어봤는데 단호박의 과일 버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처음엔 오묘했는데 먹을수록 맛있어서 여행에서 돌아와서도 주기적으로 마트에서 파파야를 사 온다. 망고, 파파야, 오렌지, 아보카도 등을 싼 가격으로 사서 매일 먹을 수 있다는 점이 브라질을 더 사랑하게 만든 이유 중 하나다.


여행 중 매일 먹었던 아사이볼


그렇게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우버를 불러 이구아수 국립공원으로 갔다. 그 후 약 20분 정도 국립공원 순환버스를 타고 첫 번째 정류장에 내리면 이구아수 폭포가 있는 산책로에 도착한다. 참고로 이구아수 폭포는 약 300개가 되는 크고 작은 폭포들이 모여 있다. 순환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작은 폭포들을 볼 수 있고, 산책로 끝으로 갈수록 천국 같은 풍경을 볼 수 있다. 나는 처음에 보이던 작은 폭포에서조차 감동을 받았는데 끝까지 다 돌아보니 이건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싶었다.


버스에서 내리면 바로 보이는 작은 폭포들


산책로 중간쯤 가면 물이나 간식을 살 수 있는 카페가 있는데 코아티(Quati)라는 동물이 정말 많다. 테이블에 막 올라오기도 하고, 음식을 들고 있는 사람들을 졸졸 따라가기도 한다. 야생동물이라 위험해서 가까이 오면 ‘쉬쉬’ 소리를 내며 쫓아내야 하는데 얘네들도 워낙 사람에게 익숙해서 ‘쉬쉬’ 소리를 내면 도망가는 척하다가 바로 돌아온다.



내가 간 날은 감사하게도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 덕에 모든 곳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시선을 돌릴 때마다 눈을 뗄 수 없이 아름다워 감탄사 외에 다른 말은 나오지 않았다. 천천히 여유 있게 구석구석 눈과 카메라에 담아가며 약 1시간 정도 걸어가면 마지막으로 긴 다리가 하나 나오는데, 그곳이 하이라이트다.


사람도 붐비고 폭포에서 튀기는 물이 엄청나서 안가는 사람도 많지만, 그 다리 끝까지 가보지 않았다면 이구아수 폭포를 다녀왔다고 할 수 없다. 상상도 못 할 정도로 아름답고 장엄한 풍경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비 때문에 수면이 평소보다 차올랐다면 물에 쓸려갈 위험이 있어 가면 안 된다. 실제로 쓸려간 사람도 있다고 하니 꼭 날씨를 미리 확인하고 가야 한다. 다행히 나는 완벽한 날씨 덕에 고민할 필요도 없이 다리 끝으로 걸어갔다. 1시간 동안 걸어오며 봤던 풍경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뗄 때마다 달라지는 풍경에 말문이 막혔다. 산책로를 걸을 때와는 다르게 폭포와 굉장히 가까워 그 거대한 물줄기들을 눈앞에서 볼 수 있었고, 압도당하는 기분이었다. 


무지개도 커다랗고 선명하게 피어서 그 장면이 마치 천국 같았다. 자연의 웅장함 앞에 겸허해지는 순간이었다. 내 뜻대로 할 수 없는 것들에 집착했던 마음들이 떠올랐다. 폭포는 삶이 그 자체로 부족함 없이 풍요롭다고 말해주는 듯했다. 거침없이 쏟아내는 물줄기에 내 마음도 싹 씻겼고, 삶을 향한 감사함을 되새길 수 있었다. 이런 풍경을 눈앞에서 보다니. 내 눈으로 직접 보고도 실감이 나지 않았고, 시간이 지난 지금도 내가 그곳에 있었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는다.



살면서 전혀 예상 못 했던 브라질살이와 내 버킷리스트에는 없었던 이구아수 폭포처럼 삶은 꼭 내가 예상한 대로 흐르지는 않는다. 오히려 나의 상상보다 더 근사한 것들을 보여줄 수도 있다. 이구아수 폭포를 본 이후로 내 삶에 대한 믿음이 더 강해졌고, 앞으로의 삶에도 기대가 생겼다. 당신도 뜻대로 잘 안 풀리는 일이 있다면 내가 생각하는 게 전부가 아님을, 삶은 언제나 나를 최고의 길로 데려가기 위한 길을 만들고 있다는 믿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날 밤 호텔에서 봤던 해지는 밤하늘




글/사진 여지윤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할머니가 되고 싶은 열정 많은 모험가. 건강하고 자연스러운 것들에서 영감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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