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ranger]7월의 복숭아

the Stranger : 나는 다른 곳에서 눈을 떴다 #5




1.

사월에는 벚꽃이 피기 시작하고 오월에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다가 시월이 되면 낙엽이 떨어지는 그런 낭만적인 삶은 이제 기억으로 자리 잡았다. 떠나기 전엔 알 수 없었다. 내가 살던 그 나라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곳인지를. 그리고 그곳에서의 기억으로 이 낯선 나라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2. 

막연한 동경이 있던 시절에는 학교를 졸업하면 파리로 유학 가야지, 대학원을 마치고 포르투갈 시골로 가서 살아볼까, 그토록 내가 태어난 나라를 떠나고만 싶어 했었다. 그런 날은 그저 사는 일이 투박하고 분주해서 어디에서도 안정된 마음을 가질 수가 없었다. 벗어나고만 싶었다.


막상 떠나보니 익숙한 곳에서의 삶, 내 가족이 있는 곳에서의 생활이, 엄마에게 배운 그 언어가, 얼마나 소중했는지 알게 된다. 떠나지 않으면 결코 모를 감정들이 내 마음에 가득하다. 그 마음은 그림자처럼 날 따라다닌다. 특히나 해가 질 무렵부터 얕은 빛이 내 등을 감쌀 때, 가장 뚜렷하게. 



3.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내가 이곳에 온 시간을 세어본다. 열 손가락으로 부족하다. 벌써 이곳에 온 지 15개월이 다 되어간다. 일리노이주 시골에서 트럭 한 대를 빌려 한 달 동안 곱게 싼 박스들을 싣고 하루에 4시간씩 운전해 2박 3일에 걸쳐 이곳으로 이사 온 게 벌써 일 년 전이다. 아무도 없는 낯선 텍사스, 그것도 휴스턴에 도착해 짐을 풀고 수영복을 갈아입고 풍덩 물에 들어간 첫날 이후로 매일같이 수영을 배우고 하루 온종일, 한 달 내내 그렇게 1년 가까이 남편과 시간을 보냈다. 눈을 뜨면 웃기 시작해 잠들기 전까지도 서로 히히덕거리며 보낸 시절도 분명, 언젠가 사무치게 그리워할 나날임을 알고 있다. 


4. 

사실을 나열하는 건 별다른 흥미를 끌지 못한다. 그렇지만 사실에서 벗어난 것은 의도가 분명치 않으면 견고함을 잃고 균형을 놓치기 마련이다. 결혼과 함께 시작된 나의 이민 생활은 타인보다 수월할지 모른다. 하지만 어떤 날은 극도로 외롭고 미칠 듯이 그리워 엉엉 울면서 코를 훌쩍이기도 한다. 물론 하나에서 갑자기 둘이 된 것도 모자라 시공간이 뒤바뀐 것처럼 언어 세계도 달라져 버린 지금을 즐기려고 노력 중이다. 문밖을 나서면 익숙하지 않은 언어를 사용해야 하고 원하는 것과는 다른 말과 행동을 하기도 하고 자책하기도 하고 주눅 들기도 하며 그렇게 뒤바뀐 세계에서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5. 

엄마의 입술을 보고 말을 배우고 엄마의 표정을 보고 감정을 배우던 그 시절의 내가 되어버린 것 같은 요즘. 단 한 번도 심각하게 고민해 본 적 없는 언어의 빈곤함, 세계에 대한 이해의 부족, 어눌한 말투, 겸손해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주눅 든 상태, 감정 표현이나 숫자에 대한 감각의 부재, 단순한, 그저 얄팍한 표현으로 나 자신에 관해 설명하는 것. 낯선 이로 살아간다는 일은 이러한 것들을 껴안고 하루하루 곱씹어가는 과정이었다. 직접 살아보기 전까진 알 수 없었던 무수한 감정들이 나를 괴롭히기도 하고 산뜻한 깨달음을 주기도 한다. 이를 어떤 한 단어로 정의하긴 어렵다. 그저, 전혀 익숙해지지 않는다는 것, 그것만은 확실하다. 


6. 

모험을 좋아하는 나는 이민자의 삶도 모험과 같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우연한 상황이 자주 벌어져 내가 나임을 깨닫게 되는 그런. 


하지만 지난 일 년을 반추해 보니 모험도 모험 나름이지 이건 볼륨과 스케일이 다른 모험이라 감히 내가 평할 수 없는 깊이의 삶이었다. 


가끔 사람들이 묻는다. “외국에서 살게 될 줄 알고도 결혼한 걸 보면 정말 대단한 결심이었네요?” 혹은 “아무도 없는 곳에 홀로 온 것도 참 용감하네요.” 그럴 때마다 난 “네, 대단한 결심 혹은 용기였지요.” 라고 답하고 싶지만 사실은 별 걱정 없이 사랑하는 사람과 지내기 위해 온 거라고 말한다. 같은 한국 사람끼리는 낯간지럽거나 무모해 보이기도 하는 말이지만, 나는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고 싶어 이곳에 왔다.



7. 

예전에는 글을 쓰기 위해 류이치 사카모토와 브래드 멜다우의 곡을 듣곤 했다. 요즘은 레비 파티라는 아티스트의 음악을 듣는다. 양쪽 귀에 에어팟을 꽂고 널찍한 책상 한 구석에 앉아 시린 발을 따뜻하게 데우기 위해 가끔 다리를 떨며 책을 보거나 글을 쓰거나 하늘을 본다. 스타벅스 구석에 앉아 글을 쓰던 한국에서의 삶과 별다를 바 없다. 조금 다른 게 있다면 고개를 들면 낯선 사람들이 아닌 (언제 어디서나 함께 있는) 남편의 얼굴과 맑은 하늘을 부유하는 구름이 보인다는 것뿐이다.


사는 방식도 그다지 달라진 것 같지 않다. 나는 이곳에서도 60kg 가까이 짊어지고 온 책을 순서대로 읽어나가고 요리를 하고 장을 보고 청소를 하고 삶을 관찰한다. 아, 하루에 두 번씩 수영을 하기도 한다. 


항상 쫓기는 사람처럼 반드시, 그리고 빨리 무언가를 해내야 했던 한국에서의 삶과는 달리 여기에는 온전한 여유와 평화만이 존재한다. 나쁘게 말하면 느리고 지루하게 느껴지기까지 하지만 사실 이 담백한 삶을 나는 사랑한다. 고개를 들면 보이던 아파트 숲, 익숙한 빠른 엘리베이터가 이미 아득해 졌다. 



8. 

편평한 땅을 밟고 살아 내 마음도 펴지는 걸까? 이곳에는 산이 없다. 야트막한 언덕조차 찾아볼 수 없다. 한 시간을 넘게 도로를 달려도 산이 없고 평야에 가끔 소와 말이 보이는 여기에는 브라질, 인도,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멕시코, 베트남 그리고 한국 같은 외국에서 온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살아가고 있다. 다들 각자의 방식대로 음식을 해 먹고 각자의 언어를 쓰곤 하지만 결국 우리 모두 낯선 곳에서 온 이방인이라는 사실은 명백하게 같다. 나 역시도 그들 중 하나이다. 한국에서의 삶과 비교되는 점들이 많았던 이민 초기를 지나고 나니 그리 다를 것 없는 인생사가 이곳에서 다시 시작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주 가끔 엄마가 너무 보고 싶고 익숙한 동네 풍경들이 그립기도 하고 5분만 걸어가면 있던 김밥집에서 사 먹던 참치김밥이 그립기도 한 날을 삼키면 다시 이곳의 선명한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9. 

조금만 넓게 보면 세상에는 재미있는 일이 많다. 계속 보다 보면 안 보이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모르고 지나치는 것들조차 행복의 감정을 선물하곤 한다. 


어느 날, 우연히 만난 친구 집에서 맛본 도넛 모양의 복숭아는 나의 고정관념(미국 복숭아는 맛이 없다는 편견)을 산산이 부수었고 나는 그날부터 복숭아를 찾아 나서는 사냥꾼 같은 삶을 살기 시작했다. 향이 진한 그 복숭아는 먹고 난 뒤에도 입 안 가득 잔향이 남아 가만히 있어도 웃음이 절로 나게 만드는 묘하고 강렬한 과일이었다. 하다못해 과일에도 이런 향이 있는데 나는 어떤 향이 나는 사람일까? 잔향이 남아 다른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그런 사람일까? 그러다가도 파란색 상자에서 복숭아를 하나 꺼내 먹으면 모든 잡념은 사라지고 그저 달콤한 향에 푹 빠져 시간을 보내게 된다. 


대여섯 권의 책을 가방에 넣고 언덕을 올라 강의실에 들어가 플라톤 수업을 듣던 날이 불과 얼마 전인데 이젠 어딜 가나 편평한 땅을 밟으며 복숭아 향을 하루 종일 음미하며 지내는 사람이 되었다. 무엇이 더 낫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삶은 누구에게나 보편타당하며 주어진 그것을 어떠한 방식으로 풀어나가든 그 사람 고유의 것이기에 나 자신이 관여할 필요가 없다. 그저 관조한 채 나를 살아가며 되는 것이다.


10. 

휴스턴에서의 삶은 대체로 만족스럽다. 무엇으로 인해 만족스러운지 콕 집어 말하기는 어렵다. 어쩌면 사랑하는 사람이 항상 함께 있고 우리는 언제나 즐거우며 햇살은 뜨겁지만 에어컨은 어디에서나 시원하기 때문 아닐까. 그리고 너무나 맛있는 복숭아가 있기에 나의 삶은 가볍지만 가득하고 편평하지만 광활하다.





글/사진 별나

클래식 작곡 전공, 빌보드 코리아 기자, 예술 강사를 거쳐 이젠 현실과 이상의 경계에 선 (우아한) 몽상가. 수전 손택을 닮고 싶고, 그보단 소박하게 전 세계를 산책하고 싶다는 소망을 갖고 있다. 미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현재 미국에 거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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