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by on Board]아기, 59번 부두, 그리고 아쿠아리움

Baby on Board #1



아크릴 벽 너머에 다른 세계가 있었다. 무지개 일곱 색에서 무작위로 튀어나온 듯한 작은 물고기들이 무리를 지어 나선 운동을 했다. 퍼졌다가 모였다가, 커다란 물고기 한 마리가 심호흡을 하며 트위스트를 추는 것 같기도 했다. 벽은 서로의 비늘이나 단추 하나까지 볼 수 있을 만큼 투명했지만, 우리는 말을 나눌 수 없고 심지어 눈도 마주칠 수 없었다. 벽에 손을 대자 바닷물이 쏟아져 들어오는 진동이 느껴졌다. 그것이 이쪽과 저쪽이 가까워질 수 있는 최단의 거리였다.


문득, 유모차에 앉아 그 안을 가만히 들여다보던 아들이 칭얼대기 시작했다. 아직 돌도 안 된 아이가 반복해 요구하는 몇 가지가 있는데, 지금 이 유모차가 불편하니 날 당장 안으시오, 상태는 아니었다. 아이는 수족관을 무서워하고 있었다.


알록달록한 조명은 없다. 심해 공포증이 있다면 꽤 무서울 수 있다.


열 살도 아니고 열 달 된 아이를 데리고 미국 여행을 가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체력의 문제이기도 했고, 가서 제대로 다닐 수는 있을까, 실행의 문제이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큰 난제는 명분이었다. 아들을 데리고 열흘 동안 미국을 간다고 하자 반응이 대체로 둘로 나누어졌는데, 둘 다 부정적이라 오히려 무시하기는 좋았다. 내 손엔 무려 다섯 달 전에 끊어 저렴한 만큼 환불 금액이 어마어마한 항공권이 들려있다고, 그런 사람한테 할 이야기는 아니지. 뭐, 그런 기분이었다.


어떤 이들은 그 모든 뒤치다꺼리를 먼 이국에서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 걱정했다. 우리 집엔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으나 ‘아이와 함께 여행하는 법’ 비슷한 제목의 책이 한 권 있다. 그 책의 저자는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기와 함께라면 여행도 육아의 연장이라고. 그것도 집에서 할 때보다 훨씬 고달프다고.


나는 그 문장을 읽으면서 똑같은 게임기를 유독 어렵게 설정해 둔, 괘씸하기 짝이 없는 오락실이 떠올랐다. 그런 곳들은 도전의식을 불러일으켰고, 익숙한 패턴도 새삼스럽게 했으며, 무엇보다 동전을 더럽게 많이 쓰게 했다. 그나마 그런 상황에서 게임을 클리어하면 성취감은 훨씬 크다는 장점이 있었는데, 위 책의 저자도 ‘힘들지만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은 가치가 있다’며 겁먹은 독자를 어르고 지나갔다. 하긴 그러니까 이런 책을 썼을 것이다.


아이를 안고 있으면 사진 찍기도 쉽지 않다.


또 다른 이들은 거기까지 끌려간 애는 무슨 죄냐고 질타하는 쪽이었다. 장거리 여행은 부모의 욕심에 불과하며, 아프기라도 하면 어떻게 책임질 거냐는 말이었다. 물론 화가 나는 반응이었다. 혹여 애를 두고 부부만 떠난다고 했다간 젖먹이가 트라우마에 걸릴지도 모른다고 질책할 판이었다. 그런 말은 애도 있는 게 무슨 여행이냐고, 네 처지를 똑바로 알라는 충고로도 들렸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화가 난 것도 실은 맞는 말 같아서였다. 하지만 우리 아이는 우리가 제일 잘 알지 않을까, 그 말을 쉽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그런 말을 한 사람 대부분 비슷한 또래의 아기를 데리고 멀리 여행을 가 본 적 없는 사람들이었다. 사실 그중에 애가 있는 사람도 몇 명 없었다.


그리하여 무모하고 이기적인 부모가 되기로 한 바, 이 여행이 아무것도 모르는 아들에게 어떤 순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일종의 비전 선포식이 필요했다. 핑계는 많았다. 영어를 많이 ‘보고’ 듣게 해주자. 만날 보던 한민족 말고 코 크고 덩치 큰 미국인들을 보여주자, 훗날 학교에 가서 다문화 가정의 친구들을 봐도 쉽게 친해질 수 있도록. 방 안에 있는 것보단 나가는 걸 좋아하니 불만은 없을 테고, 차를 타면 멍하니 창밖 보기를 즐겨 하니 도대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는 몰라도 그 생각 많이 하게 해주자. 아, 그리고 아이의 정서를 말랑말랑하게 하고 더 나은 어린이가 될 수 있도록 수족관이나 동물원도 보여주자, 머리 위로 지나가는 상어의 아랫배와 울타리 저편에서 씰룩거리는 코끼리의 커다란 엉덩이에 입이 헤 벌려지도록.


그런데 그렇게 의욕적으로 찾아온 시애틀의 아쿠아리움에서 아들이 울음을 터트린 것이다.


블랙 오이스터캐처. 딱히 한글 이름이 없어 개인적으로는 '검은 굴따개'라고 불러주고 싶다.



"벽에는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키는 서체로 59라는 숫자가 그려져 있다.
이곳이 59번 부두라는 뜻이었다."



단서는 그전부터 있었다. 아이는 부모가 아기 욕조에 목욕물을 채우는 걸 보는 순간 엉덩이를 흔들며 춤을 출 만큼 목욕을 좋아했다. 그래서 수영도 좋아하겠거니, 유아용 수영장이 있는 키즈 카페에 데려갔다가 애를 끓는 물에 집어넣는 야만인 취급을 받을 뻔했다. 겁에 질려 발도 담그려 하지 않고 엄마 품에서 떨어지지 않겠다며 발버둥을 친 것이다. 마침 모 프로그램에서 유아용 수영장을 촬영하러 나왔고, 아들은 멈출 줄 모르는 울음의 BGM으로 생애 첫 방송을 탔다. 사운드맨이 고생깨나 했을 터였다.


아무래도 깊이가 있는 물에서 비치는 영롱한 에메랄드빛이 무서운가 보다, 아빠 된 도리와 호기심으로 이번엔 마트 수산 코너로 향했다. 관상용 수족관 앞에 아이를 데려다 놓자 아이는 찡찡거리며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내가 수족관에 볼을 붙이고 한참 황홀한 표정을 짓고 나서야 마음을 풀고 생선 욕조 안을 들여다보기 시작할 정도였다. 그 안에 마트에서 재미 삼아 데려다 놓은 관상용 상어가 있긴 했으나 절대 그놈 때문에 무서워하는 건 아니었다. 물속의 세계가 자신이 기고 서고 물건을 집고 빨고 던지는 이쪽의 세계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물론 체험 학습장은 굉장히 잘 마련되어 있다. 많은 아이들이 이곳을 좋아했다.


그런 면에서 시애틀의 아쿠아리움은 아들에게 가히 유령의 집 수준이었을 터다. 이곳의 설립자들은 최대한 바다와 비슷한 환경을 제공하여 해양 생물들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한다는 사명감이 있었다. 살균한 물이 아닌 바닷물을 끌어다 쓰고, 수족관마다 적은 개체만 풀어두어 그나마 갇혀 지내는 삶이 부대끼지는 않도록 배려했다. 하지만 얼마나 환경친화적이고 동물 복지에 신경을 썼는지는 내 아들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정말 바다 한구석에 들어와 있는 듯한, 마치 바닷속에 정박한 잠수정을 탄 듯한 느낌을 견디기 힘들어할 뿐이었다. 더군다나 아내 역시 비슷한 이유로 겁에 질려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황급히 야외 전시장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아쿠아리움이라기보다는 빗물 펌프장 같기도 하지만.


바깥으로 나오니 옛 부두였다. 바다표범 몇 마리가 실외에 특별히 마련된 우리 안에서 배를 깔고 오수에 젖어있었다. 뭐라도 튕기며 재롱을 떨 의지가 없는 것 같아 관람을 포기하고 주변만 몇 바퀴 돌기 시작했다.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도시와 접한 만을 보았다. 해안선 끝에는 눈으로 덮인 올림픽 산이 구름 위에 떠 있었다. 산은 가까워 보이다가도 멀어지고, 멀어지다가도 다시 가까워졌다. 아들은 유모차 안에서 숨을 고르고는 이곳저곳 다시 호기심 어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시야가 훤히 트여 기쁜 것 같았다. 나도 조금은 수족관 안이 답답했었는지 뭍과 바다 위에 드리워진 구름의 그림자가 반가웠다.


부두에 서면 올림픽 산이 보인다.


시애틀 아쿠아리움에서 이렇게 독특한 풍경을 볼 수 있는 것은 이곳이 도시의 서쪽 부둣가에 있기 때문이다. 로비와 교육장, 기념품 가게 등이 모인 메인 빌딩은 옛 창고를 개조한 듯하고, 벽에는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키는 서체로 59라는 숫자가 그려져 있다. 이곳이 59번 부두라는 뜻이었다.


애초에 수족관은 이곳에 세워질 계획이 아니었다. 처음엔 시애틀의 북서쪽, 해안 공원인 골든 가든스가 물망에 올랐지만, 환경 운동가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차라리 거대한 배 위에 아쿠아리움을 짓고 바다를 돌아다니게 하자는 의견까지 나왔으나(조선소 사장의 주장이었다) 유령처럼 해안을 떠돌던 수족관 건설 계획은 1972년, 여기 워터프론트 부둣가까지 와서야 실체화될 수 있었다. 개장은 1977년이었다.


한때는 부두였던 마루 곳곳에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다. 하긴 개보수를 거쳤다 하더라도 부두가 지어진 세월이 이미 한 세기를 넘어섰다. 그 무게감 때문인가 주변은 간간이 파도 소리만 들릴 뿐 고요했다. 관람객들이 두런두런 나누는 대화에도 어쩐지 운치가 있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이 유독 많이 보였고, 나도 아내와 아들의 사진을 여러 장 남겼다. 수족관을 나온 두 사람은 먹구름이 점령한 하늘 아래서도 밝게 빛났다. 아들은 뭐에 그렇게 정신이 팔렸는지 불러도 불러도 내 쪽을 보지 않아 옆모습만 찍혔지만.


어른들은 바깥에서 더 활기차 보인다.


아들이 기억은 못 할지언정 당장 눈으로라도 즐겁게 해주고 싶었던 수족관 관람 계획은 그렇게 삼십 여분 만에 무산되고 말았다. 이번엔 동물원에 욕심이 생겼으나 이내 마음을 접었다. 아들은 코끼리도 무서워하니까. 아직 해가 지려면 멀었고 다음엔 어디로 갈까, 결국 엄마 아빠가 가고 싶은 곳으로 목적지가 정해졌다. 애 고생 시키는 여행이라던 사람들의 핀잔이 미련처럼 떠올랐다.


유모차를 끌고 다시 건물로 들어가는 와중에도 아들은 온통 딴 데 시선이 팔렸다. 부두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구경하는 모양이었다. 넓게 보면 이쪽이나 그쪽이나 똑같이 애라고 불러도 무방할 텐데, 그 아이들은 아들과 달리 자유롭게 땅을 딛고 활개 치고 있었다. 아들은 손가락으로 그들을 가리키며 응, 응, 제 딴에는 세상 모든 의미를 담을 수 있는 그 한 단어를 자꾸만 소리쳤다.


이제부터 알게 될 일이지만, 아들은 몇 시간씩 비행기를 타고 온 이 도시가 자신이 이제껏 보던 도시와 다르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아는 듯했다. 그리고 아들이 유난히 좋아하는 무언가를 새로이 발견하는 것도 이제부터 우리가 하게 될 일이었다. 그전까지는 괜히 우리 때문에 네가 고생이 많다며 아이에게 미안해 할 수밖에 없었다. 기념품 매장에 들러 바다표범 인형을 아이 앞에 흔들면서 이거라도 너에게 기쁨을 줬으면 좋겠다고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빠르게 흘러가는 모든 것을 붙잡아두려는 아이의 눈은 반짝이고 있었는데, 우리는 아직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글/사진 신태진

여행 매거진 BRICKS의 에디터. 『홍콩단편, 어쩌면 익숙한 하루』의 공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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