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의 무게: 작가 노트][예술] 당진의 철 조각

여백의 무게: 작가 노트 #6

 


난생 처음으로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다. 충남 당진의 아미 미술관. 폐교를 전시 공간으로 멋지게 탈바꿈한 곳이다. 7월, 8월 두 달 동안 아미 미술관 〈에꼴드 아미 레지던시〉에 참여하게 됐는데, 뜨거운 여름, 작업으로 불사르게 생겼다.


작업 공간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 쌀을 보내기 위해 지어졌던 창고다. 이후 소금창고로 사용되다가 버려졌는데, 최근 이곳을 개조하여 레지던시 작업실로 사용하고 있다. 참여 작가는 다섯 명이다. 공간 구분 없이 함께 작업실을 사용하고, 숙소는 바닷가 풍광 좋은 곳에 마련해 주었다. 얼마 만에 다른 사람과 부대끼며 작업을 하는 건가 싶어 들뜨기도 하고, 아주 오랫동안 혼자 작업을 해 왔기에 사회성이 떨어지진 않았을까 걱정도 된다.



작업 주제는 포구인데, 어떤 식으로 풀어갈지는 아직 정하지 못했다. 아침저녁으로 당진 장고항을 배회하며 철 조각들을 줍고 있다. 처음에는 플라스틱 쓰레기들을 주워 뭔가 만들어 볼까 생각했는데, 아직 본격적인 휴가철이 아니라 그런지 생각보다 플라스틱은 별로 없고, 그마저도 새벽마다 할머니들이 해안가를 거닐며 죄다 수거해 가시기에 내가 거기에 손을 댈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러다 우연히 어패류가 잔뜩 붙은 뭔가가 눈에 들어왔다. 따개비며 굴 따위가 잔뜩 붙은 쇠붙이였다. 이 무거운 쇳덩이가 가라앉지 않고 여기까지 파도에 휩쓸려 왔다니. 잔뜩 녹이 슬어 조금만 힘을 줘도 툭 부러지거나 바스라진다. 이 부식된 것들이 왠지 마음에 쏙 들었다. 그래서 이런 게 더 없을까 어슬렁거려 봤더니 생각보다 바닷가 여기저기에 많이도 너부러져 있었다. 그렇다고 쉽게 눈에 띄는 것은 아니다. 어패류로 몸을 감싸고 완벽하게 위장한 녀석들을 찾으려면 쉴 새 없이 두리번거려야 한다. 저 멀리 왠지 쇳덩이 같아 보이는 것이 있어 다가가도 헛걸음하기 일쑤다.



조금 전 해질 무렵에도 다 떨어진 작업복 차림으로 갯벌을 두리번거리며 철 쪼가리들을 한아름 주워 모았다. 작업실로 돌아오는데 할머니 둘, 할아버지 둘, 마을 어른들이 나를 유심히 바라보고 계신 듯했다. 조금씩 가까워질수록 할아버지들의 몸짓은 짐짓 비장하고 다부져 보였다. 표정도 곱지 않았다. 외지인이 본인들의 해안가를 훑으며 뭔가 건져가겠다니, 혼쭐을 내주겠다는 기운이 느껴졌다.


아까 던져두었던 철 조각들에 주섬주섬 들고 온 쇳덩이들을 모아놓고 어르신들을 다시 올려다보니, 그사이 표정이 싹 바뀌어 있었다. 노려보던 눈빛은 어느새 부드러워져 불쌍한 사람 보는 듯한 표정이었다. 요즘 젊은 사람들 힘들어, 우리 며느리는 애도 안 낳아, 우리 아들은 말도 못 하게 해. 그런 얘기들이 간간이 들렸다. 행색으로 보나 하는 짓으로 보나, 고물을 모아 파는 사람으로 아셨을 거다. 



이것들을 작업실로 가져다 이렇게 저렇게 용접을 해 본다. 짧은 레지던시 기간 동안 진행할 작업 방향이 처음 생각과는 많이 멀어지고 있지만, 뭐가 나올지 몰라서 더 좋고 설렌다. 10월에 전시를 해야 하니, 9월에 준비하던 전시가 취소된 건 잘 된 일이다. 내일 아침 해가 바짝 뜨기 전에 바닷가를 샅샅이 뒤지려면 일찍 자 둬야 한다. 두 달 동안 포구 작업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된 건 정말 다행이다.





글 안경진

조각가. 동국대학교 미술학부에서 조소를 전공하고, 서울대학교 조소과 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쳤다. 현재 그림자와 여백을 통해 하나의 형태에서 여러 가지 형상이 빚어지는 조각을 만들고 있다. 2004년 첫 번째 개인전 〈여행〉 이후 아홉 번의 개인전을 가졌고, 백여 회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저서로 『여백의 무게』, 공저로 『그럴 수밖에 없는 그릴 수밖에 없는』을 펴냈다.

인스타그램 @artin_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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