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맘대로 두바이 통신원][여행] 아이의 두바이 학창생활 - 다림질을 하다가

내 맘대로 두바이 통신원 #9



다림질을 하다가

해가 짧은 것은 서울의 겨울이나 두바이의 겨울이나 매한가지였다. 사위가 아직 어둠에 잠긴 이른 아침, 나는 혼자서 조용히 거실로 나갔다. 지난밤 다려놓은 아이의 교복이 걸려 있었다. 다리미판을 반이나 차지하려나. 남편의 와이셔츠 사이즈에 익숙해져 그런지 애처로울 정도로 앙증맞아 보이는 아이의 셔츠와 반바지를, 나는 공을 들여 다림질해 두었던 것이다. 사실, 눌러서 펴고 자시고 할 것도 없는 새 옷이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숨어 있는 작은 주름 하나까지도 곱게 곱게 펴주고 싶었다. 두바이에서 처음 학교생활을 시작하는 내 아이가 등교 첫날 입을 교복이었으니까. 아직은 낯설게만 느껴지는 공간. 눈에 눈물이 고였다.


등교를 시작한 첫 주의 마지막 날, 아이에게 즐거움을 주고 싶은 마음에 버즈 알 아랍(Burj Al Arab)을 보러 갔다.
하지만 아이는 이 도시의 명물을 본다는 사실보다 더 이상 교실에 앉아있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더 기뻐했다.



더운 나라의 화끈한 등교 시간

한국은 학교에서든 회사에서든 대부분 아침 9시에 일과가 시작된다. 하지만 두바이는 다르다. 해가 떴다 하면 기온이 무섭게 올라가는 동네라 그 전에 장소 이동을 끝내버리려는 심산일까? 이곳에서는 하루가 시작되는 시간이 화끈할 정도로 빠르다. 대부분의 회사는 오전 8시부터, 학교는 그보다도 더 이른 시간에 하루의 문을 연다. 내 아이가 다니는 학교의 경우 오전 7시 45분까지는 등교를 마쳐야 한다. 학교에 갈 준비를 하는 데 걸리는 시간과 집에서 학교까지가는 이동 시간을 고려하면 아무리 늦어도 6시 30분에는 잠자리에서 일어나야 한다. 그나마 집과 학교가 가깝고 아침을 최대한 간단히 먹기에 가능한 스케줄이지만, 초등학교 1학년 아이가 매일 새벽에 일어나 교복까지 차려입고 집을 나선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학교에 가는 것이 두려운 아이에게는 더욱더 그랬다.



응원을 담고 싶었어

“교실에 들어가면 ‘하이’라고 인사하면 돼. 집에 올 때는 ‘바이’라고 하고. ‘예스’랑 ‘노’는 엄마가 무슨 뜻인지 알려줬지? 그리고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는…”


아이가 하나의 언어를 가급적 온전히 습득하고 그것을 사용하는 재미를 느끼고 난 이후에 또 다른 언어를 가르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만 6세가 넘어서까지 우리 부부는 아이에게 그 어떤 외국어도 가르치지 않았다. 대신 한국어로 쓰인 책을 매일 꾸준히 읽어주었고 덕분에 아이는 한국어를 잘 말하고 읽고 쓰는 아이로 자랐다. 그러던 중에 두바이로 이사를 왔다. 한국의 초등학교 입학통지서를 받은 아이는 정작 외국에서 학창생활을 시작하게 되었고 아는 이 하나 없는 도시에 도착한 지 며칠이 지나지 않아 첫 등교를 했다. 모든 것이 영어로 진행되는 영국계 국제학교로.


학교에 다니던 첫 해, 1학년 교실 앞에서. 감사하게도 너무나도 좋으신 선생님과 친구들 덕분에 차근차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었다.


아이가 학교에 첫 발을 디딘 날이 아직도 눈앞에 생생하다. 제 몸에 비해 조금 큰 교복을 입고 학교 로고가 선명한 커다란 책가방까지 멘 꼬마가 교문 앞에 서서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고개도 못 들고 있었다. 그런 아이를 붙잡고 엄마 마음 편하자고 나는 벌써 몇 번이나 했던 이야기를 반복했다. 하이, 예스, 노, 그리고… 알지? 선생님을 따라 멀어져 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는데 참았던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곁에 선 남편도 마음이 착잡하기는 마찬가지인 듯했다. “아이들은 금방 적응하니 걱정하지 마세요.” 교문을 지키던 분이 건넨 따뜻한 말씀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아는 이 하나 없고 말도 안 통하는 곳에서 어떻게 지내다 오려나? 얼마나 답답할까? 얼마나 무서울까? 화장실에 가고 싶어도 못 가는 건 아닐까? 교육철학이고 나발이고 우리는 왜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치지 않았을까?


그래서 나는 미안한 마음을 담아 매일 아이의 교복을 빨고 다림질을 했다. 반듯하게 다려진 깨끗한 옷을 입은 아이가 그 안에 담긴 엄마의 응원을 눈치채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것이 용기로 이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안 다려요

스트레스가 극심했었나 보다.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날로부터 첫 한 두 달간 아이는 이상행동까지 보였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학교생활이 세 달쯤에 접어들면서부터 아이의 표정이 확연히 밝아졌다. 선생님과 친구들이 하는 이야기를 알아듣고 문법이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제 할 말 해가며 생활하는 게 내 눈에도 보였다. 자연스레 엄마의 긴장도 풀릴 수밖에.


뒷간 갈 적 마음 다르고 올 적 마음 다르다는 속담, 이거 혹시 나를 보고 하는 이야기 아니야? 그즈음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다림질을 게을리하기 시작한 것이. 매일 같이 빨아대던 교복을 이제는 육안으로 봐서 더럽지 않으면 며칠씩 더 입히기 시작했고 결과적으로 다림질하는 빈도가 줄기 시작하니 다리미를 꺼내는 일마저 귀찮아졌다. 어제의 주름이 남아 있는 옷을 입고 학교엘 가도 변함없이 즐거워 보이는 아이의 표정이 나에게는 좋은 핑곗거리가 되어주었다. 


학교에서 만난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과 우정을 쌓으며 아이는 매일 조금씩 자라고 있다.



그래도 다시, 다림질

두바이에서 학교를 다니는 대부분의 남자아이들이 그러하듯 내 아이도 와이셔츠에 정장 스타일 반바지를 받쳐 입고 넥타이로 완성하는 교복을 입는다. 망토랑 마법의 지팡이만 없을 뿐 호그와트 교복과 유사한 스타일이다. 하지만 일주일에 두 번 체육 수업이 있는 날만은 체육복을 입고 등교를 한다. 무수한 일주일이 지나갔고 아이는 어느새 3학년 형님이 되었다. 그리고 학교에 가는 것이 즐거워진 3학년 형님은 급기야 어제는 잠옷 대신 체육복을 입고 잠자리에 들었다. 최대한 늦게까지 잠을 잔 다음 학교에 갈 준비를 초고속으로 하겠다는 이유였다. 나는 푸하하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래, 밤새 입고 뒹굴면 주름이 자글자글 잡히는 와이셔츠도 아니고 체육복이니 네 마음대로 해라, 해!


두바이에 올 때까지만 해도 수영을 전혀 못하던 아이는 학교 수영 대표 대기 선수로 뽑힐 정도로 수영을 잘하게 되었다.


본인의 계획대로 실컷 자고 빠르게 준비를 마친 아이가 출근하는 아빠를 따라 집을 나선 아침, 나는 오랜만에 구석에 처박아두었던 다리미를 꺼냈다.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뤄 두다가 정말로 최후의 순간에 시험공부를 시작하는 상황과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내 앞에는 남편의 와이셔츠며 아이의 교복 등 다림질해야 할 것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두바이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재주는 없지만 정성을 꾹꾹 눌러 담아 하루가 멀다 하고 하던 일이었는데 긴장이 풀린 탓인지 이제는 다림질의 디귿자만 떠올려도 벌써 피곤한 스스로가 우습기도 하다. 그러나 교복의 주름 몇 개쯤은 신경도 쓰이지 않을 정도로 아이의 마음도, 우리 부부의 마음도 편안해졌다는 사실이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인 부르즈 할리파(Burj Khalifa)에 오른 아이와 친구. 카메라만 갖다 대면 포즈가 자동으로 발사된다.


매일같이 아이의 교복을 다리며 그 조그마한 천 조각에 응원을 꾹꾹 눌러 담던 부지런한 엄마는 과거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오늘만은 다시 한 번 정성껏 다림질을 해보려 한다. 힘들었을 텐데 잘 견뎌주어 고마워, 앞으로 두바이 학교에서의 시간도 신나게 보내렴. 엄마의 메시지를 담아 교복에 숨겨진 주름 하나하나까지도 화끈하게 쫙 쫙 쫙 펴 줄 것이다.


아랍에미리트의 내셔널 데이에 이 나라의 전통복장을 입고 전통 시장에 놀러 갔다. 이제는 두바이에서의 삶이 즐거운 아이들.




글/사진 이유미(여행하는가족)

“엄마는 나중에 커서 뭐가 되고 싶어?”
마흔 넘어 받은 질문이 고마워 눈물이 다 났습니다. 아이에게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도록 오래 간직해온 저의 꿈을 한 자 한 자 펼쳐보려고 합니다. ‘여행하는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브런치에 글을 쓰고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고 있습니다.
https://www.instagram.com/travellingfamily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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