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트리올에서 보낸 가을 #5
알고 있는 불어 단어가 몇 되진 않지만, 그중에서도 보기만 하면 반갑고 호기심이 이는 단어가 있다. L’épicerie. 대단한 말은 아니다. 그냥 ‘식료품점’일 뿐이다. 하지만 퀘벡 시티 생장 가 어느 가게 앞에서 절로 발길이 멈춘 순간부터 이 단어에 거역할 수 없는 끌림을 느꼈다. 마치 중세 유럽인들에게 후추가 지녔던 바로 그 의미처럼 말이다. 물론 그 때문에 대양을 건너고 전쟁을 불사할 정도의 정열은 내게 없다. 다만 손으로 그림자를 만들어 창문 안을 들여다보는 수고 정도를 들일 뿐이었다. 아이들이 장난감 가게 앞에 쪼르르 모여 쇼윈도에 침을 바르며 마법에 사로잡히는 기분을 나는 어른이 되고도 한참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처음엔 장 알프레드 무아장Jean-Alfred Moisan이 카페인 줄 알았다. 앉아서 차를 마실 순 있지만 그게 몇 자리 되진 않았고, 본업은 식료품점이었다. 차 마시는 자리는 앞으로 일어날 일보단 지금까지 일어난 일에 관해 할 말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어울려 보였다. 우리도 그 사이에 끼고 싶었으나 빈자리가 없었다. 할 수 없이, 그러나 한편으론 기꺼이, 진열장이 만들어낸 미로 속에서 헤매기로 했다.
손님이 적은 편이 아니었는데 매장 안은 조용했다. 여기엔 도서관의 소음이 흐르고 있었다. 사람들은 대화를 아꼈고, 소리가 날 만한 일이 벌어져도 어디론가 곧장 빨려 들어가 아득하게 들려왔다. 하지만 차분한 분위기 기저엔 열띤 눈빛이 있었다. 사람들은 너무 집중한 나머지 자신이 소리를 낼 줄 아는 존재라는 것도 잊고 있었다.
내 마음을 먼저 빼앗은 건 상품의 포장이었다. 포장지를 만질 때의 촉감, 이국적인 상표의 글자와 그림, 그리고 색채의 총합을 손에 넣을 수 있다면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든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포장을 뜯지도 못할 테니까. 수백 개의 상품이 진열돼 있더라도 하나하나 들어서 신중히 들여다보고 싶었고, 그걸 보따리로 쓸어담아 나와 가까운 곳에 진열해 두고 싶었다. 그리고 향기, 여기엔 향기가 있었다. 실내를 떠도는 정체 모를 냄새는 걸음을 옮길 때마다 달라졌다. 대형 마트처럼 품종을 써둔 푯말이 없어도 구역을 구분할 수 있었다. 나는 이곳의 공기까지 소유하고 싶은 생각에 마음이 두근거리기까지 했다.



그러나 한 사람이 독점하기에 이곳의 밀도는 만만치 않았다. 차와 커피, 향신료와 소스, 드레싱, 메이플 시럽과 캔디, 올리브 오일, 식초, 파스타, 빵과 채소, 쌀과 밀가루, 맥주와 와인, 가공하지 않은 고기와 가공한 고기 들. 일생의 식탁이 여기 펼쳐져 있었다. 시간은 흐르지 않고 멈춰있다가 찬장에서 생강 통조림, 체리 잼, 밀가루 따위를 꺼낼 때가 되어야 비로소 그 물건이 얽힌 시절로 우리를 이송시켰다. 내가 먹어본 것들은 과거로, 내가 먹어보지 못한 것들은 언젠가 일어날지 모를 내일로 연결돼 있었다.
진녹색 틴케이스에 앙투안 블랑샤르 풍의 캐나다 겨울 풍경이 그려진 메이플 티 세트를 보면서도 그랬다. 몬트리올에 오기 전, M이 국제 우편으로 메이플 티를 보내준 적이 있다. 소포를 받아서 열자마자 이국에서 불어온 향기가 방안에 가득 찼었다. 긴 시간을 날아오는 도중에도 얌전히 제 자리를 지킨 그 향기가 기특하기까지 했다. 처음엔 입맛에 잘 맞지 않았던 그 차는 더운 여름에도 따뜻하게 마셔야 좋았다. 이제 그녀가 바로 옆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고단했던 지난 여름을 떠올리며 묘한 감상에 젖어들었다. 그리고 본고장에서, 건조하고 서늘한 몬트리올의 아침 공기에 몸을 떨면서, 마침내 이 차를 마시게 되리라는 기대에 부풀었다.



나와 M은 이틀에 걸쳐 장 알프레드 무아장을 찾았다. 메이플 티뿐만 아니라 커피와 모카포트, 메이플 팝콘 같은 걸 주섬주섬 싸 들고 나오기도 했다. 퀘벡 시티는 장 알프레드 무아장과 동일어가 되었고, L’épicerie라는 단어는 당시의 마법을 언제 어디서든 재현해 줄 마법의 주문으로 여겨졌다.
내가 아기자기한 것, 마시거나 갈아 넣을 수 있는 것, 뜯기 아까운 포장을 두른 것 따위를 좋아하는 줄은 알고 있었다. 귀여운 아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막막함처럼 그런 것들을 앞에 두고 어찌할 바를 모른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정작 내 방 안에는 그런 것들이 하나도 없다. 책, 삭막한 전자기기들, 다 먹지도 못할 비타민이나 커피가 들러붙은 머그잔, 쓰다 말고 쓰다 말고를 반복한 노트 따위로 어지러울 뿐이다. 무엇보다 나는 내가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것들의 개개가 아니라 총합을 사랑한다는 점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것들은 그것들을 위해 마련된 공간 안에 있을 때 완벽해진다. 장 알프레드 무아장을 통째로 가져올 순 없으니 그 안에서 살던가, 그 안에서 일하던가, 엄청난 단골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하지만 그곳은 언제 다시 갈 수 있을지 모르는 곳에, 몬트리올에서조차 250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 있다. 그러니 지금 당장 기댈 수 있는 곳은 하나뿐이다. 거기서 보낸 시간을 얼마나 오래, 얼마나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는지. 나는 나 자신에게 기대어야 마땅하다. 바다와 대륙이 가로놓인 어마어마한 거리도, 이미 지나버려 되돌릴 수 없는 시간도 굽이굽이 접어 당장 이곳 부두와 닿게 할 힘은 기억하고 떠올리고 그리워할 수 있는 내 안에 있다. 아주 먼 거리를 먼저 여행하는 것은 몸이고, 마음은 느긋하게 그 뒤를 따른다. 연착도 위험도 피로도 없이 마음은 간다.




글/사진 신태진

여행 매거진 BRICKS의 에디터. 『홍콩단편, 어쩌면 익숙한 하루』의 공동 저자.
몬트리올에서 보낸 가을 #5
알고 있는 불어 단어가 몇 되진 않지만, 그중에서도 보기만 하면 반갑고 호기심이 이는 단어가 있다. L’épicerie. 대단한 말은 아니다. 그냥 ‘식료품점’일 뿐이다. 하지만 퀘벡 시티 생장 가 어느 가게 앞에서 절로 발길이 멈춘 순간부터 이 단어에 거역할 수 없는 끌림을 느꼈다. 마치 중세 유럽인들에게 후추가 지녔던 바로 그 의미처럼 말이다. 물론 그 때문에 대양을 건너고 전쟁을 불사할 정도의 정열은 내게 없다. 다만 손으로 그림자를 만들어 창문 안을 들여다보는 수고 정도를 들일 뿐이었다. 아이들이 장난감 가게 앞에 쪼르르 모여 쇼윈도에 침을 바르며 마법에 사로잡히는 기분을 나는 어른이 되고도 한참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처음엔 장 알프레드 무아장Jean-Alfred Moisan이 카페인 줄 알았다. 앉아서 차를 마실 순 있지만 그게 몇 자리 되진 않았고, 본업은 식료품점이었다. 차 마시는 자리는 앞으로 일어날 일보단 지금까지 일어난 일에 관해 할 말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어울려 보였다. 우리도 그 사이에 끼고 싶었으나 빈자리가 없었다. 할 수 없이, 그러나 한편으론 기꺼이, 진열장이 만들어낸 미로 속에서 헤매기로 했다.
손님이 적은 편이 아니었는데 매장 안은 조용했다. 여기엔 도서관의 소음이 흐르고 있었다. 사람들은 대화를 아꼈고, 소리가 날 만한 일이 벌어져도 어디론가 곧장 빨려 들어가 아득하게 들려왔다. 하지만 차분한 분위기 기저엔 열띤 눈빛이 있었다. 사람들은 너무 집중한 나머지 자신이 소리를 낼 줄 아는 존재라는 것도 잊고 있었다.
내 마음을 먼저 빼앗은 건 상품의 포장이었다. 포장지를 만질 때의 촉감, 이국적인 상표의 글자와 그림, 그리고 색채의 총합을 손에 넣을 수 있다면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든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포장을 뜯지도 못할 테니까. 수백 개의 상품이 진열돼 있더라도 하나하나 들어서 신중히 들여다보고 싶었고, 그걸 보따리로 쓸어담아 나와 가까운 곳에 진열해 두고 싶었다. 그리고 향기, 여기엔 향기가 있었다. 실내를 떠도는 정체 모를 냄새는 걸음을 옮길 때마다 달라졌다. 대형 마트처럼 품종을 써둔 푯말이 없어도 구역을 구분할 수 있었다. 나는 이곳의 공기까지 소유하고 싶은 생각에 마음이 두근거리기까지 했다.
그러나 한 사람이 독점하기에 이곳의 밀도는 만만치 않았다. 차와 커피, 향신료와 소스, 드레싱, 메이플 시럽과 캔디, 올리브 오일, 식초, 파스타, 빵과 채소, 쌀과 밀가루, 맥주와 와인, 가공하지 않은 고기와 가공한 고기 들. 일생의 식탁이 여기 펼쳐져 있었다. 시간은 흐르지 않고 멈춰있다가 찬장에서 생강 통조림, 체리 잼, 밀가루 따위를 꺼낼 때가 되어야 비로소 그 물건이 얽힌 시절로 우리를 이송시켰다. 내가 먹어본 것들은 과거로, 내가 먹어보지 못한 것들은 언젠가 일어날지 모를 내일로 연결돼 있었다.
진녹색 틴케이스에 앙투안 블랑샤르 풍의 캐나다 겨울 풍경이 그려진 메이플 티 세트를 보면서도 그랬다. 몬트리올에 오기 전, M이 국제 우편으로 메이플 티를 보내준 적이 있다. 소포를 받아서 열자마자 이국에서 불어온 향기가 방안에 가득 찼었다. 긴 시간을 날아오는 도중에도 얌전히 제 자리를 지킨 그 향기가 기특하기까지 했다. 처음엔 입맛에 잘 맞지 않았던 그 차는 더운 여름에도 따뜻하게 마셔야 좋았다. 이제 그녀가 바로 옆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고단했던 지난 여름을 떠올리며 묘한 감상에 젖어들었다. 그리고 본고장에서, 건조하고 서늘한 몬트리올의 아침 공기에 몸을 떨면서, 마침내 이 차를 마시게 되리라는 기대에 부풀었다.
나와 M은 이틀에 걸쳐 장 알프레드 무아장을 찾았다. 메이플 티뿐만 아니라 커피와 모카포트, 메이플 팝콘 같은 걸 주섬주섬 싸 들고 나오기도 했다. 퀘벡 시티는 장 알프레드 무아장과 동일어가 되었고, L’épicerie라는 단어는 당시의 마법을 언제 어디서든 재현해 줄 마법의 주문으로 여겨졌다.
내가 아기자기한 것, 마시거나 갈아 넣을 수 있는 것, 뜯기 아까운 포장을 두른 것 따위를 좋아하는 줄은 알고 있었다. 귀여운 아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막막함처럼 그런 것들을 앞에 두고 어찌할 바를 모른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정작 내 방 안에는 그런 것들이 하나도 없다. 책, 삭막한 전자기기들, 다 먹지도 못할 비타민이나 커피가 들러붙은 머그잔, 쓰다 말고 쓰다 말고를 반복한 노트 따위로 어지러울 뿐이다. 무엇보다 나는 내가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것들의 개개가 아니라 총합을 사랑한다는 점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것들은 그것들을 위해 마련된 공간 안에 있을 때 완벽해진다. 장 알프레드 무아장을 통째로 가져올 순 없으니 그 안에서 살던가, 그 안에서 일하던가, 엄청난 단골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하지만 그곳은 언제 다시 갈 수 있을지 모르는 곳에, 몬트리올에서조차 250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 있다. 그러니 지금 당장 기댈 수 있는 곳은 하나뿐이다. 거기서 보낸 시간을 얼마나 오래, 얼마나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는지. 나는 나 자신에게 기대어야 마땅하다. 바다와 대륙이 가로놓인 어마어마한 거리도, 이미 지나버려 되돌릴 수 없는 시간도 굽이굽이 접어 당장 이곳 부두와 닿게 할 힘은 기억하고 떠올리고 그리워할 수 있는 내 안에 있다. 아주 먼 거리를 먼저 여행하는 것은 몸이고, 마음은 느긋하게 그 뒤를 따른다. 연착도 위험도 피로도 없이 마음은 간다.
글/사진 신태진
여행 매거진 BRICKS의 에디터. 『홍콩단편, 어쩌면 익숙한 하루』의 공동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