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여행] 더 가까운 일본, 후쿠오카 소요기 #2

2023-07-14

:: 더 가까운 일본, 후쿠오카 소요기 #1 읽기


 

아크로스 후쿠오카

산책은 나카스에서 다리를 건너 텐진 중앙공원을 걸어 마무리한다. ‘아크로스(Acros) 후쿠오카’라는 인상적인 건축물이 나타난다. 공원 쪽에서는 녹색 식물로 뒤덮인 계단식 정원으로 보이고, 반대쪽 대로에서는 유리 건물이 보인다. 수만 그루의 나무가 자란다고 하는 계단식 정원은 중앙공원의 녹지와 어우러져 독특한 경관을 만든다.

 

아크로스 후쿠오카는 아르헨티나의 해체주의 건축가인 에밀리오 암바즈의 작품이다. 건물 내부는 심포니 홀과 국제회의장 등의 시설을 갖춘 복합 문화시설이고, 잘 알려진 맛집들도 지하상가에 있다. 식사 후에는 중앙공원 방면으로 건물 옆에 나 있는 계단을 거쳐 건물 정상에 오를 수 있다. 후쿠오카(福岡)라는 지명은 글자 그대로 보자면 ‘복된 언덕’일 진데, 기실 대개 평지인 이 도시에서 언덕에 올라 도시를 굽어볼 수 있는 경험은 이곳이 전부라는 점 또한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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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로스 후쿠오카



‘탈아입구’의 자취, 귤이 회수를 건너 탱자로

하루 여정을 마무리하며 숙소로 돌아가는 길엔 하카타역, 즉 ‘JR 하카타시티’를 거쳤다. 여러 대형 백화점과 쇼핑몰이 빽빽이 포진해 있고 지하철과 전철을 타려는 사람들로 붐비는 이곳을 가로지르는 통행로에 유독 현지인들이 줄을 길게 서 있는 점포가 있는데, 상호가 이탈리아어다. 일 포르노 델미뇽(Il Forno Del Mignon), ‘작은 오븐’이라는 이름의 크루아상 전문점으로 막 구워낸 크루아상을 사기 위해 사람들은 퇴근길에도 줄 서는 걸 마다치 않는다. 거기에 합류해 몇 종류 사서 맛을 보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곳 외에도 카눌레와 크레페, 파이, 카스텔라 등 유럽 디저트와 제과를 먹기 좋은 형태로 바꾸거나 재료의 가감을 거쳐 만들어 내놓는 점포가 적지 않다. 하카타역 옆 복합쇼핑센터 ‘킷테(Kitte)’에서 파는 크레페와 미니 도넛 또한 작은 크루아상과 함께 여행 동안 즐겨 먹었던 간식이다. 


f5d842f0f5890.jpg크루아상으로 유명한 일 포르노 델 미뇽


기본과 디테일 모두의 완성에 정성을 쏟는 이른바 ‘모노즈쿠리(物作り)’의 태도가 이런 제과와 빵에도 고스란히 맛과 품질로 담겨 있는 듯싶다. 일본이 한때 ‘아시아를 벗어나 유럽에 들어가야 한다’고 주창했던 이른바 ‘탈아입구(脫歐入亞)’의 지정학적 프로파간다, 그 노력의 미시적인 자취를 나는 두루 감탄하며 즐겼던 유럽식 디저트에서 마주했다.

 

한때의 탈아입구 노력과 모노즈쿠리리가 빚어낸 현상. 이는 결국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양상으로 전개되지 않았나 싶다. 지금은 관광명소가 된 구 후쿠오카현 공회당 귀빈관이나 텐진의 줄리엣또 레터를 비롯한 예쁜 문구점, 유럽의 동화 이미지를 차용한 디자인의 아동용품숍, 일본의 대중 메뉴가 된 나폴리탄 스파게티, 앙버터 토스트 등. 그리고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의 애정을 받는 지브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 작품들 전부 서양 것들이 회수를 넘어와 고유의 스타일로 탱자가 된 것은 아닐까 생각하며 발길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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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티지샵보다 작은 레코드숍에서 누리는 소소한 디깅의 즐거움

유튜브와 블로그에서 ‘후쿠오카 여행’을 검색해 보면 가장 많이 나오는 콘텐츠는 역시 쇼핑이다. 알고리즘 추천 콘텐츠는 특히 젊은 관광객들의 가장 큰 관심사인 특정 일본 패션 브랜드의 제품들이고, 이는 ‘신상’을 쟁취하기 위한 오픈런이건, 나름의 눈썰미와 경험을 통해 감각적이고 스타일리시한 중고 빈티지 제품을 골라 ‘득템’하는 일종의 ‘디깅(digging)’이건 매한가지 즐거움을 주는 듯하다.

 

75c06d1969fdd.jpg1ac2230f91849.jpg381f69f00f287.jpg타워 레코드


음악 선호를 자처하는 나는, 역시 텐진과 야쿠인에 함께 모여 있는 관록의 레코드숍들을 둘러보고자 했다. 먼저 찾은 곳은 ‘70s Records Garageland’. 60대 초의 부부가 운영하는 작은 숍이다. 이 지역에선 아마도 가장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지 않나 싶은데, 주로 영미의 펑크와 록, 로컬 록밴드의 음악과 굿즈의 구색이 꽤 다채롭다. 특히 롤러코스터와 라이너스의 담요부터 뉴진스에 이르는 ‘Urban K-Pop’을 다룬 책을 팔고 있어 역시 감상의 스펙트럼이 두터운 일본다웠다. 주인장 부부는 결국 숍의 로고가 들어간 티셔츠 한 장만을 사 가는 뜨내기 관광객인 내게 끝까지 정성을 다했고, 더듬거리며 한국말로 배웅까지 해줬다.

 

ae252d2408bf7.jpg430879432137b.jpgcab3c94604bbf.jpg7ad9dd88e1d98.jpgdc524e38d4865.jpg세븐티즈 레코즈 가라지랜드


그리고 감각적인 공간과 재즈와 팝을 중심으로 풍부하게 비치된 앨범 면에서 단연 으뜸이었던 ‘보더라인 레코즈(Borderline Records)’, 가장 골수 단골만 받을 것 같은 중고 레코드숍 ‘그루빙(Groovin’) 디스크샵’이 추천할 만하다. 그곳에는 지금도 눈썰미와 인내심을 겸비한 마니아들의 ‘디깅’을 기다리고 있는 보석 같은 앨범들이 도사리고 있다. 물론 하카타의 아뮤플라자와 텐진 파르코백화점 두 곳에 대형 음악 매장인 타워레코드가 있어 쇼핑의 편의는 있지만, 이미 이곳은 K팝과 일본 아이돌의 음악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나만의 무엇을 애써 찾는 맛은 아무래도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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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더라인 레코즈


e4e1975f3582b.jpg305bb2915ffe7.jpg그루빙 디스크샵



구슈 지역으로 넓히자는 다음의 기약

후쿠오카행은 흔히 계획하는 짧은 일정으로는 쉽게 성에 차지 않는 여정일 수 있다. 그래서 규슈 지역으로 넓히게 되는 다음의 기약을 한다. 벳푸나 유후인 같은 온천 성지부터 기타규슈, 나카사키까지 이르는 마음의 지도를 그리게 되는 것이다.

 

훌쩍 즉흥적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깜냥을 가졌건, 혹은 어렵게 휴가를 내서 다음번엔 더 알차게 기획해보리라 마음먹는 꼼꼼한 성격의 소유자건 중요한 건 우연한 계기일 수도, 좋은 여행의 추억을 믿고 함께할 동반자와의 의기투합일 수도 있다. 그러니까 장률의 영화에서 후쿠오카 행을 천진하게 제안하는 소담과 같은 요정의 등장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여행에세이집 〈먼 북소리〉의 서문에 등장하는 두 마리의 벌 ‘카를로’와 ‘조르지오’의 역할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쇼핑이건, 미각이건, 절대 휴양이건, 혹은 적극적인 모험이건 매한가지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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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백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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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의 팝과 록에 어지러이 매혹당하며, 장래 희망으로 FM 라디오 DJ를 제법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대학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했고, 어렸을 적 바람과는 달리 글로벌 IT기업에서 25년 이상 일을 해오고 있다. 전업의 시간 이편에서는 팝을 비롯한 대중문화 딜레탕트로서의 삶을 즐기며, 여전히 팝 키드로 살기 위해 애쓰고 있다. 지은 책으로 『음악을 입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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