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가고 싶은데요]다시 따뜻해지겠지

도망가고 싶은데요 #3



날씨가 급변했다. 생각 없이 밖을 나섰다가 옷장에 있는 패딩을 떠올렸다. 올해 내가 단풍 구경은 했던가? 기억이 없다. 그런데 대체 이 칼바람은 무엇인가! 심지어 뒤가 뚫린 신발을 신었다. 날씨가 이렇게 추워지려고 온몸이 쑤시듯 아팠나 보다. 때로는 몸이 먼저 반응할 때가 있다. 비가 오기 전이면 무릎이 쑤셔온다는 어른들 말씀처럼. 집으로 돌아와 오늘의 일기를 쓰다 작년에도 이렇게 추웠던가 더듬어 보니 그때는 지금보다 더 날씨를 느낄 새도 없었다. 집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빨리 왔다가 갔으면 하는 데 온 신경이 가 있었기 때문에 계절 지나는 줄도 몰랐다.



내내 떨면서 돌아다니다 집에 돌아와 인스타를 보니 디엠이 와 있다. 누구지?


‘며칠 전 갑자기 네 생각이 나서 연락해 봄. 잘 지내고 있지?’


아 온니! 연락 한 번 드려야지 생각만 했는데. 반가웠다. 재작년에 감독과 배우들이 모여 릴레이 시나리오를 써서 단편영화를 만들어보는 유튜브 프로젝트 비슷한 걸 했는데, 거기에서 만난 언니였다. 한 다섯 번은 봤으려나? 언니랑은 꽤 가까운 데 살고 있었고, 그래서 한 번쯤은 따로 얘기를 나눠볼 수 있으리라 여겼는데, 그럴 기회가 없었다. 내가 두어 번 안부를 물었던 것 같은데, 딱 그 정도.


‘요즘 현대무용 수업 받는데 너 생각이 많이 나더라고. 같이 막 춤추고 싶다는 생각’


아무래도 언니는 나의 요상한 춤 영상을 떠올렸던 것 같다. 유튜브에 올린 오디션 영상에 나오는. 그 프로젝트를 할 당시도 참 추웠지. 벌써 한 해가 다 되어가는구나. 그러고 며칠이 지났을까,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소윤아 뭐해? 요새 준비하는 거 있어? 내가 공연이 하고 싶어서, 아는 연출님 하고 공연을 해보려고 하는데, 혹시 생각 있어?”


나는 항상 목마르다. 하지만 부동산에 내놓은 집이 나가질 않아 고민이 되긴 했다. 그렇다고 집에 계속 얽매이기는 싫고, 공연을 하면 집 문제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네. 언니와의 인연이 다시 시작되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고, 대화를 나누고 하나의 그림을 완성시켜 보고 극장도 보러 다녔다. 우리가 원하는 극장에서 관객을 만난 날을 그렸다. 요즘은 무슨 얘기든 다 비슷한 결로 끝이 난다. 코로나 확진자 대폭 급증, 공연 무산. 이후에는 각자 상황으로 돌아가 추이를 지켜보며 훗날을 기약.



공연을 준비하다 보면 참 깊은 얘기를 많이 나누게 되는데, 그래서인지 언니와의 관계도 한층 가까워졌다. 배우로서 가진 고민과 앞으로의 삶에 대한 고민. 이따금 만나 얘기를 나누고 보니 어느덧 한 해가 다 지나갔고, 언니의 웨딩 사진까지 찍게 되었다는 다소 희망적인 전개.



사진 촬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 그때의 나는 정신이나 체력이나 굉장히 고갈된 상태였다. 배우로서의 내 삶, 의지가 전부 위태위태했다. 언니가 말했다. 걱정하지 마. 건강하기만 하면 돼. 몸이 안 아파야 뭐든 할 수 있잖아. 생각해 봐. 지금 너한테 좋은 작품이 왔어. 지금 너 상태에서 할 수 있겠어?


“지금 할 수 있겠어?”


그래, 지금도 이렇게 젤리만 먹고 있을 때가 아니다. 따뜻한 밥 잘 챙겨 먹고 꼿꼿하게 앉아 따뜻해질 날을 기다려야지. 언젠가는 다시 따뜻해지겠지, 그때면 나도 뭔가 할 수 있겠지. 추위를 탓하는 태도가 되어 버렸지만,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술 한 잔에 벌게진 뺨을 식히며 걷던 겨울밤 거리를 그리워하겠지.


다들 밥 잘 챙겨 드세요!





글/사진 황소윤

춤. 사진. 글. 로 대화하는 배우.

0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