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 이 먼 길을 떠나 온 궁극적인 이유

2021-12-22

제이 in there #2
이것은 여행이 아니다


2년 만의 방탄소년단 오프라인 콘서트, Permission to dance on stage. 미국의 스타디움은 소지품을 확인할 수 있도록 투명한 가방만 휴대가 가능하다. 응원봉과 지갑, 보조 배터리, 생수 등으로 간략하게 꾸린 가방을 메고 우버를 불렀다. 호텔에서 소파이 스타디움까지는 차량으로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 거리지만 공연장 주변 도로 통제가 심해 30분이 넘게 걸렸다. 스타디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내려 걷는데 곳곳에서 다양한 언어들이 들려온다. 이번 공연을 보러 80여 개국 팬들이 입국했다던가.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고, 백신 접종증명서 혹은 72시간 내 PCR 음성 확인서를 준비해 왔을 테지만, 이렇게 다 같이 노래를 부르고 함성을 지른다는 게 무척이나 어색했다. 혹시 몰라 마스크를 두 겹 썼지만 이래도 되나 싶은 생각이 불쑥불쑥 들었다. 그러나 공연장에 불이 꺼지고 공연 시작을 알리는 VCR이 재생되자, 여길 오게 한 이 순간, 터지는 함성을 숨길 수가 없었다. 코 부분의 마스크를 꽉 눌러 밀착시키고 함성을 질렀다. 나 이러려고 LA 왔지. 이렇게 목 놓아 사랑을 드러내려고.

 

첫 공연에 다들 눈물을 흘리는 건 아닌가 했는데, 멤버들도 우리도 마냥 웃었다. 이 대면이 아직은 약간 어색하기도 하고 긴장되기도 해 눈물이 비집고 나올 틈이 없는 데다 2년 간 쌓아 온 흥을 쏟아내는 것만으로 부족한 시간이었다. 개인 곡 하나 없이 일곱이 쉴 틈 없이 노래해야 하는 세트 리스트는 멤버 모두 이 순간을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말해준다.

 


〈Black Swan〉과 〈Butter〉 브릿지 안무에 크게 환호하고, 팬들을 더 가까이서 보기 위한 토롯코 앞에선 누구보다 열심히 손을 흔들었다. 종이 폭죽이 스타디움을 가득 채운 아래 〈Permission to dance〉를 같이 부르니 어느덧 첫 공연이 끝났다. 방금 뭘 봤지, 내가 여기 있긴 한 거지? 어리둥절한 마음으로 공연장을 빠져 나왔다.

 

소파이 스타디움이 있는 잉글우드는 우범 지대로 악명 높은 곳이다. 공연이 끝나면 밤늦은 시간인 데다 우버 잡기는 하늘의 별따기일 테고 대중교통은 아예 선택지에서 배제했더니 호텔까지 이동하는 것이 가장 걱정이었다. 마침 한인 차량 업체에서 소파이 호텔 왕복 버스를 운영한다는 소식에 일찌감치 예약을 해놓았다. 버스 탑승을 위해 약속된 장소에 도착하니 공연을 보고 나온 들뜸이 가득한 한국 팬들이 여럿 모여 있다. 분명 호텔이나 공연장에서 스쳐 지날 때 ‘아, 이분 한국인이다’ 하고 그저 속으로 생각만 했을 뿐인데 이 공연을 보고 나왔다는 일체감과 만족감, 안도감이 뒤섞인 동지애에 순식간에 그룹이 형성됐다. 수많은 사람들 덕에 잘 안 터지는 데이터를 뚫고 브이앱으로 찾아온 태형이를 보기 위해 둥그렇게 모여들고, “방금 지민이 들어왔어요” 화면 소식을 건너 건너 전하며 오늘의 여운을 즐겼다. “내일도 이 버스 타시나요? 그럼 저희 내일 봐요” 내일을 기약하는 인사.


 

* * *

 

푹 자고 일어나지 못했는데도 피로하지 않은 셋째 날 아침. 일요일 아침 식사에 이만한 곳이 없을 것 같아 미리 알아 온 실버레이크의 스퀄Sqirl로 향했다. LA 유기농 열풍의 시조격인 곳으로 브리오슈 빵에 수제 리코타 치즈와 수제 잼을 얹은 토스트가 시그니처 메뉴인 브런치 카페다. 인도에 나와 있는 야외 좌석 한 자리가 비어 있었다. 인도어보다 아웃도어가 덜 부담스러운 건 당연. 어렵지 않게 야외 좌석에 앉아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배도 부르겠다, 선선한 가을 날씨 같겠다, 일요일 오전이겠다, 걸을 수밖에 없는 충분한 이유들 덕에 플레이 리스트 틀고 거리를 나섰다. 목적이라고는 ‘스퀄에서 실버레이크 주요 도로까지 걷기’밖에 없었기에 이 동네에 대한 사전 정보가 전혀 없었다. 잘 정돈된 집들, 멀리 보이는 할리우드 사인과 그리피스 천문대, 가지 치는 사람과 조깅하는 사람, 빨갛고 노란 이름 모를 꽃들에서 풍겨 오는 향기,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며 쏟아지는 햇볕. 기억해야지 이 온도, 습도. 오감으로 느끼는 이 순간을 박제할 순 없지만, 이 냄새만큼은 언제든 기억할 수 있을 거야.

 


멜로즈 거리 서편 끝엔 성지 순례로 꼭 들러야 하는 편집샵 맥스필드Maxfield가 있다. 특히 이곳 주차장에 세워진 까만 조각상은 호비(제이홉)가 매년 LA에 방문할 때마다 꼭 사진을 찍는 단골 포토 스팟이다. 핑크 월로 유명한 폴 스미스 매장에서부터 맥스필드까지, 다시 베벌리힐스에서 로데오 드라이브까지 걸었다. 실버레이크에서도 하나둘 보였던 홈리스가 베벌리힐스로 넘어오니 자취를 감췄다. 미드나 영화에 나올 법한 집들을 구경하며 선곡해 온 노래를 신나게 흥얼거리며 걸었다. 궁극엔 발바닥을 끄는 것처럼 무겁게 걷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음에도 이 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 * *

 

오늘은 무대 정면의 2층 가운데 좌석이었다. 어제보다 서둘러 도착해 입장을 마쳤다. 세로로 길고 좁은 형태라 소파이는 모든 좌석에서 무대를 보기 좋았다. 상대적으로 가까운 돌출 무대는 영상도 찍고 사진도 찍으며 보겠지만 먼 메인 무대에서 공연을 할 땐 핸드폰을 집어넣고 제대로 즐겨보기로 한다.

 


멤버들도 우리도 몸이 풀린 느낌이었다. 확실히 어제보다 한 톤 높은 텐션이었다. 누구보다 크게 뛰고 소리 높여 노래 불렀다. 〈잠시〉나 〈Stay〉처럼 함께 처음 부르는 노래들부터 〈불타오르네〉나 〈뱁새〉처럼 오래 함께 부른 노래들까지 쉴 틈이 없었다. 〈Save me〉의 ‘Thank you 우리가 돼 줘서’와 〈Permission to dance〉의 ‘We don't need permission to dance’ 부분은 따라 부르다 울컥해 눈부신 조명을 향해 눈을 한참 뜨고 있었다.

 

어제 앵콜곡은 〈We Are Bulletproof: The Eternal〉과 〈Answer: Love Myself〉였는데 오늘은 〈Young forever〉와 〈봄날〉이다. 게다가 오늘은 내 아픔을 감싸줄 유일한 손길이라던 〈Save me〉에서 난 이제 괜찮으니 내 아픔 다 이겨낼 수 있다는 〈I'm fine〉으로 연결되었다. 이래서 모든 공연이 각각 다르고, 그래서 전부 놓칠 수가 없다. 두 시간 반이 이렇게 순식간에 지나는 것이 여전히 믿기지 않지만, 그래도 어제보단 조금 더 즐길 수 있었다.


 

벌써 두 번째 공연이 끝났다. 마스크 쓴 위로 모두의 눈이 소파이 조명보다, 별보다 반짝이는 밤이었다.





글/사진 백지은

지역 방송국에서 일하며 덕질하는 게 유일한 취미인 3n살 덕후. 종종 여행하고, 가끔 글을 씁니다. 『보라하라, 어제보다 더 내일보다 덜』을 쓰고, 『규슈단편』을 함께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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