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란드로부터]나의 그린란드식 크리스마스

그린란드로부터 #1



“그린란드가 독립하면, 덴마크에서 넘어온 크리스마스 전통들은 더 이상 안하게 되는 걸까?”


얼마 전 그린란드 친구 하나가 SNS에 이런 질문을 올렸다. 우리나라도 35년 동안 일본의 식민지였고, 언어와 문화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우리가 강제로 바꾸거나 그만두지 않는 이상 지속되는 것들은 많이 있었다. 300년 간 덴마크의 지배를 받은 그린란드의 크리스마스는 어디로 가게 될까?



그린란드의 크리스마스는 한 달 내내 지속된다고 봐도 좋다. 11월 말에 크리스마스트리 점등식을 시작으로, 12월이 되면 회사 동료들과 혹은 친구들끼리 모여 크리스마스 파티를 연다. 내가 사는 누크는 그린란드의 수도로, 약 1만 6천 명이 살고 있을 뿐이지만 그린란드에서는 가장 큰 도시이다. 올해는 11월 26일, ‘누크에 사는 사람 다 모였네.’ 할 정도의 많은 인파가 모인 가운데 누크의 중심지 Nuuk Play Ground에서 크리스마스트리 점등식이 열렸다. 이제 크리스마스까지 4주 남았다.



12월 첫째 주가 되면 그린란드의 건물 창문마다 오렌지색 별들이 달린다. 크리스마스 오렌지  별이라고 불리는 이것은 예수의 탄생을 기리는 등불로 재림절 4주간 밝힌다. 겨울이 되면 누크는 하루에 보통 밝은 시간이 서너 시간 동안만 지속된다. 오렌지 별은 그런 어둠을 밝혀주는 아름다운 별이다. 나는 작년에 처음 오렌지 별을 창문에 달았고 1년 동안 이 오렌지색 종이별을 잘 간직하면서 다시 이때가 오기만을 기다려왔다.



나는 12월 한 달 동안 총 세 번의 크리스마스 파티에 참가했다. 첫 번째는 회사 크리스마스 파티, 두 번째는 학교 크리스마스 파티, 마지막으로 이곳에서 처음 사귄 친구 Nivi의 가족들과 함께 보낸 크리스마스이브.


크리스마스 디너의 전채요리는 생선으로 시작된다. 훈제 연어에서부터 그린란드 새우, 그린란드 대구. 메인요리는 덴마크식 크리스마스 음식이라고 할 수 있는 오리고기 혹은 칠면조, 로스트 돼지고기, 그린란드에서 서식하는 바다오리, 설탕에 졸인 감자 등이다.


메인요리까지 먹고 나서 잠시 휴식시간을 가진다. 거실에서 간단한 보드게임을 하기도 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도 한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나눠 갖을 시간이 되면, 파티에 온 모든 사람들이 크리스마스트리를 둘러싸고 모여 손을 잡고 크리스마스 노래를 부르면서 트리를 빙빙 돈다. 덴마크에서 온 크리스마스 전통 중 하나라는데, 300년이 지나며 변한 게 있다면 덴마크어가 아닌 그린란드 크리스마스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한 명이 산타 모자를 쓰고 크리스마스트리 아래에 놓인 선물을 하나씩 전달한다. 크리스마스 파티 2주 전, 파티에 참가할 사람들이 모두 모여 파티 참가자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하나씩 뽑아 가졌다. 각자 자신이 뽑은 사람에게 선물을 준비해 온 것이다. Nivi네 가족은 파티에 오는 가장 어린 사람에게 추가로 선물을 더 주는 전통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Nivi의 동생 Aima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선물을 받았다.



선물 증정식이 끝나면 다시 사람들은 식탁으로 모여 히살라망Risalamande이라는 디저트를 먹는다. 디저트 시간이긴 하지만 이 또한 게임이다. Risalamande는 쉽게 말해 라이스 푸딩이다. 생크림과 바닐라, 잘게 다져진 아몬드가 들어가고 체리소스를 곁들여 먹는다. 이 안에는 단 하나의 아몬드가 들어 있는데, 큰 그릇에 담긴 Risalamande을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접시에 담고, 먹는 동안 그걸 발견하는 사람이 게임에서 이기는 것이다. 단, 그 사람은 게임이 끝날 때까지 아몬드를 잘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 디저트 시간이 다 끝나고 아몬드를 가진 사람이 선물을 받는다.


디저트 시간이 끝나고 나서도 게임은 계속된다. 식탁 위의 그릇들을 모두 치우고, 각자 여분으로 준비해 온 선물들을 식탁 한 가운데 놓는다. 이 선물들은 결코 진지하지 않다. 약간의 허세와 웃음이 가미된 선물이 많다. 그래도 선물은 선물이니 기대를 안 할 수는 없지만. 선물 외에 식탁 곳곳에 주사위가 놓인다. 주사위를 굴려 숫자 6이 나오면 선물을 하나씩 가져갈 수 있다. 시간제한이 있고, 내가 다른 사람의 선물을 뺏어올 수 있는 기회도 있다. 엄청 크기가 큰 선물이 있는가하면 자그마한 선물도 있다. 제한된 시간이 지나면, 내 앞에 놓인 선물이 내 선물이 되는데, 선물을 열어보는 것과 이를 지켜보는 것 또한 흥미진진하다. 큰 상자 안에 작은 상자와 포장지가 겹겹이 쌓여 결국 안에 들은 것은 초콜릿 잼 한 통이 들어 있기도 하고, 5크로나 (우리나라 돈으로 약 800원) 동전이 하나 들어 있기도 하다. 나는 두 주먹 크기만한 선물을 하나 획득했는데, 초콜릿 바가 4개 들어 있는, 나름 실한 선물이었다.


그러고도 게임은 계속된다.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먹지 않지만,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서 12월 내내 먹는 크리스마스 음식들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애블스퀴Æbleskiver라는 것이다. 모양은 우리나라의 호두과자, 일본의 타코야끼와 흡사한데, 안에 들은 것은 하나도 없고, 슈가 파우더와 과일 잼을 곁들여 먹는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나오는 크리스마스 맥주들도 있다. 일반 맥주들보다 조금 알코올 도수가 높고 예쁘게 포장된 맥주들이다.


그렇게 한 달 내내 행복했던 크리스마스는 지나갔다.


동지가 지났으니 해는 점점 길어지겠지만, 당분간 해는 더 늦게 뜰 것이다. 하지만 그린란드는 창문 곳곳에는 아직 크리스마스 오렌지 별이 걸려 있고, 크리스마스의 흥분과 따뜻함이 연말까지 계속될 것이다. 오늘부터 사람들은 메리크리스마스 대신 해피 뉴이어를 말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으로 그린란드의 새해 축제 사진을 검색하면서 ‘정말 설마 이건 포토샵이겠지.’라고 생각한 사진이 있다. ‘어떻게 저렇게 형형색색의 불꽃놀이가 마을 전체에 가능할까?’ 주변인들에게 물어보니, 실제로 매년 있는 일이라고 한다. 새해가 밝는 0시에 저렇게 무수한 불꽃놀이가 마을 전체에서 펼쳐진다고 한다. 나는 아직 한 번도 새해를 그린란드에서 맞이한 적이 없다. 그린란드에서 맞이하는 2017년의 아침이 너무나도 기대된다.


이제 정말로, 2017년이 다가오고 있다.


ⓒSermersooq.gl




글/사진(2-10) 김인숙 / Cover Photography ⓒMads Pihl @ Visit Greenland

세계 최대의 섬인 그린란드에 사는 한국인이다. 그린란드 대학교에서 북서유럽학 전공으로 석사 과정을 밟았다. 각종 매체의 북극 다큐멘터리의 현지 코디네이터로 참여했으며, 현재는 북극의 정책과 국제관계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그린란드에 살고 있습니다』를 썼다.

https://galaxylake.blog.me/




『그린란드에 살고 있습니다』

김인숙 저


지도에서 하얗게 칠해져 생명체 하나 없을 것 같은 세계 최대의 섬, 그린란드.

이곳에는 수천 년 전부터 이누이트가 살아왔고, 혹독한 기후 속 그들이 지켜온 언어와 문화가 있다.

세상 곳곳을 여행하다가 그린란드에 정착한 이가 들려주는

우리가 지금껏 알지 못했던 세상 끝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나는 그린란드를 '고립된 천국'이라고 부른다. 세상과 동떨어진, 지구에서 가장 큰 얼음 섬.

이곳에서 삶은 전혀 다른 기준으로 펼쳐지기 때문이다."


9월 28일 출간. 값 13,000원


책 구매 링크 :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5475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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