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있자 그냥 우리> 작업 일기 #1
이제는 어느덧 희미해진 단어들 - 팬데믹, 코로나, 역병. 인류가 그런 질병의 시대로 접어들 때면 누구나 힘들겠지만, 예술가들은 특히 더 벼랑 끝에 내몰릴 수밖에 없다.
그전에도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잘 나간 건 아니었다. 그래도 근근이 악기도 사고, 가끔은 여행도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음악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말하자면 ‘프로페셔널 뮤지션’이었다. 하지만 그 시기엔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불안함이 하루하루 몰려왔고, 음악은 더 이상 버팀목이 되지 못했다.
원치 않는 억압과 상황에 몰렸을 때, 인간의 반응은 보통 두 가지로 나뉜다. 순응하거나, 반항하거나. 처음 한 해는 그저 '이게 뭐지?' 싶은 당혹감 속에 흘려보냈다.
그러다 문득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각종 지원사업에 응모했고, 예술인 협력 프로그램에 참여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전보다 더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을 만나 새로운 공연의 기회를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마스크를 쓴 채 사람들을 만나고, 거리 두기를 지키며 작업을 이어가다 보니 - 핑계일 수도 있지만 - 점점 지쳐갔다. 그래서 코로나가 끝나가는 분위기 속, 사람들이 하나둘 해외로 떠나던 그 시점에, 나도 몇 년 만에 해외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여행을 다녀온 뒤, 브릭스 매거진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할 기회도 생기고, 웹 드라마 OST 작업도 맡게 되었다. 나름 2022년은 알차고 역동적으로 보낸 것 같았다.

해가 바뀌고 코로나는 종식되었지만, 번 아웃이 왔는지, 생계를 위한 최소한의 음악 활동 외에는 특별히 진취적인 작업도, 문화활동도, 심지어 인간관계(연애 포함)조차 시들해졌다. 뭘 해도 별로 신 나지가 않는 것이 ‘그냥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보다’ 하고 자기 합리화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뭐, 그럴 때도 있는 거지.
그러던 어느 날, 한 대학교의 싱어 송라이터과 학생들을 가르치게 되었다. 국내 실용음악대학이라는 곳은, 시대의 사회상을 민감하게 반영하는 면에서 다른 학과들보다 몇 발짝 앞서 가는 경우가 많다. 바로 엊그제 같은 내 20대에는, ‘싱어 송라이터 학부’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당시엔 ‘자기 곡을 쓰고 노래하는 건 자기 안에서 자연스럽게 나와야 하는 거지, 그걸 학교에서 배운다고?’라며 시니컬한 반응을 보이던 선배들도 꽤 있었다.
나 역시 연주자로 출발해, ‘아무도 내 노래를 불러주지 않으니 그냥 내가 불러야겠다’는 심정으로 얼떨결에 싱어 송라이터가 되었고, 이후 대학원에서는 ‘싱어 송라이터’라는 주제로 학위를 취득했다. 그런 내게, 이제는 당당히 학부 전공으로 자리 잡은 ‘싱어 송라이터과’는 매우 흥미롭고 긍정적인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앞에 2천이라는 숫자를 달고 태어난 세대는 과연 어떤 노래를 부르고 싶어할까? AI가 예술의 영역까지 파고든 지금, 창작에 대한 개념조차 바뀌어 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노래를 할 거야, 내 이야기를 들려줄게요!” 하며 용기 있게 출사표를 던진 그들을 보며, ‘아! 나도 빨리 곡을 써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적잖이 자극이 되었고, 오래된 내 감각에 다시 불이 켜지는 듯했다.
쌀 떨어진 딸내미가 친정집 곳간을 뒤지듯, 아이폰 속 음성메모를 쭉 훑어보기 시작했다. 운전하다가, 길을 걷다가, 잠들기 직전에, 도대체 왜 하필 그 타이밍에 이런 멜로디가 떠올랐는지 모르겠지만, 놓치기 아까워 허겁지겁 녹음해둔 수많은 메모들. 그렇게 다양한 시공간 속에서 저장된 소리의 조각들을 들춰보며, 새로운 노래의 씨앗이 될 모티브를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같이 있자’ - 2020.11.25 0:32
‘우리 같이 있자’ - 2020.11.12. 1:00

작업실에서 녹음된 듯한 백색 소음 배경에, 단순하게 반복된 가사들. 짧은 구절이지만, 그 안에 오래된 감정의 파편들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인간 관계라는 서사의 종착점은 늘 ‘그게 그렇게까지 할 일이었나’ 라는 허무함으로 끝나곤 하지만, 그 흐름의 한가운데에는 발가벗겨진 채로 온갖 감정을 오롯이 겪어내고 있는 진심이 자리하고 있다.
찾. 았. 다. 다음 곡! “같이 있자 그냥 우리”
글/사진 고진수(뮤지션 로켓트아가씨)

싱어송라이터. 싱글 《노래나 부르자》로 싱어송라이터로 데뷔하여 정규 《Chapter_01》, 싱글 《Lady Rocket》, 《눈이 부시게》, 《자니? 잘자!》, 드라마 〈러;브로큰〉OST인 《러;브로큰》 등을 냈다. 25년 7월 21일 신곡 〈같이 있자 그냥 우리〉를 발매한다.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soul_of_rocket/
<같이 있자 그냥 우리> 작업 일기 #1
이제는 어느덧 희미해진 단어들 - 팬데믹, 코로나, 역병. 인류가 그런 질병의 시대로 접어들 때면 누구나 힘들겠지만, 예술가들은 특히 더 벼랑 끝에 내몰릴 수밖에 없다.
그전에도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잘 나간 건 아니었다. 그래도 근근이 악기도 사고, 가끔은 여행도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음악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말하자면 ‘프로페셔널 뮤지션’이었다. 하지만 그 시기엔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불안함이 하루하루 몰려왔고, 음악은 더 이상 버팀목이 되지 못했다.
원치 않는 억압과 상황에 몰렸을 때, 인간의 반응은 보통 두 가지로 나뉜다. 순응하거나, 반항하거나. 처음 한 해는 그저 '이게 뭐지?' 싶은 당혹감 속에 흘려보냈다.
그러다 문득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각종 지원사업에 응모했고, 예술인 협력 프로그램에 참여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전보다 더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을 만나 새로운 공연의 기회를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마스크를 쓴 채 사람들을 만나고, 거리 두기를 지키며 작업을 이어가다 보니 - 핑계일 수도 있지만 - 점점 지쳐갔다. 그래서 코로나가 끝나가는 분위기 속, 사람들이 하나둘 해외로 떠나던 그 시점에, 나도 몇 년 만에 해외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여행을 다녀온 뒤, 브릭스 매거진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할 기회도 생기고, 웹 드라마 OST 작업도 맡게 되었다. 나름 2022년은 알차고 역동적으로 보낸 것 같았다.
해가 바뀌고 코로나는 종식되었지만, 번 아웃이 왔는지, 생계를 위한 최소한의 음악 활동 외에는 특별히 진취적인 작업도, 문화활동도, 심지어 인간관계(연애 포함)조차 시들해졌다. 뭘 해도 별로 신 나지가 않는 것이 ‘그냥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보다’ 하고 자기 합리화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뭐, 그럴 때도 있는 거지.
그러던 어느 날, 한 대학교의 싱어 송라이터과 학생들을 가르치게 되었다. 국내 실용음악대학이라는 곳은, 시대의 사회상을 민감하게 반영하는 면에서 다른 학과들보다 몇 발짝 앞서 가는 경우가 많다. 바로 엊그제 같은 내 20대에는, ‘싱어 송라이터 학부’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당시엔 ‘자기 곡을 쓰고 노래하는 건 자기 안에서 자연스럽게 나와야 하는 거지, 그걸 학교에서 배운다고?’라며 시니컬한 반응을 보이던 선배들도 꽤 있었다.
나 역시 연주자로 출발해, ‘아무도 내 노래를 불러주지 않으니 그냥 내가 불러야겠다’는 심정으로 얼떨결에 싱어 송라이터가 되었고, 이후 대학원에서는 ‘싱어 송라이터’라는 주제로 학위를 취득했다. 그런 내게, 이제는 당당히 학부 전공으로 자리 잡은 ‘싱어 송라이터과’는 매우 흥미롭고 긍정적인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앞에 2천이라는 숫자를 달고 태어난 세대는 과연 어떤 노래를 부르고 싶어할까? AI가 예술의 영역까지 파고든 지금, 창작에 대한 개념조차 바뀌어 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노래를 할 거야, 내 이야기를 들려줄게요!” 하며 용기 있게 출사표를 던진 그들을 보며, ‘아! 나도 빨리 곡을 써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적잖이 자극이 되었고, 오래된 내 감각에 다시 불이 켜지는 듯했다.
쌀 떨어진 딸내미가 친정집 곳간을 뒤지듯, 아이폰 속 음성메모를 쭉 훑어보기 시작했다. 운전하다가, 길을 걷다가, 잠들기 직전에, 도대체 왜 하필 그 타이밍에 이런 멜로디가 떠올랐는지 모르겠지만, 놓치기 아까워 허겁지겁 녹음해둔 수많은 메모들. 그렇게 다양한 시공간 속에서 저장된 소리의 조각들을 들춰보며, 새로운 노래의 씨앗이 될 모티브를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작업실에서 녹음된 듯한 백색 소음 배경에, 단순하게 반복된 가사들. 짧은 구절이지만, 그 안에 오래된 감정의 파편들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인간 관계라는 서사의 종착점은 늘 ‘그게 그렇게까지 할 일이었나’ 라는 허무함으로 끝나곤 하지만, 그 흐름의 한가운데에는 발가벗겨진 채로 온갖 감정을 오롯이 겪어내고 있는 진심이 자리하고 있다.
찾. 았. 다. 다음 곡! “같이 있자 그냥 우리”
글/사진 고진수(뮤지션 로켓트아가씨)
싱어송라이터. 싱글 《노래나 부르자》로 싱어송라이터로 데뷔하여 정규 《Chapter_01》, 싱글 《Lady Rocket》, 《눈이 부시게》, 《자니? 잘자!》, 드라마 〈러;브로큰〉OST인 《러;브로큰》 등을 냈다. 25년 7월 21일 신곡 〈같이 있자 그냥 우리〉를 발매한다.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soul_of_rock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