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있자 그냥 우리][음악] 대 영상시대에 발맞추기 위한 좌충우돌 뮤비 제작기 - <같이 있자 그냥 우리> 작업 일기 #3
2025-07-21
<같이 있자 그냥 우리> 작업 일기 #3
<같이 있자 그냥 우리> 뮤직 비디오 촬영 현장
언제부턴가 음원 유통사에서 뮤직비디오를 필수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없으면, 최소한 가사라도 띄운 리릭 비디오(Lyric Video)는 있어야 한다고 한다.
나는 이 시대의 요구에 발맞추기 위해, 숨이 턱까지 차오르게 노력하는 중이다. 한번은 송캠프에서 만난 작가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요즘은 음악 작업에 천만 원을 쓰면 뮤직비디오에는 억 단위의 예산이 들어간다고. 다들 허탈하게 웃더라. 씁쓸해 하면서도 그게 현실이라며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카메라 색감 리허설 중인 나
통장과 내장을 다 털어도 억 단위의 뮤직비디오를 만들 수 없는 인디 뮤지션이기에, 결국 인맥을 총동원하기로 했다. 현직 드러머이자, 팬데믹을 거치며 영상 쪽에 숨은 재능을 깨닫고 투잡 인생을 살고 있는 나성수 감독(이라 쓰고 ‘동생’이라 부른다)에게 전화를 걸었다.
“뮤직비디오 만든다, 각오해.”
다행히 이전에 발표한 곡 <눈이 부시게>에서 한 번 호흡을 맞춘 적이 있어 마음이 놓였다.
나성수 감독
나성수 감독과 함께 만든 <눈이 부시게> 뮤직 비디오
<눈이 부시게>는 피아노 하나에 목소리로만 이루어진 심플한 곡이다. 반면 이번 곡은 후반부에 록 사운드를 더했고, 앰비언스적인 악기들도 많이 사용했다는 점에서 확연히 다르다.
두 곡 모두 드라마에서 영감을 받아 완성되었다는 점은 공통점이다. 이 공통점과 차이점을 바탕으로, 2022년에 발표한 <눈이 부시게>의 연장선상에서 새로운 뮤직비디오를 만들고 싶었다. <눈이 부시게>가 한 여성의 일상을 그린 모노드라마 형식으로 상실의 슬픔을 담담히 보여주었다면, 이번에는 남자 버전으로 만들고 싶었다. 현실을 살아가지만 완전히 적응하지 못한 인물, 그런 캐릭터가 필요했고 떠오른 것은 바로 ‘피에로’였다.
삐에로
피에로는 우스꽝스럽고 친근하면서도 동시에 무섭고 슬픈 이미지를 지녔다.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는 점에서, 이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애쓰는 우리 모습과도 닮아 있다. 삐에로가 분장을 지우며 마주하게 되는 본연의 나를 콘셉트로 내용을 구성했다. 그림 실력은 없지만 어떤 장면이 떠오를 때마다 직접 그림을 그리고 레퍼런스 이미지도 붙여가며 감독과 소통했다.
뮤직비디오 시놉시스 시안
이제는 캐스팅이 문제였다. 또다시 핸드폰 연락처를 뒤지다가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안홍진 배우님이 떠올라 조심스레 전화를 드렸다. 흔쾌히 출연을 허락해 주셨고, 장면에 대한 아이디어도 적극적으로 제안해 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삐에로로 분한 안홍진 배우
1차 미팅을 갖고 나서 단체 톡방을 만들어 서로의 스케줄과 의견을 조율했다. 스튜디오를 잡고, 촬영일도 정해졌는데, 생각해 보니 정작 가장 중요한 분장을 놓치고 있었다. 삐에로는 특수 분장이 필요한 캐릭터인데, 촬영을 일주일도 채 남기지 않은 시점에서 분장사를 구하는 건 쉽지 않았다. 그때 문득, 예전에 다원 예술 공연을 했을 때 다른 출연진들의 분장을 도맡아 해주던 이가은 배우가 떠올랐다. 정말 오랜만에 연락을 했고, 내심 ‘배우이니까 내가 원하는 분위기와 의도를 잘 알아차려 줄 거야’ 하는 기대도 있었다. 다행히 가은 배우는 바쁜 공연 일정 중에도 흔쾌히 시간을 내주었다.
나는 기존의 화려하고 유머러스한 분장이 아니라 조금은 지친 얼굴 위로 덧입혀진 슬픈 피에로를 원했다. 그런 미세한 감정선을 설명하기가 조심스러웠지만 가은 배우는 단번에 그 의도를 이해해 주었다.
안홍진 배우, 이가은 배우
촬영 당일, 스튜디오에 조명이 설치되고, 카메라 동선이 잡히고, 의상을 점검하고, 분장 붓을 들고 조용히 집중하는 풍경을 지켜보면서 나는 조금 울컥했다. 대형 기획사도, 장비도, 대단한 자본도 없었지만, 이렇게 손으로 만들어가는 어떤 마음들이 모여 하나의 장면이 되는구나 싶었다.
가장 걱정했던 건 분장을 지우는 씬이었다. 한 번에 가야 하는 원 테이크라, 실수 없이 감정을 잡아내는 게 관건이었다. 하지만 20년 배우 경력은 역시 괜히 쌓인 게 아니었다. 분장을 지우다 카메라를 바라보는 홍진 배우님의 눈빛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쓸쓸함이 담겨 있었다. 그 짧은 시선 안에 너무 많은 감정이 겹겹이 얹혀 있었다. 거울 앞에서 울음을 삼켰던 어느 날의 내 모습, 혹은 당신의, 혹은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그 순간이 떠올랐다.
스튜디오 촬영 현장
이제 곡의 중‧후반부를 채울 야외씬 차례였다.
분주하고 화려한 세상에서 혼자 덩그러니 튕겨져 나온 듯한, 어딘가 동떨어진 느낌을 담고 싶었다. 그래서 망원 한강 공원과 이태원 거리에서 촬영을 진행했다. 삐에로 옷을 입은 배우가 사람들 사이에 있는 장면을 찍다 보니, 예상치 못한 반응도 많았다. 특히 어린아이들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다가와 반갑게 말을 걸었다. 어른들은 멀뚱멀뚱 보거나 아예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망원동 굴다리에서
곡의 후반, “같이 있자, 그냥 우리”라는 가사가 반복되는 구간은 감독의 아이디어로 채워졌다. 노래를 0.75배속으로 느리게 틀어놓고, 배우가 립싱크를 하며 그 음악에 맞춰 걷다가 어딘가를 향해 점점 달려가는 장면을 촬영했다. 이전까지는 정적인 무드가 대부분이었지만, 이 구간에서는 음악의 리듬감을 살려 화면에도 동적인 움직임을 더해 대비를 주고자 했다. 나중에 속도를 정상으로 돌리면, 현실과는 살짝 어긋난 듯한 초현실적인 느낌이 만들어지는 방식이다.
이태원 거리에서 자정이 훌쩍 넘은 시간까지 촬영이 이어졌다. 예기치 않게 술에 취한 사람들이 길바닥에 드러누운 채 일어나지 않아 한동안 촬영이 중단되기도 했다. 다음 날 몸살이 날 정도로 빡빡한 일정을 소화한 감독과 배우에게 마음 한구석 내내 미안했다.
이태원 촬영 현장
완성된 뮤직비디오를 보고 있자니 만감이 교차했다. 장면 하나하나가 얼마나 많은 사람의 손과 마음을 거쳐 만들어졌는지! 다들 본업을 병행하며 쪼개 쓴 시간 속에서도 마치 자기의 일처럼 진심을 다해 주었다. 덕분에 ‘결국 인간은 다 혼자’라는 냉소주의를 마음 한구석 기저에 깔고 있는 내게도 ‘함께 하는 것’의 즐거움과, ‘따로 또 같이’의 힘이 실감되었다.
이 이야기가, 이 노래가, 그리고 이 영상이 어딘가에서 잠깐이나마 ‘같이 있는’ 감정이 되었기를. 이 글을 읽고 수고스럽게 영상을 찾아볼 당신에게도.
로켓트 아가씨의 신곡 <같이 있자 그냥 우리> M/V
P.S. 세 번의 작업 일기를 마치며 내 안에 맴돌던 작은 메시지가 결국 하나의 실존하는 창작물로 완성되는 그 과정에서 나는 또다시, 말할 수 없는 희열을 느꼈다. 아아… 그래서일까. 나는 이 미친 짓을… 조만간 또… 하게 되겠구나!
글/사진 고진수(뮤지션 로켓트아가씨)
싱어송라이터. 싱글 《노래나 부르자》로 싱어송라이터로 데뷔하여 정규 《Chapter_01》, 싱글 《Lady Rocket》, 《눈이 부시게》, 《자니? 잘자!》, 드라마 〈러;브로큰〉OST인 《러;브로큰》 등을 냈다. 25년 7월 21일 신곡 〈같이 있자 그냥 우리〉를 발매한다.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soul_of_rocket/
<같이 있자 그냥 우리> 작업 일기 #3
<같이 있자 그냥 우리> 뮤직 비디오 촬영 현장
언제부턴가 음원 유통사에서 뮤직비디오를 필수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없으면, 최소한 가사라도 띄운 리릭 비디오(Lyric Video)는 있어야 한다고 한다.
나는 이 시대의 요구에 발맞추기 위해, 숨이 턱까지 차오르게 노력하는 중이다. 한번은 송캠프에서 만난 작가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요즘은 음악 작업에 천만 원을 쓰면 뮤직비디오에는 억 단위의 예산이 들어간다고. 다들 허탈하게 웃더라. 씁쓸해 하면서도 그게 현실이라며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통장과 내장을 다 털어도 억 단위의 뮤직비디오를 만들 수 없는 인디 뮤지션이기에, 결국 인맥을 총동원하기로 했다. 현직 드러머이자, 팬데믹을 거치며 영상 쪽에 숨은 재능을 깨닫고 투잡 인생을 살고 있는 나성수 감독(이라 쓰고 ‘동생’이라 부른다)에게 전화를 걸었다.
“뮤직비디오 만든다, 각오해.”
다행히 이전에 발표한 곡 <눈이 부시게>에서 한 번 호흡을 맞춘 적이 있어 마음이 놓였다.
나성수 감독과 함께 만든 <눈이 부시게> 뮤직 비디오
<눈이 부시게>는 피아노 하나에 목소리로만 이루어진 심플한 곡이다. 반면 이번 곡은 후반부에 록 사운드를 더했고, 앰비언스적인 악기들도 많이 사용했다는 점에서 확연히 다르다.
두 곡 모두 드라마에서 영감을 받아 완성되었다는 점은 공통점이다. 이 공통점과 차이점을 바탕으로, 2022년에 발표한 <눈이 부시게>의 연장선상에서 새로운 뮤직비디오를 만들고 싶었다. <눈이 부시게>가 한 여성의 일상을 그린 모노드라마 형식으로 상실의 슬픔을 담담히 보여주었다면, 이번에는 남자 버전으로 만들고 싶었다. 현실을 살아가지만 완전히 적응하지 못한 인물, 그런 캐릭터가 필요했고 떠오른 것은 바로 ‘피에로’였다.
피에로는 우스꽝스럽고 친근하면서도 동시에 무섭고 슬픈 이미지를 지녔다.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는 점에서, 이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애쓰는 우리 모습과도 닮아 있다. 삐에로가 분장을 지우며 마주하게 되는 본연의 나를 콘셉트로 내용을 구성했다. 그림 실력은 없지만 어떤 장면이 떠오를 때마다 직접 그림을 그리고 레퍼런스 이미지도 붙여가며 감독과 소통했다.
뮤직비디오 시놉시스 시안
이제는 캐스팅이 문제였다. 또다시 핸드폰 연락처를 뒤지다가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안홍진 배우님이 떠올라 조심스레 전화를 드렸다. 흔쾌히 출연을 허락해 주셨고, 장면에 대한 아이디어도 적극적으로 제안해 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1차 미팅을 갖고 나서 단체 톡방을 만들어 서로의 스케줄과 의견을 조율했다. 스튜디오를 잡고, 촬영일도 정해졌는데, 생각해 보니 정작 가장 중요한 분장을 놓치고 있었다. 삐에로는 특수 분장이 필요한 캐릭터인데, 촬영을 일주일도 채 남기지 않은 시점에서 분장사를 구하는 건 쉽지 않았다. 그때 문득, 예전에 다원 예술 공연을 했을 때 다른 출연진들의 분장을 도맡아 해주던 이가은 배우가 떠올랐다. 정말 오랜만에 연락을 했고, 내심 ‘배우이니까 내가 원하는 분위기와 의도를 잘 알아차려 줄 거야’ 하는 기대도 있었다. 다행히 가은 배우는 바쁜 공연 일정 중에도 흔쾌히 시간을 내주었다.
나는 기존의 화려하고 유머러스한 분장이 아니라 조금은 지친 얼굴 위로 덧입혀진 슬픈 피에로를 원했다. 그런 미세한 감정선을 설명하기가 조심스러웠지만 가은 배우는 단번에 그 의도를 이해해 주었다.
촬영 당일, 스튜디오에 조명이 설치되고, 카메라 동선이 잡히고, 의상을 점검하고, 분장 붓을 들고 조용히 집중하는 풍경을 지켜보면서 나는 조금 울컥했다. 대형 기획사도, 장비도, 대단한 자본도 없었지만, 이렇게 손으로 만들어가는 어떤 마음들이 모여 하나의 장면이 되는구나 싶었다.
가장 걱정했던 건 분장을 지우는 씬이었다. 한 번에 가야 하는 원 테이크라, 실수 없이 감정을 잡아내는 게 관건이었다. 하지만 20년 배우 경력은 역시 괜히 쌓인 게 아니었다. 분장을 지우다 카메라를 바라보는 홍진 배우님의 눈빛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쓸쓸함이 담겨 있었다. 그 짧은 시선 안에 너무 많은 감정이 겹겹이 얹혀 있었다. 거울 앞에서 울음을 삼켰던 어느 날의 내 모습, 혹은 당신의, 혹은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그 순간이 떠올랐다.
이제 곡의 중‧후반부를 채울 야외씬 차례였다.
분주하고 화려한 세상에서 혼자 덩그러니 튕겨져 나온 듯한, 어딘가 동떨어진 느낌을 담고 싶었다. 그래서 망원 한강 공원과 이태원 거리에서 촬영을 진행했다. 삐에로 옷을 입은 배우가 사람들 사이에 있는 장면을 찍다 보니, 예상치 못한 반응도 많았다. 특히 어린아이들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다가와 반갑게 말을 걸었다. 어른들은 멀뚱멀뚱 보거나 아예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곡의 후반, “같이 있자, 그냥 우리”라는 가사가 반복되는 구간은 감독의 아이디어로 채워졌다. 노래를 0.75배속으로 느리게 틀어놓고, 배우가 립싱크를 하며 그 음악에 맞춰 걷다가 어딘가를 향해 점점 달려가는 장면을 촬영했다. 이전까지는 정적인 무드가 대부분이었지만, 이 구간에서는 음악의 리듬감을 살려 화면에도 동적인 움직임을 더해 대비를 주고자 했다. 나중에 속도를 정상으로 돌리면, 현실과는 살짝 어긋난 듯한 초현실적인 느낌이 만들어지는 방식이다.
이태원 거리에서 자정이 훌쩍 넘은 시간까지 촬영이 이어졌다. 예기치 않게 술에 취한 사람들이 길바닥에 드러누운 채 일어나지 않아 한동안 촬영이 중단되기도 했다. 다음 날 몸살이 날 정도로 빡빡한 일정을 소화한 감독과 배우에게 마음 한구석 내내 미안했다.
이태원 촬영 현장
완성된 뮤직비디오를 보고 있자니 만감이 교차했다. 장면 하나하나가 얼마나 많은 사람의 손과 마음을 거쳐 만들어졌는지! 다들 본업을 병행하며 쪼개 쓴 시간 속에서도 마치 자기의 일처럼 진심을 다해 주었다. 덕분에 ‘결국 인간은 다 혼자’라는 냉소주의를 마음 한구석 기저에 깔고 있는 내게도 ‘함께 하는 것’의 즐거움과, ‘따로 또 같이’의 힘이 실감되었다.
이 이야기가, 이 노래가, 그리고 이 영상이 어딘가에서 잠깐이나마 ‘같이 있는’ 감정이 되었기를. 이 글을 읽고 수고스럽게 영상을 찾아볼 당신에게도.
로켓트 아가씨의 신곡 <같이 있자 그냥 우리> M/V
글/사진 고진수(뮤지션 로켓트아가씨)
싱어송라이터. 싱글 《노래나 부르자》로 싱어송라이터로 데뷔하여 정규 《Chapter_01》, 싱글 《Lady Rocket》, 《눈이 부시게》, 《자니? 잘자!》, 드라마 〈러;브로큰〉OST인 《러;브로큰》 등을 냈다. 25년 7월 21일 신곡 〈같이 있자 그냥 우리〉를 발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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