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의 무게: 작가 노트 #5
새벽에 일어나 어둠 가운데 흙 작업을 시작한다. 해가 떠오르면 비닐로 흙을 싸고, 어두워지면 다시 작업을 시작하는데, 요 며칠 시린 날씨에 손이 얼 것 같았다. 해 뜨면 부려야 하는 작업, 짙어지는 절망 가운데 희망을 담아야 하는 작업. 밝은 가운데 어지러운 세상이 펼쳐지고, 그 속에 절망이 있다. 그래서 나는 어둠 속에서 희망을 담는다.
어둠은 적막과 고요함을 동반하고, 그 한가운데 서서 나 자신을 깊이 바라보면 비로소 한 가닥 희망의 줄기가 비치는 것도 같다.
* * *
코로나로 관람객 없는 전시를 한번 치르고 나니, 작품을 전시장 밖에 공공장소에 설치하여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전시 자체를 야외 공간에서 치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며 야간에도 둘러 앉아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공간. 규모 있고 단단하게 만들어 공공장소에 설치할 수 있는 전시를 생각해 보고 있다. 낮과 밤에 전혀 다른 모습으로 드러날 수 있는, 그게 가로등이라 할지라도, 하나의 조명을 가운데 두고 둘러 선 인물들의 그림자가 여러 모양으로 드러날 수 있는 대형 작품. 세부적인 하나하나의 작품이 아니라 전체적인 그림이 중요하다.
다음 전시에 대한 윤곽을 잡아 봤다.
1. 농맹인들을 상징하는 얼굴이 기도하는 손으로 드러나는 작품.
2. 지금 만들고 있는 절망과 희망을 품은 작품.
3. 모형으로 만들어 둔, 무기력하게 늘어진 두상이 명상의 그림자로 드러나는 작품.
4. 실종된 아비의 사진을 가슴에 안은 미얀마 가족의 모습이 미얀마 상징 손짓으로 드러나는 작품.
5. 안중근 의사의 모습이 손가락 잘린 수인으로 드러나는 작품.
6. 백기완 선생님의 모습이 한반도의 그림자나 호랑이로 드러나는 작품.

미얀마의 손짓 - 연대

미얀마의 가족을 담은 '연대'

작품 '연대'의 그림자
이런 작품들을 등신대 크기로 만들어 안정감을 주고 이를 야외에 전시할 수 있도록 하려 한다. 올해 안에는 정말로 야외에서 가로등으로 그림자를 드러내는 작품으로 대중을 만나보고 싶다. 명상 작품은 절망과 희망 다음으로 완성할 계획인데, 처짐(나른함)과 명상(집중)이 드러나야 한다. 나른함 속에서 떠오르는 집중의 시간. 반전이 있으나 어둡지 않은 이야기.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 역시나 하나의 작품보다 전시 전체를 모형을 만들며 설계하고 있다. 몇 작품을 만들 것이지 계산하면서, 작품들 간에 간섭과 충돌이 일어나도록.
공공장소는 어디가 좋을까. 내가 밤새 지켜보지 않더라도 누군가 작품을 보호해 줄 수 있는 공간. 개방적이지만 함부로 행동할 수 없는 공간. 예술의 전당, 세종문화회관, 국립 현대미술관 마당 같은 공간이 떠오른다. 일단 작품을 잘 만들고 어느 정도 완성된 후에 그런 공간에 접근해 봐야겠다. 내가 지금 하려는 작업이 화이트큐브의 단절, 폐쇄성을 벗어날 수 있는 대안이 되면 좋겠다.
작업을 하며 살다 보면 호심 많은 아이처럼 홀로 있어도 즐겁고, 충만한 삶을 살고 있는 듯 느껴지기도 한다. 지나치게 많은 정보들이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할 때, 침묵과 고요 속에서 보다 크고 깊이 있는 것들과 접속하며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간다. 이런저런 뉴스, 소식들에 예전 같으면 화가 나고 불안하고 무거워졌을 텐데, 이제는 흔들리지 않는다.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곰곰 생각해 보면 시작이 어떠했든 고독으로 끝을 맺는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자취를 남기려고 한다. 내가 남기게 될 자취는 무엇일까? 작품이 남을 것이고, 그 안에 내 생각들이 남을 것이다. 내가 더 이상 작업을 하지 못할 만큼 나이가 들었을 때 나는 무엇을 그리워하고 무엇을 후회할 것인가? 혹은 자랑스러워할 만한 무엇이 남았을까?

절망과 희망
돈을 번다고 자랑스럽지는 않을 것 같다. 좋은 작품을 많이 남긴다면 좋겠다. 그러나 나만의 자긍심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공명을 통해 세상의 자양분이 되어야 할 것 같다. 세상 사람들 속에 남길 만한 훌륭한 작품. 세대를 거듭해 울림이 있을 작품. 농맹인과의 시도들이 그런 작품이 될지도 모르겠다. 이제껏 살아온 날들도 그리 짧지 않은 것 같으나, 한순간 꿈같기도 하다. 삶은 이렇게 계속 흘러가겠지. 수많은 작품 중에서 몇 개의 의미 있는 작품이 남을 것이고, 이렇게 나열하는 생각들 중에서 그럴듯한 몇 마디 말을 남길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다 부질없는 일이다. 손과 몸을 녹이고서 다시 흙을 만질 것이고, 그저 오늘 하루를 만족스럽게 보내고 싶다.
글 안경진

조각가. 동국대학교 미술학부에서 조소를 전공하고, 서울대학교 조소과 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쳤다. 현재 그림자와 여백을 통해 하나의 형태에서 여러 가지 형상이 빚어지는 조각을 만들고 있다. 2004년 첫 번째 개인전 〈여행〉 이후 아홉 번의 개인전을 가졌고, 백여 회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저서로 『여백의 무게』, 공저로 『그럴 수밖에 없는 그릴 수밖에 없는』을 펴냈다.
인스타그램 @artin_out
여백의 무게: 작가 노트 #5
새벽에 일어나 어둠 가운데 흙 작업을 시작한다. 해가 떠오르면 비닐로 흙을 싸고, 어두워지면 다시 작업을 시작하는데, 요 며칠 시린 날씨에 손이 얼 것 같았다. 해 뜨면 부려야 하는 작업, 짙어지는 절망 가운데 희망을 담아야 하는 작업. 밝은 가운데 어지러운 세상이 펼쳐지고, 그 속에 절망이 있다. 그래서 나는 어둠 속에서 희망을 담는다.
어둠은 적막과 고요함을 동반하고, 그 한가운데 서서 나 자신을 깊이 바라보면 비로소 한 가닥 희망의 줄기가 비치는 것도 같다.
* * *
코로나로 관람객 없는 전시를 한번 치르고 나니, 작품을 전시장 밖에 공공장소에 설치하여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전시 자체를 야외 공간에서 치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며 야간에도 둘러 앉아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공간. 규모 있고 단단하게 만들어 공공장소에 설치할 수 있는 전시를 생각해 보고 있다. 낮과 밤에 전혀 다른 모습으로 드러날 수 있는, 그게 가로등이라 할지라도, 하나의 조명을 가운데 두고 둘러 선 인물들의 그림자가 여러 모양으로 드러날 수 있는 대형 작품. 세부적인 하나하나의 작품이 아니라 전체적인 그림이 중요하다.
다음 전시에 대한 윤곽을 잡아 봤다.
1. 농맹인들을 상징하는 얼굴이 기도하는 손으로 드러나는 작품.
2. 지금 만들고 있는 절망과 희망을 품은 작품.
3. 모형으로 만들어 둔, 무기력하게 늘어진 두상이 명상의 그림자로 드러나는 작품.
4. 실종된 아비의 사진을 가슴에 안은 미얀마 가족의 모습이 미얀마 상징 손짓으로 드러나는 작품.
5. 안중근 의사의 모습이 손가락 잘린 수인으로 드러나는 작품.
6. 백기완 선생님의 모습이 한반도의 그림자나 호랑이로 드러나는 작품.
미얀마의 손짓 - 연대
미얀마의 가족을 담은 '연대'
작품 '연대'의 그림자
이런 작품들을 등신대 크기로 만들어 안정감을 주고 이를 야외에 전시할 수 있도록 하려 한다. 올해 안에는 정말로 야외에서 가로등으로 그림자를 드러내는 작품으로 대중을 만나보고 싶다. 명상 작품은 절망과 희망 다음으로 완성할 계획인데, 처짐(나른함)과 명상(집중)이 드러나야 한다. 나른함 속에서 떠오르는 집중의 시간. 반전이 있으나 어둡지 않은 이야기.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 역시나 하나의 작품보다 전시 전체를 모형을 만들며 설계하고 있다. 몇 작품을 만들 것이지 계산하면서, 작품들 간에 간섭과 충돌이 일어나도록.
공공장소는 어디가 좋을까. 내가 밤새 지켜보지 않더라도 누군가 작품을 보호해 줄 수 있는 공간. 개방적이지만 함부로 행동할 수 없는 공간. 예술의 전당, 세종문화회관, 국립 현대미술관 마당 같은 공간이 떠오른다. 일단 작품을 잘 만들고 어느 정도 완성된 후에 그런 공간에 접근해 봐야겠다. 내가 지금 하려는 작업이 화이트큐브의 단절, 폐쇄성을 벗어날 수 있는 대안이 되면 좋겠다.
작업을 하며 살다 보면 호심 많은 아이처럼 홀로 있어도 즐겁고, 충만한 삶을 살고 있는 듯 느껴지기도 한다. 지나치게 많은 정보들이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할 때, 침묵과 고요 속에서 보다 크고 깊이 있는 것들과 접속하며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간다. 이런저런 뉴스, 소식들에 예전 같으면 화가 나고 불안하고 무거워졌을 텐데, 이제는 흔들리지 않는다.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곰곰 생각해 보면 시작이 어떠했든 고독으로 끝을 맺는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자취를 남기려고 한다. 내가 남기게 될 자취는 무엇일까? 작품이 남을 것이고, 그 안에 내 생각들이 남을 것이다. 내가 더 이상 작업을 하지 못할 만큼 나이가 들었을 때 나는 무엇을 그리워하고 무엇을 후회할 것인가? 혹은 자랑스러워할 만한 무엇이 남았을까?
절망과 희망
돈을 번다고 자랑스럽지는 않을 것 같다. 좋은 작품을 많이 남긴다면 좋겠다. 그러나 나만의 자긍심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공명을 통해 세상의 자양분이 되어야 할 것 같다. 세상 사람들 속에 남길 만한 훌륭한 작품. 세대를 거듭해 울림이 있을 작품. 농맹인과의 시도들이 그런 작품이 될지도 모르겠다. 이제껏 살아온 날들도 그리 짧지 않은 것 같으나, 한순간 꿈같기도 하다. 삶은 이렇게 계속 흘러가겠지. 수많은 작품 중에서 몇 개의 의미 있는 작품이 남을 것이고, 이렇게 나열하는 생각들 중에서 그럴듯한 몇 마디 말을 남길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다 부질없는 일이다. 손과 몸을 녹이고서 다시 흙을 만질 것이고, 그저 오늘 하루를 만족스럽게 보내고 싶다.
글 안경진
조각가. 동국대학교 미술학부에서 조소를 전공하고, 서울대학교 조소과 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쳤다. 현재 그림자와 여백을 통해 하나의 형태에서 여러 가지 형상이 빚어지는 조각을 만들고 있다. 2004년 첫 번째 개인전 〈여행〉 이후 아홉 번의 개인전을 가졌고, 백여 회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저서로 『여백의 무게』, 공저로 『그럴 수밖에 없는 그릴 수밖에 없는』을 펴냈다.
인스타그램 @artin_ou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