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트리올에서 보낸 가을 #1



우리가 몬트리올이란 도시를 처음으로 알게 된 건 생각보다 오래전 일 일지 모른다. ‘블루마블’이었던가. 주사위를 굴려 세계 곳곳에 집을 세우며 땅따먹기를 하던 추억으로 우리는 돌아가야 한다. 아마도 파란색 땅이었을 몬트리올을 차지하는 순간 불운한 적수들은 나의 새 도시로 발을 헛디디곤 했고, 그 대가로 값비싼 통행료를 토해냈다. 토론토도 아니고 밴쿠버도 아니고 왜 하필 몬트리올이 기념비적인 보드 게임에 등장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몬트리올이란 이름이 캘거리나 핼리팩스 같은 도시보다 입에 잘 붙어서 그러지 않았을까 추측할 뿐이다.


내가 몬트리올을 차지하려고 기를 썼던 이유는 사실 그 이름을 입안에서 굴릴 때 느껴지는 이국적인 질감에 있었다. 캐나다에 있다는 설명은 있는데 정작 캐나다가 어디에 있는지는 몰랐던 나로서는 그곳까지 직접 가보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다만 저 멀리서 들려오는 감미로운 신호에 외로운 아마추어 무선사처럼 반응할 뿐이었다.



그리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언젠가, 캘거리에 사는 친구가 캐나다에서 살아보는 게 어때, 제안한 적이 있다. “캐나다에서도 유럽 느낌이 나는 몬트리올이 마음에 들 거야.” 그 말은 계시였다. 나는 오래전부터 그러고 싶었다는 듯, 좋아, 몬트리올로 가야겠어, 꺾지도 않고 술잔을 비웠다. 얼마간은, 그러니까 한 몇 달간은 이 도시의 이름을 되새기며 반드시 그러겠노라 허황되이 떠벌리기도 했다. 결국 난 그러지 못했고, 대신 다른 사람을 이곳으로 보내버렸다. (나는 여기서 그녀를 M으로 부른다.) 내가 정말 이곳으로 떠나올 줄 알다가 결국 나 때문에 이곳으로 도망쳐야 했던 사람이었다.


“몬트리올엔 뭐하러 왔어요?”


몬트리올 공항의 입국심사관이 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M을 만나러 왔다고 대답했다. 심사관은 무뚝뚝하지만 집요하게 그녀가 하는 일을 캐묻고는 우아하게 굽은 내 여권의 한 페이지에 입국 허가 도장을 찍었다. 그걸 찍고 나서야 그는 미소를 보여주었다.



이미 몇 개월 전에 몬트리올에 와 있던 M에게 워클리 가에 있는 이 집은 세 번째 거처였다. 덩달아 나도 초대받아 며칠 신세를 진 이곳엔 고양이 세 마리가 살았다. 집 구석구석에 진열된 목재 고양이 인형이나 액자 속 사진을 봐도 집주인이 고양이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 수 있었다. 가장 호기심 많은 녀석은 내킬 때마다 방을 찾아와 우리가 어질러 놓은 방안을 탐색했다. 빗살이 쳐진 문틈에 앞다리를 모으고 앉아 더 들어오지도 더 멀리서 경계하지도 않았다. 어느 거리에서 TV를 봐야 하는지 잘 배운 아이처럼 선을 지켰다.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서면 녀석은 후다닥 사라져 버렸다. 조심스레 걸으려 해도 발밑에서는 항상 나무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가는 귀가 먹은 집주인 코니는 엄청난 볼륨으로 드라마를 틀어놓곤 했는데, 그녀에게 발소리가 들리지 않을 걸 알면서도 나는 그녀의 방 앞에서 조심스레 걷고는 했다. 그러면 내 걸음도 고양이 걸음이 됐다. 가끔은 호기심 많은 녀석이 코니의 방에서 고개를 내밀고 어기적 걷는 내 뒷모습을 지켜보기도 했다.



해가 잘 들지 않는 복도 한 편엔 두꺼운 사전이나 실용서가 꽂힌 책장이 있었다. 그곳에서는 도서관에서도 역시 해가 잘 들지 않는 구역쯤에서 맡을 법한 냄새가 났다. 주방 입구에도 나무 진열장이 하나 있었다. 그 위에 불어와 영어가 병기된 파스타와 견과류 봉지, 허브가 든 비닐과 향신료 통 따위가 두서없이 놓여 있었다. 나는 일단 거기서 걸음을 멈춰야 했다. 커다란 재스민 나무가, 며칠 전 피웠던 꽃이 시들시들해진 그 나무 한 그루가 묘하게 시선을 잡아끌었기 때문이었다.


화분이 많고, 모퉁이를 돌 때마다 옷에 걸리는 것도 많고, 가끔은 발밑으로 후다닥 고양이가 지나가기도 하는 이곳은 단 몇 분만 지내봐도 타인의 취향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나는 향초 냄새와 코니가 피운 담배 냄새, 그리고 M이 막 요리를 끝낸 후의 냄새를 안개처럼 맡고는 했다. 누군가의 취향이 수여 년 동안 확고해진 곳에서 집에 온 듯한 편안함과 다른 사람의 영역에 불순물처럼 끼어있다는 불편함을 동시에 느꼈다.



이 집에선 아침 녘이 가장 좋았다. 새파란 빛이 어두운 집안으로 비집고 들어오면 추위에 몸서리를 치면서 눈을 뜨곤 했다. 책상 하나, 테이블 보 하나, 전기 레인지 하나 익숙하지 않았지만, 이곳이야말로 오랫동안 찾으려 했던 곳이 아닌가 싶었다. 어쩌면 훨씬 이전부터 이 집에 머물렀던 M의 흔적이 집안 곳곳에 숨어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이 집엔 그녀를 닮은 구석이 있었다.


창밖으로는 얼마간 쓸쓸한 덩어리가 보였다. 가을바람이 맞은 편 집의 지붕, 창문, 나무 계단과 작은 발코니를 쓸고 간 흔적이었다. 나는 동경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건너편 정경의 막후 안으로 이미 들어와 있음을 깨달았다. 내가 머무는 곳은 타인의 집이었다. 나는 타인의 집에서 타인의 집을 그리워하는 중이었다. 그리움은 만들어짐과 동시에 채워지곤 했고, 그래서 나는 자꾸만 더 그리워하고 싶어졌다.


날이 완전히 밝으면 코니의 방안에서 다시 TV 소리가 들려왔다. 시월 초순인데도 몬트리올의 가로수엔 아직 단풍이 물들지 않았다. 그건 예상 밖의 지연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초록빛을 띤 잎 개개에 언뜻 새빨간 기운이 보이는 것도 같았다. 그 불그스름한 반영은 내 처지와 비슷하게 거리 이곳저곳 손님으로 머물렀다.





글/사진 신태진

여행 매거진 BRICKS의 에디터. 『홍콩단편, 어쩌면 익숙한 하루』의 공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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