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나라 코스타리카 #2



코스타리카는 동물원을 없애기로 결정했다


2015년 8월, 코스타리카 정부는 국내 모든 동물원을 없앤다고 발표했다. 동물들이 관광객들의 관람을 위해 철창에 갇혀있는 것은 인위적이고 폭력적이며 자연의 섭리에 어긋난다는 이유였다. 현재 동물원에 있는 동물들이 적응 단계를 거쳐 자연으로 돌아가고 나면 코스타리카는 세계에서 동물원이 없는 최초의, 유일한 나라가 되는 것이다.


드디어 학기가 시작되고 나의 전공인 ‘지속가능한 개발’ 수업 첫 날. 교수님이 자연, 환경이란 무엇이고 개발이란 어떤 것인지 물으셨다. 어떤 학생은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비인위적인 모든 것이라 했고 또 어떤 학생은 인간의 조작이 가해지지 않은 본래 그대로의 상태라고 했다. 그날 알게 된 사실은 자연이란 무엇인지가 아니라 나를 포함해 학생들이 말해 왔던 자연은 모두 인간중심적인 자연이었다는 것이었다. 나에게 자연은 인간 사회인 도시와 분리되어 있는 공간이었고 자연을 느끼려면 차를 타고 멀리 나가야만 했다.



자연과 문명의 경계가 모호한 곳


코스타리카엔 약 50만 종의 동식물이 살고 있다. 전 세계 동식물 종의 4퍼센트다. 국토 47%가 삼림지대이고 25%는 자연 보호구역이다. 수도인 산 호세를 제외하면 집에서 몇 발짝만 걸어 나가도 야생의 자연을 만날 수 있고 희귀한 동식물을 볼 수 있다. 그중엔 물론 독성을 가진 동물, 곤충도 있다. 한번은 집에서 전갈이 발견된 적도 있고 집 앞 나무 근처 덤불로 사라지는 독사를 보고 깜짝 놀란 적도 있다. 반대로 산책을 나서면 집집마다 다른 종류의 레몬과 오렌지 나무가 자라고 있고, 해먹 위에서 책을 읽다가 고개를 들면 팔뚝만한 이구아나가 근처에서 어슬렁거리기도 했다.


코스타리카는 전형적인 열대 기후의 나라로, 일 년 내내 따뜻하지만 건기와 우기가 있다. 우기가 오면 거의 매일 두세 시간씩 폭우가 쏟아진다. 그러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맑게 갠다. 재미있는 것은 건기와 우기에 각각 활동하는 동식물이 다르다는 것이다. 우기에 가장 견디기 힘든 건 엄지손톱만한 풍뎅이이다. 해가 지면 빛을 찾아 우르르 떼를 지어 날아다니는데, 여간 위협적이지가 않다. 사람에 해를 끼치진 않았지만 징그럽게 생긴 데다 움직임이 예측불허라 나는 이 풍뎅이들이 가장 무서웠다. 몸을 납작하게 만들어 좁은 틈도 드나들기 때문에 방안에서 박쥐처럼 휘젓고 날아다녀 나를 혼비백산하게 만들곤 했다.


해충 박멸 스프레이를 사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던 어느 날, 집주인 알폰소가 갑자기 뒷마당으로 트인 유리문을 활짝 열었다. 서른 마리가 훌쩍 넘는 풍뎅이들이 빛을 향해 까맣게 몰려든 것은 물론이다. 내가 질색하자 알폰소는 “우기 때는 원래 이래.” 하고 껄껄 웃었다. 나의 활동 영역을 침해당했다고 생각했던 나와 달리, 알폰소는 그것들 역시 인간과 한 공간에 산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환경의 혜택을 누리는 사람들


파나마와의 국경 지대에 있는 관광지이자 생태의 보고인 푸에르토 비에호 데 탈라망카(Puerto Viejo de Talamanca)에는 유명한 동물 보호 구역이 두 곳 있다. 하나는 나무늘보 보호구역이고 또 하나는 재규어 보호구역이다. 이곳에선 밀렵이나 수렵, 불법 포획을 당했던 동물들을 구출하여 치료를 해준 후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낸다. 임시 우리 안에서 보호받는 동물들을 만날 수 있으며 입장료는 모두 동물 보호와 치료에 쓰인다. 이곳에서는 당연히 외래종 동물은 볼 수 없고, 모두 코스타리카 토종이라 회복 후 자연으로 돌려보내면 그 환경에 쉽게 적응해 살아간다.  


코스타리카 사람들은 환경이 주는 혜택을 마음껏 누리고 살고 있다. 하지만 이런 축복은 우연히 주어진 게 아니라 모두 그들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녹지 조성과 해양 보전을 위한 코스타리카 정부 차원의 노력도 컸지만 역시나 나를 감동하게 하는 것은 이처럼 자연을 자신의 일상으로, 삶으로 받아들이는 코스타리카 사람들의, 나와는 많이 다른 사고방식이었다.





글/사진 강수진

코스타리카의 유엔평화대학에서 지속가능한 개발을 전공했다. 지구별의 모든 사람이 환경친화적이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정책 입안을 연구하고 있다. 현재는 홍콩에 거주 중이며, 『홍콩단편, 어쩌면 익숙한 하루』의 공동 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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