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의 무게: 작가 노트]살던 대로 살지 않겠다는 부질없는 마음

여백의 무게: 작가 노트 #3



1960년대, 그 누구도 인간에 의한 지구 환경 파괴에 대해 논의하지 않던 시절, 캐서린이란 작가가 불러 불러일으킨 논쟁이 이제야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1980년대부터 우리나라에도 환경 단체들이 생겨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논했다고 하지만, 코로나가 오고 나서야 인류 존폐의 위기를 동시대 모든 이들이 함께 고민하는 것 같다. 대면 접촉을 기피하게 되면서 생필품 배달이 늘어났고, 쓰레기도 부쩍 많아졌다.



하지만 나의 태도에 이렇다 할 변화는 없다. 내가 작업을 한다는 것 자체부터 쓰레기를 생산하는 과정이다. 자연적인 소재로 작품을 만들겠다고 하지만, 아직 시작도 못하고 있다. 사실 안 하고 있다. 이제나저제나, 옛 방식을 버리는 게 참 힘들다. 구입해 놓은 재료들이 있고 작업해 오던 방식도 있고, 기존의 제작 방식에서 벗어난 새로운 작품을 구상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 생각하는 작품은 유토로 인간 형태의 작품을 만들고 점토로 몰드를 만들어 바로 가마에 구워 화분을 만들고, 거기에 흙을 채워 땅에 묻는 것이다. 화분이 묻힌 자리에 자연스레 씨앗이 날아들고, 이름 모를 풀이 자라고 뿌리가 가득해지면, 화분을 파내 전시해 볼 생각이다. 인간 형태의 뿌리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인간 틀 속에 갇힌 식물이란 무엇인가?



지금까지 만들어 본 뿌리 인간 화분 틀은 수축률을 계산하지 못해 너무 많이 갈라지고 제멋대로 뒤틀려 버렸다. 세 개로 쪼갠 틀이 서로 잘 맞지 않는다. 완성은 기약 없이 자꾸 뒤로 미뤄진다.


정형화된 화분보다는 석고볼을 석고로 가득 채워 떠낸 후에 얼굴을 깎아서 만들면 어떨까? 이건 오늘 꿈에서 떠오른 작업 방식이다. 꿈속에서도 작업을 쉬지 않는 것 같다. 그러고 난 뒤에 흙을 많이 굳혀서 수축률을 최소화하여 몰드를 만들어 보는 거다. 아니면 석고 틀을 물에 담가두었다가 얼굴을 조각하고 흙을 붙여 봐야겠다. 화분을 석고 몰드로 떠내는 것도. 날이 무척 추워졌다. 거센 바람에 낙엽이 모두 흩날려 없어져 버렸다. 오늘이 지나면 다시 풀린다고 하니, 내일부터 다시 작업을 시작해야겠다. 일단 흙 담을 준비를 해야겠다.



늦은 감이 있지만 철조로 작업 스타일을 바꾸면 어떨까 싶다. 반생으로 인체를 직조하는 것이다. 재료의 한계를 자꾸 생각하게 된다. 철로 직조하면 견고하고 흙 작업처럼 후반 작업이 별로 없다. 전시를 할 때도 매달거나 조명처리를 하기 좋을 듯하다. 흙 작업을 더 좋아하지만, 캐스팅 과정이 더디고 정말 피하고 싶은 과정이기도 하다. 쓰레기도 너무 많이 나온다. 철조는 캐스팅 과정도 없고 쓰레기도 덜 나올 것 같다.


내가 중요하다 여기는 것에 집중하며 사는 것이, 아내에게는 어떨지 몰라도 아이에게는 분명 좋은 모습이 되지 않을까. 모든 것을 팽개치고 작업에나 몰두하겠다는 건 아니다. 생활에 비굴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돈을 벌어야 한다. 지금 하고 있는 강의를 지속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무엇보다 작품으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조형물 같은 큰돈이 아니더라도 내 작품이 세상 속에 어떻게 스며들 수 있을지 눈과 귀를 열어 두자. 요새는 작업과 관련되지 않은 돈벌이가 없는 것만 해도 얼마나 복된 일인지 모른다. 귓가에 들려오는 헛된 일들에 매몰되지 않으려면 욕심을 버려야 한다. 내가 큰 사람이 되지 못하면 어떠한가. 작가로서 나 스스로 만족하는 작품을 만들고, 아빠로서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인생이면 된다.




글/사진 안경진

조각가. 동국대학교 미술학부에서 조소를 전공하고, 서울대학교 조소과 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쳤다. 현재 그림자와 여백을 통해 하나의 형태에서 여러 가지 형상이 빚어지는 조각을 만들고 있다. 2004년 첫 번째 개인전 〈여행〉 이후 아홉 번의 개인전을 가졌고, 백여 회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저서로 『여백의 무게』, 공저로 『그럴 수밖에 없는 그릴 수밖에 없는』을 펴냈다.

인스타그램 @artin_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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