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by on Board]에이스 호텔만큼 커다란

Baby on Board #2



포틀랜드는 힙스터의 성지라고 하던데, 사흘이 지나도 그 말이 내 입에서 절로 나올 만한 사건이나 역사적인 발견은 없었다. 석 달은 있어 봐야 아는 것일까. 남은 날을 세어보았으나 손가락 두 개만 접으면 계산은 끝이었다. 나도 말 만들길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각종 매체의 전문가와 블로거들에 비하면 걸음마 수준이었다. 으리으리한 단어를 변용하고 조합하여 사물과 현상에 명명하는 기술은 이제 한 문명이 이룰 수 있는 최대치에 다다른 모양이었다. 이 시대의 시인은 골방이 아니라 네트워크 단말기 앞에 앉아 있다는 깨달음과 함께 나는 와인 잔에 담아 준 냉침 커피를 마셨다. 그건 그렇고 이 호텔 참 멋쟁이 같다는 생각을 덩달아 하면서.


포틀랜드의 명소 중 한 곳이 호텔이라는 말에 고개를 갸우뚱했었다. 그러면서도 사진이 워낙 그럴싸하여 한 번 가보지 않을 수도 없었다. 동네 찻집도 아니고 명색이 호텔 로비인데 지나가던 행인이나 관광객이 아무렇지 않게 드나든다는 소문도 믿기는 어려웠다. 그냥 들어가도 돼? 가서 커피만 시키면 돼? 아니, 그런 것도 필요 없다고? 내 딴에는 무심하게 아내에게 물었지만, 배짱이 부족한 마음은 줄곧 어지럽기만 했다. 정장 차림의 누군가가 다가와 어중이떠중이는 나가달라고 앞을 가로막을 것만 같았다.



에이스 호텔의 로비는 실로 사랑채 같은 곳이었다. 들락날락하는 사람을 제지하거나 주의 깊게 지켜보는 문지기는 없었다. 투숙객들은 황급히 건물을 빠져나가는 편이었고, 대화가 필요한 시민들, 사진을 찍고 싶은 여행자들, 비를 피하고 싶은 선량한 행인들이 자연스럽게 찾아와서 뭐라도 하거나 뭐라도 전혀 하지 않거나 하며 시간을 보내고는 했다. 우편물 분류소나 전당포 느낌이 나는 리셉션에 한 남자가 앉아 있긴 했다. 그의 관심은 그러나 로비에서 벌어지는 일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다. 정확히는 자신의 앞에 놓인 모니터에 집중되어 있었는데, 그 안엔 아스키코드가 깜빡이는 도스 프로그램이 떠 있을 게 분명했다.


일단 자리를 잡자 마음이 편해졌다. 초콜릿 같은 나무 벽, 공장 외벽에 붙어 있었을 법한 철재 알파벳(H.O.T.E.L), 물 빠진 청록색 소파와 버려진 걸 주워온 듯한 화분까지. 누군가 아무 생각 없이 놓아둔 것들이 우연히 조화調和를 이루고 손때를 타며 맵시를 갖춘 것만 같은데, 그렇다고 믿자니 그건 그것대로 말이 되지 않는 조화造化였다.



하긴 누군가 포틀랜드 곳곳에 흘리고 다닌 어떤 기운이 대체로 그런 식이었다. “전 그냥 한 건데 남들이 좋아해요.” 사람들은 그런 어마어마한 재주를 일컬어 ‘힙’이라 부르고, 포틀랜드 시민들은 태어날 때부터 그런 재능을 부여받은 신인류인지 모른다. 아차, 힙스터의 성지라는 표현은 과장이 아니었던가, 문득 주성치의 <쿵푸허슬>에 등장하는 고수의 마을이 떠올랐으나 영 이미지가 맞지 않아 그 생각은 고이 접어 두었다.


그런데 이 로비를 거실로 삼고 싶다며 들뜬 기분에 사로잡혀 있던 사람은 나와 아내만이 아니었다. 아들은 통유리 위에 걸린 샹들리에에서 눈을 떼지 못하다가 갑자기 소파 등받이를 잡고 일어나 엉덩이를 흔들기 시작했다. 제 몸 안에 가두기에 너무 큰 감정을 열을 다해 표현하는 중이었다. 저도 원래 이런 집에서 태어났어야 합니다, 라는 말인가 하여 가슴이 철렁했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런 질책은 사춘기는 되어야 들을 일이었다. 아들은 반대편 자리에 앉아 있던 노부부와 그들의 장성한 아들에게 손을 흔들고, 고개를 갸웃갸웃하며 시선을 끌고, 꺄르르 웃기도 하면서 반가움을 표하고 있었다. 세 가족 중 (내 아들을 기준으로 보자면) 할머니께서 아들에게 손 인사를 하고 말을 걸어주신 모양인데, 그게 감격스러웠던 모양이었다.


이런 멋진 로비를 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이만큼 애교를 부리는 아들 역시 나와 아내는 처음으로 보았다.



"여행이 계속될수록 아들은 새로운 애교를 연마했다."



“아이가 낯을 가리나 봐요.”


누군가 그렇게 말하면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마법의 주문이었다. 아이가 낯선 이에게서 시선을 피하거나 울음을 터트리는 상황이 오면 항상 그 문장이 필요했다. 효과는 즉시였다. 불편한 공기가 안개처럼 사라졌다. 기억하고 싶은 시구처럼 엘리베이터 안에서, 식당 한쪽에서, 아기 옷가게의 진열장 사이에서 그 말은 감미롭게 흘러 다녔다. 아이한테 자라면서 보이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라는 주석을 달고 나면 누구도 무안할 일이 없었다. 아이가 낯을 가린다는 말은 사실이었고, 그래서 쭉 사실처럼 보였다.



그러나 저도 외국물 좀 먹겠다는 심산인지, 이번 여행의 시작부터 아이가 색다른 반응을 보였다. 시애틀 터코마 공항에 내려 렌터카를 찾으러 가는 셔틀버스 안. 탑승객들의 양보로 아기를 안은 아내와 백발의 할머니 한 분이 나란히 자리를 잡았다. 아이와 할머니의 시선이 마주쳤다. 아이는 머리가 하얀 사람이 신기한지 할머니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고, 할머니 역시 이렇게 눈이 작은 동양의 아이는 오랜만에 본다는 듯 아이에게 붙일 수 있는 온갖 형용사를 말해주기 시작했다. 아들은 처음 보는 할머니가 자신을 예뻐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당시에 천착하던 짝짜꿍과 죔 죔과 곤지곤지 삼 연타를 할머니에게 아낌없이 쏟아붓는 걸 보면 분명 그러했다. 영어로 낯을 가린다는 표현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여기선 아무도 그 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여행이 계속될수록 아들은 새로운 애교를 연마했다. 아침부터 북적이던 시애틀 동네 카페에선 자길 보라고 손짓하는 회유의 기술을 배웠고, 한 블록 전체에 책이 깔린 포틀랜드 파웰 서점에선 아무리 도리질을 해도 어지럽지 않은 정신력을 길렀으며, 지역 주민의 팝업 시장인 파머스 마켓 부스 옆에선 마음에 드는 사람을 소리쳐 부르는 과단성을 체화했다. 그러면 아이치고 태도가 당돌하고 표현이 화끈하군, 불의의 목표가 된 사람들도 체면이 허락하는 만큼 장단을 맞춰주는 것이었다. 교류는 우리와 무관하게 난데없이 벌어지고는 했다. 그때마다 나와 아내는 지금껏 우리가 아이에게 무뚝뚝했던 건 아닌가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물론 아이가 포틀랜드 명물 호텔의 영리하고 낙관적인 성격을 이해했을 리는 없다. 그저 차근차근 애교 게임의 경험치를 쌓아 오다 일정 경지에 도달했을 뿐이었다. 사람은 물론 그들의 반려견까지 환영한다는 에이스 호텔의 정신은 어찌 됐든 어른이 눈여겨봐야 할 덕목이었다.


그러나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은 이 낡은 건물이 표방하는 가치를 아는 사람들, 어떤 식으로든 다른 사람과 그 가치에 어울리는 관계를 맺으려는 사람들임이 분명했다. 십여 분 넘게 계속된 아이의 재롱과 구애에 지칠 줄 모르고 응대해 준 노부인의 인내심을 보면 그렇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남편과 아들은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노부인과 생판 처음 보는 아이의 교감에 가끔 흥미를 보였다(그럴 때마다 커피를 한 모금씩 마시며 숨을 돌렸다). 우리 부부와 그들 가족 사이에도 몇 번 눈인사가 오고 갔다.



곰곰 생각해 보면 이것은 처음 서구에 갔을 때 충격으로 다가왔던 이네들의 인사 문화와도 관련이 있는지 몰랐다. 길 가다가 눈이 마주치면 친구처럼 서슴없이 안부를 묻고 사라지는, 종잇장처럼 얇지만 불쾌하지는 않은 친밀함을 얼마간 따라 하기도 했었다. 그와 비슷한 맥락에서 시애틀이나 포틀랜드 시민들이 아기를 대하는 방식은 우리 아파트 주민들이 엘리베이터에서 아기를 대하는 방식과 달랐다. 기꺼이 눈높이를 낮추고, 아이보다 더 환하게 웃고, 하이 옥타브의 탄성을 지르며 부담스러울 만큼 체력을 아끼지 않았다. 가끔은 우리 아이를 예뻐해 줘서 고맙다고 해야 할 것만 같은데, 아들보다 성장이 느린 탓에 결국 그 말을 입 밖에 꺼내지 못하고 쑥스럽게 웃기만 하였다.


나 역시 다른 사람의 아이에게 살갑게 대하지 못한다. 무엇보다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그의 아이와 교제를 하려 드는 시도가 어쩐지 예의에 어긋나는 일 같기도 하다. 그 아이가 깨물어주고 싶을 만큼 귀여워도 어른은 어른의 눈치를 살펴야 하니까. 분명 처음 왔는데 바리스타가 “오늘은 무슨 커피 마실래?”라고 묻는 문화 속을 계속 여행하는 게 아니라면, 음, 부모한테 안겨 있는 폼이 참 귀엽군, 잔잔한 미소 정도가 우리에게는 어울릴지 모른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인천 공항에서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오늘 날씨 어때요?”라고 물어서는 안 되는 것처럼.



그러나 아들은 그 이치를 알기에 너무 어렸다. 여행이 끝나고 나서도 아이는 엘리베이터나 식당에서 보는 사람들에게 손짓을 하고 고개를 갸웃하며 관심을 요구했다. 대체로 반응은 돌아오지 않았고, 아들의 얼굴에선 당혹스러움이 읽혔다. 그럴 때 나와 아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은 아기를 들어 올려 그 불발된 애교에 대신 응해주는 일뿐이었다. 약 열흘 동안 낯선 사람을 향한 아이의 애교는 천천히 줄어들었다. 돌이 넘은 지금도 종종 “아이가 낯을 가리나 봐요.”라는 소리를 듣는다. 이젠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는 아이의 활발한 성격을, 사교성을 보았고, 다행스럽게도 그 독일 전차 같던 기세가 완벽히 지워진 것도 아니었다. 툭하면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며 자기를 따라 하라고 요구하는 바람에 곤혹스러울 때도 있지만.


문화의 차이는 웃고 넘어가면 그만일 일. 그럼에도 우리의 심드렁한 영혼 역시 빡빡한 일상에서 벗어나면 조금은 부드러워질 여지가 있다. 그날 에이스 호텔의 로비엔 우리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온 모녀도 있었다. 어머니는 아이가 잘 웃는다며 우리와 대화하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딸은 지퍼백에 담긴 간식을 떼어주기도 했다. 포틀랜드가 힙스터의 성지이든 뭐든 간에 피츠제럴드의 단편에 등장할 것 같은 이 멋진 호텔 로비에서, 우리 어른은 다른 어른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





글/사진 신태진

여행 매거진 BRICKS의 에디터. 『홍콩단편, 어쩌면 익숙한 하루』의 공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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