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의 시간, 브라질 #4
나와 남자친구를 파드리누로 초대해 준 신랑과 신부
올해 4월, 한국에서 브라질 친구로부터 온라인 청첩장을 받았다. 결혼 당사자인 예비 신랑은 내 남자친구의 가장 친한 친구들 중 한 명이다. 사실 난 예비 신랑과 신부를 실제로 만나본 적은 없다. 영상 통화로 인사 한번 해봤을 뿐인데 고맙게도 나를 그들의 결혼식에 초대해 주었고, 지난 8월 초, 마침내 그 결혼식에 다녀왔다.
브라질의 결혼식은 한국의 결혼식 문화와 아주 다르다. 첫 번째로 ‘파드리누(Padrinhos)’ 문화! 신랑신부가 각각 본인의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 중 몇 커플을 파드리누로 지정한다. 여자는 ‘마드리냐(Madrinha)’라고 부르는데 남녀 모두를 지칭할 때는 파드리누라고 한다.
결혼식은 바다 앞 성당에서 진행됐다. 지정된 커플들은 결혼식이 시작되기 전 식장 앞에 한 커플씩 줄을 서서 기다린다. 여자는 왼쪽, 남자는 오른쪽. 파드리누는 결혼식이 진행되는 내내 서 있어야 한다.
결혼식이 시작되면 신랑은 미리 본인 위치에 서 있고, 신부 입장 전 파드리누가 한 커플씩 먼저 입장한다. 레드카펫을 밟으며 신랑이 있는 곳까지 쭉 걸어가면 스태프가 자리를 안내한다. 이 말인즉슨, 결혼식 당일 남자친구와 팔짱을 끼고 레드카펫을 밟으며 입장했다는 것! 하객들의 주목을 받으며 입장하는데 그 순간 얼마나 떨렸는지. 입장하기 직전 성당 문이 열리며 보이는 웅장한 모습에 잠깐 압도되다가 하이힐이 익숙하지 않아 행여나 넘어지지는 않을지 신경 쓰느라 손과 겨드랑이에서 땀이 흠뻑 났다. 나중에 내가 찍힌 영상을 보니 다행히 씩씩하고 당차게 잘 걸었더라.
한국인이 브라질에 여행 와서 현지인 결혼식에 참가할, 그것도 파드리누가 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새삼 느끼는데 내 삶은 정말 다채로운 것 같다. 그렇게 파드리누가 모두 입장하면 신부가 등장한다. 눈물을 참으며 등장하는 신부와 그런 신부를 보며 같이 눈물을 참는 신랑. 그들을 보면서 나도 조금 울컥했다. 성당의 분위기도 한몫한 것 같다.
결혼식이 진행되는 내내 파드리누들은 같은 자리에 서 있다가 결혼식을 마무리되면 한 커플씩 신랑신부 앞으로 나와 포옹을 하고 짧은 축하 인사를 한 뒤 성당 바깥으로 퇴장한다. 그 후엔 야외 촬영을 하는데 파드리누가 함께 하는 촬영도 꽤 많다. 다 함께 스파클라를 터뜨리며 신랑신부를 환영하는 영상도 찍고, 커플끼리 서로 마주 보며 일렬로 길게 선 후 끝에서부터 한 커플씩 뽀뽀하는 영상도 찍었다. 신랑신부는 올드카 앞에서 샴페인을 터뜨리는 장면도 촬영했는데,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다. 약 1시간 정도 촬영 후 하객들은 미리 파티장으로 이동하고, 신랑과 신부는 남아서 사진을 좀 더 찍는다.
스파클라로 환영받는 신랑신부
남자친구와 그의 가장 친한 친구들
파티장은 성당에서 차로 약 30분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춤을 추는 공간과 식사를 하는 공간으로 나뉘어 있었고, 바텐터와 DJ도 있었다. 테이블에 자리를 잡으면 웨이터가 음식을 가져다준다. 마실 것도 바텐더에게 주문하면 되는데, 브라질 대표 술인 카샤사도 있고 사케, 레드 와인, 화이트 와인 베이스로 만든 칵테일도 있었다. 궁금해서 하나씩 다 마셔봤다. 레드와인, 화이트와인 베이스의 칵테일은 연유가 들어가서 너무 달았고, 카샤사는 내게 조금 독했다. 사케 베이스의 칵테일이 내 취향이었다.
파티장
파티는 야외 촬영을 끝내고 온 신랑신부가 입장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들이 입장할 때 빠른 비트의 신나는 음악으로 바뀌고,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와 함께 냅킨을 휘두르며 신랑신부를 환영한다. 춤을 추고 싶은 사람들은 춤을 추고, 식사를 하며 테이블에서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파티가 진행되는 내내 스태프가 사진을 찍는데 자연스러운 모습 그대로 담아내는 사진이라 더 예쁠 것 같았다.
신랑신부를 환영하며 냅킨을 휘두르는 모습
파티장에서도 스태프가 여러 이벤트를 진행한다. 인상 깊었던 몇 가지를 뽑자면, 첫 번째로 신랑의 넥타이 커팅. 파티가 거의 끝나갈 즈음 신랑신부와 그 친구들이 다 같이 한 테이블씩 돌아다닌다. 신부는 웨딩 구두와 유리병을 쟁반 위에 올린 채 들고 다닌다. 그러면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현금을 꺼내 신부가 들고 있는 유리병에 담는다. 게임 형식이라 큰돈은 아니고 한화로 오천 원에서 만 원 정도 넣는다. 한 명씩 현금을 담을 때마다 모두 환호하고 신랑은 본인의 넥타이를 끝에서부터 조금씩 잘라 현금을 낸 사람에게 준다.
두 번째로 인상 깊었던 이벤트는 신랑신부와 엽기 사진 찍기! 한 테이블씩 돌아가며 신랑신부와 함께 사진을 찍는데 이때 하객들은 최대한 웃긴 표정과 포즈를 취해야 한다. 우리 테이블에선 신랑의 친구들이 신랑을 번쩍 들고 한 명은 물구나무를 섰다.
세 번째로는 댄스홀에서 본격적으로 춤추는 시간! 노래에 따라 모두 똑같은 춤을 추기도 하고, 각자 다른 춤을 추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인상 깊었던 이벤트는 부케 게임. 부케 게임도 파티가 거의 마무리될 때쯤 진행됐는데, 우선 여자 하객들이 신랑신부를 가운데 두고 원으로 빙 둘러선다. 부케에는 여러 끈이 길게 연결되어 있고, 신랑이 가운데에서 부케를 한 손으로 높이 들면 하객들이 부케에 연결된 끈을 하나씩 잡는다. 이때 신부는 신랑 옆에서 눈가리개를 하고 있다. 음악이 시작되면 하객들은 끈을 잡은 손을 높이 든 채 원을 그리며 걷는데, 이때 눈을 가린 신부의 손에 잡힌 끈은 신랑이 가위로 끊는다. 끈이 끊기지 않고 마지막까지 남은 사람이 부케의 주인공이 된다.
사실 게임이 시작되기 전에 신랑이 내게 몰래 와서 내가 마지막까지 남을 수 있게 도와주겠다고 했었다. 게임 중 신부가 내 끈을 잡으려고 하면 신랑이 부케를 신부 손보다 더 높이 들어 피했는데 결국 마지막 직전에 내 끈이 잡혀서 부케의 주인공은 되지 못했다. 그 게임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파티장을 나섰고 시간은 밤 10시 조금 넘었던 것 같다. 오후 4시에 시작한 결혼식이었는데 말이다.
현금을 받으러 돌아다니는 신랑신부
솔직히 결혼식 당일이 마냥 즐겁고 신나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브라질에 와서 처음으로 큰 문화 차이에 적응하느라 힘들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좀 더 마음 놓고 즐길 걸 하는 약간의 후회가 있지만, 이미 지난 일인 걸 어쩌겠나. 그날의 나를 묘사하자면, 브라질의 열정적인 에너지를 따라가려고 애쓰지만, 그 근처도 못 따라가는 평범한 에너지의 한국인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그들의 에너지를 따라가는 건 무리일 거다.
사실 결혼식 한 달 전부터 이것저것 준비할 게 있어 스트레스를 받았다. 파드리누로 선정된 나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고 어떤 옷을 입어야 할지 모든 게 다 막막했다. 남자친구도 파드리누는 처음이라 아무것도 몰랐다. 혹시 몰라 한국 결혼식에서 입는 블라우스와 치마를 챙겨왔는데 브라질 결혼식에선 다들 드레스를 입더라. 특히나 파드리누는 더더욱 화려한 드레스를 입는다. 결혼식 당일에 모두 숍에서 헤어, 메이크업을 받고 온 듯했고, 드레스도 시상식에 온 사람들처럼 반짝반짝했다. 한국 결혼식에선 신부보다 튀는 의상은 피하는 게 예의인데 브라질 결혼식에선 모두가 파티를 즐기러 온 주인공인 것처럼 화려했다.
온라인 청첩장에는 각각 하객들을 위한 드레스 코드가 적혀 있었다. 여자는 무채색 외에는 다 가능해서 선명한 빨강, 초록, 파랑 등 다양한 색의 드레스가 결혼식장에 모였다. 하지만 파드리누는 신랑신부가 따로 정한 드레스 코드를 따라야 한다. 이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남자친구의 사촌 누나인 Kamila에게 미리 남색 드레스를 빌려두고 구두만 사면 되겠다 안심하고 있었다가 2주 뒤 신부에게 마드리냐의 드레스 코드가 분홍색이라는 연락을 받았다. 옷 고르는 데에 시간을 많이 쓰고 싶지 않아 그날 부랴부랴 온라인으로 분홍색 드레스를 찾아봤다. 한국에선 늘 차분한 색 옷만 입었는데, 난생처음 쨍한 분홍색의 드레스를 골랐다. 그 생기발랄함에 이끌렸다고 할까. 처음 도전해 보는 색과 디자인이라 은근히 기대가 됐고, 실제로 드레스를 입어봤을 때 예상보다 더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파티용이라 한국에선 입을 일이 거의 없을 것 같다.
사실 가방도 사야 했지만 전혀 생각도 못 해서 결혼식 당일 가방 없이 다녀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휴대폰을 남자친구 정장 주머니에 맡겨 놓고 빈손으로 다닌 여자 하객은 나뿐이었던 것 같다. 저 멀리 비행기로 36시간 떨어진 땅에서 온 하객도 나뿐이었다. 여러모로 참 특별한 하객이었네. 구두는 10cm 굽의 은색 하이힐을 신었다. 걷는 게 어색해서 결혼식 전 잠깐잠깐 걷기 연습을 했는데 덕분에 결혼식 당일 넘어지는 일은 없었다.
파티장에서 찍은 사진
브라질 결혼식은 청첩장도 한국과는 조금 달랐다. 나는 온라인 청첩장만 받았는데 우선 카테고리가 좀 더 세부적으로 나뉘어 있다. 그들의 첫 만남부터 프로포즈 순간까지의 이야기, 어린 시절 사진, 부모님 소개, 파드리누 소개, 하객들의 축하 메시지, 하객들의 드레스 코드, 신랑신부가 고른 선물 목록, 그리고 결혼식 장소와 파티 장소가 상세히 기재돼 있다. 신랑신부가 직접 쓴 글들이 많아 더 생동감 있고 진정성 있게 다가오기도 했다. 사진도 많아서 청첩장을 다 훑었을 때 이미 그들을 오랫동안 봐 온 듯한 친근감이 들었다.
파드리누 소개엔 각 커플의 사진과 함께 그들이 신랑신부에게 어떤 존재인지, 왜 그들을 파드리누로 선정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7~8줄로 쓰여 있는데 휴대폰으로 한 커플 한 커플씩 읽다가 갑자기 나와 내 남자친구의 사진이 나와서 깜짝 놀랐다. 신랑인 Mekele가 직접 쓴 글이었다. 그는 나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었다. “Jiyoon is a person that I hold in high regard, a woman of integrity and that I am pleased to be able to call my sister in law.(지윤은 내가 아주 존경하는 사람으로, 고결한 여성이자 내가 ‘제수씨’라 부를 수 있게 되어 기쁜 사람이다.)” 짧게 소개 되었지만 본인에 대한 긍정적인 말을 누가 싫어하리! 타인의 청첩장에, 그것도 먼 나라 브라질 친구 청첩장에 내가 소개된 사실이 웃기기도 하고 재밌어서 가족들에게 신나 하며 보여주기도 했다.
청첩장에 소개된 나와 남자친구
청첩장에서 가장 신기했던 부분은 신랑신부가 고른 선물 목록이다. 브라질에선 축의금 대신 신랑 신부가 받고 싶은 선물을 사 주는 문화가 있는데 청첩장에 선물 목록이 잔뜩 있는 페이지가 있었다. 그중 사주고 싶은 선물을 골라 바로 결제할 수 있다. 식기류, 가구, 가전제품 등 다양한 품목이 있었고, 신혼여행을 위한 호텔이나 액티비티 등도 있었다. 물론 선물 대신 현금을 송금해 주는 사람도 있다.
결혼식이 끝난 다음 날은 여유롭게 해변을 걸었다. 도시 이름은 프라이아 그랑드(Praia Grande)인데 ‘큰 바다’라는 의미다. 이름 그대로 해변이 끝도 없이 길게 이어졌다. 사람들도 정말 많았다. 물놀이하는 사람, 배구나 족구를 하는 사람, 누워서 음악 듣는 사람, 조깅하는 사람 등 다양한 무리가 있었다. 브라질에서 바다를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모두들 자유롭고 평화롭게 해변을 즐기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절로 따뜻해졌다.
결혼 당사자도 아닌데 결혼식 당일까지 이것저것 신경 쓰다가 막상 결혼식이 끝나니 후련하면서도 꿈을 꾼 것 같기도 했다. 약 1시간 진행하고 끝나는 한국의 결혼식만 다니다가 6시간 이상 진행하는 결혼식을 다녀왔으니 비현실적일 만도 하다. 이번 결혼식은 진정한 축제 그 자체였다. 모두가 진심으로 축하하고 즐기는 자리! 결혼과 결혼식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되는 순간이었다.
파드리누로서 결혼식에 초대되어 의미 있는 경험을 하게 해준 신랑신부에게 정말 고맙다. 내 인생은 정말 특별하고 재미있는 일들로 채워지고 있는 것 같다. 1년 전의 나는 현재의 내 모습을 상상도 못했는데 앞으로는 또 어떤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지 기대되고 설렌다.
글/사진 여지윤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할머니가 되고 싶은 열정 많은 모험가. 건강하고 자연스러운 것들에서 영감을 얻는다.
이방인의 시간, 브라질 #4
나와 남자친구를 파드리누로 초대해 준 신랑과 신부
올해 4월, 한국에서 브라질 친구로부터 온라인 청첩장을 받았다. 결혼 당사자인 예비 신랑은 내 남자친구의 가장 친한 친구들 중 한 명이다. 사실 난 예비 신랑과 신부를 실제로 만나본 적은 없다. 영상 통화로 인사 한번 해봤을 뿐인데 고맙게도 나를 그들의 결혼식에 초대해 주었고, 지난 8월 초, 마침내 그 결혼식에 다녀왔다.
브라질의 결혼식은 한국의 결혼식 문화와 아주 다르다. 첫 번째로 ‘파드리누(Padrinhos)’ 문화! 신랑신부가 각각 본인의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 중 몇 커플을 파드리누로 지정한다. 여자는 ‘마드리냐(Madrinha)’라고 부르는데 남녀 모두를 지칭할 때는 파드리누라고 한다.
결혼식은 바다 앞 성당에서 진행됐다. 지정된 커플들은 결혼식이 시작되기 전 식장 앞에 한 커플씩 줄을 서서 기다린다. 여자는 왼쪽, 남자는 오른쪽. 파드리누는 결혼식이 진행되는 내내 서 있어야 한다.
결혼식이 시작되면 신랑은 미리 본인 위치에 서 있고, 신부 입장 전 파드리누가 한 커플씩 먼저 입장한다. 레드카펫을 밟으며 신랑이 있는 곳까지 쭉 걸어가면 스태프가 자리를 안내한다. 이 말인즉슨, 결혼식 당일 남자친구와 팔짱을 끼고 레드카펫을 밟으며 입장했다는 것! 하객들의 주목을 받으며 입장하는데 그 순간 얼마나 떨렸는지. 입장하기 직전 성당 문이 열리며 보이는 웅장한 모습에 잠깐 압도되다가 하이힐이 익숙하지 않아 행여나 넘어지지는 않을지 신경 쓰느라 손과 겨드랑이에서 땀이 흠뻑 났다. 나중에 내가 찍힌 영상을 보니 다행히 씩씩하고 당차게 잘 걸었더라.
한국인이 브라질에 여행 와서 현지인 결혼식에 참가할, 그것도 파드리누가 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새삼 느끼는데 내 삶은 정말 다채로운 것 같다. 그렇게 파드리누가 모두 입장하면 신부가 등장한다. 눈물을 참으며 등장하는 신부와 그런 신부를 보며 같이 눈물을 참는 신랑. 그들을 보면서 나도 조금 울컥했다. 성당의 분위기도 한몫한 것 같다.
결혼식이 진행되는 내내 파드리누들은 같은 자리에 서 있다가 결혼식을 마무리되면 한 커플씩 신랑신부 앞으로 나와 포옹을 하고 짧은 축하 인사를 한 뒤 성당 바깥으로 퇴장한다. 그 후엔 야외 촬영을 하는데 파드리누가 함께 하는 촬영도 꽤 많다. 다 함께 스파클라를 터뜨리며 신랑신부를 환영하는 영상도 찍고, 커플끼리 서로 마주 보며 일렬로 길게 선 후 끝에서부터 한 커플씩 뽀뽀하는 영상도 찍었다. 신랑신부는 올드카 앞에서 샴페인을 터뜨리는 장면도 촬영했는데,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다. 약 1시간 정도 촬영 후 하객들은 미리 파티장으로 이동하고, 신랑과 신부는 남아서 사진을 좀 더 찍는다.
스파클라로 환영받는 신랑신부
남자친구와 그의 가장 친한 친구들
파티장은 성당에서 차로 약 30분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춤을 추는 공간과 식사를 하는 공간으로 나뉘어 있었고, 바텐터와 DJ도 있었다. 테이블에 자리를 잡으면 웨이터가 음식을 가져다준다. 마실 것도 바텐더에게 주문하면 되는데, 브라질 대표 술인 카샤사도 있고 사케, 레드 와인, 화이트 와인 베이스로 만든 칵테일도 있었다. 궁금해서 하나씩 다 마셔봤다. 레드와인, 화이트와인 베이스의 칵테일은 연유가 들어가서 너무 달았고, 카샤사는 내게 조금 독했다. 사케 베이스의 칵테일이 내 취향이었다.
파티장
파티는 야외 촬영을 끝내고 온 신랑신부가 입장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들이 입장할 때 빠른 비트의 신나는 음악으로 바뀌고,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와 함께 냅킨을 휘두르며 신랑신부를 환영한다. 춤을 추고 싶은 사람들은 춤을 추고, 식사를 하며 테이블에서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파티가 진행되는 내내 스태프가 사진을 찍는데 자연스러운 모습 그대로 담아내는 사진이라 더 예쁠 것 같았다.
신랑신부를 환영하며 냅킨을 휘두르는 모습
파티장에서도 스태프가 여러 이벤트를 진행한다. 인상 깊었던 몇 가지를 뽑자면, 첫 번째로 신랑의 넥타이 커팅. 파티가 거의 끝나갈 즈음 신랑신부와 그 친구들이 다 같이 한 테이블씩 돌아다닌다. 신부는 웨딩 구두와 유리병을 쟁반 위에 올린 채 들고 다닌다. 그러면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현금을 꺼내 신부가 들고 있는 유리병에 담는다. 게임 형식이라 큰돈은 아니고 한화로 오천 원에서 만 원 정도 넣는다. 한 명씩 현금을 담을 때마다 모두 환호하고 신랑은 본인의 넥타이를 끝에서부터 조금씩 잘라 현금을 낸 사람에게 준다.
두 번째로 인상 깊었던 이벤트는 신랑신부와 엽기 사진 찍기! 한 테이블씩 돌아가며 신랑신부와 함께 사진을 찍는데 이때 하객들은 최대한 웃긴 표정과 포즈를 취해야 한다. 우리 테이블에선 신랑의 친구들이 신랑을 번쩍 들고 한 명은 물구나무를 섰다.
세 번째로는 댄스홀에서 본격적으로 춤추는 시간! 노래에 따라 모두 똑같은 춤을 추기도 하고, 각자 다른 춤을 추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인상 깊었던 이벤트는 부케 게임. 부케 게임도 파티가 거의 마무리될 때쯤 진행됐는데, 우선 여자 하객들이 신랑신부를 가운데 두고 원으로 빙 둘러선다. 부케에는 여러 끈이 길게 연결되어 있고, 신랑이 가운데에서 부케를 한 손으로 높이 들면 하객들이 부케에 연결된 끈을 하나씩 잡는다. 이때 신부는 신랑 옆에서 눈가리개를 하고 있다. 음악이 시작되면 하객들은 끈을 잡은 손을 높이 든 채 원을 그리며 걷는데, 이때 눈을 가린 신부의 손에 잡힌 끈은 신랑이 가위로 끊는다. 끈이 끊기지 않고 마지막까지 남은 사람이 부케의 주인공이 된다.
사실 게임이 시작되기 전에 신랑이 내게 몰래 와서 내가 마지막까지 남을 수 있게 도와주겠다고 했었다. 게임 중 신부가 내 끈을 잡으려고 하면 신랑이 부케를 신부 손보다 더 높이 들어 피했는데 결국 마지막 직전에 내 끈이 잡혀서 부케의 주인공은 되지 못했다. 그 게임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파티장을 나섰고 시간은 밤 10시 조금 넘었던 것 같다. 오후 4시에 시작한 결혼식이었는데 말이다.
현금을 받으러 돌아다니는 신랑신부
솔직히 결혼식 당일이 마냥 즐겁고 신나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브라질에 와서 처음으로 큰 문화 차이에 적응하느라 힘들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좀 더 마음 놓고 즐길 걸 하는 약간의 후회가 있지만, 이미 지난 일인 걸 어쩌겠나. 그날의 나를 묘사하자면, 브라질의 열정적인 에너지를 따라가려고 애쓰지만, 그 근처도 못 따라가는 평범한 에너지의 한국인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그들의 에너지를 따라가는 건 무리일 거다.
사실 결혼식 한 달 전부터 이것저것 준비할 게 있어 스트레스를 받았다. 파드리누로 선정된 나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고 어떤 옷을 입어야 할지 모든 게 다 막막했다. 남자친구도 파드리누는 처음이라 아무것도 몰랐다. 혹시 몰라 한국 결혼식에서 입는 블라우스와 치마를 챙겨왔는데 브라질 결혼식에선 다들 드레스를 입더라. 특히나 파드리누는 더더욱 화려한 드레스를 입는다. 결혼식 당일에 모두 숍에서 헤어, 메이크업을 받고 온 듯했고, 드레스도 시상식에 온 사람들처럼 반짝반짝했다. 한국 결혼식에선 신부보다 튀는 의상은 피하는 게 예의인데 브라질 결혼식에선 모두가 파티를 즐기러 온 주인공인 것처럼 화려했다.
온라인 청첩장에는 각각 하객들을 위한 드레스 코드가 적혀 있었다. 여자는 무채색 외에는 다 가능해서 선명한 빨강, 초록, 파랑 등 다양한 색의 드레스가 결혼식장에 모였다. 하지만 파드리누는 신랑신부가 따로 정한 드레스 코드를 따라야 한다. 이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남자친구의 사촌 누나인 Kamila에게 미리 남색 드레스를 빌려두고 구두만 사면 되겠다 안심하고 있었다가 2주 뒤 신부에게 마드리냐의 드레스 코드가 분홍색이라는 연락을 받았다. 옷 고르는 데에 시간을 많이 쓰고 싶지 않아 그날 부랴부랴 온라인으로 분홍색 드레스를 찾아봤다. 한국에선 늘 차분한 색 옷만 입었는데, 난생처음 쨍한 분홍색의 드레스를 골랐다. 그 생기발랄함에 이끌렸다고 할까. 처음 도전해 보는 색과 디자인이라 은근히 기대가 됐고, 실제로 드레스를 입어봤을 때 예상보다 더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파티용이라 한국에선 입을 일이 거의 없을 것 같다.
사실 가방도 사야 했지만 전혀 생각도 못 해서 결혼식 당일 가방 없이 다녀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휴대폰을 남자친구 정장 주머니에 맡겨 놓고 빈손으로 다닌 여자 하객은 나뿐이었던 것 같다. 저 멀리 비행기로 36시간 떨어진 땅에서 온 하객도 나뿐이었다. 여러모로 참 특별한 하객이었네. 구두는 10cm 굽의 은색 하이힐을 신었다. 걷는 게 어색해서 결혼식 전 잠깐잠깐 걷기 연습을 했는데 덕분에 결혼식 당일 넘어지는 일은 없었다.
파티장에서 찍은 사진
브라질 결혼식은 청첩장도 한국과는 조금 달랐다. 나는 온라인 청첩장만 받았는데 우선 카테고리가 좀 더 세부적으로 나뉘어 있다. 그들의 첫 만남부터 프로포즈 순간까지의 이야기, 어린 시절 사진, 부모님 소개, 파드리누 소개, 하객들의 축하 메시지, 하객들의 드레스 코드, 신랑신부가 고른 선물 목록, 그리고 결혼식 장소와 파티 장소가 상세히 기재돼 있다. 신랑신부가 직접 쓴 글들이 많아 더 생동감 있고 진정성 있게 다가오기도 했다. 사진도 많아서 청첩장을 다 훑었을 때 이미 그들을 오랫동안 봐 온 듯한 친근감이 들었다.
파드리누 소개엔 각 커플의 사진과 함께 그들이 신랑신부에게 어떤 존재인지, 왜 그들을 파드리누로 선정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7~8줄로 쓰여 있는데 휴대폰으로 한 커플 한 커플씩 읽다가 갑자기 나와 내 남자친구의 사진이 나와서 깜짝 놀랐다. 신랑인 Mekele가 직접 쓴 글이었다. 그는 나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었다. “Jiyoon is a person that I hold in high regard, a woman of integrity and that I am pleased to be able to call my sister in law.(지윤은 내가 아주 존경하는 사람으로, 고결한 여성이자 내가 ‘제수씨’라 부를 수 있게 되어 기쁜 사람이다.)” 짧게 소개 되었지만 본인에 대한 긍정적인 말을 누가 싫어하리! 타인의 청첩장에, 그것도 먼 나라 브라질 친구 청첩장에 내가 소개된 사실이 웃기기도 하고 재밌어서 가족들에게 신나 하며 보여주기도 했다.
청첩장에 소개된 나와 남자친구
청첩장에서 가장 신기했던 부분은 신랑신부가 고른 선물 목록이다. 브라질에선 축의금 대신 신랑 신부가 받고 싶은 선물을 사 주는 문화가 있는데 청첩장에 선물 목록이 잔뜩 있는 페이지가 있었다. 그중 사주고 싶은 선물을 골라 바로 결제할 수 있다. 식기류, 가구, 가전제품 등 다양한 품목이 있었고, 신혼여행을 위한 호텔이나 액티비티 등도 있었다. 물론 선물 대신 현금을 송금해 주는 사람도 있다.
결혼식이 끝난 다음 날은 여유롭게 해변을 걸었다. 도시 이름은 프라이아 그랑드(Praia Grande)인데 ‘큰 바다’라는 의미다. 이름 그대로 해변이 끝도 없이 길게 이어졌다. 사람들도 정말 많았다. 물놀이하는 사람, 배구나 족구를 하는 사람, 누워서 음악 듣는 사람, 조깅하는 사람 등 다양한 무리가 있었다. 브라질에서 바다를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모두들 자유롭고 평화롭게 해변을 즐기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절로 따뜻해졌다.
결혼 당사자도 아닌데 결혼식 당일까지 이것저것 신경 쓰다가 막상 결혼식이 끝나니 후련하면서도 꿈을 꾼 것 같기도 했다. 약 1시간 진행하고 끝나는 한국의 결혼식만 다니다가 6시간 이상 진행하는 결혼식을 다녀왔으니 비현실적일 만도 하다. 이번 결혼식은 진정한 축제 그 자체였다. 모두가 진심으로 축하하고 즐기는 자리! 결혼과 결혼식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되는 순간이었다.
파드리누로서 결혼식에 초대되어 의미 있는 경험을 하게 해준 신랑신부에게 정말 고맙다. 내 인생은 정말 특별하고 재미있는 일들로 채워지고 있는 것 같다. 1년 전의 나는 현재의 내 모습을 상상도 못했는데 앞으로는 또 어떤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지 기대되고 설렌다.
글/사진 여지윤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할머니가 되고 싶은 열정 많은 모험가. 건강하고 자연스러운 것들에서 영감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