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트리올에서 보낸 가을 #4
서울에서 북쪽으로 9도가량 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하늘이 저렇게 높다. 캐나다로 오기 며칠 전, 서울에도 구름 한 점 없는 날이 이어졌었다. 파란 물에 젖은 천이 한쪽 면부터 천천히 말라가는 것처럼 하늘엔 그라데이션이 져 있었다. 나는 색의 점진적인 변화를 보며 마치 처음 알았다는 듯, 땅은 둥글고 하늘은 입체적이라는 사실에 감탄했었다. “그런데 여기 하늘은 서울 하늘보다 더 굽어 있는 것 같아. 구름이 수직으로 서 있고 더 멀리 보여.” 물에 푼 물감처럼 조금씩 형태를 바꿔가는 순백의 군집을 보며 수도 없이 마음이 울렁거렸고, 그 일은 결코 질리는 법이 없었다.
로렌스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이십여 분 찬바람을 맞고 나서야 반대편 정류장에 서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탔어야 할 버스는 이미 지나간 후였고, 한 시간에 한 대꼴로 운행되는 노선이라 앞으로 오십 분은 기다려야 했다. M은 털 숱이 달린 모자를 에스키모처럼 뒤집어썼다. 그녀는 전신에서 얼굴과 손가락 끝만 내놓고 찬란한 햇살을 더듬었다.
지도상으로 그리 멀어 보이지 않는 거리에 구시가지로 가는 다른 버스가 다녔다. 다만 그 거리까지 가려면 어마어마한 높이의 계단을 올라야 한다는 게 문제였다. 어느 성자의 이름을 딴 산책길이었는데, 성인들에게 닥치는 일이 흔히 그러하듯 거의 고행에 가까운 길이었다.
꼭대기까지 올라 퀘벡 시티를 내려다보았다. 곳곳에 어지럽게 심어진 나무는 지붕보다 높고 차고보다 넓었다. 최초에 그 나무들은 저 멀리 보이는 불그스름한 산등성이로부터 내려온 호기심 많은 여행자였을 것이다. 어젯밤 고속도로에서 퀘벡 시티로 들어설 때 보았던 빛의 지도가, 실은 가로등이 아니라 저 나무들이 내던 빛이 아니었을까 나는 의심하기 시작했다. 발광수發光樹라. 이런 곳이라면 실존할지도.
버스는 올드 퀘벡 시티, 그러니까 구시가지까지 가는 데 커브 한 번 돌지 않고 직진만 했다. 시간도 십 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를 이렇게 복잡하게 와야 할 줄 알았다면 차라리 차를 끌고 올 걸 그랬다. 나중에 따져보니 주차비가 두 사람 버스비보다 적거나 비슷했다. 그러나 버스가 생장 가Rue Saint-Jean의 상업 지역으로 들어서자 계단이고 버스비고 잊을 수밖에 없었다. 이곳은 어디라고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으나 여하튼 유럽 어느 소도시에서 볼 법한 거리와 닮아 있었다. 창문이 길쭉한 벽돌 건물과 고딕 양식의 교회는 세상이 마을 회관과 교회를 중심으로 돌아가던 시절을 추억해 보자고 말했다. 안타깝게도 내겐 그런 기억이 없었다. 다만 질병과 적군의 총칼과 변덕스러운 지도자의 명령에 목이 달아날 위험 없이 역사의 한 장 속을 산책할 자유는 있었다.
“퀘벡 시티에 ‘프랑스보다 더 프랑스다운 북미’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대.” 나는 비앤비에서 들고 온 퀘벡 시티 지도를 펼치며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여긴 프랑스 같지가 않은걸. 예전에 동유럽에 갔을 때 말이야….” M도 대략 내가 생각하는 특정 지역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었다.
그때, 사람을 감상적으로 만드는 바람 때문인지 그녀는 미각으로 옛 추억을 떠올리고 싶어졌다. 토마토 수프가 먹고 싶다고 했다. 토마토 수프를 파는 식당을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녀는 정말 토마토 수프 한 그릇만을, 나는 손바닥 안에 들어오는 햄버거를 주문했다. 묽은 수프를 보자마자 그녀가 기대하던 토마토 수프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손바닥 반의 반절만큼만 먹겠다고 고집했던 햄버거는 그럭저럭 맛이 괜찮았다. 이제 어디로 갈까, 그래, 트헤소르 가Rue du Tresor로 가 보자. 음식이야 어쨌든 식당은 따뜻해서 다행이었다. 창밖에는 꽤 많은 인파가 오가고 있었다.
"바다라고 해도 믿을 정도야."
퀘벡 시티는 캐나다에서 유일하게 성곽이 있는 도시였다. 구시가지는 바로 그 성벽 안의 옛 도심을 일컫는 곳으로, 한때는 이 지역의 터전이었으나 지금은 거의 관광지화 된 곳이다. 거리는 예전 모습을 그대로 갖추고자 하는 세심한 손길 아래 놓여있으며, 그 와중에 예술가들은 극장과 회랑과 거리에서 전위적인 흐름을 이끌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구시가지 안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띄었던 곳은 덩치 큰 게르만 민족들이 뛰어나올 것 같은 맥줏집이 아니라 공립도서관인 문학의 집Maison de la litterature이었다. 1848년 감리교 교회로 세워진 건물이었는데, 학사원을 거쳐 스위스 샤모니에 기반을 둔 건축회사의 도움을 받아 지금처럼 공공 도서관으로 개조한 곳이었다. 전시장과 도서관의 기능을 겸하는 이곳은 순전히 호기심에 올랐던 언덕에서 우연히 발견한 곳이었다. 안으로 들어서면 온통 새하얀 텍스처와 옛 저택에 서 있었을 법한 나선 계단을 맞닥트린다. 많은 방문자들, 시민들, 오늘 있는 전시에 참여한 이들이 질서 있게 계단을 오르내렸다. 가벼우면서도 엄숙한 발걸음을 보면, 그리고 예전에 이곳이 교회였음을 떠올리면, 이곳은 문학의 신전이라고 부를 만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건물 외벽에 붙어 있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écrire, lire, vivre.”
쓰다, 읽다, 살다. 이미 알고 있는 동사지만 그걸 서로 연관 지어 본 적은 없는, 아예 새로운 공식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평생 읽고 쓰며 사는 것’과 ‘읽고 쓰는 게 사는 것’이란 두 말 사이엔 얇은 선처럼 보일 듯 말 듯한 차이가 있었다. 나는 후자처럼 정확하고 간결하게 삶을, 어떤 특정한 이의 삶을, 표현한 말은 일찍이 보지 못했다. 그 말을 노트에 받아 적으며 어쨌든 여기에 쓸 필요도 없이 잊지 못하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예언자가 전달한 신탁을 가슴에 새기는 순례자처럼.
토마토 수프가 식어가는 동안 결정한 구시가지의 첫 번째 목표는 트헤소흐 가, 그러니까 퀘벡 시티의 ‘테르트르 광장’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좁은 언덕길 양쪽 벽에 거리의 화가들이 그린 그림이 걸려 있었고, 카페나 식당 앞에는 캠핑용 의자와 이젤을 놓고 초상화를 그려주는 이들도 있었다. 기념으로 하나 그려볼까 기웃거리니 거의 다 캐리커처였다. 나는 캐리커처를 좋아하지 않는다. 한두 가지 도드라지는 특징으로 누군가를 묘사하는 순간 그를 그답게 만드는 작은 부분들이 모조리 무시당한다는 느낌이 들어서다. 그건 정원을 한 종류의 나무나 꽃만으로 채우는 일이었고, 한 장르의 영화만 줄창 틀어대는 영화관에 들어가는 일이었다.
기념품은 그만두고 짧은 언덕길을 천천히 오르는 데만 집중하기로 했다. 양옆으로 퀘벡 시티와 캐나다 북부 풍광을 그린 그림을 두고 걷고 있자면 나 자신이 그림 속으로 들어온 듯한 착각이 일기도 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벽에 붙어 있는 그림에 관심을 보이며 그걸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인간이 아름다움에 반응하는 과정은 흥미롭다. 어떤 아름다움은 알고 보아야 제대로 음미할 수 있지만, 대부분은 즉각적으로, 이유도 알기 전에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저 그림을 사도 집으로 가져가는 게 보통 일이 아니겠지?”
“난 중국에서 정말 마음에 드는 그림을 사서 돌돌 말아온 적도 있어. 거의 내 키만한 그림이었는데 말이야.”
그러나 M은 의외의 대답을 했다. 나는 그녀의 집착과 수고에 놀라 그녀에겐 들리지 않을 자그마한 탄성을 질렀다. 마음이 흔들렸으면, 그리고 그게 시키는 일이 있으면, 그대로 따르는 게 마땅하다는 걸 나는 절대로 알지 못할 인간이었다. 대신 카메라를 들었다. 이 길의 아름다움은 백열등, 그 빛이 윤슬처럼 캔버스의 표면에 어른거려 만들어낸 이채로운 색깔, 그리고 거울처럼 그 모든 것을 반사하고 있는 우리의 표정에 있었다. 기념품보다는 이 거리 자체를 손바닥만한 - 내가 먹었던 햄버거 크기만한 - 종이에 인화시키는 편이 낫다고 나는 믿기로 했다.
구시가지에서, 아니 퀘벡 시티 이곳저곳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건물이 있으니, 그게 샤토 프홍트낙 호텔Fairmont Le Ch?teau Frontenac이다. 퀘벡 주의 여행안내서 표지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곳은 불그스름한 외벽과 녹색 지붕이 인상적이며, 무엇보다 언덕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그림이 좋다. 호텔 바로 앞까지 올랐을 때, 아, 사진으로 보던 곳이 이곳이구나, 하는 감탄이 나왔지만, 건물이 너무 거대해서 정작 내 카메라에는 다 담을 수 없었다. 호텔이 워낙 높은 언덕 위에 있기 때문에 주변을 배회하며 퀘벡 시를 내려다보는 맛도 있었다. 강 건너편 시가지엔 가을이 불을 질러 놓았다. 넓고 깊은 생로헝 강 위엔 출항을 기다리는 크루즈가 떠 있었다.
“바다라고 해도 믿어질 정도야.”
나의 말에 M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그때 “다음엔 바다에 갈까?”라고 물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우리는 이곳이 진짜 유럽인지 잘 꾸며놓은 유원지인지 아니면 실은 그 무엇도 아닌 정체성, 바로 퀘벡 시티라는 도시의 본모습인지 모를 모호한 인상을 안은 채 난간 주변을 서성거렸다. 사람들은 난간 앞에 서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한쪽에 진열된 구시대의 대포는 적군보다는 새의 궤적을 좇기 위한 망원경 같았다. 자꾸 바람이 불어왔고, M은 내가 빌려준 코트를 더 꽉 붙들었다. 위태로운 곳에 설치된 난간을 붙잡을 때처럼 손아귀에 잔뜩 힘을 주고서. 이제는 내려가야 할 시간이었고, 맥주에 땅콩이라고 곁들일 시간이었다.
글/사진 신태진
여행 매거진 BRICKS의 에디터. 『홍콩단편, 어쩌면 익숙한 하루』의 공동 저자.
몬트리올에서 보낸 가을 #4
서울에서 북쪽으로 9도가량 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하늘이 저렇게 높다. 캐나다로 오기 며칠 전, 서울에도 구름 한 점 없는 날이 이어졌었다. 파란 물에 젖은 천이 한쪽 면부터 천천히 말라가는 것처럼 하늘엔 그라데이션이 져 있었다. 나는 색의 점진적인 변화를 보며 마치 처음 알았다는 듯, 땅은 둥글고 하늘은 입체적이라는 사실에 감탄했었다. “그런데 여기 하늘은 서울 하늘보다 더 굽어 있는 것 같아. 구름이 수직으로 서 있고 더 멀리 보여.” 물에 푼 물감처럼 조금씩 형태를 바꿔가는 순백의 군집을 보며 수도 없이 마음이 울렁거렸고, 그 일은 결코 질리는 법이 없었다.
로렌스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이십여 분 찬바람을 맞고 나서야 반대편 정류장에 서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탔어야 할 버스는 이미 지나간 후였고, 한 시간에 한 대꼴로 운행되는 노선이라 앞으로 오십 분은 기다려야 했다. M은 털 숱이 달린 모자를 에스키모처럼 뒤집어썼다. 그녀는 전신에서 얼굴과 손가락 끝만 내놓고 찬란한 햇살을 더듬었다.
지도상으로 그리 멀어 보이지 않는 거리에 구시가지로 가는 다른 버스가 다녔다. 다만 그 거리까지 가려면 어마어마한 높이의 계단을 올라야 한다는 게 문제였다. 어느 성자의 이름을 딴 산책길이었는데, 성인들에게 닥치는 일이 흔히 그러하듯 거의 고행에 가까운 길이었다.
꼭대기까지 올라 퀘벡 시티를 내려다보았다. 곳곳에 어지럽게 심어진 나무는 지붕보다 높고 차고보다 넓었다. 최초에 그 나무들은 저 멀리 보이는 불그스름한 산등성이로부터 내려온 호기심 많은 여행자였을 것이다. 어젯밤 고속도로에서 퀘벡 시티로 들어설 때 보았던 빛의 지도가, 실은 가로등이 아니라 저 나무들이 내던 빛이 아니었을까 나는 의심하기 시작했다. 발광수發光樹라. 이런 곳이라면 실존할지도.
버스는 올드 퀘벡 시티, 그러니까 구시가지까지 가는 데 커브 한 번 돌지 않고 직진만 했다. 시간도 십 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를 이렇게 복잡하게 와야 할 줄 알았다면 차라리 차를 끌고 올 걸 그랬다. 나중에 따져보니 주차비가 두 사람 버스비보다 적거나 비슷했다. 그러나 버스가 생장 가Rue Saint-Jean의 상업 지역으로 들어서자 계단이고 버스비고 잊을 수밖에 없었다. 이곳은 어디라고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으나 여하튼 유럽 어느 소도시에서 볼 법한 거리와 닮아 있었다. 창문이 길쭉한 벽돌 건물과 고딕 양식의 교회는 세상이 마을 회관과 교회를 중심으로 돌아가던 시절을 추억해 보자고 말했다. 안타깝게도 내겐 그런 기억이 없었다. 다만 질병과 적군의 총칼과 변덕스러운 지도자의 명령에 목이 달아날 위험 없이 역사의 한 장 속을 산책할 자유는 있었다.
“퀘벡 시티에 ‘프랑스보다 더 프랑스다운 북미’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대.” 나는 비앤비에서 들고 온 퀘벡 시티 지도를 펼치며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여긴 프랑스 같지가 않은걸. 예전에 동유럽에 갔을 때 말이야….” M도 대략 내가 생각하는 특정 지역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었다.
그때, 사람을 감상적으로 만드는 바람 때문인지 그녀는 미각으로 옛 추억을 떠올리고 싶어졌다. 토마토 수프가 먹고 싶다고 했다. 토마토 수프를 파는 식당을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녀는 정말 토마토 수프 한 그릇만을, 나는 손바닥 안에 들어오는 햄버거를 주문했다. 묽은 수프를 보자마자 그녀가 기대하던 토마토 수프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손바닥 반의 반절만큼만 먹겠다고 고집했던 햄버거는 그럭저럭 맛이 괜찮았다. 이제 어디로 갈까, 그래, 트헤소르 가Rue du Tresor로 가 보자. 음식이야 어쨌든 식당은 따뜻해서 다행이었다. 창밖에는 꽤 많은 인파가 오가고 있었다.
"바다라고 해도 믿을 정도야."
퀘벡 시티는 캐나다에서 유일하게 성곽이 있는 도시였다. 구시가지는 바로 그 성벽 안의 옛 도심을 일컫는 곳으로, 한때는 이 지역의 터전이었으나 지금은 거의 관광지화 된 곳이다. 거리는 예전 모습을 그대로 갖추고자 하는 세심한 손길 아래 놓여있으며, 그 와중에 예술가들은 극장과 회랑과 거리에서 전위적인 흐름을 이끌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구시가지 안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띄었던 곳은 덩치 큰 게르만 민족들이 뛰어나올 것 같은 맥줏집이 아니라 공립도서관인 문학의 집Maison de la litterature이었다. 1848년 감리교 교회로 세워진 건물이었는데, 학사원을 거쳐 스위스 샤모니에 기반을 둔 건축회사의 도움을 받아 지금처럼 공공 도서관으로 개조한 곳이었다. 전시장과 도서관의 기능을 겸하는 이곳은 순전히 호기심에 올랐던 언덕에서 우연히 발견한 곳이었다. 안으로 들어서면 온통 새하얀 텍스처와 옛 저택에 서 있었을 법한 나선 계단을 맞닥트린다. 많은 방문자들, 시민들, 오늘 있는 전시에 참여한 이들이 질서 있게 계단을 오르내렸다. 가벼우면서도 엄숙한 발걸음을 보면, 그리고 예전에 이곳이 교회였음을 떠올리면, 이곳은 문학의 신전이라고 부를 만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건물 외벽에 붙어 있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écrire, lire, vivre.”
쓰다, 읽다, 살다. 이미 알고 있는 동사지만 그걸 서로 연관 지어 본 적은 없는, 아예 새로운 공식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평생 읽고 쓰며 사는 것’과 ‘읽고 쓰는 게 사는 것’이란 두 말 사이엔 얇은 선처럼 보일 듯 말 듯한 차이가 있었다. 나는 후자처럼 정확하고 간결하게 삶을, 어떤 특정한 이의 삶을, 표현한 말은 일찍이 보지 못했다. 그 말을 노트에 받아 적으며 어쨌든 여기에 쓸 필요도 없이 잊지 못하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예언자가 전달한 신탁을 가슴에 새기는 순례자처럼.
토마토 수프가 식어가는 동안 결정한 구시가지의 첫 번째 목표는 트헤소흐 가, 그러니까 퀘벡 시티의 ‘테르트르 광장’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좁은 언덕길 양쪽 벽에 거리의 화가들이 그린 그림이 걸려 있었고, 카페나 식당 앞에는 캠핑용 의자와 이젤을 놓고 초상화를 그려주는 이들도 있었다. 기념으로 하나 그려볼까 기웃거리니 거의 다 캐리커처였다. 나는 캐리커처를 좋아하지 않는다. 한두 가지 도드라지는 특징으로 누군가를 묘사하는 순간 그를 그답게 만드는 작은 부분들이 모조리 무시당한다는 느낌이 들어서다. 그건 정원을 한 종류의 나무나 꽃만으로 채우는 일이었고, 한 장르의 영화만 줄창 틀어대는 영화관에 들어가는 일이었다.
기념품은 그만두고 짧은 언덕길을 천천히 오르는 데만 집중하기로 했다. 양옆으로 퀘벡 시티와 캐나다 북부 풍광을 그린 그림을 두고 걷고 있자면 나 자신이 그림 속으로 들어온 듯한 착각이 일기도 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벽에 붙어 있는 그림에 관심을 보이며 그걸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인간이 아름다움에 반응하는 과정은 흥미롭다. 어떤 아름다움은 알고 보아야 제대로 음미할 수 있지만, 대부분은 즉각적으로, 이유도 알기 전에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저 그림을 사도 집으로 가져가는 게 보통 일이 아니겠지?”
“난 중국에서 정말 마음에 드는 그림을 사서 돌돌 말아온 적도 있어. 거의 내 키만한 그림이었는데 말이야.”
그러나 M은 의외의 대답을 했다. 나는 그녀의 집착과 수고에 놀라 그녀에겐 들리지 않을 자그마한 탄성을 질렀다. 마음이 흔들렸으면, 그리고 그게 시키는 일이 있으면, 그대로 따르는 게 마땅하다는 걸 나는 절대로 알지 못할 인간이었다. 대신 카메라를 들었다. 이 길의 아름다움은 백열등, 그 빛이 윤슬처럼 캔버스의 표면에 어른거려 만들어낸 이채로운 색깔, 그리고 거울처럼 그 모든 것을 반사하고 있는 우리의 표정에 있었다. 기념품보다는 이 거리 자체를 손바닥만한 - 내가 먹었던 햄버거 크기만한 - 종이에 인화시키는 편이 낫다고 나는 믿기로 했다.
구시가지에서, 아니 퀘벡 시티 이곳저곳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건물이 있으니, 그게 샤토 프홍트낙 호텔Fairmont Le Ch?teau Frontenac이다. 퀘벡 주의 여행안내서 표지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곳은 불그스름한 외벽과 녹색 지붕이 인상적이며, 무엇보다 언덕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그림이 좋다. 호텔 바로 앞까지 올랐을 때, 아, 사진으로 보던 곳이 이곳이구나, 하는 감탄이 나왔지만, 건물이 너무 거대해서 정작 내 카메라에는 다 담을 수 없었다. 호텔이 워낙 높은 언덕 위에 있기 때문에 주변을 배회하며 퀘벡 시를 내려다보는 맛도 있었다. 강 건너편 시가지엔 가을이 불을 질러 놓았다. 넓고 깊은 생로헝 강 위엔 출항을 기다리는 크루즈가 떠 있었다.
“바다라고 해도 믿어질 정도야.”
나의 말에 M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그때 “다음엔 바다에 갈까?”라고 물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우리는 이곳이 진짜 유럽인지 잘 꾸며놓은 유원지인지 아니면 실은 그 무엇도 아닌 정체성, 바로 퀘벡 시티라는 도시의 본모습인지 모를 모호한 인상을 안은 채 난간 주변을 서성거렸다. 사람들은 난간 앞에 서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한쪽에 진열된 구시대의 대포는 적군보다는 새의 궤적을 좇기 위한 망원경 같았다. 자꾸 바람이 불어왔고, M은 내가 빌려준 코트를 더 꽉 붙들었다. 위태로운 곳에 설치된 난간을 붙잡을 때처럼 손아귀에 잔뜩 힘을 주고서. 이제는 내려가야 할 시간이었고, 맥주에 땅콩이라고 곁들일 시간이었다.
글/사진 신태진
여행 매거진 BRICKS의 에디터. 『홍콩단편, 어쩌면 익숙한 하루』의 공동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