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트리올에서 보낸 가을]펍에서 글을 쓰는 두 번째 사람

몬트리올에서 보낸 가을 #10



탁자 위에 맥주 한 잔을 올려놓고 원고지를 편다. 새 잉크 튜브를 끼운 만년필을 꺼내 마지막 문장에서부터 다시 시작한다. 남자는 안경을 치켜 올린다. 그러면 자신이 써야 할 문장이 빈종이 위에 떠오를 거라는 듯이.


그러나 어려운 수술을 망설이는 의사처럼 펜촉은 한참이나 손톱만한 거리를 좁히지 못한다. 주어는 정해져 있는데 동사는 무엇을 쓸지, 부사는 붙일지, 형용사 없는 목적어가 얼마나 적확할지 그는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다. 맥주를 한 모금 마신다. 주변의 소음이 조금 가라앉는다. 맥주가 없었다면 끝내지 못할 모험이었다.


그는 자신감을 가지기로 한다. 자신을 속이는 일이다. 속이지 않으면 시작할 수 없다. 맙소사, 술집의 이름이 그랬다.



남자는 시작한다. 그는 계속 시도한다. 맞거나 옳다고 알고 하는 일은 아니다. 당장은 누구도 그걸 모른다. 한차례 폭풍우가 휩쓸고 지나가야 무엇을 고치고 무엇을 새로 지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어쩌면 도시 하나를 처음부터 다시 세우는 수고를 들여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왜 이 짓을 하고 있는 거지? 하느님 맙소사, 술집의 이름이 정말 그랬다.


나는 남자가 오랫동안 고개를 들지 않는 것을 보고 그가 잘해 나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는 가끔 쓰기를 멈췄다. 갑자기 밀려든 문장들을 고르거나 갑자기 숨어버린 문장을 캐는 중이었다. 나는 펍에서 글을 쓰는 사람을 이번에 두 번째로 보는데, 첫 번째는 바로 나였다. 나의 경우를 돌이키면 몸이 꼬일 정도로 부끄럽지만 그는 꽤 멋져 보였다. 어쩌면 나도 두 잔째 맥주를 마시는 중이라 그런지 몰랐다.



*   *   *


듀 뒤 시엘Dieu du Ciel!은 “하느님 맙소사!”라는 말인 것 같았다. 감탄사가 절로 나올 만큼 맛있는 맥주를 파는 곳이라고? 칠판엔 열다섯 가지가 넘는 수제 맥주 리스트가 적혀 있었다. 몬트리올에 살았다면 그걸 다 마셔 보자는 도전을 하고야 말았을 터였다. 그리고 한두 주 만에 성공했을 것이다. 어쩌면 저 남자처럼 ‘가스펠’ 한 잔을 놓고 글을 쓰는 모험을 한 번 더 감행했을지도 모른다. 사실 꽤 많은 작가들이 카페에서 술을 마시며 원고를 완성했다. 그런 행운이 내게도 오지 말란 법은 없었다.



M은 학원 누군가에게서 이곳을 추천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고 한다. 그녀도 그 오랜 기다림이 보답을 받는다는 눈치였다. 듀 뒤 시엘에선 나초도 뭔가 달랐다. 정확힌 치즈가 달랐다. 이것이 프랑스 이웃의 솜씨지, 고수를 뿌리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손님은 동네 할아버지부터 옆 동네 멋쟁이까지 제각각이었다. 서로 결은 비슷했다. 창밖에 떨어진 어둠으로부터 술맛이 더 깊어진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었다. 어쩌면 석양이 지는 시간이나 해가 하늘의 마루를 점령한 한낮의 술맛도 기가 막히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을 게 분명했다. 하느님 맙소사, 이 맥줏집은 정오도 되기 전에 문을 열었다.



동네 술집이면서도 동네 술집 같지 않았다. 몬트리올 어딘가에 사는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주 전체에서, 나라 전체에서 소문을 듣고 온 이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우리만 해도 그러니까. 그런 곳에서 흔히 그러듯, 장소가 나를 앞서갔다. 여전히 만년필로 노트를 채우고 있는 남자와 비교해도, 나는 짜부라진 기분이었다. ‘지나치게 멋진 동네 사람들’ 사이에 낀 먼 나라 여행자라는 딱지는 세 잔째 맥주를 주문하고 나서야 겨우 이마에서 떨어져 나갔다. 나는 용기를 얻기 위해 자주 잔을 비우고 자주 점원을 불렀다. ‘가스펠’, ‘모카리테’, ‘하프 라이프’. 맥주 이름으로 시를 쓰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와 M은 가능한 만큼 리스트를 지우며 우리만의 기념비를 세워 보았다.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그는 펜을 내려놓고 맥주를 마저 비웠다. 그게 언제 끝나나 계속 궁금했었다. 그가 두 잔째(또는 세 잔째 – 그는 우리보다 먼저 와 있었다)의 맥주를 주문할까? 손을 든다. 직원에게 계산을 하겠다고 말한다. 이상하게 안심이 됐다. 모험은 어떻게 되었을까. 문장이 백지 위에서 용케 살아남았을까? 하긴 그렇게 쉽게 끝날 여정이 아니다. ‘하프 라이프’를 마시며 인생의 절반을 걸어야 하는 일에 관해 생각한다. 하느님 맙소사, 나는 네 번째 맥주는 무엇을 마실까 결정하는 것도 어렵다는 걸 깨닫는다. 판돈이 떨어지기 전에 뭐라도 결판을 내야 할 텐데.



나는 맥주잔 밑에 불을 비추며 장난을 좀 친다. M에게 이런 곳을 소개해 줘서 고맙다고 말한다. 나초 위에서 고수 잎을 긁어내며 저물어가는 멋진 동네 사람들을 본다. 신은 잔 안에 있었다. 아니면 천사라도, 누군가는 분명 그 안에 있었다.





글/사진 신태진

여행 매거진 BRICKS의 에디터. 『꽃 파르페 물고기 그리고 당신』을 냈고, 『홍콩단편, 어쩌면 익숙한 하루』를 함께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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