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트리올에서 보낸 가을 #3



퀘벡 시티는 몬트리올에서 북서쪽으로 250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 규정 속도가 시속 100킬로미터이고 초행길이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세 시간은 족히 걸릴 여정이었다. 며칠간 몬트리올을 벗어나 퀘벡 시티로 여행을 떠나는 날은 아침부터 분주했다. M은 코니 아주머니 집에서 나와야 하기 때문에 들고 왔을 때보다 더 무거워진 이민 가방을 챙겨야 했고, 30분 정도 떨어진 헤르츠 대리점에서 차를 빌려야 했으며, 다시 차를 끌고 돌아와 내 짐까지 몽땅 싣고 먼 길을 가야 했다. 결국 이래저래 지체되는 바람에 차를 빌리러 나온 시각이 차를 빌리기로 약속한 시각이었다. 집 앞에 주차를 하고 M과 코니 아주머니, 그리고 새침한 고양이 세 마리가 포옹으로 작별 인사를 나누는 동안 나는 분주히 짐을 날랐다. 오후 네 시가 넘은 시각, 워클리 가는 낙엽만 굴러다니는 한산한 모습 그대로였다. 발코니에서 볼 때보다 훨씬 더 짙어진 가로수의 단풍이 읽을 때마다 나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몇몇 작가와 시인의 글을 닮아 있었다. 퀘벡을 다녀와서 묵을 집은 도시 정반대 편에 있었다. 언젠가 몬트리올에 다시 오지 않는 한 이 거리는 이번이 마지막일 게 분명했다. 마지막이라서 바람은 더 차가웠다. 저녁 준비를 일찍 시작한 이웃집에선 겨울 냄새가 풍겨왔다. 마시다 만 우유를 뒷좌석에 세우며 한 번 돌아보고, 가장 큰 짐을 트렁크에 실으며 한 번 돌아보고, 나도 코니 아주머니와의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계단을 오를 때 한 번 더 돌아보았다. 거리를, 누군가에게 밟혀 짓이겨진 동료의 몸을 덮는 낙엽을, 마지막이고 싶지 않다는 내 안의 막연한 바람을. 코니 아주머니는 M은 좋은 여자이니 잘 해주라고 말했다.



몬트리올을 빠져나가는 길은 도심의 다채롭고 예술적이며 일견 부드럽기까지 한 분위기와는 전혀 무관한 풍경으로 가득했다. 운전은 M이 했다. 도착하기 전에 해가 질 게 뻔해 걱정이 앞섰지만, 한국 것에 비해 지나치게 작고 단순한 내비게이션(“Hertz, Neverlost!”)이 생각보다 똑똑하다는 걸 깨닫고 금세 마음을 놓았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앞으로 펼쳐질 퀘벡 주의 고속도로를 마음껏 감상하는 일뿐이었다. 도시 외곽의 한산함, 흐린 하늘 아래 비처럼 쏟아지는 스산함, 거대한 카지노와 공장, 그리고 그 규모로도 다 채우지 못하는 엄청난 여백을 보았다. 자크 카흐티에 다리Pont Jacques-Cartier를 빠져나갈 땐 표지판에 선명하게 적힌 ‘뉴욕’이라는 단어를 보면서 마음만 먹으면 방향을 살짝 틀어 미국으로 달아날 수도 있을 거라는 환상을 품기도 했다. 뉴욕은 퀘벡 시티보다 두 배는 더 멀리 있지만, 그 이름이 너무 당당하게 적혀 있어 당장 손에 잡힐 것만 같았다.



한때 미국 자동차 횡단을 꿈꾼 적이 있다. 아무리 액셀을 밟아도 좌우로 날개를 펼친 사막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상을 했었다. 거기선 일시적인 이벤트에 불과한 삶도 얼마간 무한에 근접할 거라고 기대했다. 반면 이곳 캐나다 북서부의 대지는 그보다 녹지가 훨씬 많은, 거의 평야와 숲을 중심 주제로 한 변주곡이었다. 속력을 내도 속력이 나는지 알지 못했다. 유람선을 타고 천천히 흘러가는 듯했다. 가끔 일 차선으로 추월 차량이 쌩 지나갈 때가 있었는데, 그조차도 캔버스를 스치는 붓처럼 부드럽게만 보였다. 창문을 열어 바람이 부서지는 굉음을 듣고 나서야 속도를 실감할 수 있었다.



얼마 가지 않아 한국처럼 도로 한쪽에 떡하니 세워진 휴게소가 보이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대신 출구 번호와 기업의 브랜드가 병기된 표지판만 끝없이 나타날 뿐이었다. 맥도널드, A&W, 생튀베흐 익스프레스St-Huberts Express와 팀 호턴Tim hortons. 쿠쉬 타흐Couch-Tard, 에소Esso, 그리고 페트로-캐나다Petro-Canada. 도시에서라면 무심코 지나쳤을 이름들이 익명의 소도시 분기점 앞에서, 핼러윈 장식을 처마에 걸어둔 모형 같은 집 옆에서, 창백하게 푸른 우듬지 위에서 새롭게 읽혔다. 그곳에선 달착지근한 냄새가 올라오는 바닥에 사람의 그림자 대신 조명의 노란빛이 어른거리고, 의미 없이 틀어놓은 배경음악이 대화 소리를 대신하며, 부들부들 떠는 주유구의 덜그럭거림이 시계와 박자를 맞출 것 같았다.


겁이 많은 우리는 저 번호로 나가긴 해야 할 겉 같은데 과연 돌아올 수는 있는 건지를 걱정하느라 앞만 보고 달렸다. 그렇지만 포기하지 말라는 듯 간판은 사라졌다가도 끝없이 다시 나타났다. 출구 번호가 50을 넘고 100을 넘었다. 마침내 화장실에 가야만 할 상황에 이르렀을 때, 팀 호턴과 생튀베흐 익스프레스가 기다리는 출구에서 핸들을 꺾었다. 공기는 서느런 민트 향이었고, 건물에서 흘러나오는 빛은 땅거미가 내려앉은 세상에서 마지막 희망처럼 보였다. 섬 같은 분위기가 좋았다. 엔진이 멈추고 보닛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배가 선착장으로 들어설 때 내는 육중한 금속음을 닮았다. 하지만 같은 섬이라도 이곳은 매일 밤 축제가 벌어지는 파티 섬이었던 모양인지 차와 사람으로 입구부터 붐볐다. 생튀베흐나 팀 호턴이나 카운터 앞에 늘어선 줄이 너무 길어서 우리는 쿠쉬 타흐에서 커피와 빵을 사고 그곳을 도망쳐야 했다.



퀘벡까지 가는 길에, 석양이 불그스름한 한숨을 쉬며 우리 모두를 어둠으로 인계하기 직전까지도, 숲을 통째로 물들인 화려한 단풍을 보지는 못했다. 어쩌면 올해는 단풍이 더 늦게 물들거나 최대치는 보여주지 않고 지나갈 모양이었다. 라디오에서는 신나는 컨트리풍 음악이 흘러나왔고, DJ의 멘트는 영어에서 불어로 바뀌어 갔다. 하나의 언어로 생각하는 것과 두 가지의 언어로 생각하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그중에서도 누군가는 불어로 꿈을 꾸고 누군가는 영어로 고민을 할까? 사고의 언어가 다를진대 똑같은 퀘벡 주의 시민이라도 각자에게서 풍기는 향기가 서로 다르지 않을까? 너에겐 머스크 향이, 너에겐 오렌지 향이 나. 그러나 퀘벡 시티를 몇십 킬로미터 남기지 않은 지점에서 배가 고파 찾은 맥도날드엔 단 한 자의 영어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 변화가 일어났음을 알아차렸다. 어두운 고속도를 달리는 동안 이상한 통로로 잘못 접어들었고, 그대로 바다를 건너 다른 대륙으로 넘어왔는지도 모르겠다고.



퀘벡 시티에서 머물 집의 주인이 혹시 늦어지느냐고 문자를 보내왔다. 그녀는 늦어도 걱정할 필요가 없음을 친절하게 강조했으나 나는 미안한 마음에 안달이 났던 것 같다. 아니면 빠르게 통기타를 두들기는 음악 소리에 흥이 났는데 그걸 안달이 났다고 착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내비게이션이 예상한 시간에 거의 근접하여 퀘벡 시티로 들어섰다. 내리막길 아래로 도시의 야경이 보였다. 그건 도시의 윤곽을 따라 빛이 나는 핀을 꽂아둔 지도 같았다. 엄청나게 크고 밝은, 그러면서 개개의 세포는 명멸을 멈추지 않는, 마치 살아있는 지도 같았다.





글/사진 신태진

여행 매거진 BRICKS의 에디터. 『홍콩단편, 어쩌면 익숙한 하루』의 공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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