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란드로부터]그린란드 시시미웃

그린란드로부터 #5



친구와 음악 축제. 그린란드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시시미웃Sisimiut’에 가기로 마음먹은 이유 두 가지다.


내가 그린란드 사람을 처음 만난 곳은 아이슬란드였다. 그린란드에 대한 호기심이 최고조에 달했던, 지금의 석사 과정을 시작할 무렵이었다. 그런 나의 첫 그린란드 친구가 이곳 시시미웃에 자리 잡고 있었다. 도시 간에 도로가 형성되어 있지 않은 그린란드는 바로 옆 마을에 가더라도 비행기나 배를 이용해야 한다. 그런 탓에 그린란드에 1년 반 넘게 살면서도 친구의 집을 방문해 본 적이 없다. “언젠가는 한번 갈게.” 매번 말뿐이었다.


2014년부터 매년 4월, ‘Arctic Sounds’라고 하는 음악 축제가 시시미웃에서 열리고 있다. 올해 2017년에는 4월 6일부터 9일, 총 나흘간 열렸다. 노르딕 Nordic 국가¹ 출신 뮤지션들이 시시미웃에 모여 전통 음악에서부터 팝, 포크, 일렉트로닉 그리고 록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선보였다. 본래 축제 광이었던 나에게 그린란드에서 열리는 음악 축제는 절대 놓칠 수 없는 일생일대의 찬스였다.


시시미웃 거리의 한 게시판


뮤지션들의 공연 시간과 장소는 Arctic Sounds 홈페이지에 공지됐다. 보고 싶은 두 뮤지션이 같은 시간 다른 장소에서 공연을 하면 어디로 가야 할지 무척 고민이 됐는데, 한 공연의 절반만 보고 다른 공연장으로 이동하는 묘안으로 난감한 상황을 극복하기도 했다.


한국 사람들에게 ‘노르딕 음악’은 그렇게 익숙하지 않을 것이다. 나조차도 어떤 음악가들은 생소했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추천받은 뮤지션이 나의 취향이 아닐 때가 많았다. EDM을 기대하고 갔던 일렉트로닉 뮤지션들의 음악이 내게는 제삼 세계의 음악처럼 낯설게 들려 적응하기 힘들기도 했다. 차라리 1년여 동안 누크에서 들어오던 Da Bartali Crew, Malik, Piitsukkut, Secure Escape 같은 그린란드 출신들의 음악이 내게는 더 익숙했다.


친구와 함께 맥주를 다섯 잔이나 비웠지만 왠지 취하지 않았고, 가끔 우리의 취향이 아닌 음악들이 나올 때는 지루함까지 느꼈다.음료병에 붙은 라벨로 종이접기를 할 정도로.


그린란드 밴드 Piitsukkut


그런데 시시미웃에는 내가 기대하고 갔던 음악 축제보다 더 많은 것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시시미웃은 북극선 바로 위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린란드 내에서는 부동不凍항이 위치한 가장 북쪽 지역인 동시에 개썰매를 타고 다닐 수 있는 가장 남쪽 지역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시시미웃이라는 도시는 그린란드 내에서도 상당히 의미 있는 곳이다.


시시미웃 출신 친구들에게 시시미웃에 가서 꼭 해야 할 것을 물어보았더니 일 순위로 꼽은 것이 바로 스노모빌 체험이었다. 스노모빌은 누크에서도 탈 수 있었지만, 시시미웃은 누크와 차원이 다르다고 했다. 누크와 달리 시내 중심에서 3Km만 벗어나도 스노모빌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광활한 대지가 펼쳐지기 때문이었다.


출발 전 포즈만 취해 보았다.


레저로 스노모빌을 즐길 경우 특별한 라이센스는 필요 없었다. 하지만 나는 경험이 전무하였기에 친구 등 뒤에 딱 붙어 탔다. 뒷좌석임에도 아쉬움은 없었다. 시원한 속도감을 느끼며 바람과 대지를 마음껏 즐기기에는 뒷좌석도 충분했다.


눈으로 덮인 땅을 미끄러지듯 달리는 기분은 오토바이로 달리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시내 중심에서 얼마 벗어나지도 않았는데, 내가 탄 스노모빌 앞뒤로 사람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는 새하얀 대지가 펼쳐졌다. 오직 스노모빌이 지나간 긴 두 줄 자국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우리는 세 시간 동안 총 50km를 달렸다. 많은 것을 보았지만, 꼭 하나 소개하고 싶은 게 있다면 바로 개썰매다. 그린란드에 있다는 것은 알았으나 내 눈으로 직접 개썰매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개썰매를 모는 아저씨가 입은 하얀색 북극곰 바지조차 너무나 신기했다.


썰매를 끄는 개들은 주로 도시 변두리에서 길러지고 있었다. 대부분 줄에 묶여 있었다. 그린란드 개들은 성질이 사납다. 늑대와 교배하여 나온 종이라는 학설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가까이 다가가지 않는 편이 신상에 이로웠다. 개썰매의 주인과 대동하면 거리를 좁혀도 되지만, 이마저도 안전하지는 않다. 줄에 묶여 있지 않은 건 새끼들뿐이었다.


어떤 동물이든지 새끼들은 작고 귀엽다. 사납기로 유명한 썰매개의 새끼도 예외는 아니다.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다.


시시미웃에 사는 친구에게 또 한 가지 고마웠던 것은 매끼 그린란드 음식을 만들어 주었다는 것이다. 사실 그린란드에서 그린란드 전통 음식을 먹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전통 음식을 파는 식당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퓨전 요리 혹은 창의적인 요리를 하는 곳은 많지만, 전통 음식만큼은 거의 가정에서만 먹을 수 있다. 그린란드 여행자들이 도대체 어디서 현지 전통식을 먹을 수 있을까 의아해 할 만하다.


내가 시시미웃에 도착하자마자 친구가 준비해 준 음식은 메기 수프였다. 메기는 크기부터 남달랐다. 게다가 특별한 양념을 하지 않고 냄비에 메기와 양파만 넣고 푹 끓여 냈을 뿐인데 무척 깊은 맛이 나는 수프가 됐다.


이누이트 여자들의 칼인 울루Ulu로 메기를 자르고 있다.


친구가 이누이트 여자들의 칼인 울루를 사용하여 요리를 하는 모습도 메기의 크기만큼이나 인상적이었다. 외국인인 내가 보기에 더 그린란드스러워서 괜히 좋았다. 그린란드에서는 요리를 할 때뿐만 아니라 바느질을 하거나 전통의상을 만들 때도 울루를 사용한다.


다음 날 친구가 준비한 요리는 고래 고기 스테이크였다. 고래 고기는 퍽퍽하고 비리기 십상이라 즐겨 먹는 요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간장 양념으로 재운 고래 고기는 지금까지 내가 가지고 있던 고래 고기에 대한 편견을 싹 없애주기에 충분했다.


간장 소스로 재운 고래 고기 스테이크. 친구가 만든 특제 간장 소스에다 허브로 풍미를 더했다. 세 사람 먹을 분량이라고 했지만 둘이 전부 먹어버렸다.


시시미웃에서 직접 딴 허브로 향을 낸 구운 감자. 평범한 감자가 그린란드 음식으로 태어나는 순간을 볼 수 있었다.


수도인 누크가 그린란드 안에서 현대적인 도시의 역할을 맡고 있다면, 시시미웃은 약간 친근하고 시골스러운 면이 있는 알록달록한 동네였다. 시시미웃을 방문하면서 그린란드를 조금 더 많이 알게 된 기분이었다. 무엇보다 달빛 밝은 밤, 이런 곳이라면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 그런 생각을 했다.



1) 그린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스웨덴, 아이슬란드, 에스토니아, 페로제도, 핀란드 등




글/사진 밤하늘은하수

세계 최대 섬인 그린란드에 사는 유일한 한국인이다. 그린란드 대학교에서 West Nordic Studies 전공으로 사회과학석사과정 중에 있다.
https://galaxylake.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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