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의 시간, 브라질 #3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8월이다. 내가 살고 있는 과를로스는 6월부터 8월까지 겨울이라 지금은 한창 늦겨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봤자 낮에는 23도, 밤에는 17도 정도라 한국의 가을 날씨와 비슷하다. 하늘도 거의 매일 맑아서 아침에 커튼을 열면 햇빛이 거실로 쫘악 들어온다. 한국에서 일할 땐 실내에서 햇볕의 따뜻함을 느낄 일이 거의 없었는데, 여기선 소파에 앉아 테라스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실컷 즐기며 작업할 수 있다. 그 포근한 느낌을 한번 맛보면 벗어나기가 힘들다. 고개를 살짝 돌리면 보이는 선명하고 쨍한 하늘도 나를 미소 짓게 한다. 한국에 돌아가면 다른 것보다도 이런 일상의 순간들이 그리울 것 같다.
브라질에 와서 생긴 뿌듯한 습관 몇 가지가 있는데, 같은 시간에 자고 일어나기, 아침에 눈 뜨면 가장 먼저 커피나 차 한잔과 독서하기, 그리고 오후 6시가 되면 운동하기다. 본인과의 약속은 꼭 지키는 내 파트너 덕에 늘 작심삼일이던 나도 꾸준히 이 루틴을 유지하고 있다. 얼핏 보기엔 사소해 보이는 이 습관들이 내 일상을 균형 있게 만들어 전반적인 삶의 만족도가 올라간 것 같다.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사람과 함께 한다는 건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한 일이다.
주말이 되면 종종 집 근처 큰 공원으로 놀러 가는데 그곳엔 조깅하는 사람도 많고 곳곳에 설치된 낡은 철봉으로 턱걸이를 하는 사람도 많다. 교회 사람들끼리 모여 공연을 하기도 한다. 늘 사람이 많은 덕에 항상 푸드 트럭도 있어 공원 주차장에서부터 핫도그나 샌드위치, 팝콘 냄새가 솔솔 풍긴다.
‘페스타 주니나’ 기간에는 교회나 복지단체, 시청 등 여러 단체에서 축제를 열어 6월부터 7월 중반까지 주말마다 축제였다. 7월 말이 되면서 축제는 끝인가 했는데 이번엔 겨울 축제를 열더라! 그때도 역시 노래와 춤은 빠지지 않았다. 역시 브라질. 뭐든 축하하며 춤추고 노래하는 문화, 너무나도 사랑스럽다. 축제가 없는 날에도 공원은 다양한 사람들로 붐빈다. 가족끼리 소풍 와서 간식을 먹기도 하고, 축구를 하거나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도 많다. 수다를 떨며 걷거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도 많다. 모두에게 열린 다양하게 쓰이는 공간이 있다는 건 이 동네의 큰 장점인 것 같다.
나는 지금 남자친구, 그리고 남자친구 어머님과 함께 지내고 있다. 어머니는 굉장히 쿨하고 멋지고 귀여우시다. 손으로 이것저것 만드는 걸 좋아하셔서 은퇴하시고 독학으로 배운 뜨개질로 인형, 옷, 비키니, 가방 등 다양한 소품을 만들어 팔기도 하고 기부도 하신다. 이 집에 있는 대부분의 패브릭 소품, 예를 들어 식탁보, 소파 덮개, 주방 매트 등은 모두 어머니가 손수 만드셨다. 구독자가 2만 명이나 있는 유튜브 채널도 운영하신다. 지금은 어깨가 아프셔서 뜨개질은 멈추셨는데 최근에 요리 채널을 새로 만드셨다. 처음 뜨개질 채널을 운영할 때는 휴대폰으로 영상을 찍고 편집 없이 영상을 올리셨는데 이제는 편집도 독학해 직접 하고 계신다. 어떤 날은 새벽 3시까지 영상 편집에 열정을 태우기도 하신다.
얼마 전 어머니께 가지 라자냐 레시피를 배웠다. 유튜브에서 흔히 보던 레시피와 다르게 썰어놓은 가지를 하나하나 튀기셨다. 덕분에 고소함은 배가 되더라. 치즈도 모차렐라 치즈 하나로 해결! 어머니도 나도 치즈를 좋아해서 아주 듬뿍 넣었다. 브라질에 있는 동안 어머니께 틈틈이 레시피를 배워뒀다가 한국에 계신 부모님께도 해드려야겠다. 요리 유튜버답게 부엌에 자잘한 조리도구나 기계들도 많다. 식빵 만드는 기계도 있어서 식빵을 직접 만들어 먹기도 한다. 남자친구와 나는 평일에 일을 하다가 오후 3시가 되면 간식을 먹는데, 갓 구운 식빵에 버터를 바르고 커피와 함께 먹으면서 테라스에서 햇빛 샤워를 하면 천국이 따로 없다.
어머니께 또 하나 제대로 배운 건 집 가꾸기. 화요일마다 화장실 청소, 금요일마다 대청소를 분담해서 집이 항상 깔끔하게 유지된다. 화장실도 건식이라서 샤워 후엔 물기제거밀대로 물기를 제거하고 마른걸레로 닦는다. 세면대를 사용하고 튀긴 물도 마른걸레로 닦는다. 건식화장실은 처음인데 지내다 보니 금방 적응했다. 일, 가족, 집 모두 균형 있게 잘 가꾸며 사는 어머니, 참 멋지고 존경스럽다.
가족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 집은 가족끼리 사이가 정말 좋다. 삼촌, 사촌, 조카가 모두 근처에 살아서 누구 생일이면 꼭 다 같이 모여 생일파티를 한다. 한번 모이면 12명 정도인데 아이들 3명에 강아지 3마리까지 있어 집이 정말 북적북적해진다. 지금까지 나, 할머니, 어머니, 남자친구, 사촌 생일 이렇게 다섯 번 정도 생일파티를 했다. 거의 한 달에 한 번꼴로 생일이 있어서 가족들을 자주 볼 수 있다. 보통 어머니 집이나 삼촌 댁에서 파티를 하는데 어머니 집에서 파티할 때는 마트에서 산 여러 간식거리와 어머니가 직접 구운 파이, 삼촌 댁에서 파티를 할 때는 간단한 비스킷과 피자를 주로 먹었다. 브라질에는 삶은 계란, 참치, 닭고기 등이 올라간피자가 많은데 개인적으로 계란, 햄, 치즈가 들어간 피자가 제일 좋다. 이름은 ‘포르투갈 피자’다.
음식을 먹으며 2~3시간 정도 수다를 떨다가 마지막은 항상 케이크로 장식한다. 화려한 브라질답게 케이크 초는 작을 불꽃이 이리저리 튀는 스파클라! 한국처럼 촛불 불고 소원 비는 문화는 없지만 케이크 커팅 후 첫 조각을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주는 전통이 있다. 아쉽게도 직접 본 적은 없다. 보통은 접시에 한 조각씩 덜어놓으면 각자 하나씩 가져간다. 지금까지 먹어본 브라질 케이크는 기대 이상으로 정말 맛있었다. 주로 초콜릿이나 코코넛 베이스가 많은데 저렴한 가격에 고급스러운 맛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생일 파티가 있는 날이면 ‘이번엔 어떤 케이크일까’ 슬쩍 기대하곤 한다.
브라질 음식은 전체적으로 다 짠 편이다. 쌀밥을 지을 때조차 소금과 향신료를 넣어 밥만 먹어도 짭조름하니 감칠맛 난다. 브라질 사람들은 햄과 치즈를 정말 사랑해서 과자에도 햄 치즈 맛은 기본으로 있다. 국이나 찌개류는 없어 한국처럼 깊은 볼의 국그릇은 없다. 대부분 접시에 덜어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다. 한번은 미역국을 끓였는데 국그릇이 없어 접시에 조금씩 덜어 수프처럼 먹어야 했다. 참고로 한국처럼 반찬 그릇이라는 개념이 없어 한 접시에 모든 음식을 각자 원하는 양만큼 덜어 먹는다. 내가 계란찜과 미역국, 김을 동시에 식탁에 내는 바람에 어머니와 아버지가 그 셋을 한 접시에 섞어 드시기도 했다.
브라질에 온다면 꼭 먹어봐야 할 간식 세 가지가 있다. 가장 먼저 빠스떼우Pastel! 얇은 튀김 피 안에 갖가지 재료를 넣은 브라질 대표 간식 중 하나다. 주로 피자 치즈, 닭고기, 소고기를 속으로 넣는다. 한국의 튀김만두처럼 생겼지만 식감은 훨씬 바삭하고 맛도 아예 다르다. 바삭한 식감에 고소함과 짠맛이 어우러져 은근히 중독성 있다. 한국의 떡볶이 같은 대표 간식이라 어딜 가나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두 번째는 타피오카Tapioca! 한국에서는 버블티 펄로 유명한 타피오카지만, 여기선 토르티야처럼 만들어 재료를 넣고 구워 먹는다. 치즈, 연유, 캐러멜, 햄, 치킨 등 여러 종류의 맛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치즈와 연유를 가장 좋아한다. 생긴 건 스티로폼처럼 생겼지만, 한입 물었을 때 느껴지는 타피오카 특유의 쫄깃한 식감이 달달한 재료와 어우러져서 환상적이다. 이 또한 카페나 식당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빵지께쥬Pão de Queijo! 한국의 찹쌀빵 식감을 좋아한다면 무조건 추천하는 간식이다. 어느 빵집에 가나 식빵처럼 기본으로 있는 브라질의 국민 빵이다. 치즈의 짭조름함과 고소함, 그리고 쫄깃하고 찰진 식감 덕에 질릴 수가 없다.
앞에서 소개한 간식 말고도 닭고기로 속을 채운 크로켓 코씽야Coxinha, 아사이볼로 자주 먹는 아싸이Açaí, 닭고기나 콩, 옥수수 등으로 속을 채운 미니 파이 엥빠징야Empadinha 등 다양한 간식거리가 있다. 달달한 디저트를 좋아한다면 캐러멜과 비슷한 도씨 지 레이치Doce de leite, 연유 섞인 초콜릿 맛의 브리가데이루Brigadeiro, 연유와 코코넛을 섞은 맛의 베이징요Beijinho를 권한다. 짐작했겠지만 설탕이 잔뜩 들어간 디저트들이라 잘 조절하며 먹어야 한다. 페스타 주니나 축제 때 설탕 가득한 과자를 많이 먹어서 속도 쓰리고 머리도 아파 1시간 동안 고생했던 적이 있다.
브라질에선 과일도 빠질 수 없다. 먹고 싶은 과일을 싼 가격에 실컷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은 나를 정말 행복하게 한다. 망고를 4개 사더라도 2~3천 원가량이다. 한국에서 흔히 보던 오렌지, 사과, 배, 수박 등도 모양과 색깔이 다양한데 그중에서도 처음 봤을 때 가장 놀랐던 건 아보카도다. 작은 아보카도의 4~5배 크기에 모양도 표주박처럼 생겼다. 과카몰레를 만들어 먹거나 아침에 계란과 함께 먹는다. 이 밖에도 천상의 과일이라 불리는 아떼모야, 파파야, 코코넛, 버터 향이 나는 쿠푸아수, 붉은빛이 아름다운 구아바 등 한국에서 보기 힘든 과일들을 먹는 재미도 있다.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 장을 보는데 그때마다 먹고 싶은 과일을 카트에 잔뜩 담는다. 이번 주에는 코코넛, 오렌지, 사과, 망고, 파파야, 포도를 가득 담았다.
잘 먹고 잘 지내며 어느덧 3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이곳에 정이 많이 들어 또 다른 고향처럼 느껴진다. 내 평범한 일상이 묻어있는 곳이라 그런 게 아닐까. 그리고 나를 가족처럼 대해주는 사람들 덕에, 그들의 과하지 않은 친절과 배려, 따스한 정이 이곳에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언젠간 떠나야 한다는 사실에 가끔 씁쓸해지기도 하지만, 이게 브라질에서의 마지막 시간은 아닐 테니. 앞으로 남은 3개월 동안 지금껏 해 온 것처럼 잘 먹고 잘 지내며 평범하지만 시간 지나 특별하게 기억되는 순간들을 차곡차곡 잘 쌓아가야겠다.
글/사진 여지윤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할머니가 되고 싶은 열정 많은 모험가. 건강하고 자연스러운 것들에서 영감을 얻는다.
이방인의 시간, 브라질 #3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8월이다. 내가 살고 있는 과를로스는 6월부터 8월까지 겨울이라 지금은 한창 늦겨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봤자 낮에는 23도, 밤에는 17도 정도라 한국의 가을 날씨와 비슷하다. 하늘도 거의 매일 맑아서 아침에 커튼을 열면 햇빛이 거실로 쫘악 들어온다. 한국에서 일할 땐 실내에서 햇볕의 따뜻함을 느낄 일이 거의 없었는데, 여기선 소파에 앉아 테라스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실컷 즐기며 작업할 수 있다. 그 포근한 느낌을 한번 맛보면 벗어나기가 힘들다. 고개를 살짝 돌리면 보이는 선명하고 쨍한 하늘도 나를 미소 짓게 한다. 한국에 돌아가면 다른 것보다도 이런 일상의 순간들이 그리울 것 같다.
브라질에 와서 생긴 뿌듯한 습관 몇 가지가 있는데, 같은 시간에 자고 일어나기, 아침에 눈 뜨면 가장 먼저 커피나 차 한잔과 독서하기, 그리고 오후 6시가 되면 운동하기다. 본인과의 약속은 꼭 지키는 내 파트너 덕에 늘 작심삼일이던 나도 꾸준히 이 루틴을 유지하고 있다. 얼핏 보기엔 사소해 보이는 이 습관들이 내 일상을 균형 있게 만들어 전반적인 삶의 만족도가 올라간 것 같다.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사람과 함께 한다는 건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한 일이다.
주말이 되면 종종 집 근처 큰 공원으로 놀러 가는데 그곳엔 조깅하는 사람도 많고 곳곳에 설치된 낡은 철봉으로 턱걸이를 하는 사람도 많다. 교회 사람들끼리 모여 공연을 하기도 한다. 늘 사람이 많은 덕에 항상 푸드 트럭도 있어 공원 주차장에서부터 핫도그나 샌드위치, 팝콘 냄새가 솔솔 풍긴다.
‘페스타 주니나’ 기간에는 교회나 복지단체, 시청 등 여러 단체에서 축제를 열어 6월부터 7월 중반까지 주말마다 축제였다. 7월 말이 되면서 축제는 끝인가 했는데 이번엔 겨울 축제를 열더라! 그때도 역시 노래와 춤은 빠지지 않았다. 역시 브라질. 뭐든 축하하며 춤추고 노래하는 문화, 너무나도 사랑스럽다. 축제가 없는 날에도 공원은 다양한 사람들로 붐빈다. 가족끼리 소풍 와서 간식을 먹기도 하고, 축구를 하거나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도 많다. 수다를 떨며 걷거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도 많다. 모두에게 열린 다양하게 쓰이는 공간이 있다는 건 이 동네의 큰 장점인 것 같다.
나는 지금 남자친구, 그리고 남자친구 어머님과 함께 지내고 있다. 어머니는 굉장히 쿨하고 멋지고 귀여우시다. 손으로 이것저것 만드는 걸 좋아하셔서 은퇴하시고 독학으로 배운 뜨개질로 인형, 옷, 비키니, 가방 등 다양한 소품을 만들어 팔기도 하고 기부도 하신다. 이 집에 있는 대부분의 패브릭 소품, 예를 들어 식탁보, 소파 덮개, 주방 매트 등은 모두 어머니가 손수 만드셨다. 구독자가 2만 명이나 있는 유튜브 채널도 운영하신다. 지금은 어깨가 아프셔서 뜨개질은 멈추셨는데 최근에 요리 채널을 새로 만드셨다. 처음 뜨개질 채널을 운영할 때는 휴대폰으로 영상을 찍고 편집 없이 영상을 올리셨는데 이제는 편집도 독학해 직접 하고 계신다. 어떤 날은 새벽 3시까지 영상 편집에 열정을 태우기도 하신다.
얼마 전 어머니께 가지 라자냐 레시피를 배웠다. 유튜브에서 흔히 보던 레시피와 다르게 썰어놓은 가지를 하나하나 튀기셨다. 덕분에 고소함은 배가 되더라. 치즈도 모차렐라 치즈 하나로 해결! 어머니도 나도 치즈를 좋아해서 아주 듬뿍 넣었다. 브라질에 있는 동안 어머니께 틈틈이 레시피를 배워뒀다가 한국에 계신 부모님께도 해드려야겠다. 요리 유튜버답게 부엌에 자잘한 조리도구나 기계들도 많다. 식빵 만드는 기계도 있어서 식빵을 직접 만들어 먹기도 한다. 남자친구와 나는 평일에 일을 하다가 오후 3시가 되면 간식을 먹는데, 갓 구운 식빵에 버터를 바르고 커피와 함께 먹으면서 테라스에서 햇빛 샤워를 하면 천국이 따로 없다.
어머니께 또 하나 제대로 배운 건 집 가꾸기. 화요일마다 화장실 청소, 금요일마다 대청소를 분담해서 집이 항상 깔끔하게 유지된다. 화장실도 건식이라서 샤워 후엔 물기제거밀대로 물기를 제거하고 마른걸레로 닦는다. 세면대를 사용하고 튀긴 물도 마른걸레로 닦는다. 건식화장실은 처음인데 지내다 보니 금방 적응했다. 일, 가족, 집 모두 균형 있게 잘 가꾸며 사는 어머니, 참 멋지고 존경스럽다.
가족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 집은 가족끼리 사이가 정말 좋다. 삼촌, 사촌, 조카가 모두 근처에 살아서 누구 생일이면 꼭 다 같이 모여 생일파티를 한다. 한번 모이면 12명 정도인데 아이들 3명에 강아지 3마리까지 있어 집이 정말 북적북적해진다. 지금까지 나, 할머니, 어머니, 남자친구, 사촌 생일 이렇게 다섯 번 정도 생일파티를 했다. 거의 한 달에 한 번꼴로 생일이 있어서 가족들을 자주 볼 수 있다. 보통 어머니 집이나 삼촌 댁에서 파티를 하는데 어머니 집에서 파티할 때는 마트에서 산 여러 간식거리와 어머니가 직접 구운 파이, 삼촌 댁에서 파티를 할 때는 간단한 비스킷과 피자를 주로 먹었다. 브라질에는 삶은 계란, 참치, 닭고기 등이 올라간피자가 많은데 개인적으로 계란, 햄, 치즈가 들어간 피자가 제일 좋다. 이름은 ‘포르투갈 피자’다.
음식을 먹으며 2~3시간 정도 수다를 떨다가 마지막은 항상 케이크로 장식한다. 화려한 브라질답게 케이크 초는 작을 불꽃이 이리저리 튀는 스파클라! 한국처럼 촛불 불고 소원 비는 문화는 없지만 케이크 커팅 후 첫 조각을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주는 전통이 있다. 아쉽게도 직접 본 적은 없다. 보통은 접시에 한 조각씩 덜어놓으면 각자 하나씩 가져간다. 지금까지 먹어본 브라질 케이크는 기대 이상으로 정말 맛있었다. 주로 초콜릿이나 코코넛 베이스가 많은데 저렴한 가격에 고급스러운 맛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생일 파티가 있는 날이면 ‘이번엔 어떤 케이크일까’ 슬쩍 기대하곤 한다.
브라질 음식은 전체적으로 다 짠 편이다. 쌀밥을 지을 때조차 소금과 향신료를 넣어 밥만 먹어도 짭조름하니 감칠맛 난다. 브라질 사람들은 햄과 치즈를 정말 사랑해서 과자에도 햄 치즈 맛은 기본으로 있다. 국이나 찌개류는 없어 한국처럼 깊은 볼의 국그릇은 없다. 대부분 접시에 덜어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다. 한번은 미역국을 끓였는데 국그릇이 없어 접시에 조금씩 덜어 수프처럼 먹어야 했다. 참고로 한국처럼 반찬 그릇이라는 개념이 없어 한 접시에 모든 음식을 각자 원하는 양만큼 덜어 먹는다. 내가 계란찜과 미역국, 김을 동시에 식탁에 내는 바람에 어머니와 아버지가 그 셋을 한 접시에 섞어 드시기도 했다.
브라질에 온다면 꼭 먹어봐야 할 간식 세 가지가 있다. 가장 먼저 빠스떼우Pastel! 얇은 튀김 피 안에 갖가지 재료를 넣은 브라질 대표 간식 중 하나다. 주로 피자 치즈, 닭고기, 소고기를 속으로 넣는다. 한국의 튀김만두처럼 생겼지만 식감은 훨씬 바삭하고 맛도 아예 다르다. 바삭한 식감에 고소함과 짠맛이 어우러져 은근히 중독성 있다. 한국의 떡볶이 같은 대표 간식이라 어딜 가나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두 번째는 타피오카Tapioca! 한국에서는 버블티 펄로 유명한 타피오카지만, 여기선 토르티야처럼 만들어 재료를 넣고 구워 먹는다. 치즈, 연유, 캐러멜, 햄, 치킨 등 여러 종류의 맛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치즈와 연유를 가장 좋아한다. 생긴 건 스티로폼처럼 생겼지만, 한입 물었을 때 느껴지는 타피오카 특유의 쫄깃한 식감이 달달한 재료와 어우러져서 환상적이다. 이 또한 카페나 식당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빵지께쥬Pão de Queijo! 한국의 찹쌀빵 식감을 좋아한다면 무조건 추천하는 간식이다. 어느 빵집에 가나 식빵처럼 기본으로 있는 브라질의 국민 빵이다. 치즈의 짭조름함과 고소함, 그리고 쫄깃하고 찰진 식감 덕에 질릴 수가 없다.
앞에서 소개한 간식 말고도 닭고기로 속을 채운 크로켓 코씽야Coxinha, 아사이볼로 자주 먹는 아싸이Açaí, 닭고기나 콩, 옥수수 등으로 속을 채운 미니 파이 엥빠징야Empadinha 등 다양한 간식거리가 있다. 달달한 디저트를 좋아한다면 캐러멜과 비슷한 도씨 지 레이치Doce de leite, 연유 섞인 초콜릿 맛의 브리가데이루Brigadeiro, 연유와 코코넛을 섞은 맛의 베이징요Beijinho를 권한다. 짐작했겠지만 설탕이 잔뜩 들어간 디저트들이라 잘 조절하며 먹어야 한다. 페스타 주니나 축제 때 설탕 가득한 과자를 많이 먹어서 속도 쓰리고 머리도 아파 1시간 동안 고생했던 적이 있다.
브라질에선 과일도 빠질 수 없다. 먹고 싶은 과일을 싼 가격에 실컷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은 나를 정말 행복하게 한다. 망고를 4개 사더라도 2~3천 원가량이다. 한국에서 흔히 보던 오렌지, 사과, 배, 수박 등도 모양과 색깔이 다양한데 그중에서도 처음 봤을 때 가장 놀랐던 건 아보카도다. 작은 아보카도의 4~5배 크기에 모양도 표주박처럼 생겼다. 과카몰레를 만들어 먹거나 아침에 계란과 함께 먹는다. 이 밖에도 천상의 과일이라 불리는 아떼모야, 파파야, 코코넛, 버터 향이 나는 쿠푸아수, 붉은빛이 아름다운 구아바 등 한국에서 보기 힘든 과일들을 먹는 재미도 있다.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 장을 보는데 그때마다 먹고 싶은 과일을 카트에 잔뜩 담는다. 이번 주에는 코코넛, 오렌지, 사과, 망고, 파파야, 포도를 가득 담았다.
잘 먹고 잘 지내며 어느덧 3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이곳에 정이 많이 들어 또 다른 고향처럼 느껴진다. 내 평범한 일상이 묻어있는 곳이라 그런 게 아닐까. 그리고 나를 가족처럼 대해주는 사람들 덕에, 그들의 과하지 않은 친절과 배려, 따스한 정이 이곳에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언젠간 떠나야 한다는 사실에 가끔 씁쓸해지기도 하지만, 이게 브라질에서의 마지막 시간은 아닐 테니. 앞으로 남은 3개월 동안 지금껏 해 온 것처럼 잘 먹고 잘 지내며 평범하지만 시간 지나 특별하게 기억되는 순간들을 차곡차곡 잘 쌓아가야겠다.
글/사진 여지윤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할머니가 되고 싶은 열정 많은 모험가. 건강하고 자연스러운 것들에서 영감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